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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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17년부터 한권씩 읽기 시작해서 올해초에 마무리가 되었다. 순서는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문화의 수수께끼 순으로 읽었는데 큰 상관은 없었지만 사실 출판 순은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순이었다.

 가장 초기작을 마지막으로 접해서인지 3권 중 문화의 수수께끼가 가장 읽기가 수월했다. 겹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문화유물론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아져서 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리즈가 연식에 비해 재밌고 배울것이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겹쳤던 부분은 제외하고 인상적인 부분 3곳을 정리해보았다.

 

1. 원시사회의 경제매커니즘

 마빈 해리스는 서구인들이 신비하거나 야만스럽고 이해불가하며 괴이하게까지 보는 여러 원시사회의 문화들이 사실은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토대 위에 서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워낙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된 것이어서 관찰하는 서구인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실제 운영하는 원시사회의 부락민들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서 쉽사리 자각하지 못한다. 해리스는 무지와 공포, 갈등으로 일반인은 문화의 세속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보았는데 예술과 정치는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집단적 환상체제를 이룩해 일반인들이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호혜성 경제지역

일반론 다음으로 각론으로 넘어가면 일단 사회경제체제상 가장 열악한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사육한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이런 곳에서는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호혜성이란 서로 간에 돌려받을 대가가 무엇인지, 또는 언제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개인사이에서 교환이 일어나는 경제를 말한다.

 호혜성 경제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부시맨들의 부락을 저자는 관찰하였는데 이들의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일주일에 5-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은 이 기간중 사냥이나 채집을 하였고 그것으로 연명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만을 사냥하고 집단으로 사냥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로 상호간의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이 대비해주고 다른 사람의 실패도 내가 대비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분히 더 동물을 사냥하거나 채집이 가능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초과생산을 향해 집중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 자연이 파괴되어 사육한계 자체가 극단적으로 낮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문화에서는 열심히 일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로 한 인류학자가 부시맨들에게 매우 기름진 수소를 제공하였는데 모든 부시맨들이 이 매우 기름진 소를 아낌없이 먹고 즐겼음에도 수미일관하게 수소가 생각만큼 살이 찌지 않았고, 맛이 없고 대단치 않았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시맨들은 수소를 제공하는 이에게 과도한 빚을 지지않으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호혜성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로 보인다. 명예나 일방적인 수혜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의 지위 추구는 지역의 사육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부시맨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 전쟁 경제체제

이 지역은 호혜성 경제체제는 넘어섰지만 지역이 섬이거나 좁고 불모한 땅이 많아 사육경제 한계가 상당히 뚜렷한 지역이다. 저자는 태평양 한 섬의 마링족을 관찰했다. 이들은 십수년마다 돌아오는 독특한 사이클을 가진 이상한 문화를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카이우라고 불리는 축제였는데 카이우는 다름 아닌 돼지를 집단으로 도살하여 즐기는 문화다.

 단순한 축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카이우에는 몇가지 이상한 점이 관찰된다. 우선은 도살하는 돼지의 수가 극단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자기네 부락민들이 먹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많은 돼지를 도살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면 마링족은 우선 전쟁이 끝난 후 룸빔이라는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카이우 이후 남겨놓은 돼지들도 다시 적극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마리의 돼지들은 수십마리로 증가하게 되고 집안의 여자들은 돼지의 사육과 경작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며 남편들에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돼지들은 그 수가 자못 많아져 사람의 경작물을 파먹기도 하고, 울타리를 부수기 까지 시작한다.

 이쯤되면 남자들은 때가 되었음을 감지한다. 룸빔이 충분히 자라 축제의 시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룸빔을 뽑은 후 돼지를 대거 도살하고 남은 돼지를 동맹에게 충분히 제공하며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 적대 부락과의 전쟁이 시작되며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룸빔을 심고, 다시 돼지를 치며 전쟁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전쟁후 승리한 쪽도 패배한 쪽도 전후처리가 이상하다. 승리한 쪽은 승리했음에도 굳이 패배한 부락을 흡수하거나 그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는다. 패배한 쪽도 마찬가지여서 상대편이 자신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한다. 그들이 다시 예전의 경작지로 돌아오는 것은 십수년 후인데 카이우의 축제 텀과 대충 일치한다.

 이 이해가 안가는 풍습에는 역시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마링 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섬이면서 밀림이 우거진 지역으로 마링족은 화전을 통해 경작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십수년간의 경작과 사육으로 경작지는 지력이 고갈되며 마링족은 정확히 이 주기에 맞추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을 통해 마링족은 지역을 고갈시키는 돼지와 경쟁자들을 지역내에서 제거하게 되며 새로운 룸빔이 자라는 동안 다른 지역을 경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십년간 지력이 고갈되었던 이전의 경작지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 지력을 회복한다.

 즉, 마링족은 카이우 축제라는 독특한 전쟁경제로 지역의 사육한계를 자각하며 이에 걸맞는 문화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지역내 경작지의 자연적 순환은 확보하더라도 자신들의 부락 인구증가는 피할수 없는 문제였다. 전쟁도 이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전쟁으로 죽는 인구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 수도 그리 많지않았다. 설사 남자가 거의 절멸사태에 이르더라도 여자가 무사하다면 소수의 남자라도 한 두세대 만에 인구회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마빈 해리스는 마링족의 이상한 성비에 주목했다. 사실 남성대 여성 자연성비는 남자가 조금 많은 수준인데 이 원시족의 성비는 무려 150대 100에 이르렀다. 이는 암묵적이고 광범위한 여아 살해는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링족은 이를 통해 인구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전쟁경제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남자전사의 선호는 이를 더욱 부채질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위 경쟁 경제체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엔 대인(big man)이란 독특한 지배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대인을 본받아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대인은 지역 사회의 추장같은 존재인데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추종자를 노동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대인 후보자들은 어려서부터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경작지를 경작하고, 많은 가축을 키우며 많은 과일을 채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후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재물이 모이면 대인 후보자는 인근의 주민들을 불러모아 대축제를 개최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배부르게 먹고 이젠 대인이 된 자의 재산을 분배하여 가져간다. 대인은 최소한의 찌꺼기만 갖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대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북아메리카 콰키우아틀 족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포트래취다. 이는 축제 때 선물을 주거나 교환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대인들보다 포트래취는 더욱 경쟁적인데 포트래취를 여는 추장은 이웃의 부족민을 초대하고 이들은 이 엄청난 선물과 재물에 눈에 휘둥그레지면서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귀중한 것을 살뜰히 모두 챙겨가며 엄청난 부담을 않고 이웃부족 추장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포트래취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것이다.

 대인이나 포트래취 풍습은 아직 지배계급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경제작용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비슷한 자급자족적 경제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생산력이 우월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것을 재분배하여 전쟁이나 흉년등의 악조건을 대비해주는 역할을하기 때문이다.

 

호혜성 경제체제나, 전쟁경제체제, 지위경쟁체제는 채집수렵경제에서 사육재배경제로 변모해가면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자신들의 사육한계를 자각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조화하는 문화를 발달시키고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육재배경제로 변하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보다 노동생산성을 투입하여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었고, 이에 보다 많아진 잉여물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아직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시기가 지위경쟁체제로 볼 수 있으며 빅맨들이 확고한 지배자가 되면 시혜는 끝나며 종속과 지배가 시작된다.

 호혜성경쟁체제나 지위경쟁체제에 머무르는 체제는 그 이상의 지배체제를 만나는 경우 높은 생산성과 기술에 압도되어 정복되거가 흡수되고 영향력을 받아 변모하였다. 이런 지배체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왕국이나 제국이며 지금의 국가의 모태일 것이다.

 

2. 예수는 게릴라에서 평화주의자로 변화한 까닭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나 성경을 통해 예수가 매우 평화적인 사상을 펼친 인물로 알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든지' '왼뺨을 맞거든 오른 뺨을 내주라든지' 이런 여러 말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기록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게릴라 메시아니즘이 창궐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장독립투쟁쯤 될 것이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유태인을 지배하던 시기로 유태인의 하느님은 오래전 그들에게 다시는 정복당하지 않고 정복을 하는 민족이 될것임을 약속하였다. 다윗의 왕국이 생겨나고 한동안은 그게 현실이 되는 것 같았지만 좋은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왕국은 강력한 세력들이 풍요로운 이집트나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군하는 길목이었고 이로 인해 잦은 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도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실패원인을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이 부족하였기에 하느님의 예언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강력한 정복자인 메시아가 나타나 이런 하느님의 예언을 실현시킬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 거기에 식민통치와 그 부역자들이 행한 이중의 착취로 민중은 고통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게릴라적 메시아니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있었던 시기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제외하고도 대충 5명정도의 게릴라적 메시아가 등장했다. 예수는 이들중 비교적 온건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역시 게릴라적 메시아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도 본인을 그렇게 만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초기 성경에는 이런 예수의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말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남아 있으며 예수의 12제자들 역시 그러하여 이들중 검을 잘 다루고 휴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예수역시 제자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실제 성경에선 베드로가 예수와 마찰을 일으켰던 사람의 귀를 잘라버리는 과격한 장면이 아직 남아있다. 과연 평화주의자의 제자가 맞을까?)

 하지만 결국 예수는 다른 메시아들처럼 실패했고, 처형당했다. 성경은 당시 총독인 빌라도를 매우 온건한 사람으로 그렸지만 이는 예수를 치장하기 위함이고 실제 빌라도는 당시의 유태인 동굴 게릴라를 무참히 토벌하는 강경파였다. 때문에 저자는 예수와 같이 처형된 사람들 역시 도둑이나 살인범 같은 강력범이 아닌 예수와 비슷한 게릴라들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 사후 예수의 신앙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우 평화적으로 흘러간다. 여기엔 시대적 변화가 자리한다. 게릴라 메시아즘은 한때 잠시 성공하여 지역내 반란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왕국을 세웠지만 고작 3년을 간다. 토벌은 매우 잔혹하였고 게랄라작전의 실패로 기독교는 로마제국내에 자리잡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환영을 본후 유태인들을 중심으로 온건하게 변화된 신앙을 전파하였다. 구원의 대상도 유태인에서 모든 사람으로  바꾸고 전파대상으로 주로 도시지역내 로마인으로 거주해야만 하는 유태인들을 삼았다. 이 때문에 예수의 사상중 정치 군사적인 부분은 후대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평화적인 모습만이 지금의 기독교 안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3. 마녀

15세기에서 17세기는 마녀 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무려 50만명 정도가 유럽에서 마녀나 마법사로 몰려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녀나 마법같은 신비한 것에 대한 미신은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편이며 이는 기독교에 오래도록 불편한 존재였다. 신말고 신비한 것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로마교황청은 서기 1000년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500년 후인 1484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마녀같은 존재는 없다고 부인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마녀사냥은 시작된 후로 그 고문의 잔혹성과 사형방식의 끔찍함에도 꾸준했는데 이는 재판관이나 마녀 수사관들이 마녀를 끊임없이 양산해내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에서 거동이 수상하거나 만만한 여성을 마녀로 누군가 신고하거나 의심한다. 그러면 아무 근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가 매우 잔혹하게 고문한다. 마녀로 지목된자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마녀집회에서 본 사람을신고해야만 했는데(그래야만 고문이 끝나고 편하게 죽을 수 있었으며 협조적인 경우 고문과 화형없이 목졸라 죽이는 행운을 간혹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이를 통해 마녀는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기하급수적 증가여서 대개 한 마녀당 두명 이상의 마녀를 지목하곤 했다.

 수사관들의 이런 악행은 충분한 경제적 동기가 있기에 가능했는데 고문자나 수사관의 용역비용을 어처구니 없게도 마녀로 몰린 사람의 가족이 부담해야 했고, 이들은 심지어 재판관들의 연회비용과 화형용 재단의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또한 지방관들은 마녀로 몰린 자들의 가족 재산을 몰수할권한마져 갖고 있었다. 마녀를 만들어 낼수록 자신들의 경제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광신적인 마녀사냥이 이루어진데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컸다. 당시는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중상주의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해 중세의 봉건제가 붕괴하며 지역의 농민들이 경작지와 재산을 잃고 도시 유랑민으로 방황하며 가난해진 시기였다. 이들의 분노가 자연스레 가진자로 향하기 마련인데 지배층과 교회는 이들이 가난해진 것이 가진 자들의 탓이 아니라 마녀나 악마의 소행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나 교회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으며 이를 공포속에 맹신한 피지배층들은 오히려 악마나 마녀를 피하기 위해 국가나 교회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1562년에서 1684년 동안 남서독일에서 발생한 1258건의 마녀 사건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녀나 마법사로 지목된 자의 무려 82%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성이었다. 그야말로 약자가 희생된 것이다. 이 기간중 귀족계급은 고작 3건만 마녀로 신고되었고 그나마도 고문이나 사형으로 가지않았다.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은 평민이나 하층민이 마녀라는 근거없는 소문은 믿고 고문하고 사형시켰음에도 귀족이나 성직자에 대한 신고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의 저항운동 가능성을 박탈시키고, 서로간의 의심과 견제를 하게 만들어 사회적 거리감을 조성하고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더욱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만들려 했던 시도로 보인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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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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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의 11문자 살인 사건을 보고 구입한 책이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여서 다소 놀랐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소설이 아주 아닌것도 아니다, 짧고 아마추어 느낌마저 나지만 히가시노가 쓴 소설도 단편으로 두개가 들어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굴레와 지리적 근접성으로 여러분야에서 서로를 라이벌로 느끼고 상당히 의식한다. 특히, 스포츠분야가 그러한데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상당히 많은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 성적도 그런편이지만 세부를 살핀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스포츠는 철저히 엘리트중심이고 일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밀린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일본도 엘리트 체육을 중시하며 성과를 보기 시작했지만 사실 일본은 오래도록 학교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생활체육 강국이다. 이런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스포츠가 더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스포츠의 목적이란게 보고 즐기는 것보단 비록 경기력이 대단치 않더라도 자신의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 친목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들이 즐기는 스포츠만 봐도 대번 알 수 있는데, 아무리 지형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인의 최애 스포츠는 등산이다. 특히, 한국의 산은 대개 이렇다할 장비없이 완주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 무언가를 배울 필요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장비로 배움을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일본인은 한국과 비슷한 입시지옥속에서도 고3까지 자신이 초중고를 통틀어 배운 운동을 끝까지 즐긴다.

 히가시노 역시 그러했다. 히가시노는 작가가 되기 전 자신이 초중고교시절 열심히 운동을 했고, 20대가 되어서는 배드민턴과 탁구를 꾸준히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직장은 그만두고 작가로 전업하면서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게 무려 10년이상이 된 것이다. 약간의 계기로 히기시노는 스노보드를 하기로 한다. 나이 40이 넘어서다. 지금의 40은 더 젊은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의 시점이 무려 2002월드컵 시점이니 그 때의 40은 지금보다 더 늙은 개념일 것이다.

 책은 그렇게 히가시노가 스노보드를 즐기며 성장하는 과정이 나온다. 스노보드를 타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되고, 일본의 이곳저곳의 슬로프를 살피며 돌아다니는 일상과 소소한 감정이 재밌다. 작가는 작가랄까? 일본은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다보니 6월경에도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 시점만해도 스노보드 보다는 스키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더 많았다는것도 재밌었다. 이 시점엔 한국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스노보드를 즐기며 히가시노의 생활도 완전히 바뀌었는데 마감에 맞추어 늘 생활에 쫓기던 사람이 오전 6시에 일어나 스키장을 가고 돌아와 일상을 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키장을 가는 날에는 심지어 일찍 출발해야 하기에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마저 갖게 된다. 지극히 불규칙하던 작가의 삶이 규칙적으로 바뀐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러면서 일은 언제하냐며 궁금해하는데 놀랍게도 그게 다 무리없이 되었다고 한다.

 책의 시점이 2002년과 2003년이니 무려 17년 전이다. 40대 초반이던 히가시노도 이젠 60대다. 그가 아직도 스노보드를 즐길지 궁금하다. 운동이란게 한철인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요즘 육아로 너무 가벼운 글만 보는 것 같다. 슬슬 힘을 내야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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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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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에 직장독서토론을 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선물 받은 책이다. 김영하 작가 책은 작년에 검은 꽃을 처음 보았는데 이 책 제목을 보고 아무래도 진득한 사랑을 하는 연애물이 아닐까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류의 소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책을 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 육아로 책읽기가 힘든 시기가 아니라면 이 책은 더 오래묵었을지도 모른다.

 책은 의외로 단편 모음집이었다. 거기에 제목으로 달린 단편조차 연애물이 아니었다. 솔직히 하나도 없었다. 단편들은 소재도 다양하고 하나같이 재밌었다. '오직 두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은수' '신의 장난' 이 수록작품이다. 이중 아이를 찾습니다는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오직 두사람은 이상스레 자신을 편집증적인 애정으로 대한 아버지와 엃혀 인생이 꼬여버린 딸의 이야기, 아이를찾습니다는 제목처럼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가정 파탄과 아이를 되찾아서 더욱 꼬이게 되는 상황, 인생의 원점은 모처럼 만난 동창과 바람을 피우며 일어난 해프닝, 옥수수와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잃어버린 작가가 미녀와 밤을 보내며 다시 창작열에 불타는 이야기, 슈트는 인생에서 사라진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 최은지와 박은수는 출판사 사장 박은수가 미혼모가 된 최은지의 뒤를 본의아니게 봐주면서 겪는 소동과 오해들, 마지막 신의 장난은 마치 미국영화처럼 두 남녀가 한 공간에 감금되는 이야기다.

 모두 소재가 다르며 매우 다채롭다. 그리고 하나같이 재밌어 소설을 잡고 한두숨 걸려 두시간만에 달 읽었다. 가장 재미난 건 '아이를 찾습니다' 였다. 부부가 아이를 십여년 전에 잃어버린다. 마트에서였는데 아빠는 카트위에 아이를 놓고 핸드폰에 잠시 눈이 팔렸고, 엄마는 아빠만 믿고 말도 없이 화장품을 고르다 아이가 카트체 사라진다.

 아이는 이상스레 다른 사람이 카트체 자신을 데려가는데 아무 말이 없었고, 핸드폰 가게 직원도 마트직원도 심지어 감시카메라까지 누구도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며 부부는 무너져간다. 남편은 대기업 자동차회사원이고 아내는 서점에서 일했다. 서로 전단지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라 회사는 차례로 그만두고 서울에 있던 괜찮은 아파트다 사라졌다.

 거기에 아내는 조현병이 와서 미쳐버렸다. 부부에게 남은건 지저분한 단칸 방 하나와 쌓여있는 전단지와 더 이상은 그만둘 수 없게 되어버린 아이찾기 뿐이었다. 이상스레 이지경이 되어서도 아이만 찾으면 모든게 해결될 것 같았다. 문제는 예상치못하게 갑작스레 해결된다. 난데없이 대구에서 아이를 찾았다는 것이다. 아이를 납치한,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엄마라 믿던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아이의 유전자 정보를 통해 사라진 아이임을 알아낸 것이다.

 빼박인 과학적 증거를 두고도 아이도 아버지도 심지어 미친 엄마도 자신들이 가족임을 실감하지 못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상상과 너무달랐고 예상해서 만든 성장 몽타주와도 너무 달랐다. 애초 전단지는 쓸모가 없었던 셈이다. 서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친 엄마는 실족사해서 죽고 아버진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아들과 고향으로 향한다. 시골에서라면 뭔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들이 성인이 된 순간 아들은 동네 여자아이와 사라진다. 그리고 몇년후 사라진 여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온다. 그 댁의 아들이 내가 번 돈을 갖고 사라졌다. 오백이다. 돌려달라고, 아버진 농사지으며 벌어놓은 돈을 주려고 안으로 향한다. 그런데 돈을 꺼내오니 여자아인 사라지고 웬 아이가 남았다. 편지엔 아들이 사라졌고, 자신은 이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아버진 그다지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다시 시작할 기회를 맞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대에 이르는 크면서도 작은 서사, 인생의 부조리와 기가막힘,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개인, 말도 안되는 새로운 희망이 적절히 얽혔다. 그래서 읽고서 재미라기 보단 먹먹함이 남았다. 그래서 모두 재밌는 단편중 가장 기억에 남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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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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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못난 아들의 육아를 도우러 아버지가 서울서 오셨다. 워낙 회사다니던 시절부터 무협지와 추리소설, 환타지 등의 소설을 섭렵하신 분이라 심심치 않게 이 책을 추천해 드렸다. 나도 보지 않은체. 심지어 난 그 때까지 그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단 한편도 보지 않고 있었다. 아버진 좀 보시더니 음 일본책은 별로, 거기에 여자가 쓴 건 문장이 취향에 안 맞는다. 하시는 거다. 히가시노가 여자였던가? 몰랐다. 아버지가 가신 후 책을 잡고 읽어보니 정말 여자였다.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이 자자하기에 그냥 남자라고 생각했다. 일본어는 잘 모르는데 히가시노란 성은 웬지 남자같은 느낌을 준 것 같았다. (여자라 생각했으나 댓글의 지적으로 찾아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남자였다. 역시나......)

 아버지와는 달리 난 책에 곧 빠져들었다. 후반부에 약간 지루해지긴 했지만 흡입력은 충분했다. 진구지 사부로 라는 일본 추리소설 게임을 플스로 몇 번 한적이 있는데 전개과정이나 느낌이 비슷했다. 일본추리소설이 전체적으로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일까? 하여튼. 제목은 11문자 살인사건인데 왜 11문자 살인사건인지는 한참 후반부에나 나온다.

 주인공은 추리소설 작가로 여자다. 이혼의 아픔이 한번 있고 나이는 30대 초반인듯 한데 친구인 후유코를 통해 알게된 프리랜서 작가 가와즈 마사유키와 사귀게 된다. 두달 정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던 둘. 어느날 데이트를 하며 가와즈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한다. 주인공이 불길함을 느끼고 불안해하자 아직 확신이 없던 가와즈는 대충 말을 덮는다. 그리고 며칠 후 살해된다.

 주인공은 그저 불운이라 여기며 가와즈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프리랜서인 그의 짐을 가와즈의 동생으로부터 받기로 한다. 추리소설 작가로서 같은 프리랜서 작가인 가와즈가 다년간 취재한 자료는 분명 귀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그 때부터 일어난다. 가와즈와 함께 일했던 니자토란 카메라 기자가 그의 짐중 일부를 원했고, 이상스레 그것을 사라진다. 그것도 주인공의 집에 누군가 들어와 훔쳐간 것이다. 거기에 니자토도 살해된다.

 주인공은 후유코의 도움을 받아 조사에 착수한다. 추리소설 작가의 감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있었고, 여기에는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가 관련했다. 야마모리 사장은 중심으로 니자토, 가와즈가 모두 1년여전 한 섬으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배가 조난을 당해 한 명이 죽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사건의 공통점은 이곳이었고 주인공과 후유코는 조사를 해가며 위협과 의혹을 느낀다.

 사건 결과 범인을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그것은 범인이 매우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7년 작으로 히가시노의 초기작이라는데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히가시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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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Chris 2019-01-1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남자 작가입니다^^

닷슈 2019-01-17 00:17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찾아보니 남성작가가 맞네요. 감사합니다.
 
버림받은 마녀 디즈니의 악당들 3
세레나 발렌티노 지음, 김지혜 옮김 / 라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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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악당 시리즈 세번째이며 이번 악당은 인어공주에 등장한 마녀다. 이름은 우르술라. 인어공주의 에리얼의 아버지인 바다의 제왕 트리톤의 동생이기도 하다. 즉, 이 마녀는 자신의 조카를 음해하는 셈이다.

 이 시리즈가 시리즈가 될 수 있는건 묘하게도 백설공주편과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편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결은 느슨해 전작을 읽지 않아도 다음작을 읽고 이해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세마녀와 관련이 있고, 그 세마녀는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키르케란 마녀의 언니들이다. 또한 인어공주편에서는 전작에서 야수에게 버림받은 튤립공주가 다시 등장하고, 세마녀는 전편에서 언니들에게 실망해서 사라진 키르케를 찾기위해 우르술라의 꾐에 빠져다시등장한다. 어찌보면 시리즈의 주인공은 세 마녀일지도 모른다.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마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네번째 작품인 말레피센트도 마녀니 그야말로 마녀판이다. 과거 서양에서 마녀에 대한 공포와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거기에 기존의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곁가지다. 아주 잠깐 등장한다. 마치 원작에서의 악당과 역할이 바뀐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공통점은 이 악당들이 모두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없는 악이란 없는 셈인데. 이번 편도 그렇다.

 우르술라는 왜 인지 바다의 지배자일족임에도 버림받았다. 부모가 버린 것인지 아니면 오빠인 트리톤이 그런건지는 모른다. 인간의 모습을 유지했던 우르술라는 한 어부의 손에 구출되어 자랐는데 어린시절만 해도 자신이 인간인줄 알았고, 사랑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본능이 자리한다. 우르술라는 매일 같이 절벽에 다가가 퍼렇고 무서운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계속 참아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엔 어느날 바다에 뛰어들고 만다.  

 바다에 들어간 우르술라는 흉측한 본 모습을 찾았고 이를 괴이하게 여긴 입스위치란 마을의 사람들은 그녀를 죽이려한다. 이를 막으려던 아버지 어부는 잔인하게 살해되고 바다로 돌아간 우르술라는 마을사람들에게 처절하게 복수한다. 트리톤은 이를 보다 못해 우르술라를 왕국으로 데려가지만 자신의 흉측한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우르술라는 트리톤에게 복수를 하고 그의 왕국을 차지하기로 한다. 힘으로는 안되니 방법은 그의 철없는 딸 에리얼이다. 마침 어리석게도 인간과 사랑에 빠지기까지 했다. 인간은 바다의 친구들을 죽이는 살인자들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세마녀의 힘을 얻기로 한다. 대가는 그녀들의 동생인 키르케를 찾아주는 것이다.

 사건은 뒤에서 반전을 맞이하며 결말은 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악당이 주인공임에도 결국 악당은 다시금 실패하는 것이다. 이시리즈가 얼마나 계속될진 모르겠는데 마녀들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될런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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