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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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17년부터 한권씩 읽기 시작해서 올해초에 마무리가 되었다. 순서는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문화의 수수께끼 순으로 읽었는데 큰 상관은 없었지만 사실 출판 순은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순이었다.

 가장 초기작을 마지막으로 접해서인지 3권 중 문화의 수수께끼가 가장 읽기가 수월했다. 겹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문화유물론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아져서 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리즈가 연식에 비해 재밌고 배울것이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겹쳤던 부분은 제외하고 인상적인 부분 3곳을 정리해보았다.

 

1. 원시사회의 경제매커니즘

 마빈 해리스는 서구인들이 신비하거나 야만스럽고 이해불가하며 괴이하게까지 보는 여러 원시사회의 문화들이 사실은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토대 위에 서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워낙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된 것이어서 관찰하는 서구인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실제 운영하는 원시사회의 부락민들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서 쉽사리 자각하지 못한다. 해리스는 무지와 공포, 갈등으로 일반인은 문화의 세속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보았는데 예술과 정치는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집단적 환상체제를 이룩해 일반인들이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호혜성 경제지역

일반론 다음으로 각론으로 넘어가면 일단 사회경제체제상 가장 열악한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사육한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이런 곳에서는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호혜성이란 서로 간에 돌려받을 대가가 무엇인지, 또는 언제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개인사이에서 교환이 일어나는 경제를 말한다.

 호혜성 경제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부시맨들의 부락을 저자는 관찰하였는데 이들의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일주일에 5-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은 이 기간중 사냥이나 채집을 하였고 그것으로 연명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만을 사냥하고 집단으로 사냥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로 상호간의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이 대비해주고 다른 사람의 실패도 내가 대비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분히 더 동물을 사냥하거나 채집이 가능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초과생산을 향해 집중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 자연이 파괴되어 사육한계 자체가 극단적으로 낮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문화에서는 열심히 일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로 한 인류학자가 부시맨들에게 매우 기름진 수소를 제공하였는데 모든 부시맨들이 이 매우 기름진 소를 아낌없이 먹고 즐겼음에도 수미일관하게 수소가 생각만큼 살이 찌지 않았고, 맛이 없고 대단치 않았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시맨들은 수소를 제공하는 이에게 과도한 빚을 지지않으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호혜성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로 보인다. 명예나 일방적인 수혜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의 지위 추구는 지역의 사육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부시맨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 전쟁 경제체제

이 지역은 호혜성 경제체제는 넘어섰지만 지역이 섬이거나 좁고 불모한 땅이 많아 사육경제 한계가 상당히 뚜렷한 지역이다. 저자는 태평양 한 섬의 마링족을 관찰했다. 이들은 십수년마다 돌아오는 독특한 사이클을 가진 이상한 문화를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카이우라고 불리는 축제였는데 카이우는 다름 아닌 돼지를 집단으로 도살하여 즐기는 문화다.

 단순한 축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카이우에는 몇가지 이상한 점이 관찰된다. 우선은 도살하는 돼지의 수가 극단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자기네 부락민들이 먹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많은 돼지를 도살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면 마링족은 우선 전쟁이 끝난 후 룸빔이라는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카이우 이후 남겨놓은 돼지들도 다시 적극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마리의 돼지들은 수십마리로 증가하게 되고 집안의 여자들은 돼지의 사육과 경작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며 남편들에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돼지들은 그 수가 자못 많아져 사람의 경작물을 파먹기도 하고, 울타리를 부수기 까지 시작한다.

 이쯤되면 남자들은 때가 되었음을 감지한다. 룸빔이 충분히 자라 축제의 시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룸빔을 뽑은 후 돼지를 대거 도살하고 남은 돼지를 동맹에게 충분히 제공하며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 적대 부락과의 전쟁이 시작되며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룸빔을 심고, 다시 돼지를 치며 전쟁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전쟁후 승리한 쪽도 패배한 쪽도 전후처리가 이상하다. 승리한 쪽은 승리했음에도 굳이 패배한 부락을 흡수하거나 그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는다. 패배한 쪽도 마찬가지여서 상대편이 자신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한다. 그들이 다시 예전의 경작지로 돌아오는 것은 십수년 후인데 카이우의 축제 텀과 대충 일치한다.

 이 이해가 안가는 풍습에는 역시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마링 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섬이면서 밀림이 우거진 지역으로 마링족은 화전을 통해 경작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십수년간의 경작과 사육으로 경작지는 지력이 고갈되며 마링족은 정확히 이 주기에 맞추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을 통해 마링족은 지역을 고갈시키는 돼지와 경쟁자들을 지역내에서 제거하게 되며 새로운 룸빔이 자라는 동안 다른 지역을 경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십년간 지력이 고갈되었던 이전의 경작지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 지력을 회복한다.

 즉, 마링족은 카이우 축제라는 독특한 전쟁경제로 지역의 사육한계를 자각하며 이에 걸맞는 문화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지역내 경작지의 자연적 순환은 확보하더라도 자신들의 부락 인구증가는 피할수 없는 문제였다. 전쟁도 이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전쟁으로 죽는 인구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 수도 그리 많지않았다. 설사 남자가 거의 절멸사태에 이르더라도 여자가 무사하다면 소수의 남자라도 한 두세대 만에 인구회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마빈 해리스는 마링족의 이상한 성비에 주목했다. 사실 남성대 여성 자연성비는 남자가 조금 많은 수준인데 이 원시족의 성비는 무려 150대 100에 이르렀다. 이는 암묵적이고 광범위한 여아 살해는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링족은 이를 통해 인구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전쟁경제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남자전사의 선호는 이를 더욱 부채질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위 경쟁 경제체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엔 대인(big man)이란 독특한 지배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대인을 본받아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대인은 지역 사회의 추장같은 존재인데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추종자를 노동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대인 후보자들은 어려서부터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경작지를 경작하고, 많은 가축을 키우며 많은 과일을 채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후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재물이 모이면 대인 후보자는 인근의 주민들을 불러모아 대축제를 개최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배부르게 먹고 이젠 대인이 된 자의 재산을 분배하여 가져간다. 대인은 최소한의 찌꺼기만 갖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대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북아메리카 콰키우아틀 족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포트래취다. 이는 축제 때 선물을 주거나 교환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대인들보다 포트래취는 더욱 경쟁적인데 포트래취를 여는 추장은 이웃의 부족민을 초대하고 이들은 이 엄청난 선물과 재물에 눈에 휘둥그레지면서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귀중한 것을 살뜰히 모두 챙겨가며 엄청난 부담을 않고 이웃부족 추장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포트래취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것이다.

 대인이나 포트래취 풍습은 아직 지배계급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경제작용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비슷한 자급자족적 경제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생산력이 우월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것을 재분배하여 전쟁이나 흉년등의 악조건을 대비해주는 역할을하기 때문이다.

 

호혜성 경제체제나, 전쟁경제체제, 지위경쟁체제는 채집수렵경제에서 사육재배경제로 변모해가면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자신들의 사육한계를 자각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조화하는 문화를 발달시키고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육재배경제로 변하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보다 노동생산성을 투입하여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었고, 이에 보다 많아진 잉여물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아직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시기가 지위경쟁체제로 볼 수 있으며 빅맨들이 확고한 지배자가 되면 시혜는 끝나며 종속과 지배가 시작된다.

 호혜성경쟁체제나 지위경쟁체제에 머무르는 체제는 그 이상의 지배체제를 만나는 경우 높은 생산성과 기술에 압도되어 정복되거가 흡수되고 영향력을 받아 변모하였다. 이런 지배체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왕국이나 제국이며 지금의 국가의 모태일 것이다.

 

2. 예수는 게릴라에서 평화주의자로 변화한 까닭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나 성경을 통해 예수가 매우 평화적인 사상을 펼친 인물로 알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든지' '왼뺨을 맞거든 오른 뺨을 내주라든지' 이런 여러 말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기록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게릴라 메시아니즘이 창궐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장독립투쟁쯤 될 것이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유태인을 지배하던 시기로 유태인의 하느님은 오래전 그들에게 다시는 정복당하지 않고 정복을 하는 민족이 될것임을 약속하였다. 다윗의 왕국이 생겨나고 한동안은 그게 현실이 되는 것 같았지만 좋은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왕국은 강력한 세력들이 풍요로운 이집트나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군하는 길목이었고 이로 인해 잦은 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도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실패원인을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이 부족하였기에 하느님의 예언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강력한 정복자인 메시아가 나타나 이런 하느님의 예언을 실현시킬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 거기에 식민통치와 그 부역자들이 행한 이중의 착취로 민중은 고통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게릴라적 메시아니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있었던 시기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제외하고도 대충 5명정도의 게릴라적 메시아가 등장했다. 예수는 이들중 비교적 온건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역시 게릴라적 메시아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도 본인을 그렇게 만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초기 성경에는 이런 예수의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말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남아 있으며 예수의 12제자들 역시 그러하여 이들중 검을 잘 다루고 휴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예수역시 제자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실제 성경에선 베드로가 예수와 마찰을 일으켰던 사람의 귀를 잘라버리는 과격한 장면이 아직 남아있다. 과연 평화주의자의 제자가 맞을까?)

 하지만 결국 예수는 다른 메시아들처럼 실패했고, 처형당했다. 성경은 당시 총독인 빌라도를 매우 온건한 사람으로 그렸지만 이는 예수를 치장하기 위함이고 실제 빌라도는 당시의 유태인 동굴 게릴라를 무참히 토벌하는 강경파였다. 때문에 저자는 예수와 같이 처형된 사람들 역시 도둑이나 살인범 같은 강력범이 아닌 예수와 비슷한 게릴라들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 사후 예수의 신앙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우 평화적으로 흘러간다. 여기엔 시대적 변화가 자리한다. 게릴라 메시아즘은 한때 잠시 성공하여 지역내 반란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왕국을 세웠지만 고작 3년을 간다. 토벌은 매우 잔혹하였고 게랄라작전의 실패로 기독교는 로마제국내에 자리잡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환영을 본후 유태인들을 중심으로 온건하게 변화된 신앙을 전파하였다. 구원의 대상도 유태인에서 모든 사람으로  바꾸고 전파대상으로 주로 도시지역내 로마인으로 거주해야만 하는 유태인들을 삼았다. 이 때문에 예수의 사상중 정치 군사적인 부분은 후대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평화적인 모습만이 지금의 기독교 안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3. 마녀

15세기에서 17세기는 마녀 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무려 50만명 정도가 유럽에서 마녀나 마법사로 몰려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녀나 마법같은 신비한 것에 대한 미신은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편이며 이는 기독교에 오래도록 불편한 존재였다. 신말고 신비한 것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로마교황청은 서기 1000년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500년 후인 1484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마녀같은 존재는 없다고 부인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마녀사냥은 시작된 후로 그 고문의 잔혹성과 사형방식의 끔찍함에도 꾸준했는데 이는 재판관이나 마녀 수사관들이 마녀를 끊임없이 양산해내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에서 거동이 수상하거나 만만한 여성을 마녀로 누군가 신고하거나 의심한다. 그러면 아무 근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가 매우 잔혹하게 고문한다. 마녀로 지목된자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마녀집회에서 본 사람을신고해야만 했는데(그래야만 고문이 끝나고 편하게 죽을 수 있었으며 협조적인 경우 고문과 화형없이 목졸라 죽이는 행운을 간혹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이를 통해 마녀는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기하급수적 증가여서 대개 한 마녀당 두명 이상의 마녀를 지목하곤 했다.

 수사관들의 이런 악행은 충분한 경제적 동기가 있기에 가능했는데 고문자나 수사관의 용역비용을 어처구니 없게도 마녀로 몰린 사람의 가족이 부담해야 했고, 이들은 심지어 재판관들의 연회비용과 화형용 재단의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또한 지방관들은 마녀로 몰린 자들의 가족 재산을 몰수할권한마져 갖고 있었다. 마녀를 만들어 낼수록 자신들의 경제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광신적인 마녀사냥이 이루어진데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컸다. 당시는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중상주의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해 중세의 봉건제가 붕괴하며 지역의 농민들이 경작지와 재산을 잃고 도시 유랑민으로 방황하며 가난해진 시기였다. 이들의 분노가 자연스레 가진자로 향하기 마련인데 지배층과 교회는 이들이 가난해진 것이 가진 자들의 탓이 아니라 마녀나 악마의 소행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나 교회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으며 이를 공포속에 맹신한 피지배층들은 오히려 악마나 마녀를 피하기 위해 국가나 교회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1562년에서 1684년 동안 남서독일에서 발생한 1258건의 마녀 사건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녀나 마법사로 지목된 자의 무려 82%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성이었다. 그야말로 약자가 희생된 것이다. 이 기간중 귀족계급은 고작 3건만 마녀로 신고되었고 그나마도 고문이나 사형으로 가지않았다.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은 평민이나 하층민이 마녀라는 근거없는 소문은 믿고 고문하고 사형시켰음에도 귀족이나 성직자에 대한 신고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의 저항운동 가능성을 박탈시키고, 서로간의 의심과 견제를 하게 만들어 사회적 거리감을 조성하고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더욱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만들려 했던 시도로 보인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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