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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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을 하자면 요즘의 내 모습은 갱년기를 마중하기 싫어 매사에 핑계를 대고 있었다.

열심히 달려왔던 생활에 조금은 지치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고, 내 딴에는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도 지내왔던 시간동안 묵혀왔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나도 모르게 슬슬 표현되는 그런 때인듯 하다.

짜증도 많이 늘었고, 화도 많이 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의욕이 저하된것 아닌가라는 느낌도 가지고 있는 중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금의 나를 떨어지는 낙엽같다고 스스로 우울함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뜨거운 여름속에 서 있나 보다. 아니 뜨거운 여름속에 서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입니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그렇다.

아직 나의 여름이 끝이 나지 않았음을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이유중 하나가 나를 찾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 각각의 삶은 모두 치열하고 뜨겁다. 하지만 때론 상대적인 이유로 내 삶이 보잘것없다라는 자조적인 질책을 할 때도 있다. 그나마 책을 통해서, 그 속에 담긴 다른 삶을 경험하면서 나의 삶은 결코 못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위안을 받고 싶어한다. 

나는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입니다>이 그런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고, 그리로 또 하나의 어제를 남겨놓는다.

싫든 좋든 나의 모든 부끄러움을 담고, 나의 희망과 기쁨을 담은 어제라는 과거가 생겼다.

어제의 시간만큼 나는 삶을 지내왔고, 나이를 먹어간다.

오늘 이 시간, 이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가장 왕성하게 살아있는 이 날의 뜨거움과 싱싱함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것 같다.

 

 

 

여든을 앞둔 작가 이근후 박사는 어느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50년간 정신과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치고, 퇴임 후에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이끌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들려주는 그런 분이다.

76세의 최고령 나이로 사이버대학에서 수석 졸업을 했다는 뉴스를 만들어 낸 장본이기도 한 그는 평생 몸 담았던 전문업에서도 대단한 발자취를 남겨놓은 분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 발전에 공헌을 한 바가 크단다.

이런 대단한 한 획을 만든 분이지만 이근후 박사가 독자들에게 들여주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네팔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했습니다. 이를 4등분 하여 삶의 첫 계절 봄은 25세까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50세까지로,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시기입니다.

이후로 75세까지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가을입니다.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보내고 이제 조금씩 차분하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에서는 76세 이후의 삶을 자유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춥고도 고독한 겨울에,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누릴까요? 네팔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이 책 때문에 내가 여름에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뜨거움 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모두 보내고 있는 이근후 박사가 각각의 삶을 사는 세대들에게, 그리고 인생을 걸어가는 독자들에게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연륜의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까?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이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의 여정이 그동안 잘 해왔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다.

나는 지금 여름에 서 있다. 그리고 봄을 시작하는 아이들과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부모를 보고있다.

내가 지나왔던 삶과 내가 지나가야 할 삶을 동시에 보고 있다.

오로지 나만의 삶이 무거웠다고 투정했던 나 자신도 보게 된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민망하기는 하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사탕을 쥐어달라고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날입니다>은 세대간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에세이다. 독자는 이근후 박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도 들어보고, 친구와 동료를 통해 사람을 얻어가는 과정도 듣게 된다. 부모의 품을 떠나고 부모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 날을 준비해야 하는 또 다른 여정도 들어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의 인생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지금까지의 노력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작아서 좌절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로 전혀 예상치도 않던 결론으로 더 많은 삶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 선택에 의해서든, 그렇지 않든, 내가 가는 그 길이 나의 인생이고, 그 생의 끝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

짧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답게, 나의 위치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속에 있는 열정과 내가 꺼낼 수 있는 최선을 분명히 해봐야 한다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겨울의 막바지를 준비할 즈음,

우리가 보냈던 봄,여름,가을,겨울이 참 멋있고 빛났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아주 멋진 삶을 살아온 것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남길 수 있는 그 젊은 시간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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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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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목표도 재능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고민으로 어깨에 힘이 빠진 이들이 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첫발을 디디는 청춘들도 있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떠한 이유로 좌절에 빠진 이들도 있다. 때로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대해 기대나 목표가 점점 사그라지는 힘겨운 이들도 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책을 통해서 오랫동안 전해진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게 된다.

사는 게 걱정이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느냐만,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옛날 이야기를 왜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악한 계모에게 도망쳐서 숲 속에서 헤매던 백설공주, 원님의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었다는 장화홍련,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었던 심청이, 맛있는 과자 집에서 만나게 된 무시무시한 마귀할멈, 하늘 높이 올라간 콩나무를 탔던 제크...등 우리의 민담, 동화, 전설, 그리고 서양의 동화, 민담까지 많은 이야기 주인공을 만난다.

그리고 신동흔 교수가 선택한 주제 <왜 주인공들은 길을 떠날까?>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인생으로의 길을 여행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얘기는 수많은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다가올 무엇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어느 시점에서 줄을 긋고 나서 인생으로 향해 길을 떠난다면, 여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완벽을 추구할 수 있고, 좌절도 덜 겪을 것이며, 힘듦에 아프고 눈물 흘리는 일이 덜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말하고 싶은, 변명하고 싶은 한 사람의 넋두리일 뿐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긴긴 여행을 해야 함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나마 완전한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는 책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또래의 조직에서, 인생의 선배에게서 나름의 지혜를 배운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나는 완전한 어른이 되었음을 자부하고 살곤 한다.

 

정말 어른이 되었을까?

정말 나 자신은 완전할까?

 

신동흔 교수는 이런 몸만 성장한 어른들을 위해서, 또는 미숙한 상태로 어른이 되기 위한 청소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지혜를 이야기해준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떠나는 여정을 겪는다.

집에만 머무르면 죽을 운명이기 때문에 스님과 함께 길을 떠나는 주인공도 있고, 온갖 못된 짓을 하는 계모의 손에서 벗어나서 길을 떠나는 주인공도 있다. 반대로 버려졌던 곳에서 집을 찾아오기 위한 여정을 걷는 주인공도 있고, 약속 때문에 길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막 알기 시작한 어린아이도 있고, 때론 남들보다 더딘 그런 사람도 있고, 자아를 겨우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도 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흥이 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진 것 없이 초라하기도 하고, 쫓겨나는 서러움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이 그 길의 끝에서 빛나는 이유는 좌절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쫓겨나게 되던, 나 스스로 선택을 하던 그들은 세상을 향해 나의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열심히 듣고 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가 참 쉽고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 속에 이런 깊은 삶의 지혜가 있었음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누군가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다. 절대 그렇게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하고, 내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하고. 내 눈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 속으로 향했던 용기가 내 손에 쥐어지게 되고, 내 눈으로 보았던 것이 내 기억에 담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세상을 향해 준비하고 있는 청춘들에 권하고 싶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떠났던 집이라는 것이 지금으로 본다면 기성 세대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신세대이고, 또는 부모의 품에서 나와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어린 학생들이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청소년이 되는 과정이고, 청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다. 태어난 것도 처음이고, 적응하는 것도 처음이다.

아이들은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 역시 이런 것이 처음이다.

자식을 키워보는 것도 처음이고, 자식을 내보내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이 처음인 일이 슬플 일도 없고, 어려울 일도 없다.

모두 겪는 일이고, 끝이 보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운명이라는 것, 산다는 것, 그리고 그 뒤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이치라고 본다.

 

길을 떠날 수 있으면 직접 경험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라는 지혜를 가질 수 있고, 이야기라는 지혜를 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듣고, 말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지혜를 충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가 독자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인생의 묘미가 이런 것 아닐까?

 

좌절해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 길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도전이라는 것과 창의라는 것이 내 몸에 배여 진다는 것..

옛 야기에는 이런 인생의 참맛이 담겨있다.

이 참맛을 내 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임을 독자들은 기억했으면 한다.

 

인생은 많은 길이 있고, 수많은 방법이 많다.

하지만 이왕이면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순수한, 그리고 가장 짜릿한 경험으로 찾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책을 읽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먼저 경험하는 방법.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의 하나이니까.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에서는 그런 지혜를 얻게 된다.

나 자신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들에게 멋진 성장과 독립을 일러주는 지름길을 지금 바로 찾아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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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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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 

 

그렇다.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라고 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했다

"생명은 모두 이어져 있고, 손잡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생명이 모두 이어져 있다고?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은 자연에서 얻어진다. 자연은 또 다른 자연에게 물을 얻는다. 그럼 그 이전의 자연은 계속 물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가 그 이전의 자연, 또 그 이전의 자연에 물이 만들어내지 못하면?

참 단순하다.

그렇다. 많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말하려 치면 이렇게 아주 단순명료한 생각밖에 안 한다.

왜냐고?

그건 자연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는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주제로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우리 사람들은 자연의 생명을 참 맘대로 하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장류의 진화를 거듭해서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영장류는 동물의 한 부분이고, 동물이냐 식물이냐는 분류에서 인간 스스로 뚝 떼어서 영장류라는 이름을 하나 붙이고 또 하나의 개체를 만들었다. 그리고서 사람들은 동물과 식물이 영장류의 소유인 것 마냥 마구 다루기 시작했다.

어차피 동물이냐 식물이냐, 영장류냐가 아닌 생명체라는 것의 한 부분일 뿐인데 말이다.

 

생명체라는 한울타리에서 본다면 우리는 서로 얽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나를 알듯이 자연을 알고 동물과 식물에 대해 알아간다면 몰라서 그랬다는 말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경쟁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경쟁과 더불어 어울려 살아야 함 역시 추구해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이 경쟁과 함께 어울려 가는 법을 볼 수 있다.

자연 역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경쟁만이 남기기보다는 경쟁과 동시에 공생과 기생이라는 방법도 추구한다.

자연은 이 생존 방법으로 이 땅의 생명체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역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의 방법과 손잡아야 한다.

결코, 인간이라는 영장류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연과 손을 잡아야 한다.

 

이 책은 결코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을 알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각자의 꿈을 향해 가는 것 역시 결국은 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최재천 교수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이제는 벗었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살기 때문에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과 함께 또 다른 공생을 떠올려야 한다.

나와 또 다른 사람, 나와 사회, 그리고 나와 자연 이 모든  것이 공생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으로 깨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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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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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사는 것이 너무나도 힘겨운 이들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쩌면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삶이든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랑과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별개의 것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사랑과 삶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떨까?

고 장영희 작가의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를 읽어보면서 사랑과 삶의 연관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다.

우선 장영희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중고교 영어 교과서 집필자로만 알고 있던 장영희 작가님의 마지막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다.

그리고 그 절절한 느낌에, 참 마음이 짠했던, 저 또한 절절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삶에 대해 저렇게 진한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는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삶의 마지막 시점을 버티면서도 삶에 대해 아쉬움보다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써내려갔던 글을 보면서 참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장영희 작가님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생전 여러 방송에서 했던 '문학 강연'의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문학이 전하고자 하는 것, 수많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사는 것' '사랑하는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답을 얻는다.

수많은 사건과 인물과 배경은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였다.

그것을 같이 따라가고, 공감하면서 함께 찾는 것이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문학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략)

뭐니 뭐니 해도 제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논어> 12권 10장에 나오는 '애지욕기생애 愛之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입니다.

(여는 글 중에서)

 

산다는 것은 사랑하기 위함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중의 하나인가 보다.

삶이라는 것이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미우나 고우나 누군가와는 얽혀야 하는 그다음의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열렬한 사랑, 뜨거운 사랑, 욕망적인 사랑, 애증, 질투, 미움, 원망...

이 모든 것은 사랑을 얻고, 잃는 데서 나오는 감정의 표현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시선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풀어내는 것은 나와 또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자 연결고리인 것이다.

 

우리는 '시'에서 그리고 '소설'에서 수많은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가난한 삶이든, 부자인 삶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유명한 대문호이든 일반인이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이고, 순수한 감정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온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달콤함과 쓰라림을 결코 내던져 버릴 수가 없다.

 

사랑은 선을 그어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뿐입니까? 자연에 대한 사랑, 내 친구에 대한 사랑 등,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서 소개된 문학을 통해서 독자들은 수많은 사랑을 떠올리고, 공감하게 된다.

결코, 내게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랑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사랑도 문학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문학 속의 사랑을 함께 공감하면서 독자들은 어떤 사랑이 있는지,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젖어들곤 한다.

사랑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책을 나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를 읽어보면서 내가 과연 문학 속에서 사랑을 찾아봤는지, 그 속의 사랑에 대해 내 것으로 경험을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의 삶을 견디고 살고 있을까?

나의 영원한 동반자 남편과 이후의 세월을 더 든든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나의 아이들의 미래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껏 달려왔던 내 인생을 더 값어치 있게 해주기 위해서 이 시간을 견디고 살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남편과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의 미래와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나만의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판에 박힌 말이라고 하면서도 결론은 결국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문학에서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문학을 통해서 여러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가장 진한 답인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어른이 되고, '진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을 위해 이 한마디를 소개한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모난 마음은 동그랗게('사람'이라는 단어의 받침인 날카로운 ㅁ을 ㅇ으로 바꾸면 '사랑'이 되듯이). 잘 깨지는 마음은 부드럽게, 너무 비싸서 오만한 마음은 겸손하게 누그러뜨릴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는 사랑받는 만큼 의연해질 줄 알고, 사랑받는 만큼 성숙해질 줄 알며, 사랑받는 만큼 사랑할 줄 안다. '진짜'는 아파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으며, 살아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위의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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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오 보만스 엮음, 민영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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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따뜻함, 포근함, 달콤함, 뜨거움, 넉넉함, 부드러움, 자신감, 우월감, 아픔, 고통, 상처, 배려심, 질투심, 욕망 등..사랑을 표현하는 감정은 많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감정이 있고, 사랑의 부족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 또는 병적인 증상까지 나타날 때가 있다.

 

연인 간의 사랑, 반려 동물과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인류애적인 의미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리고 종교와의 사랑 등, '사랑'이라는 단어를 놓고 따져보자니 무척 많은 사랑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사랑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 답이 나오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 의미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감정의 기류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냥 그런 거'라는 모호한 답만 제시하는 나였다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읽으면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와 폭넓은 견해를 가지게 된다.

 

우선 이 책은 460여 페이지에 이르는 묵직한 책이다. 세계 100명의 전문가가 1000개의 단어로 사랑을 이야기  했다고 하니 묵직한 양은 당연하다고 해도 감성적으로만 사랑을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는 그 양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본다면 이것은 사랑에 대해, 사랑의 현상에 대해, 사랑의 과정에 대해,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에 대해 가장 간략하게, 그리고 핵심만 골라놓은 책이라고 여겨도 좋겠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레오 보만스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이루어졌다. 레오 보만스는 <세상 모든 행복>이란 책에서 행복학 전문가들의 연구를 집대성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전작이 있었는데, 유럽연합 상임의장이 그 책을 각국 정상들에게 선물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전작을 가진 레오 보만스가 이번에는 '사랑'을 주제로 각계 각층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했다. 심리학자, 성과학자, 경제학자, 인류학자, 신경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심리치료자, 부부관계상담사, NGO활동가 등등..

사랑이 감정적으로만 기억되고 있는 독자들에게 수많은 전문가의 전문적인 견해를 읽어본다는 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사랑을 해석해 볼 수 있고, 사랑에 대한 전혀 다른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학습했고, 경험했기 때문에 나의 시선과 삶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에 다른 모습의 사랑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면도 생긴다.

사랑의 행위나 감정에 대해 정작 본인들은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하겠지만,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다라고 배척하는 것도 내 사랑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독신주의나 동성애 간의 사랑, 양성애라든지, 또는 무성애를 비롯한, 욕망이 우선이 되는 하룻밤 풋사랑(원 나잇 스탠드라는 표현이 맘에 안들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혼외자와의 불륜 등의 사랑은 되도록 언급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라고 표현 하는 부분은 전혀 다른 감정과 관습이라고 나름의 선을 긋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사랑 그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그들 역시 사랑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껄끄럽게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 또 다른 성향의 사랑, 다른 집단의 사랑등에 대해  한 번쯤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이 책의 효과라고 할까? 

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다른 쪽에서 추구하는 것도 옳은 것이라 생각은 해줘야 할까? 결론은 독자들이 내릴 부분이다. 깊이 있게 다가가지는 못한다면 이 부분들은 살짝 지나가도 무방하다.

 

다만 사랑이라는 의미가 주는 견해는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 옳고 그름이 아닌,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오로지 사랑에 대한 견해만 말하는 책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랑에 대해 조금씩 눈을 돌려보는 계기도 될 것 같다.

 

사랑의 세 가지 요소는 열정, 친밀감, 헌신이라고 한다.

사랑에 대해 막연히 알았던 것이 한 줄로 정의되는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사랑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고, 나의 사랑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결론 내리고 싶다면 사랑의 요소를 적절하게 요리해야 한다.

마치 빵을 만들기 위해 재료가 적절한 온도, 적절한 습도, 그리고 반죽의 강도에 의해 만들어지듯이 열정, 친밀감, 헌신의 최대 효율은 서로의 사랑을 공유하고자 하는 성향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상냥함은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인 안정감, 그리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이런 이들이 사랑의 조화를 잘 이루어 나가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그냥 나에게 잡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때론 집착을 보이기도 하고, 지독한 아픔에 좌절감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서 또는 내 것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 당사자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달콤함과 다정함 그리고 뜨거움을 퍼부어댄다. 이것도 역시 노력이다. 사랑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수많은 결핍과 집착을 통해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이 책에서 주장한 여러 전문가들의 집약적인 결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겨우 읽었다.

난 '겨우'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사랑에 대해서는 늘 부드럽고 따뜻하게 이어지는 글과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열정적이고, 눈물 나는 그런 글들만 찾아서 읽은 터라 이렇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정의를 읽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사랑이란 낭만적이고 열정적이라는 확고한 견해를 가진 나로서는 이 책이 상당히 딱딱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겨우 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전의 사랑에 대한 결론이 감정으로는 풍부하지만 두루뭉술하다는 결론을 가졌다고 말한다면 이 책의 결론을 딱딱하지만, 선이 분명한 결론을 가져볼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면, 잠시 텀을 두고 조금씩 더 읽어보길 권한다.

사랑은 결코 한 줄, 한 페이지로 정의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학습이자 감정이자 소통 그리고 문화와 관습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분명한 것은 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한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늘 노력을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주려고 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나의 사랑이 잠시 주춤하고, 잠시 권태기를 맞을 즈음에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시간을 터준다.

 

 

 

 

 

 

 

 

위의 리뷰는 해당 출판사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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