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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변명을 하자면 요즘의 내 모습은 갱년기를 마중하기 싫어 매사에 핑계를 대고 있었다.
열심히 달려왔던 생활에 조금은 지치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고, 내 딴에는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도 지내왔던 시간동안 묵혀왔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나도 모르게 슬슬 표현되는 그런 때인듯 하다.
짜증도 많이 늘었고, 화도 많이 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의욕이 저하된것 아닌가라는 느낌도 가지고 있는 중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금의 나를 떨어지는 낙엽같다고 스스로 우울함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뜨거운 여름속에 서 있나 보다. 아니 뜨거운 여름속에 서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입니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그렇다.
아직 나의 여름이 끝이 나지 않았음을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이유중 하나가 나를 찾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 각각의 삶은 모두 치열하고 뜨겁다. 하지만 때론 상대적인 이유로 내 삶이 보잘것없다라는 자조적인 질책을 할 때도 있다. 그나마 책을 통해서, 그 속에 담긴 다른 삶을 경험하면서 나의 삶은 결코 못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위안을 받고 싶어한다.
나는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입니다>이 그런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고, 그리로 또 하나의 어제를 남겨놓는다.
싫든 좋든 나의 모든 부끄러움을 담고, 나의 희망과 기쁨을 담은 어제라는 과거가 생겼다.
어제의 시간만큼 나는 삶을 지내왔고, 나이를 먹어간다.
오늘 이 시간, 이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가장 왕성하게 살아있는 이 날의 뜨거움과 싱싱함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것 같다.
여든을 앞둔 작가 이근후 박사는 어느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50년간 정신과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치고, 퇴임 후에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이끌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들려주는 그런 분이다.
76세의 최고령 나이로 사이버대학에서 수석 졸업을 했다는 뉴스를 만들어 낸 장본이기도 한 그는 평생 몸 담았던 전문업에서도 대단한 발자취를 남겨놓은 분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 발전에 공헌을 한 바가 크단다.
이런 대단한 한 획을 만든 분이지만 이근후 박사가 독자들에게 들여주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네팔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했습니다. 이를 4등분 하여 삶의 첫 계절 봄은 25세까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50세까지로,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시기입니다.
이후로 75세까지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가을입니다.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보내고 이제 조금씩 차분하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에서는 76세 이후의 삶을 자유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춥고도 고독한 겨울에,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누릴까요? 네팔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이 책 때문에 내가 여름에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뜨거움 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모두 보내고 있는 이근후 박사가 각각의 삶을 사는 세대들에게, 그리고 인생을 걸어가는 독자들에게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연륜의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까?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이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의 여정이 그동안 잘 해왔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다.
나는 지금 여름에 서 있다. 그리고 봄을 시작하는 아이들과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부모를 보고있다.
내가 지나왔던 삶과 내가 지나가야 할 삶을 동시에 보고 있다.
오로지 나만의 삶이 무거웠다고 투정했던 나 자신도 보게 된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민망하기는 하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사탕을 쥐어달라고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날입니다>은 세대간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에세이다. 독자는 이근후 박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도 들어보고, 친구와 동료를 통해 사람을 얻어가는 과정도 듣게 된다. 부모의 품을 떠나고 부모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 날을 준비해야 하는 또 다른 여정도 들어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의 인생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지금까지의 노력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작아서 좌절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로 전혀 예상치도 않던 결론으로 더 많은 삶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 선택에 의해서든, 그렇지 않든, 내가 가는 그 길이 나의 인생이고, 그 생의 끝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
짧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답게, 나의 위치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속에 있는 열정과 내가 꺼낼 수 있는 최선을 분명히 해봐야 한다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겨울의 막바지를 준비할 즈음,
우리가 보냈던 봄,여름,가을,겨울이 참 멋있고 빛났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아주 멋진 삶을 살아온 것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남길 수 있는 그 젊은 시간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