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내가 만난 초보 저자와 글쓰기 비법
한기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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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내용은 별로인데 나와 코드가 잘 맞아 좋다고 설레발을 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책은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상찬하는데, 내겐 지루하고 아무 재미가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은 '내가 만난 초보 저자들과 글쓰기 비법'이라는 부제 아래 '우리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안내서인줄 알았다.

거기다가 리뷰를 아주 맛깔스럽게 쓰시는 ㅂ님이 상찬하셔서 혹 했었다.

 

그동안 난 한기호 님의 책을 한 권인가 사서 읽었고,

기획 회의는 몇 권 술술 넘겨 읽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출판계 이슈가 되었던 도서정가제 관련,

독자가 아닌 출판계의 편을 드는 그의 입장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책을 정가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읽으려는 독자들은 죄인이 되어야 하는 논리였으니까 말이다.

 

암튼 그는 출판계에 입문한지가 35년째라고 하고, 당신이 이런 이런 사람들을 발굴해 냈다고 자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팩트를 뒤집어보면,

그가 검증을 걸친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상대방의 노동력을 헐값에 착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뭐, 누구나 그런 과정을 걸쳐 글을 쓰고 편집을 하며 출판계에 입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방송에 출연하게 하려면 하루를 빼야 한다. 책을 읽는 시간과 방송 녹음을 위해 방송국에 갔다 오는 시간을 합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한미화는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냐며 망설였다. 나는 말했다. 나는 돈을 벌려고 전문잡지를 펴내는 것이 아니다. 뜻한 바가 있어 하는 일이니 돈을 많이 벌지 못 한다. 그러나 이 회사를 그만 두고 네가 내 곁을 떠날 때 세상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다.ㆍㆍㆍㆍㆍㆍ내가 한미화에게 그 일만 시킨 것은 아니다.(92~93쪽)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저자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내용을 알차게 하고 책의 품격을 높이는 것만이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베어 넘겨진 나무를 생각하면 더 더욱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때문에 이렇게 아쉬운 결론을 내려야 겠다.

어떤 사람들에겐 아주 유용할 수 있겠지만,

나와는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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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8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3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7-06-28 21:27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은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상찬하는데, 내겐 지루하고 아무 재미가 없는 책이 있다.

맞습니다! 그런 책이 있어요~
제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금테안경>, <고래>가 그랬습니다. 참이상하죠? 앨리스는 정말 지루해서 읽다 말다를 수 없이 반복했고, 한 달이 넘어서야 얇은 책 한권을 다 읽었습니다. 바사니의 <금테안경>은 가독성이 있고, 마지막에 어떤 울림이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 아무 재미가 없더라구요..ㅜㅜ 고래 역시 마찬가지...

영화는 <브로큰 백 마운틴>이 그런 경우...

참 이상해요.코드라는게..^^;;

양철나무꾼 2017-06-30 09:39   좋아요 0 | URL
yamoo님, 오래간만이예요~^^
완전 반갑습니다.
이제 가끔 귀한 글들 볼 수 있는 건가요?^^

누구에게나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 ‘브로큰 백 마운틴‘은 차치하고,
애니 프루는 완전 애정하는 작가랍니다~^^

cyrus 2017-06-29 13:41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거나 극찬을 받는 책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비판할 거리를 찾습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6-30 09:4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극찬을 받는 정도는 아닐 것 같고,
호ㆍ불호가 명확할 것 같습니다.

암튼 제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기호 씨 되시겠습니다~^^

chacona 2017-07-01 00:25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책 읽기를 그만 두시라...
는 조언으로 기억되는 한기호씨죠.
여튼...그 이야기 외에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나와있는 책들은 전부 훔친 책들이다 등등...
워낙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참 저도 여러모로 인상적인 분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7-01 09:17   좋아요 0 | URL
chacona님,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 분의 주옥(?) 같은 코멘트들을 언급하고 싶었는데, 자제했습니다.
이 분 책은 아니었지만,
다른 책의 리뷰에서 직설화법을 썼다가 몇번 블라인드 처리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요.
완곡어법을 쓰더라도 어떻다는 걸 알려드리는 쪽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별★종의 기원 -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드는 직진의 삶
박주민 지음, 이일규 엮음 / 유리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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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아침부터 완전 경쾌하게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박주민의 '별★종의 기원'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경쾌해져서 친구에게 이런 카톡을 보냈다.

나의 '잘생겼다'는 말에 '깜.놀.'한듯 친구는 'ㅋ저 얼굴이 잘생겼나'고 되물어왔고,

뒤 이어 '박주민 멋진 사람이다'라고 하길래,

'못 생겼어도 사람 마음이 멋지면 잘 생겨 보인다'고 하였다.

 

나의 이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책 뒷표지에서 주진우 기자는,

'자세히 보아야 미남이다. 오래 보아야 머리숱도 많다. 박주민은 그렇다.' 고 하고 있다.

 

사실 박주민 님은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얘기를 할때 목소리로만 만나다가,

얼굴을 알게 된 건 '잡스'라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였다.

그때 사회자가 "잘생겨졌다, 귀티가 난다"고 하자,

"오늘은 제대로 씻고, 메이크업도 세게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이 책 속의 사진들을 보니 '거지갑'이라는 별명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ㅋ~.

 

사실 박주민 님을 향하여 완전 좋다고 설레발을 치지만,

'박주민 말하고 이일규 엮음'의 이 책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좀 아쉬웠다.

책의 짜임이 인터뷰 형식을 취했는데, 내용의 밀도가 맘에 안들었다.

어느 부분이 묻는 부분인지 어느 부분이 대답하는 부분인지 경계가 모호하고,

그냥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매 꼭지 제목 아래 너무 많은 것을 중언부언 설명하려든다.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규칙이 없으니까 오히려 성글다는 느낌이 든다.

 

박주민 님이 직접 쓴을 '머리말을 대신한 프롤로그'가 설득력 있었다.

'이렇게 살아왔소'하는 삶의 여정만을 담은 책이 아니라,

왜 정치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의 삶은 어땠는지, 를 정리하는 것에 더하여,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고 싶어 씌여진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좋았다.

 

몇 달 지나면서 가닥을 조금씩 잡겠더라구요. 일머리를 좀 알게 되었어요. 동료의원들한테 어떻게 협조를 받아야 하는지, 원내대표에게 어떻게 하면 제가 발의한 법안이 중요한 법안이란 걸 알릴 수 있는지ㆍㆍㆍ.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변호사로 일할 때처럼 나 자신을 내려놓으니까 일이 더 잘 풀리더라구요. 체면 생각하면서 움직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수도 있는데,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마음 먹었어요. 그러니까 미소도 절로 나오고 인사도 잘하게 되고 심지어 동료 의원들에게 아양도 떨게 되고 그러더라고요.(웃음)(115쪽)

최근에는국회 권한 축소가 국회 선진화법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시민과 직접 소통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의회 안으로 끌어오는 활동도 중요해지고 있거든요. 의원이 국회 안에서 일하면 되지 밖에 나가서 뭐하는 거냐는 비판도 있지만, 의회 안에서만 무얼 하려고 하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직접 에너지를 끌어오는 것, 의회주의에 갇히지 않는 어떤 모델이 필요합니다.(121쪽)

변호사도 좋은 직업의 하나로만 인식되고 있을 뿐예요. 변호사가 가지는, 아니 가져야 하는 공적 역할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어 보입니다. 변호사의 역할에서 나오는 무게감도 고려대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는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지만 의로인에게는 모든게 걸린 단 하나의 사안이라는 성찰이 없는 겁니다. 사실 의뢰인을 만족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이고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145쪽)

 

역사의 수레바퀴를 1cm라도 돌리고 죽자"가 좌우명이라고 들었습니다.(185쪽)

 

사실, 이 책을 경쾌하게 시작했지만,

읽다가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고,

마침내 대성통곡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눈물을 쏟은 이유는,

그가 거리에서, 집회에서, 그리고 새벽 유치장에서 만날 수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노란 리본을 숨기고 인형 탈을 쓰고 그를 지지했기 때문도 아니다.

잠 잘 시간이 부족해 아무데서나 잘 자는 '특기'를 가진게 안쓰러워서도 아니었다.

 

이 영상이 참 많은 걸 내포하고 있고,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의 붉은 눈시울과 성난 목울대를 보면서,

이땅의 청년들을 향한 그의 애정과 염려가 느껴져서 같이 아팠다.

 

이렇게 리뷰를 빙자해 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앞으로도 오래 보고싶으니까 건강 잘 챙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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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7-06-28 11:26   좋아요 1 | URL
저 박주민
만나서 손잡아보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의 유일하게
실제로 만나보고 싶은 인물. 좋은 사람의 책
리뷰 읽다가 저도 눈물 나려고 하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6-28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손잡아보는건 (쑥스러워서) 됐고,
양말이나 몇 켤레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2017-06-28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6-28 15:22   좋아요 1 | URL
‘큰바위 얼굴‘처럼 말이지요?
그렇게요, 가슴에 존경할만한 사람 하나쯤 품어가질 수 있는 그릇이었으면 좋겠고,
그럴만한 인물들이 좀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dys1211 2017-06-28 12:21   좋아요 1 | URL
박주민의원 바로 옆에서 봤는데 잘 생겼어요..

양철나무꾼 2017-06-28 15:23   좋아요 2 | URL
주진우 기자의 저 멘트를 인용하여,
‘바로 옆‘에다 방점을 두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15:06   좋아요 1 | URL
박지원 갑이죠... 차차세대 대통령 후보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6-28 15:28   좋아요 0 | URL
박지원이 아니라 박주민을 말씀하시는거죠?
박지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다음번이면 아마도 하늘에서 굽어 살피실 수도, ㅋ~.
박주민은 암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15:44   좋아요 0 | URL
앗... 이런 어마어마한 실수를.... 박지원은 징그러운 괴물이죠..

양철나무꾼 2017-06-28 18:49   좋아요 0 | URL
박주민으로 받아들였으니 어마어마한 실수는 아니십니다.
박지원이라고 하셨길래 혹 님에게 비중 있는 인물인가 싶어 여쭙고 싶었달까요.^^

잠자냥 2017-06-29 09:51   좋아요 0 | URL
저 유세 장면은 저도 예전에 보고서 울컥했답니다. ㅎㅎ 국회에서 보기 드물게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 ㅎㅎ 끝까지 망가지지 않고 그가 창대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이 더는 할 일이 없어서 잠을 푹 자도 될 그런 사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고요.

양철나무꾼 2017-06-30 09:29   좋아요 0 | URL
언젠가는 박주민이 국회에 상정 중인 법안이 90개가 넘는다는 얘기를 들은것 같아요~^^

박주민이 선거 땜에 갑자기 옮기느라, 은평구에서 1억짜리 월세를 산다는 얘길 들었어요.
좋은(?) 집도 있는데,
잠은 길바닥에서 말고 집에서 잘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09:41   좋아요 0 | URL
거지갑 정말 멋지죠. 전 김관홍 잠수사 장례식 때 박주민이 얘기한 것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 그 사람 진심을 알게 되기도 했고.
청와대 얼굴패권주의 사진 패러디로 김어준하고 둘이 얼굴 패권에 쫄지 않으려는(?) 사진이 제일 웃기고. ㅋㄷ

양철나무꾼 2017-06-30 09:51   좋아요 0 | URL
김관홍 잠수사가 제가 사는 은평 분이셨어요.
그렇게 만나게 되어 두분이 마음을 많이 나누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불광역에 가면 김관홍 잠수사 추모 1주기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맞아요, 얼굴 패권주의 패러디 사진이요~^^

samadhi(眞我) 2017-06-30 09:53   좋아요 0 | URL
울언니가 거지갑 지역구여서 되게 으스대요. 그 동네 좋은 게 없는데(?) 그거 하나 부럽죠. ㅋㅋ

양철나무꾼 2017-06-30 09:57   좋아요 0 | URL
언니가 ‘쫌‘ 좋은 동네 사시는군요~^^
저는 엄밀하게는 거지갑 동네가 아니고,
이재오 아저씨 나오는 ‘은평 을‘이지만서도~--;

samadhi(眞我) 2017-06-30 10:20   좋아요 0 | URL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사셔서 이상한 애들만 뽑던 동네가 거지갑을 뽑고 나서 좋은 동네가 된거죠. ㅎㅎ

양철나무꾼 2017-06-30 10:34   좋아요 0 | URL
문국현도 뽑았던 저력있는(?) 동네니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나이 드신 분이라기보단 지역 토박이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지역 토박이 분들의 자녀가 그대로 은평구에 터를 잡고 사는거구요.
학구열로도 강남, 목동이 안 부럽다죠~^^
 
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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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신이 드로메다로 탈출하는 부류는 아니고, 내 자신을 들들 볶는 안달루시아 과였다.

아니 물속에서는 아둥바둥 간힘을 하며 수면 위로는 우아한척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 과라고 해야 하려나?

이제 나이를 먹어 나아진건지,

아님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놓으려고 하다보니 편안해진건지,

그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렇게 계속 살다 보면 인생 잘 살았다고 어느 시점에선가 생각할 수 있게 될까?'

하는 막막한 질문에 부딪히는 시기가 있나 보다.

그냥 하루하루의 '일상'에 충실하고 좀 더 행복하게 채우고 싶다고 만든 팟 캐스트 프로그램이 '일상기술 연구소'이고,

그걸 책으로까지 만들어 낸걸 보면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요즘 트렌드를 한박자 늦게 받아들이는 건지,

팟 캐스트 프로그램 제목을 들어본 일이 없었고,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일상기술연구소'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이 책을 펼쳤다.

 

책표지의 이 그림도 일조하였다.

대단한 그림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의 일상은 이 세컷의 그림이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지개를 켜는 그림이면 일상생활의 지난함 쯤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고,

결론적으루다가 얘기하면 참 괜찮은 책이긴 하지만,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나온게 아쉽다.

조금만 일찍 나왔더라면,

좌충우돌하며 보낸 나의 과거가 좀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이는 부질없는 것,

인생을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을 '쫌' 살아본 나도,

이 책을 통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 몇 가지 정도는 습득할 수 있었다.

기술이라기 보다는 마인드가 더 정확한 표현일수도 있겠다.

언제고 어디서든 궁금한 것은 탐구하면 되고,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그걸 이 책에서는 '가르친다, 배운다' 라는 표현보단 '공유'라고 얘기한다.

 

그동안의 나는 뭐든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두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조차도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버거웠지만 대놓고 배척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우선 순위를 정하는 법을 알려준다.

혼자서 뭐든지 잘 할 수 없으니,

손 내밀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별법' 같은 것도 '기술'이라기 보다는 '기준'을 정하는 마음가짐 같은 거다.

제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요.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값으로 환산해서 당당하게 요구하느냐입니다.

시간당 얼마, 이런 식으로요. 자기 기준이 없으면 남의 기준에 끌려갈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당당히 물어보는 편입니다. 그 일은 시간당 계산하면 어떻게 돼? 그랬을 때 딱 나오는 사람은 프로예요. ㆍㆍㆍㆍㆍㆍ미리 정한 기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주어도 마음이 괜찮을 것 같으면 단가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면 그냥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32~33쪽)

 

'돈 관리의 기술' 같은 것도 아주 유용했다.

여지껏 돈과 관련하여 나만의 소신있는 기준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돈 얘기를 한다는건 왠지 겸연쩍었고,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추상적인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선 물건을 사고 났을때의 기분을 계속 필터링 해봐야,

다시 말해 20, 30대에 계속 해봐야,

40, 50대가 되었을때 경제생활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덟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는,

멀티 테스킹이 되는 이로의 얘기도 흥미로웠다.

어쨌든 기술이라고 치면, 스스로 깎아먹는 얘기라는 걸 아는데요. 뜻이 맞는 사람을 모으지 않아요. 제가 정한 기준의 하나가 가까운 사람하고 일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주로 뜻은 가까운 사람하고 맞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의기투합 하거나 으쌰으쌰 한다는 측면이 제가 일할 땐 아예 존재하지 않고요. 그냥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까,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한 팀을 꾸리고요. 일을 할 때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고 이메일이나 문주로 소통하고 클라우드 상에서 보통 일을 한 뒤 결과물을 낸 다음에 다시 흩어져요. 회식도 잘 안 하고요.(69쪽)

일의 종류나 성질에 따라 약간은 다르겠지만, 나는 웬만해선 멀티 테스킹이 불가능하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그런 반면 내 자신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고,

누군가에게 내 자신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은연 중에 내가 아니까 상대방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띄엄띄엄 스킵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금고문, 금정연 님의 삶도 인상 깊었는데,

저는 원래 진짜 개인주의자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저 혼자 자랐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사실 책 읽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게 질린다고 해야 할까요? 에너지가 떨어지고 자기 자신하고 같이 있는 게 더는 재밌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하고 같이 하는 걸 찾게 되는 것 같아요.(129쪽)

 

나랑 비슷한 것 같지만 어느 부분에서 확연하게 반대이다.

직장에서 사람에게 치이고 관계에서 힘들어한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삶을 꿈꾼다.

말을 할수록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모되고,

쉬면서, 여백 속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단순히 가르치고 배운다는걸 너머 '공유'하는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정점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더불어 사는 것이나 역할 분담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어려움이 존재하는데,

가족이 아닌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은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함께 사는 것'을 얘기를 통해서 조율하고 풀어나가는 방법도 긍적적이지만 쉽지는 않을터,

그렇게 '함께 얘기 하며 풀어나가는 자체'로 스트레스 받고 버거워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의 많은 '기술'들이 처음엔 적용 불가(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가만히 얘기를 듣다보니(실상은 책을 읽은 것이지만,)

천천히 마음을 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토론을 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이전에,

기술자(?)가 하나하나 이론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걸 제책임 님은 이렇게 갈무리하는데,

ㆍㆍㆍㆍㆍㆍ말씀하신 것처럼 보편적인 기준,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상 혹은 평균치라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서 자기만의 질서, 조직화를 꿈꾸면서, 또 시도하면서 살아가는 분(156쪽)

이것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그리고 그들의 삶이 그럴듯 하고 부럽기는 하지만,

난 나름대로의 내달림 사이의 쉼,

가득 찬 삶이 아닌 여백을, 사랑한다.

 

뜨문 뜨문 넘기며 훑듯 읽어도 좋겠고,

앞에서 뒤까지 차근차근 정독을 해도 좋겠다.

그러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엿볼 수도 있겠고, 함께 공유하고 터득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때론 삶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고,

일상을 사는 기술까지 연구해야 하는건가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걸 어쩔 수 없다.

그런 '일상 기술'에 대비하여 '딴짓'을 생각해 봐야겠다.

일상기술연구소 만큼 딴짓연구소도 근사하니까 말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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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9 05:46   좋아요 1 | URL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 저는 대개 따분하더라는. 게스트 좋을 때는 가끔 노다지ㅎ
프로페셔널한 제목이나 금고문 정도 나오는 프로치고 뭔가 참 동네반상회 같이 심심함요ㅎ; 소위 정보 팍팍 팟캐스트 스탈이 아닌게 패널 성향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조용한 팟캐스트 듣고 싶다 싶을 때 들으면 좋더군요. 김영하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비슷한 효과ㅎ;

양철나무꾼 2017-06-30 09:2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전 지금 일부러 챙겨듣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은 없고,
‘서울부부의 귀촌일기‘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남자가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은근 잼나요~^^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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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라는 제목의 김규항 아포리즘이란다.

김규항이 짓고 변정수가 엮었단다.

 

개인적으로 김규항의 글들을 완전 좋아하는지라,

이 책도 그러할 줄로 알았다.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도 그렇고,

리본끈으로 만든 책끈도 그렇고,

하드 커버의 장정도 좋았다.

 

그런데 몇 장을 넘겨 읽다가,

이 글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고 해야겠지만,

.

.

.

철푸덕~OTL

그렇지 않았다.

 

김규항의 책을,

아니 그의 글을 몇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의 글은 응축되고 집약되었으며 단정하다.

그의 '문장론'의 일부만을 봐도 그의 글쓰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움 같은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모름지기 글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  '김규항'의 '나의 문장론'중 일부 -

 

물론 이런 그의 글쓰기 방식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이 책도 좋았다.

아포리즘이라는 격언이나 잠언집의 형태도 맘에 들었다.

그런데 그의 홈페이지나 다른 책들에서 보았던 글에는 연도와 날짜가 있었고,

제목이 있어서,

얘기하고자 하는 논점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반면,

이 책에서는 글을 쓴 연도와 날짜, 제목도 없어서,

격언이나 잠언집이라는 함의는 알겠는데,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얘기를 하고자 쓰여진 글인지,

전달하는 바가 모호해진다.

 

그동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서 좋았는데,

요번 책은 앞, 뒤 자르고 중간만 뭉뚱그리는 식이다.

어느 사안과 관련됐던 글인지 내 기억을 더듬는데,

내 몹쓸 기억력은 가물거리는 걸로 부족해서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며, 김규항 홈피의 이 글을 보여주었다.

이게 좌파 아닌가 했더니,

 

우리나라에 좌파는 없다.

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

좌파는 설 여지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김규항의 저런 정도 사고는 건전한 보수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이런 걸 묻길 기다렸던 듯 이런 얘기도 했다.

 

건전한 보수가 나라를 더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건전한 보수가 망하면 좌파는 죽는다.

심상정의 정의당처럼 건전한 보수를 세우는데 일조해야지

날을 세우는 건 좌파가 지금 할일이 아니다.

 

열변을 토하는데, 내가 뭐라고 했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구분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전을 쓴 그의 저력에 미루어 종교적으로 해석해도 좋겠고,

나처럼 그냥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완전 좋다.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7쪽)

 

어느 단계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수정란, 아니 난자 한 개라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될 생명이지만, 진정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단계'부터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10쪽)

 

내가 김규항을 '이게 좌파가 아닌가'했던 것은 오랫동안 보아 온 아래 글과 관련해서 이다.

 

세상은 '청년 시절에나 하는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신념들로 바뀐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21쪽)

 

친구가 하는 얘기를 이해 못 하겠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용어를 만들어 내는 건 결사반대다.

 

좌파도, 우파도 내겐 너무 어렵기만한 고로,

난 쪽파든 대파로 살아야겠다.

 

암튼 종교나 파를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읽어도 좋았을테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읽어도 좋았다.

 

이렇게 저렇게 넘기며, 한구절씩 외워두었다가,

격언이나 좌우명처럼 한번씩 써먹어야겠다.

 

입안에서 궁글리며 묵히고 벼려야겠다.

 

                    

2005/08/12 11:422005/08/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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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이 지지리도 안 읽히는 요즘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책이 안 읽히면 안 읽히는 걸로 스트레스 받고,

그걸 트집잡아 내 자신을 들볶았겠지만,

요즘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번짐 기법처럼,

밖으로 희미하게 흐트리고 지우려고 하고,

안의 것들만 온전히 모아 정수라며 응축시키려 든다.

이러한 것들도 일부러는 아니다.

안 읽히면 안 읽히는 대로 내버려둔다.

.

.

.

라고 쿨한척 어깨를 으쓱하고 말아야 하는데,

지름신이 강림하사 책은 대대적으로 들이고 말았다.

알라딘 굿즈인 예쁜 티셔츠가 탐나서...였다는 안 비밀이다, ㅋ~.

 

다섯 권의 책을 들였는데, 1등 공신은 김규항이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김규항은 내가 허물어지거나 무너지려 할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다잡아 준다.

그렇다고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자상하게 위로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냥 어깨를 한번 툭 치거나,

신발코를 땅에다 문지르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식으로 말이다.

 

 

 

 

 별★종의 기원
 박주민 지음, 이일규 엮음 /

 유리창 / 2017년 6월

 

그리고,

박주민의 책은 처음인데,

우리 옆동네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잡스'라는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섯 권의 책을 들이는 마당이니,

적어도 다섯권은 방출시키려 열심히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켄폴릿의 '20세기 3부작 시리즈'의 2번째 편인 '세계의 겨울' 두권이다.

 

세계의 겨울 1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세계의 겨울 2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전세계 1억 5천만 독자가 격찬했다는데,

부러워서...인정하기 싫어 버팅겨 보지만,

책을 펼쳐 몇 장을 읽기도 전에,

나도 거기에 숫자 1을 기꺼이 보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좋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섯 가정이 이리저리 뒤얽혀가는데,

물론 얘기가 전개되고 펼쳐지려니까 그랬겠지만,

각 나라와 등장인물마다 나름대로 이념과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게 설득력 있었다.

'거인들의 몰락'에 이은 두번째 단계여서,

거기서 주축이 되었던 주인공의 자식들이 전면으로 배치되는데,

십대 후반의 그들은 뭐, 지금의 나보다 성숙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의 장래를 향해서도 분명하고 똑 부러진다.

거기다가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주도적이다.

어찌되었건 전 세계와 시대를 통틀어서 전쟁만큼 끔찍한 악행은 없고,

때문에 히틀러가 위악인 거겠지만,

세계사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도,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만행은 너무 끔찍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은 물론 소설이지만,

소설 속의 내용보다 더한 내용들이 그 시대에 펼쳐졌다는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고,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겠다.

책 속의 모드와 에설도 그렇고 데이지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이어서 그렇게 강한 자를 심어준 것이겠지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간 그녀들이 부러웠다기 보단,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럴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 돌이켜 안타까웠다.

 

좋은 책이고 재미도 있지만,

3부를 마저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허영만 님의 식객 2부 3권도 읽었다.

 

 

 

 

허영만 식객 Ⅱ 전3권 완간세트
허영만 지음 / 시루 / 2014년 6월

1부는 다 읽지 못하고 띄엄 띄엄인 채로 2부를 읽어도 재미있었다.

설정을 그렇게 새서 그렇겠지만,

음식과 재료랑 관련된 부분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재료를 구하고, 경험에 기초해서 탄탄했다.

 

'달래'라는 명명과 관련하여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해서 달래라 부른 게 아닐까?'(1권 136쪽)

같은 부분도 재미있었다.

감자를 소금이나 설탕이 아닌 된장에 찍어먹는것도 신기했다.

그냥 만화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런 장면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런 부분도 그렇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인용한건 더할 나위가 없다.

 

난 그렇지 않아도 편식이 심한 편인데,

나이를 한살 더 먹을수록 먹고싶은게 점점 줄어든다.

새로운 맛집이라고 해도 찾아가보면 거기서 거기이고,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며 MSG를 잔뜩 넣거나 종잡을 수 없는 맛을 가지고 모르면 말을 말라며 횡포를 부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입에 맞았던 움식은 맛있거나 근사한 음식이 아니었다.

어렸을때 먹었던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식들이다.

오랜 기억 속에 묻혀있던 음식들.

추억을 돌이키고 그때로 소환하는 음식들.

그러고보면 사람의 기억력만큼 가변적이고 믿을게 못되는게 없고,

사람의 입맛처럼 따뜻한 추억과 강력한 케미를 이루는게 없다.

 

버리고 비우겠다고 설레발을 쳐도,

추억마저 버리고 비우면 남는게 없고,

바리바리 움켜쥐고 있다가 죽을 때 싸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쨍쨍한 6월의 어느날,

평상 깊숙히 뜨거운 볕이 들어오는 어느날,

누군가와 그렇게 무심히 앉아 찬밥에 물말아 한술 떠먹었으면 좋겠다

그걸 찬물에 물말아먹는 사랑이라고 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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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6-22 09:23   좋아요 0 | URL
흰색은 세탁에 자신이 없어서리~--;
책 다섯권을 고르는데,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알라딘 굿즈가 8개인가 9개였다는~.
저는 다른건 과감하게 패쓰해 주시고 껌정 티 하나만 골랐는데,
옷감도 톡톡한 것이 면 백프로라서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6월의 사은품이라고 되어 있어서,
다음 달까지 남아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6-21 22:36   좋아요 1 | URL
예.. 알것 같아요

찬밥에 물을 말고, 얼음도 한두개 떠있고,
아삭한 오이지와 한술 떠먹었던 기억..
함께 했던 시간.. 사람.. 그리고 그리움

사랑이였네요

양철나무꾼 2017-06-22 09:27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완전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김규항을 읽는데,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라고 얘기해요.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는 말과 함께요.

그래서 님의 댓글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꾸벅~(__)

cyrus 2017-06-23 15:21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2, 3일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아요. 그 기간동안 책 한 권 거뜬히 다 읽을 수 있어요. ^^

양철나무꾼 2017-06-27 09:55   좋아요 0 | URL
아웅~, 이 댓글을 이제 봤네요, 죄송~(__)

전 책이랑 북플이랑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어요.
책이 안 읽힐때는 다른 모든 것도 시큰둥이예요.
군것질을 좀 좋아하는데, 심지어 간식도 안 땡기는걸 보면요.

조바심 내지 않고 그냥 버텨볼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