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옥, 가야를 품다 푸른도서관 38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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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야. 비운의 나라.

신라, 백제, 고구려와 더불어 당당하게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결국 신라에 복속되어

전설의 땅 아틀란티스처럼 존재조차 희미해진 나라.

그런 가야가 신비의 왕후 허황옥에 의해 두둥! 다시 떠올랐다.

 

부처님의 축복을 받은 태양의 나라 아유타국에서 태어났지만 월지족 아룬 왕자와의 혼인을 피해

먼 동쪽나라로 항해를 시작하는 라뜨나와 락슈마나. 이름도 입에 쩍쩍 붙지 않을 정도록 멀게 느껴지는 아유타국을

어떤 학자는 인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아요디아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어디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김수로왕릉과 아요디아국 유적에서 동일한 것들이 나타난다고 하니 아유타국은 지금 인도의 아요디아국이라고 믿는 게

타당할 지도 모르겠다.

 

짧고 간단한 기록에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 넣은 작가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겨우 건국신화 몇 개뿐인 빈약한 신화를 가지고 있던 우리가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신화 한 개를 더 갖게 된 셈이니

남의 밥상을 탐내어 매번 그리스로마 신화를 기웃대던 허기가 조금은 가시게 되었다.

금관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이 김해구지봉에서 얻은 황금알 여섯 개 중에서 처음으로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알려진 김수로왕. 하지만 이 책에서 수로는 단야족의 왕자로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예란성이 무너지자 유민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개라봉(옛 구지봉의 이름)에 이르러 태양신을 모시는  

아홉 부족을 만나게 된다.

부족장들은 철을 다룰 줄 알았던 단야족의 후예인 청예를 받아들여 왕으로 삼는데 이가 바로 수로왕이다.

그리고 아유타국에서 타국을 떠돌던 라뜨나가 가야국에 도착하게 되고 이방인이라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가야국 백성들도

역병에 걸린 이들을 온 정성으로 치료하는 라뜨나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교역일도 거뜬하게 해내고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도 있으며 사람을 돌볼 줄 아는 고운 마음씨까지 지닌  

아름다운 허황옥 라뜨나.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레 달고 다녔던 팻말을 일찌감치도 버린 셈인데

오히려 그런 낯선 나라 사람과 맺어져 좋은 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폐쇄적이지 않고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간 게 아닐까?

허황옥에게도 김수로왕에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훗.

이름들이 낯설어 익숙해지는데는 오래 걸렸지만 가슴 뛰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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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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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이 왜 그런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글을 너무 자전적으로만 읽은 거 아니냐는 퉁박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허나, 작가가 말했듯이 바람이 주인보다 더 주인 행세를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도

작가이며, 설사 뼈대만 놓고 모든 걸 꾸며내었다 할 지라도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 살림을 돕느라

또래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려 놀지도 못한 외로움과 옷을 다 입고 아버지 점퍼까지 덮어도 천막을 들추고

기어이 들어오는 바람과 싸워야 했던 고단함은 고스란히 작가의 것으로 보이는 것을 어쩌랴.

 

아픈 동생 연미와 제 또래 아이들처럼 걱정 없이 뛰어노는 또다른 동생 연경이, 그리고 젖먹이 동생.

이 셋은 고스란히 맏딸인 연재 차지가 된다. 생선을 떼다 파는 엄마는 부드러운 모습을 다 버리고

모지락스러운 아낙네가 되어버렸고 돈이 생길 때만 들어오던 아버지는 소식도 없다.

그나마 연재네 집에 위안이 되는 건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오빠 연후 뿐.

외삼촌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몽땅 잃어버린 재산. 그 때문에 남의 집살이를 하다 이제는 아주 쫓겨나다시피

이모할머니댁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얹혀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된 연재네 집.

그 집에 먼저 얹혀 살던 사촌 재순이는 앙칼지다못해 사사건건 연재를 괴롭히려고만 든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어 초가집을 모두 다 불태우는 소란이 일어나면서 연재네는 그 초라한 집에서도 쫓겨나

외삼촌이 대충 지은 판잣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의 집 처마에 잇대어 지은 키가 껑충한 꺽다리 집.

바람이 들어오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그 집에서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없지만

서울로 가버린 병직이 삼촌이 보내온 빨간 책가방과 따뜻한 방을 빌려준 숙이네로 인해

연재는 다시 한 번 견녀낼 힘을 얻는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당당히 서서 마주하리라고 다짐하면서.

 

겉모습만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새마을운동이 결국은 없는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었음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과 장난감을 얻던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치에 이렇다할 의견을 가질 나이가 아닌 연재의 눈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 동화가 갖는 어떤 강박관념 - 이를테면,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한다든가, 결말이 좋아야 한다든가 하는-을

과감히 버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된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을 것을 전제로 쓰는 글이긴 하지만, 그 아이들이 현실에 발 디디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도

동화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어른과 아이가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쓸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 바람을 견딘 거친 그 손을 잡아 힘있게 흔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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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삼총사 창비아동문고 258
김양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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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면 입지도 않은 엄마 옷들을 세탁하고 다림질까지 해서 서랍에 넣어두고, 옷장문을 아예 잠근 채

엄마 물건을 보여주려하지도 않고 매주 침대보를 갈아 씌우면서도 침대에서 편히 자지 못하고

침낭에서 새우잠을 자는 아빠를 보는 은우도 아빠만큼 쓸쓸하고 아프다.

단짝 친구인 선주가 떠나서 아프고 웃지 않는 아빠를 보는 것도 아프지만 내색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게 겉으로만 의젓하게 살아가고 있는 은우에게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자폐증세가 있는 동생 동빈이를 위해 가족신문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형빈이,

시간이 가는 걸 직접 보고 싶다면서 자명종까지 들고 다니는 괴짜 동물 박사 찬기는 자연스럽게

은우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감싸 안는 좋은 친구들이 된다.

 

동빈이의 사회 적응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 형빈이가 만들어 나누어주는 가족신문 '따로 또 같이'는

세 친구에게뿐만 아니라 은우 아빠에게도 자책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형빈이가 만든 가족신문은 처음에는 단순히 동빈이와 형빈이네 가족 이야기였지만

세 친구가 동참하면서부터는 온 마을 신문으로 확대되어 간다.

가족이라는 작은 범주에 갇혀 있지 않고 마을 안으로 울타리를 확대해 갈 수 있는 이 아이들이 부러웠다.

일정한 크기,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마을 개념이 퇴색해버린 지 오래라고 느끼는 건

내 착각일까?

조끼 아저씨나 떡볶이집 아줌마, 털보 문방구 아저씨.

우리 곁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폭행이나 유괴가 두려워 어른들이 길을 물어봐도 가리켜주지 말라고 가르치는 우리에게는.

'따로'만 알고 '같이'를 모르는 우리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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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폴 미래의 고전 22
이병승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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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폴' child(어린이) + politics(정치)의 줄임말.

2019년 붉은 비가 내리고 전염병이 퍼지며 폭설이 내린 대재앙 이후 '인류의 희망은 어린이'

라는 깨달음으로 각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과 수상은 반드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수퍼컴퓨터가 10살에서 14살 사이의 아이들 중에 뽑은 첫 번째 대한민국 어린이 대통령이 바로

완전한 보통 아이 5학년 안현웅이다.

대통령이 되면 늦잠을 자도 되고, 무시하고 놀리던 아이들을 쩔쩔매게 만들 수도 있고,

좋아하는 여자친구 보미한테 잘나 보이고 싶고, 무엇보다 줄반장조차 하지 못했는데

덜컥 돌아가신 엄마에게 미안해서 현웅이는 대통력직을 수락한다.

 

막상 청와대에 들어왔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현웅은 아빠에게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하소연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만리장성>으로 자장면을 만들러가는 아빠는  

'인마! 아빠가 어떻게 중국집 사장이 됐는지 아냐? 배달 3년, 설거지 1년, 양파 까기 1년, 양파 썰기만 또 1년,

그러고 나서야 겨우 자장을 볶을 수 있었어. 근데 너, 대통령 된 지 얼마나 됐어?'

라는 말로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어준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그냥 서류에 형식적인 사인만을 원했던 비서실장은 얼음조각 위에서 빠지기 직전이었던

개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녹이게 되고,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던 경호팀장은 심한 황사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썼던 방독면을 벗어 씌워준 현웅에게 감동하여 꼭 지켜주리라 다짐하게 된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에 눈을 뜨게 된 현웅은 무엇보다 환경문제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황사를 몰고 오는

몽골에 나무를 심으려 하지만 필요한 돈 30억 달러를 마련하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국내 최고 자동차 회사인 현기자동차 회장에게 협조를 구해봐도 요지부동. 결국 자동차 1대를 몰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없애기 위한 나무 100그루 심기를 시작하자 차츰 동참하는 국민들도 늘어간다.

예산 때문에 고민을 하던 중 가게보안 장치를 해지한 돈으로 성금을 내는 아빠를 보면서 국방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가 모두 하나의 나라가 되면 전쟁도 없어질 테고 전 세계의 국방비를 환경기금으로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하게 된다. 대단한 현웅군! 사실 마음속으로야 다들 그러고 싶어하긴 하지.

 

비서실장이 '지금 대통령님은 아직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아이 같아요.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에요.

많이 가진 사람이 조금 나눠 줄 수는 있겠지만 전부 내놓진 않아요. 그게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현웅은 멋지게 응수한다.

'그러니까 어린이 대통령을 뽑은 거잖아요. 어른들은 못 하니까. 우리가 하라고!'

우리도 순수한 어린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려나? 기대하고 싶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세계를 하나로 묶는 'YOU & I ' 계획에 97개국 나라가 동참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을 막으려는

EAT 집단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5학년 보통 아이라는 설정치고는 생각이나 말투가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

생각할 거리들을 너무 많이 던져서 머리가 복잡한 탓에 후반부에는 그런 흠이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뭐, 이런 애가 있을 수도 있지. 사람이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야' 라고 중얼대기도 했다.

섬진강 댐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 맨발로 청와대를 향해 걷는 준일이, 황사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늘어가도 돈 없는 서민들은

병원에 들어가보지도 못하는 광경, 'YOU & I' 문제로 세계정상회의를 하려는 현웅이를 막으려고 EAT가 벌이는 폭력들.

해군경비정이 미사일에 격침되고 그 주변에 러시아제 미사일 파편이 흩어져있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자꾸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져서 사막화된 몽골을 걷는 것처럼 입으로, 코로 모래가 날아들었다.

 

모든 영화나 책에서 미래를 어둡게 그리는 것은 많이 생각하고 경계하고 혹시 일어날지 모를 재앙을 막으라는 간절한 바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2019년 대재앙, 자칫 허황되게 보일 수 있는 이 설정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몇 년이나

몇 십 년 후엔 이런 대재앙을 정말 만날 것 같은 징후들이 지금부터 보이기 때문이다.

<수상이 된 한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를 정치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만큼 순수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더러운 술수와 음모가 판을 치는 정치판을 갈아엎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2년 후면 다시 최고 수장을 뽑는 시간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제발 '생각 없는 어른'이 뽑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제일 강조하고 싶었을 이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환경 문제는 아주 먼 훗날의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불편해지고 싶지는 않았던 거예요. 기업도 미래를 위해 환경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죠.

결국 정치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정치인들도 기업과 손을 잡고 당장 자기들의 이익만 앞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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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달리고학년동화 7
강정규 지음 / 달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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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문학을 하는, 혹은 연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필사를 들곤 한다.

내가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 못할 바에는 멋지게 잘 다듬어진 완벽한 문장을 베껴 써봄으로써

그 기운과 그 아름다움조차 내게로 옮아오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손으로 그 느낌을 익혀 글을 눈으로만 좇던 일에서 더 나아가 생각을 하게 하고

내게도 그런 문장이 손끝에서 춤추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도 필사를 한답시고 몇 권을 써 본일이 있지만 손으로 해야 마땅할 것을 알면서도

팔도 아프고 글씨도 엉망이라는 핑계를 들어 컴퓨터 자판을 톡톡 두드리는 얄팍한 짓을

해놓고 스스로 뿌뜻해 했던 어리석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제망매가>를 끝까지 다 읽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작가의 말을 읽었다.

제자들의 주례사를 대신해 한 자 한 자 흐트러짐 없이 고린도전서 13장을 옮겨 쓰신다는

그 말씀을 읽는다.

먹물이 번져 버려야 했던 수 많은 종이들과 호흡마저 가다듬고 단정한 자세로 쓰실

그 모습이 떠올라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세대에 동참하고 있는 내가 또 부끄러웠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인 전래동화.

집마다 전집으로 빽빽하게 책장을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풍경은 사라져버렸다.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먼 곳에 사는 분들이 되고

같이 사는 엄마, 아빠는 바쁜 사람이 되어 테이프나 CD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아이들은 뭐가 궁금해도 그냥 들어야 하고

어른들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어보는 반짝이는 눈을 볼 수도 없다.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남아있을까?

 

<제망매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살아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1부와 2부에서는 '사람은 그저 땅바닥에 발 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발전이라는 탈을 쓴 채

사람이나 짐승을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방법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마음 둘 곳도 없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크다.

그래서 3부에서는 힘들고 어려웠어도 따뜻한 마음이 살아있던 옛날로 돌아간다.

억지로 행복한 체 하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하게 살았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서

우리가 잊은 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넌지시 얘기하고 있다.

'오냐, 내 다 안다. 늬는 낭중에 성공혀서 훌륭한 사람 되거들랑 남의 가슴 아프게

허는 일은 허지 말그라'- <엿>-

'일을 해야 밥이 입으로 들어온댔구나' - <대추나무>-

그들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사람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던 그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숭배하며 사랑하던 순박한 사람들과,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다는 잃어버린 진리를.

<제망매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위한 위령제는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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