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 주고
남족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서른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훌륭한 작가 미야자와 겐지.
생전엔 단 두 권 ≪주문 많은 요리점≫과 시집인≪봄과 수라≫만 출판되었지만
그뒤 겐지 동생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첩을 발견해 많은 유작이 발표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첼로 켜는 고슈>도 그 수첩에 있었고,
이 시 또한 그가 죽기 2년 전에 써 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곽수진은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2019 볼로냐 국제도서전 사일런트북 콘테스트 대상,
2020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 롱리스트 아티스트에 뽑히고
2021 영국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후보에 올랐단다.
(상들은 잘 모르지만 그림을 보니 좋은 작가인 줄은 알겠다. )
그의 그림들과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읽고 또 앞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고 또 돌아가고..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