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최정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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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적인 경험에 한정해서 SNS의 순기능은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주 관심사인 독서목록은 물론,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지, 얼마나 많은 재능들이 있는지.

 

물리적으로 만나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아주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나는 세상을 좀 더 다채로운 무늬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해서 재밌고 신기하다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인간은 어디든 위계와 순위를 만든다.

 

시간이 지난 후의 기록은 조각난 꿈의 형상을 차지한 어느 권력층의 몫이 되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건 고급문화, 저런 건 하위(sub) 문화. 별 가치도 없는 사치품들이 명품으로 불리고 소비되는 한국사회에서는 하찮은 위계의식과 반문화적인 문화평가의 말들이 요란하다. 실은 소비문화가, 돈이 최고인 것이다.

 

문화가 지식과 교양과 의지와 저항의 표현이 아니라, 자산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의 하찮음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향유 당사자의 취향이라곤 없는 대중소비 유행의 표출일 때의 욕망은 시시하기 그지없다.

 

만들어진 세계는 모든 이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흠모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어떤 문화가 주류가 된다는 건 주류인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브컬처는 수많은 문화의 탄생지이자 실험실이다. 시도 단계에서 욕하고 평하는 것이 대단한 가치가 있을까. 향유자의 숫자가 문화 평가의 기준인 것도 웃긴다.

 

하긴 팔 수 있는 지 없는 지가 문화가치 평가에 더 중요해진 지는 오래다. 문화 가능성이라고 쓰고 매매 가능성이라고 해석한다.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뭐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편하면, 편향적인 비난을 쏟아 붓는다.

 

의사소통의 수단이 거의 일원화된 상황에서, 취향도 생각도 점점 비슷해지고 있을지 모르나,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한, 새로운 문화 역시 생길 것이다. 변이를 거듭하는 자연계의 생명들처럼 문화도 변이할 것이다. 그게 어떤 권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문화의 힘이다.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권위적 질서의 세계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가질 때, 거대함의 명분은 시대적 사명이 된다.”

 

이렇게 글은 쓰지만, 지역문화도 세대문화도 청소년문화도 반문화도 잘 모르고 산다. 소속감도 어울림도 부족한 삶이다. 시간은 물론. 그러니 주로 언제 어디서나 준비 없이 혼자 즐길 수 있는 개인 문화만 내 삶에 남아 있다.



 

클래식 공연도 좋고 대중 영화도 좋다. 벽돌책도 좋고 만화책도 좋다. 클래식 연주도 좋고 대중가요도 좋다. 전시회 작품들도 좋고 낙서와 습작도 좋다. 등단작가의 글도 좋고 누구의 글이라도 좋다. 자기 향유, 자기 생각이라면.

 

생각난 김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고 추천받은 만화책을 읽어야겠다. 마침 일요일이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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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괜찮은 세상, 이 정도면 괜찮은 삶
최흥식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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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이비인후과 의사가 쓴 책을 한국인 이비인후과 교수가 번역한 과학책을 조금 읽다가, 괜찮은 세상이 궁금해서 펼친 책의 저자도 시를 습작하고 에세이를 쓰는 이비인후과 의사다. 재밌는 우연이다.

 

생존과 행복, 체력이 좋고 기운이 넘치던 시절에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금도 겨우 생존 중인데, 나이가 더 든다는 건 어떤 어려움일지 자주 생각한다. 특히 입에 담지 못할 폭력과 비극이 잦았던 여름을 지나면서 모든 게 더 엄중하다.

 

생존 가능한 미래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고, 학자들의 예측은 대개 3년에서 7년이 뭐라도 해볼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한다. 예측일 뿐이니 그 기회란 것도 이미 끓고 있는 지구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애쓰는 삶이란 무엇을 위한 것이었으며, 앞으로 노력을 더할 것인가의 여부도 몹시 흔들린다. 그런데 노력조차 그만두면 또 무슨 가치가 있는 삶일까 하는 기분. 살아있으면 삶만 보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지 못할 과제 같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풍경마다 저마다 아름답다. 만나는 이들마다 반갑고 어떤 순간들은 내가 아는 모든 정보가 다 거짓이고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아무 것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 조심하면 될 것 같은.

 

저자의 글 구분처럼, 나도 여기에 넋두리를 하고 있다. 어느새 9월이고 곧 올 해가 끝나갈 것이다. 나는 월말과 연말마다 어리둥절하며, 이미 사라져버린 시간을 다시 새어보려 할지 모른다.

 

어릴 적, 세상이 온통 반짝반짝 빛나고, 더 재밌고 좋은 일들만 생길 것이고, 어른들은 모두 현명하고 못하는 일이 없다고 느낀 그 시절, 어른들은 나처럼 절망이 써서 몸서리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며 별 일 없는 듯 웃었던 것일까.

 

저자는 자본주의가 최상의 애인이자 최악의 배우자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살아서 생긴 모든 달콤한 기억들을 가진 채 자본주의 덕분에 멸종하게 될 미래라니.


 

넋두리는 여기까지, 내겐 내 선택으로 생겨난 일상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인간이 망친 일들은 인간이 고칠 수 있다고 더 굳건히 믿어야겠다. 불평등 격차가 줄어들고, 기본 복지 인프라가 촘촘해지고, 다른 채로도 같이 사는 사회가 가능해지면, ‘이만하면살기 괜찮은 세상일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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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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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회는 반드시 망한다. 엉망으로 살아온 자들이 원하는 것을 다 얻는 풍경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독한 유해성을 뿜는다. 절망과 폭력과 상해와 죽음과 죽임이 폭증한다.

 

올 해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고 죽였는지 통계를 보니 서늘해지는 기분에 몸이 으스스 떨린다. 이런 현실에서 아름답지만 핏빛처럼 강렬하고 분석가처럼 예리한 작품을 쓰는 분이 이꽃님 작가다.

 

이만큼 이해받아 봤을까, 하는 생각에 매번 뭉클해지고 부럽지만 몹시 아픈 위로를 건네는 청소년 문학이다. 현실의 아동학대가 더 광범위하고 참담할 텐데, 이야기 속 현실도 흉통이 느껴지듯 위태로운 분위기다.

 

나는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잔뜩 구겨진 쓰레기가 되어 다른 애들의 마음에도 없는 걱정 따위나 들어야 하는 게 싫었거든.”

 

태어났으나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 태어나자마나 버려지거나 죽임 당한 아이들, 학대에 시달리다 사라지고 실종되고 살해된 아이들, 살아남았으나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 아이들, 2, 3차 가해를 당하는 아이들. 노동력이든 성이든 착취당하고 사기 당하는 아이들. 서로가 상처 입히는 아이들.

 

매일 아주 조금씩 번져 가니까, 곰팡이가 온 집안을 점령해 옷과 가구까지 모조리 썩어 가는데도 심각한 줄 모르는 거야. 그 집에서 꺼내 입은 옷에서도 곰팡내가 진동하는데, 몰라. 늘 곰팡이랑 함께니까 모르는 거지.”

 

학대당한 반려견과 아이는 그 학대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거나 -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가해자와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관계의 작동 방식은 사랑이라(고 반복 학습되)는 가스라이팅이다.


 

나이가 들면 정말 더 안전해지기도 하는 걸까,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범죄들에서. 망가진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며 새롭게 망가지는 걸까. 첫사랑이라고 불리는 풍경이 이래도 되는 걸까.

 

겉으로 보이는 멍은 치료가 되지만 속으로 든 멍은 보이지도 않아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사람을 서서히 죽여가지.”

 

성실하고 촘촘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심장이 벌떡 뛰는 반전을 거쳐 숨을 흡 들이마시는 비밀이 드러나는 결론으로 내달린다. 서늘한 기분은 단지 9월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고 겪는 감정과 현실과 막막함의 순도가 위태로울 정도로 높다. 상처의 범위와 깊이가 가볍지 않다. 작가는 우회 대신 솔직함을 택했다. 복선이 단순하진 않지만, 어떤 스포일링이라도 읽기 전에 다 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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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6 - 수사자 아산테 창비아동문고 331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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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권은 읽어줘야 했는데, 어느새 2023년이고 6권이다. 앞의 내용이 가물거려서 다시 찾아서 기억을 채워야했다. 돌아가신 아산테 아저씨가 멋진 부제로, 와니니 무리의 큰 아들로 다시 돌아오셨다.

 

바로 내가 기억하는 그 용맹함이 수사자 아산테가 초원에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작가님이 초원을 삶을 인간 사회 못지않게 흥미로운 드라마로 만드셨다. 오해는 하는 사람 마음대로인데 피해는 오해 받은 이가 감당하는 것도 기시감이 든다.

 

나도 언제나(지금도)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아산테가 동생 후쿠를 어리게만 생각하는 것이 모두 이해되고, 그 동생 덕분에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과정이 뭉클했다. 내동생도 어느 날 보니 이미 나보다 더 어른이었다.

 

와니니 시리즈는 사자의 용맹함을 부각시키는 그림 동화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알지 못한 의 습성과 삶에 깜짝 놀라면 배웠다. 생존을 위해 달리면서 출산을 하다니... 갓 태어난 아기 누도 바로 달릴 수 있다니...

 

어릴 적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독수리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사체를 뼈와 가죽만 남기고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낭비라곤 없는 초원의 순환체계와 각 동물의 역할에는 인간사회에 없는 완벽함이 있었다.


 

물론 새와 원숭이가 소문의 근원이자 퍼트리는 역할이라는 인간 중심적이고 선입견이 표현된 내용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만 잘 설명하면, 재밌게 극화된 역할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말을 참지 못하고 아는 걸 다 말하고 싶어 하는 원숭이 캐릭터가 재미있다. 나는 수다가 어색해서 말도 많고 흥겨운 사람들을 좋아한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인간들에 비하며 원숭이들은 사랑스럽다. 그림도 정말 멋지다.


 

어린 생명들은 쑥쑥 잘 자라고, 어느새 무리를 떠날 날이 온다. 사자도 인간도 마찬가지다. 글도 모르던 작은 꼬맹이도 곧 어린이를 졸업하고 청소년이 된다. 아산테에 비하면 좁은 세계를 반복하며 구경하는 중이지만, 앞으로 부모가 함께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홀로 만나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지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경험만큼 지혜로워지지 않아 좌절할 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늘 지고 매일 도망치고 지혜 대신 짜증만 늘어나는 어른이라 이야기 속 모험이 좀 아프다.

 

때로는 용감하고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지혜롭고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도무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겠지요. 그 모든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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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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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튀르키예라고 부르지만, 소위 터키석이라고 부르는 돌을 많이 좋아했다. 색감 때문에. 조금씩 다르지만, 그 계열의 푸른빛은 몽환적이라서 다 좋았다. 내 눈에 아름다워 무심코 손을 뻗을 듯한 표지다.

 

마르크 레비의 작품은 두 번째다. 2021<고스트 인 러브>를 읽으며 누가 들을까봐 민망할 정도로 웃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쨌든 온갖 이유로 실없이도 헛웃음도 혀를 차는 웃음도 웃게 했다.

 

전작보다는 현실적(?)인 소재들이지만, ‘사랑을 핑계(?)삼는 것은 같다. 런던에서 출발해서 다채로운 오감 반응이 가득할 이스탄불로 떠나는 여행이니 따라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황홀한 음식 생각에 배가 고파진다.

 

네 몸 속에 흐르는 피의 원천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어딘가에 있고, 거울을 잘 보렴. 네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운명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 건 앨리스인데 왜 제목은 달드리의 여행이지? 더 읽어본다. 회색의 어둡고 축축한 영국을 떠나고 싶어 기차로 페리 몸속으로 들어가던 오래 전 나와 무겁던 호흡이 떠오른다.

 

여행은 모험이다. 어떤 우연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다 운명이라 여긴 것으로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보다 더 설레는 일이 있을까. 이러다 예전 병이 도지면 무작정 떠나고 싶을 듯해서, 가을이 곧 도착하는 계절감이 두렵다.

 

새롭고 모든 낯선 것들과의 조우를 해석하는 것은 여행자의 선택이다. 대부분이 빠르게 지나치고 마는 기회들이라, 잡아 두고 싶으면 서둘러야 하고, 지나고 나면 모두 꿈같다. 삶도 그렇다. 한시적인 여행과 삶은 동일한 경험이다.

 

절대 잊지 마, 끝까지 찾아다니다 보면 네가 아는 사실은 남지 않게 된다는 걸.”

 

앨리스가 조향사라는 것, 여행을 부추기고 경비까지 지원하는 이웃인 달드리씨가 교차로를 그리는 화가라는 것, 이스탄불에서 향수 장인을 만나는 것, 예민한 후각을 가져 희미한 냄새도 구별하고, 모두 기억하지만, 자신의 과거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등등, 설정이 무척 감각적이다.

 

냄새는 나의 언어였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들의 냄새를 추적할 수 있어.”

 

오늘은 91일 관동대지진학살 100주기가 되는 날이다. 나는 엘리스가 대면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이르러 잠시 읽기를 멈추고 만다. 과거가 되지 못한, 될 수 없는 비극, 언제든 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비극.

 

기억은 정체성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사회든 국가든. 기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우고 없애도, 감각으로 남아 기어이 복원될 수 있다. 기억을 되찾아야 자신을 되살리고 짧은 삶을 제대로 자신답게 살아볼 수 있다.

 

기억에서 사라진 순간들을 되살리고, 잠든 장소들을 깨어나게 하고 싶어요.”



 

내 감상은 매번 단선적이고 경직된 글로 남지만, 이 작품의 속도감과 다채로움과 복선들을 그렇지 않다. 스포일링은 나름 열심히 피했으니, 즐겁게 읽으시며 우연과 여행이라고 소개하는 삶이 전하는 이야기를 즐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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