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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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표지다. 조금 떨리지만 오래 보았다. 사진임에도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에는 어떤 용기가 필요하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무거우니 자꾸 시선을 떨어뜨리고 싶었다.


 

80억이 넘는 우세단일종이 된 인간이 사는 풍경이 별로 아름답지가 않다. 인간의 삶과 밀접할수록 더 많은 고통을 받는 동물들도 너무나 많다. 숫자로는 모두 멸종된 듯해도 존재가 반갑고 아름다운 야생동물들 소식을 가끔 듣는다.

 

동화처럼 서로를 구하거나 인간을 구해주거나 서로 돌보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다정한 기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간 세상의 폭력과 잔혹함을 잠시 잊을 신비로운 경험담을 만날 거라 기대하며 펼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내가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의 문어 선생님>의 볼리비아 정글 버전 같아서 한 장씩 넘기면서 두렵기도 했다. 온 힘을 다한 구조와 여러 해의 노력으로 쌓은 신뢰가 이어지는 삶과 행복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무서웠다. 그래도 덮을 수는 없었다.

 

새를 날지 못하게 한, 원숭이조차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한 인간의 동기가 역겨웠다. 그럼에도 인간의 삶에서 도망친 인간과 야생의 삶이 두려운 밀매되고 학대받은 퓨마의 심각한 외상은 읽어서 정확히 배울수록 아물 것만 같았다.



동물원에서 하얀 퓨마가 태어났다는 기사 제목을 보고 우리 속 동물 보기가 괴로워서 열어서 읽진 않았는데, 겨우 살아남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생한 학대와 상처를 목격하니 장소와 사람들 모두가 고마웠다.

 

와이라와 같은 동물들을 방생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밖에 나간 와이라에게 좋은 선택지란 없다. 굶어 죽을 수도, 다른 고양이와 영역권을 두고 다투다 죽을 수도, 차에 치일 수도, 다시 포획되어서 도시의 끔찍한 동물원으로 보내지거나 쇠사슬에 묶여 애완동물이 될 수도, 총에 맞을 수도 있다.”


 

열대우림, 모르는 동식물, 지구환경 따위는 몰라도 되고, 신제품이 출시되었으니 맛보고 먹고 더 먹으라고 광고를 쏟아 붓는 인간 사회에서, 점점 줄어드는 밀림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연대가 작고도 적다.

 

나는 결코 부서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품기로 선택했다. 결혼 그리고 성공의 의미.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본주의, 종차별주의를 비롯한 주의. 이러한 파멸을 떠받치는 것들. 나 자신과 나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든 모든 것들. 수많은 사람을, 수많은 집을, 수많은 동물을 다치게 한 모든 것들. 그것들에 의문을 품고 맞서 싸우기로 선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와이라의 얼굴을 볼 수가 있겠는가?”


 

방황하고 도피했던 도시인간 저자가, 상처 입은 야생동물을 만나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고, 사적인 관계에 머물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 애쓰는 감동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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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모든 개 흄세 에세이 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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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기차 안은 낯설었다. 기억 출력이 잘 되지 않으니 애써 상기해보려 하진 않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금방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창 밖 덕분에 책을 펼쳤다. 눈물바람을 하지 않으려면 공공장소가 더 낫다.


 

1936년 출간작이라는 것에 놀라고, 무척 담담하게 쓰인 개이 순차적으로 등장해서 또 놀랐다. 놀랐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감정적이 되는 내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모든 만남의 밀도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개들은 덤덤하게 별 의미 없이 생각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작가의 삶이 뜨겁고 아프고 농도가 진해서, 그 곁에 말없이 함께한 개들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덜 눈이 띄는 것뿐일 지도.

 

밤낮없이 온 우주가 포효하는 것 같았을 때 코코가 없었다면 나는 그 어둡고 시끄러운 고독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 코코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내 발에 코코의 부드러운 발이 놓이면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개들은 대개 인간보다 작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다. 쓸데없는 말도 행동도 적다. 그러니 더 현명하다. 어쩌면 인간도 다섯 살에는 개처럼 집중력도 뛰어나고 뭐가 지금 가장 중요한 지도 다 알았을 것이다.

 

온전한 정신이란 뭘까? (...) 자기한테 없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현명하고 분별 있는 개. (...)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청키보다 덜 이성적이고 덜 건전하며, 어떤 타격이 오기도 전에 먼저 꺾인다면 몹시 부끄러울 것 같았다.”

 

웃고 우는 아이처럼 개도 오직 전면적인 사랑을 한다. 인간은 그런 방식의 사랑과 관계를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어떤 다른 전략들을 진화시킨 것일까. 온통 불행한 이들 투성이지만, 80억이 넘었으니 어떤 성공이라 불러도 좋을까.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지만 생이 남아 있기에 고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기쁘다. (...) 확실히 너무 빨리 삶을 놓아버리기보다는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기다려보는 것이 현명하다.”

 

나의 복슬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구원과 사랑은 오래 전 나를 떠났다. 남은 건 사진들뿐이다. 어린 내가 내 개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 펼쳐든 책을 덮으니 곧 도착이다.

 

사랑했지만 더는 내 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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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이를 위한 커피백 알라딘 아네모네 블렌드 #1 - 14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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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드립백 제품보다 분량이 40% 더 많아서 깊은 맛과 진한 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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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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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매미들이 합창을 하는 순간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소음과는 달라서 왠지 기쁩니다. 인간만 사는 게 아니라 잠시 덜 외로운 기분. 걱정은 모두 증발하고 여름의 소란함이 즐거운 축제처럼만 느껴지면 좋을 테지요.



 

어른으로 살며 늙어간다는 건, 감각이 흐려지는 일입니다. 벅찬 일도 가득 즐거운 일도 잘 없습니다. 이름만 보고 무조건 반가울 이꽃님 작가의 작품들은 어른 독자인 제게 어린 시절 예방주사처럼 따끔하고 아릿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이 첫사랑인지 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첫사랑과 연애소설이라니 낯설고도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느긋해서는 매미 합창보다 더 놀랄 사연을 만날 거라 믿었습니다. 녹록한 이야기를 쓰는 분이 아니시라.


 

전작들처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됩니다. 정교한 퍼즐 같은 상황도 사연도 기대를 충분히 채웁니다. 재밌기까지 합니다. 이런 드라마는 언제쯤 방영될까요. 인물들이 꽤 많아서 분량보다 작품이 더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소리는 마치 파도처럼 몰려온다. (...) 내 귀는 끔찍한 소음에 시달리고 두통이 찾아온다.”

 

소리에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저는 거를 수 없는 초능력(?), 타인의 속마음이 들린다(유찬)는 설정이 무섭기만 합니다.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당연히 속마음이 들리지 않은 상대(지오)와 함께하고 싶겠지요. 뜻밖의 고요함이 어지럽다는 표현이 절묘합니다.

 

저 아이가 기적처럼 나를 평범하게 만든다.”

 

어른들 사정에 휘둘리는 아이를 만나는 일은 늘 무겁고 아픕니다. 드물게 참여하는 거리 집회에서 어린이들이 피켓을 직접 만들어서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눈물이 훅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미안함이 너무나 큰데, 사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괴롭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세상이 몽땅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날. (...) 그런 날이 나한테 매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속마음이 들리는 것도 괴롭지만, 아예 들으라고 면전에서 흉을 보고 욕을 하고, 싸움도 잦고, 공공연히 차별을 일삼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생부와 갑자기 살아야 하는 처지(지오)란 어떤 것일까요.

 

어떤 날은 견딜 만하다가, 또 어떤 날은 와르르 무너졌다. 바로 오늘처럼.”

 

살며 잃은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비로소 얻게 된 다른 것이 우리를 살게도 합니다. 내가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던 것들에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내 상처가 가장 깊어집니다.


 

어쩌면 누구나 친절함 하나, 다정함 하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계기가 대단하고 귀한 것이 아니라, 인사와 안부를 묻는 일처럼 간단하지만 잊고 마는 일인 경우도 많습니다.

 

뜨겁고 빛나고 밝게 보이는 여름이란 계절도 얼마나 많은 상처와 죽음 투성이일까요. 모두의 상처가 여름의 모든 것으로 조금씩 채워지듯 눈부시게 애틋한 작품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친구가 무작정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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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유령 앤드 앤솔러지
곽재식 외 지음 / &(앤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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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 곽재식(공학), 김상균(인지과학) - 의 소설을 먼저 읽어 보았다. 모두 소설이지만, 시선도 세계관도 문장의 느낌도 분명 다를 것이라서. 논픽션을 픽션처럼 읽는 버릇이 있음에도, 일독이 아쉬울 만큼 빨리 읽히는 단편들이다.

 

어릴 적엔 디스토피아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했고, 커서는 불안이 늘어났고, 지금은 현실이 더 디스토피아라 작품 속에서는 잠시 휴식을 갖는다. 충격 방지를 위해, 미래가 기대 이상의 디스토피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미리 해둔다.

 

[메타갑] 메타버스라는 최신 과학 기술적인 공간에서, 정부의 행태와 사건은 전형적인 범죄다. 어째서 저런 수준의 정부만 갖는 것인지 깊은 한숨이. SF라지만 갈등의 구조와 면면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시시포스와 포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인구수와, GPT에 질문해서 낭비하는 깨끗한 물, 인터넷과 각종 전자기기를 사용해서 자원을 낭비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순위를 모르겠다. 나이가 더 들면, 여러 이유로 VR기기를 갖고 싶어질 것 같아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여행에 관심이 있지만, 작품에선 가상현실세계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설정이다. 죄수를 벌하는 방법으로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비용과다인 것처럼도 느껴지지만, 미래의 에너지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엑소더스] 반가운 박서련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현실 범죄로 발생 중인 사건처럼 기시감이 들었다. 가상게임, 금융사기, 게임머니. 와중에 누군가는 돈을 벌고, 그 사실이 망상을 더 부추기고 피해자들을 끌어 모으는 늪 같은 구조. 가상세계의 금융사기를 비롯한 범죄는 슬프지만 더 늘어날 것만 같다.

 

[목소리와 캐치볼] 가장 문학적인 작품이라고 느낀다. 어느새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관계를 고민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깊은 고민을 하는 인간보다 더 인지적이고 지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존재의 이름이 인공지능 753이라는 것이 묘하게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책도 안 읽고, 인문학적 교육도 훈련도 고민도 덜 하고, 서로를 해치고 죽이며 멸종으로 가는 도중에 점차 지적인 퇴화를 겪고, 인공지능은 점점 더 인간의 기능과 장점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문득 한다. 이 모든 건 누구의 기획일까, 여전히 우연일까.

 

오래 살아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나 보고 싶기도 하지만, 뇌 데이터를 업로드 하는 방식의 영생을 원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인공지능 753의 경고처럼, 인간에게 그런 현실은 지옥과 다름없을 지도.

 

밖은 고통스럽잖아. 서로 무시하고 진심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진심을 말해도 자기 마음대로만 듣지. 그래서 너무 외로웠어. 너무.”

 

일독 후 가상 세계 속 감각 자극만 남고 현실은 더 초라해지는 미래를 살게 되는 건지 아이들의 미래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렇게 재미난 단편들이라면 10개쯤 묶어주셨으면 더 좋았겠다. 너무 금방 읽어서 아쉽고 헛헛하다.

 

원래 인생은 슬픔이었어. 그냥 다른 슬픔이 하나 더 늘어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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