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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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회는 반드시 망한다. 엉망으로 살아온 자들이 원하는 것을 다 얻는 풍경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독한 유해성을 뿜는다. 절망과 폭력과 상해와 죽음과 죽임이 폭증한다.

 

올 해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고 죽였는지 통계를 보니 서늘해지는 기분에 몸이 으스스 떨린다. 이런 현실에서 아름답지만 핏빛처럼 강렬하고 분석가처럼 예리한 작품을 쓰는 분이 이꽃님 작가다.

 

이만큼 이해받아 봤을까, 하는 생각에 매번 뭉클해지고 부럽지만 몹시 아픈 위로를 건네는 청소년 문학이다. 현실의 아동학대가 더 광범위하고 참담할 텐데, 이야기 속 현실도 흉통이 느껴지듯 위태로운 분위기다.

 

나는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잔뜩 구겨진 쓰레기가 되어 다른 애들의 마음에도 없는 걱정 따위나 들어야 하는 게 싫었거든.”

 

태어났으나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 태어나자마나 버려지거나 죽임 당한 아이들, 학대에 시달리다 사라지고 실종되고 살해된 아이들, 살아남았으나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 아이들, 2, 3차 가해를 당하는 아이들. 노동력이든 성이든 착취당하고 사기 당하는 아이들. 서로가 상처 입히는 아이들.

 

매일 아주 조금씩 번져 가니까, 곰팡이가 온 집안을 점령해 옷과 가구까지 모조리 썩어 가는데도 심각한 줄 모르는 거야. 그 집에서 꺼내 입은 옷에서도 곰팡내가 진동하는데, 몰라. 늘 곰팡이랑 함께니까 모르는 거지.”

 

학대당한 반려견과 아이는 그 학대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거나 -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가해자와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관계의 작동 방식은 사랑이라(고 반복 학습되)는 가스라이팅이다.


 

나이가 들면 정말 더 안전해지기도 하는 걸까,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범죄들에서. 망가진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며 새롭게 망가지는 걸까. 첫사랑이라고 불리는 풍경이 이래도 되는 걸까.

 

겉으로 보이는 멍은 치료가 되지만 속으로 든 멍은 보이지도 않아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사람을 서서히 죽여가지.”

 

성실하고 촘촘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심장이 벌떡 뛰는 반전을 거쳐 숨을 흡 들이마시는 비밀이 드러나는 결론으로 내달린다. 서늘한 기분은 단지 9월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고 겪는 감정과 현실과 막막함의 순도가 위태로울 정도로 높다. 상처의 범위와 깊이가 가볍지 않다. 작가는 우회 대신 솔직함을 택했다. 복선이 단순하진 않지만, 어떤 스포일링이라도 읽기 전에 다 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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