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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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사람이 생각에 침입하는... 괴로운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굳이 내가 생각하며 휘둘리는 것이지만. 그러니... 좋아하는 까다로운 사람과 까다롭게 좋아해서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자고 손을 확 잡아주는 듯한 이 책이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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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고 따갑고 때론 날카로운 통증 같은 글을 만날 거라 생각했는데, ? 다정하고 따스하고 조심스러운 문장들이다. 잘 웃지 않고 입에 발린 소리 안 하는 분위기만 그렇지, 깊은 정을 건네는 까다로운 내 친구 같다.

 

완성형으로 태어나는 인간이 없고, 완성되는 인간도 없으니, 상황과 때에 따라, 상대에 따라,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로 만나고 살아간다. 나는 매우 운이 좋아서 나만 별로야, 싶은 묘한 열등감이 생길 정도로 좋은 이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수없이 도움을 받았다. 그 덕분에 조금씩 흉내도 내보고 부러워도 하면서 닮아보려고 했고, 나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사람 노릇도 해내고 싶어졌다.

 

어쩜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 싶지만, 이곳을 떠난 내 모습이 선하지만은 않듯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을 공유했을 뿐이다.”


적당한 온도의 태도만이 아니라, 아주 뜨거운 열기의 공감을 표현하는 것도 역시 너무나 다정하다. 까다로움이란 이토록 농밀한 공감의 표현인가 싶어서 더 까다로운 존재가 되지 못한 스스로가 아쉬울 지경이다.

 

““타인의 고통에 내가 더 상처받을 때”, 나에겐 일상적인 일이다. 어떻게 당사자보다 더 화가 날 수 있는지, 때때로 놀랍기도 하다. 과잉 공감 능력이 아니다. 내가 겪을 수도 있는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추체험할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까다로운 취향과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자신이 오지랖 넓은 사람이기도 한 건, 꽤 오래전 내가 선한 의도로, 애써 힘을 내어, 상대에게 바른 소리를 하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면박을 주거나 도덕적 우위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이야기를 서로 진지하고 솔직하게 건네며, 그만큼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였다.

 

반복되는 작은 실패와 좌절은 사람을 완전히 굴복시킨다. 내 경험 한정이긴 하지만, 그 시절보다 내 호의와 애정은 많이 줄어들었다. 굳이 애쓰고 싶지도 않은 마음, 그래, 그럼 넌 그렇게 알고 평생 살아, 이런 못된 마음. 그 마음을 들킨 듯 닮은 문장들을 만나 슬그머니 반성해본다.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말하는 타인을 응원하고 싶다. 불편한 언어와 행동을 지적하지 않고 사시사철 너그러운 표정을 지은 채 괜찮은 척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드디어(?) 까다롭고 어려운 내용들을 만났다. 동의할뿐더러 나도 자주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도 잘 못하니 내내 어려운 까다로움이다. 그럼에도 그저 허허롭게 불편하지 않은 것들만 찾으며 사는 건 못할 일이다. 바라는 까다로움을 계속 노려보며 한 걸음씩 다가가려는 시도가 나쁠 것은 없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다.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 고맙다고 생각만 할 뿐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고 좋아하긴 어렵다. (...) 말이 실로 진심이라면 말로만 끝날 수는 없다.”

 

소수의 관계를 정성껏 돌보는 사람을 마주할 때, 더 호감이 인다. 자신의 깜냥을 아는 사람, 내가 가진 능력치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과 오래 교우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을 했다면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 중요한 건 타인이 눈치채지 못할 마음이 아니다. 행동, 즉 처사處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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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좋아서 교사가 되었는데
임하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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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취업이 빨라던 친구들은 교사가 된 이들이다. 대학 졸업 후 임용고시를 보고 바로, 혹은 대학원 진학 후 임용고시를 보고 취업에 성공하면, 20대 초중반에 직장인이 된다. 그것도 교사가 된다.

 

서로 바쁘던 시절이라 세세하게 취업 후 일상을 다 알진 못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자주 만났던 시절이기도 해서, 인연이 결혼 후까지 계속 이어지는 오랜 친구들이었기에, 20세기와 21세기의 교육환경과 현장에 대한 업데이트 소식을 오래 듣고 산다.

 

이 책의 저자는 2020년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난다. 비대면으로 화면으로 학생들을 만나며 콜센터(?) 업무를 보다 6월 초에 겨우 얼굴을 보았다.

 

드디어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전날, 학급 학생들의 명렬표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내가 이 학생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 학생들의 출석률, 과제를 얼마나 잘해 왔는지의 단순한 수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임 교사가 낯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인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 경험을 그저 흘려버리지 않아서, 계속 고민하고 반추했기 때문에, 저자는 더 분명하게 교사로서의 자신의 향로를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복잡하고 불분명할 때가 많다. 강사나 교수와도 다르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요구되는 자질도 복잡하고 지나치게 압박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실력과 품성을 모두 갖춘 신입이라니, 다른 어느 직업 분야에 그런 신입이 있단 말인가.

 

저자는 사고와 행보를 차근차근 넓혀간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간다. 이 모든 여정에서 저자는 교육공동체를 생각하는 다짐을 한다. 교육시스템은 교사가 개인으로서 좌절하고 절망하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복불복처럼 교사를 지지하고 보호하려 하지 않는 관리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교사이면서 부장 교사인 나는 거부권조차 행사하기 어려울 때......”

 

교육은 사회 전체의 과제이고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 공적 영역의 일이고 공적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라고 강요하고 추궁해서는 안 된다. 애정을 가지고 행복을 비는 교사라면 고민과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4년차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한편, 인간으로서 자신도 잘 돌보고 다독이고 격려하며 무탈하시기를 바란다. 완전한 통제력이 없는 상황이 내가 하는 일이 아무 영향도 못 미친다는 건 아니다. 결국 가장 잘 알고 관심이 있는 누군가의 간절한 제안과 비판이 필요한 시기에 모든 것을 바꿔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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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으로 인문학 공부하기
김현 지음 / 좋은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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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제목이고 더 반가운 내용입니다. 노안으로 이미 어떤 크기의 활자는 잘 보이지 않는 저에게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점점 더 낯설어지는 세대에게도, 이 책은 무척 유용한 참고서이자 가이드가 되어 줄 것입니다.

 

노안만이 문제가 아니라, 책을 먼저 혼자 읽었다고 해도, 저작 직강인 영상 강의가 있으면 큰 도움을 받습니다. 특히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경우에는 가능한 모든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중도서의 수준이 전공도서 못지않은 경우도 있고, 태도와 문장은 더 친절하니, 세세한 전공 지식은 배우지 못하더라도, 큰 흐름과 기본 지식과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충분한 좋은 책들이 이미 많습니다.

 

그러니 공부하고자 하는 생각만 있다면, 현재는 거의 모든 전공분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방대한 정보 중에서도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더 높은 것을 고르는 것인데, 이 책이 그런 일을 대신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빅히스토리*에 관해서 소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인간 역사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세계 역사 전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하나의 큰 이야기로 표현하는 학문 분야이다. 소위 말하는 철학, 역사, 종교, 사회학 등의 인문학 플러스 우주론, 양자역학, 지구과학, 생명과학, 진화론, 뇌과학 등 과학지식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인간 및 세계 역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은 단순히 인간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우주와 세계, 지구, 인류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모두가 생산자나 창작자가 되는 시대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관심이 없는 저는 일상을 살다가 문득문득 드는 생각과 의문을 나누고 비춰보고 관련 질문을 만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정답이 없으니, 인문학의 정신에 맡는 토론과 생각나눔이면 충분합니다.

 

저자는 가급적 만든 차례 순서대로 강좌를 시청하고, 챕터 후에 관련 책 읽기를 권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억지로 애쓰다 그만 두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영상만 다 시청한 후 책을 나중에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계기가 무엇이든, 출발의 풍경이 어떠했는지보다, 배워가는 과정과 도착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다만, 저자의 추천대로, 인문학 전반과 빅히스토리 관련 과목 모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부할 분야를 정하기가 아직 애매하다면, 이 책의 목차와 동영상 강좌 제목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주중엔 강의 들을 시간이 없고, 주말엔 영화 한편 보러 외출하는 것도 매번 쉽지만은 않습니다. 팬데믹에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제공한 동영상 전시를 보았는데, 익숙해질수록 장점도 많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애매하고 거동이 불편한 이들도, 이 책에서 소개된 동영상 강좌들을 통해 차근차근 공부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자본이 덜 드는 대신, 결심과 계획과 추진해나가기 위한 본인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하겠지요.

 

3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등장했다. 이 종은 우리 현대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추었고 예술과 과학, 종교 등 고도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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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머리 민음의 시 319
박참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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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보기는 다 보았다.

아니, 노안에 안 보이는

글자가 더 많았던 듯도 하고

물리적으로 안 보여주는 글자도 적지 않았고

줄그어 가린 것, 지워진 것도 있었으니

보았다고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커다란 눈의 결정처럼

누군가의 체온에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 버릴 듯

연약하고 다정한 시도

어디 볼 테면 봐 보라고

웅크린 실루엣만 보여주는

시도 있었다.

세상엔 내가 못 읽는 시,

지금은 못 읽는 시가 있다는 걸 잘 알아서

추천한 친구를 원망하는 맘은 전혀 없다.




 

그저...

다 보고 나니

시인은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염려되었다.

 

슬프다,

선별되기 전 온갖 자극으로부터

전해진 신호들처럼

일견 난삽해보이는

크기와 종류와 두께와 번짐을 달리하는 활자들.

01의 데이터가 아닌

시의 언어들이

금방 베인 손마디처럼

예리하게 아프다

 

* 정신머리: ‘정신을 속되게 이르는 말.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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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K-포엣 시리즈 36
송경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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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시카고 도심 빌딩 사이 작은 틈바구니에

때 전 모포 한 장을 둘러쓰고 있던

내 또래 흑인 사내 하나와

그가 껴안고 있던 작은 아이들 둘

멈춰 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그들의 아득한 저녁 [세계의 중심]

.

.

영웅도 겁쟁이도 되지 않겠다고 했던

미얀마 시인 켓티는

202158일 쿠데타군에 끌려간 다음 날

살해당한 채 노상에서 발견되었다

 

쿠데타군은 그의 시신에서

심장을 떼어내고 버렸다

켓티는 생전에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걸 모른다고 썼다 [AB]

.

.

기운 내세요! 라는 오래된 갑골문자

거룩한 것들은 왜 모두

아프거나 가난한가 [눈물 겨운 봄]

.

.

이 모든 종말과 파멸의 주범은

(...)

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온

인간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영원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고

한없이 소박해지지 않는 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대면의 세계]

.

.

“...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런 말은 또 한 번 써줘요.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 조세희 선생님의 전언

.

.

밑줄 그을 문장보다

부둥켜안아야 할 일이 많았고

미문과 은유는 쓸 틈 없이

직설의 분노만 새기며 살아왔던

내 삶의 서재는 [내 삶의 서재는]

.

.

이런 걸

자기 검열이라고 한다지

이러다가 사람이 미치고

이러다가 사람들이 알아서 체제에 순응해간다지

이러다가 언론출판결사표현의 자유가

모든 자율과 창의가

맹탕이 되기도 한다지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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