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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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만 고착된 이미지였을지는 몰라도제목에서부터 10월이 연상되는군 밤 옆에 두고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아무 의미 없지만 집착하듯목차가 끝나는 11월 4일에 완독을 해서 다행이란 흡족한 기분이다.

 

11월부터 코펜하겐은 거의 하루 종일 어둡다. 11시에 뿌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2시면 깜깜해진다실내에 아무리 불을 켜도 호흡곤란이 와서평생 단 한 번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직장을 그만뒀던 오래 전 기억이 난다.

 

목에 줄이 걸려 있지 않다면 덜 무서웠을 표지의 chestnut 인형이 묘한 느낌의 공포를 미리 선사한다작품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범인을 마주할 줄이야알고서 범죄를 밝히고 추리하는 과정의 작품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극한의 고통이 짐작되는 잔혹한 묘사로 만나는 살인 행각이 끔찍하다살인현장마다 남아 있는 살인자의 표식 밤인형’. 1년 전 납치 실종된 이의 지문이 묻어 있다.

 

1989년 10월 최초로 등장한 범인은 지금어디에 있을까극적인 장면들이 연이어 지나는 중에도 범인이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 느낌에 갑갑하고 그래서 궁금증은 폭증한다.

 

완력이 약한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는 찌질한 범인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참혹한 사건의 담당형사가 딸을 키우는 유일한 보호자라는 설정에 불안 초조했다.

 

극한의 매운 맛을 느끼게 하는 이 끔찍한 연쇄살인은 1년 전 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내내 궁금했다형사 톨린과 파트너 헤스의 고군분투의 과정이 마무리까지 지루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

 

특히 아동학대/()폭력/범죄에 관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 것북유럽에서 가능할 내용의 복지 시스템에 대한 비판그리고 거짓말을 감추려는 노력이 얼마나 고난다고 힘든 일인가를 파헤치듯 보여주는 인간 심리를 사회복지와 연계해서 펼쳐 주는 점이 설득력이 강하다.

 

진짜 범인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충격적인 반전이니읽기 전인 분들은 어떻게든 스포일러를 피하셔야 한다!

 

읽으면서 맛보는 감정의 온도 차가 커서 즐거웠고텍스트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세심한 심리 표사생각의 변화 등이 재미를 더한다집착도 과장도 없는 건조하고 서늘한 북유럽의 분위기를 따르는 작품이다그렇기 때문에 남은 여지들이 억지스러운 봉합보다 훨씬 더 좋다.

 

시리즈나 스핀오프라도 출간해 주시길!

엄청 빨리 읽히니 주의! 596페이지 분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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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 인문학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하라
한지우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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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진지하지 않은 얘기 나눔 중에 문득 발견(?)한 것. AI인공지능이라는 것이 형태만이 아니라 기능과 생각까지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기술이라면, AI 역시 당연히 인간학/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진될 때까지 아무 이야기나 하고 나니, 인간이란 엄청난 나르시시스트란 결론이다. 잠시 그 밖의 아무 것도 아닌 듯했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원리를 가장 간절히 알고 싶어 하고, 다른 생명도 인간화 시키지 않으면 공감이 어렵고, 결국엔 자신과 닮은 존재를 창조해내는데 에너지를 끌어 쓰는 중이다.

 

인간이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아무리 어설퍼도 애정과 호감으로 지켜봐준다. 로봇의 그 엉성한 움직임에 열광하는 이들을 떠올려보라.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는 그 같은 인간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해내고 자기 종의 안위와 번성을 위해 인간의 감정처럼 보이는 표정을 만드는 법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대화 이후에 이 책의 제목은 상식처럼 느껴진다. 구체적인 내용이 어쩌면 AI 양육법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펼쳐보았다.

 

정보화 사회 이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기업과 개인이 주목받는 새로운 사회가 열릴 것입니다. (...) 인간성의 영적 측면이 다시 복원되며 예술, 아름다움, 사랑, 상상력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권력이나 돈, 힘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 의미, 유대 등입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일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믿음, 정서, 예술, 사랑, 아름다움의 가치가 부, 명예, 권위의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런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호모 이모셔널리스Homo Emotionalis라고 부릅니다.” 롤프 옌센

 

하이콘셉트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는 상상력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이터치는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을 말하죠.”

 

AI에게 인문학을 잘 공급하게 위한 사회적 패러다임 변화와 인간의 적응에 대한 내용이 펼쳐진다. 저자는 인간이 만들어 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무척 깊이 염려하는 듯하다- 그렇게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인간 독자에게 관계 설정을 잘 하라고 이것저것 조언해 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시대의 주도권이 인공 지능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간에,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미래를 살아가는 가치관은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하라는 조언이다. 그것도 치열하게. 더 나아가 그래야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것이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불가능해지는 방법은 자신만의 고유한 잠재력을 발굴하고 자신만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고 가볍게 정리된 책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될지 안 될지 실증 전이긴 하지만 일종의 스릴러처럼 느껴지는 건 과도한 상상력 탓일까. MS, 페이스북, 나이키 등이 숙고할 겨를도 없었는지 다급한 모습으로 메타버스로 속속 입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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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플레이어 그녀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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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를 읽은 분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나와 지인들은 통쾌함을 지나 슬픔이 오래 머물다 떠났다고 했다마지막 선택은 다시 떠올려도 서럽기만 하다작가는 현실도 나도 변한 것이 없다란 항변을 전하듯 전작을 내포한 신작을 내놓았다이 한 페이지는 마음이 따갑게 쓸리는 오마주와도 같다.



오랜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브누아 필리퐁이란 작가 한 명이 창작의 세계에서 성폭력범들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한 마디로 단죄하는 것이 통쾌하다심지어 안심도 된다저자의 글쓰기 동력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이고겨우 두 권 읽었지만 접근방식도 해법도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베르트가 루거 총을 들었다면 막심은 포커 카드를 들었다베르트가 철저히 잃고 또 잃어 빙하처럼 외롭고 단단해졌다면막심은 동료들이 있다포커 플레이어인 자신을 도울 사기꾼 작크와 우울한 상습 자살시도자인 단짝 친구인 발루나중에 합류(?)하는 7세 자폐아 장은 연대와 친밀도를 더한다.

 

발루는 포커 테이블에 앉는 즉시 변신을 수행했다이 정신분열이 그에게 현재를 잊게 해주었고그렇게 존재의 고통을 잊고서 자살충동에서도 벗어났다.”



주인공이 당한 폭력의 일부가 슬그머니 잊힐 만큼동료들의 삶 역시 처참했다작가는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이렇게 연대하고 저렇게 복수하고 그렇게 웃으며 살라고 지시어를 입력하는 듯도 하다그럼에도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브누아 필리퐁은 특징이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착착 만들어가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개인으로 솔직하게 말해보라면 나는 현실의 모든 성폭력범들이 이제껏 호소해온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실수기억이 안 난다후회하고 있다죽을 줄 몰랐다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등의 X소리들.

 

용서는 무슨용서 따위 개나 주라지놈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2021년 한국의 성폭력 생존자들은 여전히 신고보다 안전한 분리/격리/이별을 원한다왜 그럴까설마 신고 정신이 없어서기가 막히게도 프랑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국적 불문 모두 설명 가능한 현실을 대화 속에 펼쳐 둔다.

 

남자들은 강간당한 여자들이 왜 신고하지 않는지 의문일 거야그건 여자들이 혹여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한다 해도열에 아홉은 남자가 입건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거가 없다는 게 이유지처방전은 아예 말도 하지 않을게무슨 독감이나 되는 듯 10년 뒤엔 상처가 저절로 치료된다는 식이니법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와주지 않아사회도 나을 것이 없고그래.”

 

답답하고 분하고 역겹지만사적복수만이 유일하게 통쾌한 해법이라 부추기려는 생각은 없다그 이유는 생존자가 복수를 위해 감수해야하는 대가가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작가의 전작이 서러운 이유는 결론을 다 알고도 선택했던삶을 염두에 두지 않은 주인공의 결정 때문이다.

 

오히려 그딴 XX 다 무시하고 지치도록 아주 잘 살아보는 것이 가장 신나는 방식의 복수라고 믿지만그런 생각은 마치 놀이기구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당사자에게는 차마 그런 말을 건넬 수 없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작가가 무거운 주제를 강인한 위트를 섞어 풀어내는용서와 변명 따위 용납 않는 복수가 통쾌하다는 독자들도 있지만망가지지 않을 수 없는 복수는 너무 아프다여전히 나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가 마련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처벌이 재까닥 실행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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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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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불문 역사극을 즐기진 못하지만역사서 읽기는 재밌으니 이상한 괴리다현실이 창작보다 더 극적이라 그럴 수도 혹은 인류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 하는 나 자신의 현존과도 연계되는 역사를 만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근래에는 하나의 소재나 주제에 집중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주제사라는 방식의 역사서를 종종 읽는다무척 재미있다대상이 역사적historic'하다고 생각 못한 뜻밖의 조우일수록 더 재미있기도 하다.

 

지구 전체를 공격적으로 소비해야 유지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우려와 대안 모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울하게 접하다가우리가 의미와 기능을 오해하고 과장하고 물신으로 격상시킨 에 관한 그림 가득한 반가운 책을 만난다.

 

매혹적인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매료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세이렌의 이름을오늘날, ‘경고라는 뜻의 단어 사이렌Siren’으로 쓰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해석이지 싶습니다. (...) 머니money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요모네타 또한 경고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경제와 관련된 세계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독서 대상의 폭이 넓은 좋은 책이다상세하게 분류된 목차에 비해 분량도 내용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일화와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멋진 구성이라 잠들기 전 구경하듯 조금씩 읽기에 좋았다.

 

프랑스어로 을 뜻하는 부르그bourg란 새롭게 생긴 상공업 도시를 의미하며 부르주아bourgeois는 그곳에 사는 상공인들을 의미합니다.”

 

차분하게 역사적 내용을 전해주는 파트도 있고세상엔 모르는 일이 무수하다고 탄식하게(?) 되는 놀라운 내용도 있다. <오즈의 마법사>와 미국의 화폐 역사 이야기는 나만 몰랐던 것이었나.

 

“<오즈의 마법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1776년 미국 독립 당시 금과 은이 모두 부족했기 때문에 금화와 은화를 공통 사용하다가화폐 독립을 목적으로 한 본위제를 채택한다처음에는 금과 은 모두를 본위화폐로 사용하자는 제안이었다문제는 1800년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은의 가치가 상승하고이후 은광이 발견되면서 금의 가치가 상승하니사용자들과 사회에 혼란이 야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개혁의 내용은 금만을 화폐로 인정하는 금본위제로 채택했지만은을 주로 쓰던 농민들은 이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갈등이 심화된다즉 도로시는 농촌 사회의 미국인을 대표하는 인물이고노란벽돌길은 본위 화폐가 된 금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주는 은 구두는 과거의 본위화폐 은을 상징하는 것이다역사를 모르니 풍자문학을 동화로 읽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 통화의 기준이자 중심이 된 미국달러의 기축통화 결정 과정도 상세히 복기할 수 있어 유익했다금이 본위 화폐로 자리 잡은 후다시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면서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가 확립된 것이다세계 경제는 현재에도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부를 안겨준 광산을 신의 축복으로 여겼고교황은 요아힘스탈에 축복의 세계를 베풀었습니다이 시기에 만들어진 은화는 요아힘 골짜기에서 나온 돈이라는 뜻으로 요하임 스탈러 (...)’ 이후 탈러Taler’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합니다. (...) 지금 쓰고 있는 달러Dollar’의 어원입니다.”

 

환원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수명이 다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역사란 결국엔 여러 분야의 근원과도 만나는 공부이다. ‘어원학이라는 것 역시 맥락context’에서 떼어낸 건조하고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수학보다는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있는 물리학을 좋아한 인간의 특성이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조선의 역사...

 

함경도 단천의 기술자 김감불과 김검동은 1503년 관가를 찾아갑니다이들은 납광석에서 은을 분리하는 연은분리법을 개발한 기술자들이었습니다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은 유럽이나 중국보다 뛰어난 은 제련 기술이었습니다하지만 이 뛰어난 기술은 조선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전수됩니다.”

 

이 역시 모르던 내용이고 몹시 속이 쓰린 결과이다사농공상의 위계적 질서가 공고했던 조선에서 은광석에 들어 있는 납 등의 불순물을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제련하는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여 명나라와의 무역에도 큰 기여를 했으나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적폐 대상으로 몰린다.

 

이전 정권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컸을 이 조치로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넘어갔다당연시 연은분리법은 일본에 전수되었고, 16-18세기에 거쳐 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일본 내에서 생산하며 세계 무역사의 한 축이 되는 패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역시 역사서 읽기는 무척 재미있다거의 모든 역사책들을 좋아하는 변별력이 약한 독자이기도 하지만이 책은 명화와 화폐가 연결된 경제사이자 세계사로서 특이하고 가독성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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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숲으로
장세이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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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지나치게 번다한 날경계심이 낮아지고 기분이 좋은 날의 마무리가 때론 이렇게 되는 걸 징크스 삼진 말아야겠다바빠서 정신도 혼미하고 벅찼다그래도 꼼짝 안하고 영화 보는 것보다 오늘 마무리는 책으로 하고 싶다흔히 숨 쉴 틈 없이 바빴다고 하니<숨 쉬러 숲으로>를 읽어야겠다숨 쉬러 책 속으로.

 

마지막 장이 스포가 되는 경우는 많으나이 책은 첫 장이 (내게는엄청 인상적이다에세이인데 소설처럼 뒷장의 전개가 궁금해서 두근거렸다전나무 죽은 나무가 숲을 살린다.” 계절별로 6종의 나무를 만나 묻기도 하고 대답도 듣고(하고그냥 쉬기도 하고그렇게 멋진 책이다쉴 휴()란 한자를 처음 보고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구나했던 시절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후 아버지는 고가의 집 앞 마당에 백목련을 한 그루 심으셨다나는 몸과 정신의 성장 모두 별 볼일 없는데 목련은 잘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선지 오래다대화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에 향도 노골적이지 않고 반가워서 마음이 풀어지면 어느 새 떠나버리는 꽃친해지는데 오래 걸렸다.

 

작가가 이 책에 담아 주셔서 반갑고 감사하다. ‘생태적 지위를 짚어 주며 경쟁을 피하려는 성품을 가치 있게 평가해주고 아름답다고, ‘나무에 핀 연꽃이라 불러 주니 기쁘다백목련 모두의 제때는 다르다.”


내 나무가 여전히 머무는 그곳은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이다그곳에는 목련보다 더 오래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님들이 계신다내가 기억하는 나무들과의 기억 속에는 늘 돌아가신 그리운 분들이 계신다.

 

볕이 잘 드는 곳에 계신 배롱나무(백일홍나무)는 몸이 아주 매끈하다그게 신기해서 어릴 적에 잠시 손을 붙이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나무가 간지러워 불편해한다놀리셨다나무가 나와는 체온의 차이가 큰 것이 참 신기했다.

 

담장 가까이의 감나무는 절대 가지에 오르면 안 되는 나무였다죽은 나무가 아니라도 가지가 탁부러져 순식간에 떨어진다고 하셨다대신 그토록 예쁘고 말랑한 과일을 낳아 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내가 겉과 속의 색이 같은 과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감나무의 보석 같이 아름다운 열매에 대한 여러 추억 때문일 것이다감나무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


운전을 열심히 하던 때에 어느 국도에서 만난 느티나무는 지나치게 잘생겨서 외모가 아주 멋져서 반하게 된 나무였다이 동네 초입에 한 때는 여기 비닐하우스 말고 아기자기한 동네 길도 주막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입구를 내가 내내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해가지지 않았다면 반짝이고 서걱이며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는 멋진 나무에 홀려 곁을 떠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그 후로 나는 나무에 당줄 묶고 음식 바치고 절을 하는 사람들을 그냥 다 이해하게 되었다인간이 한 없이 작아지며 제 지위를 찾아가게 하는 큰 절을 해도 모자랄 존재이다느티나무 백년도 못 사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스릴러 미스터리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나무를 이 책에서 만났다.

 

혹시 다들 아시나요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름을 가진 나무?

 

참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를 아울러 이르기도 하지만 참나무라는 종 자체는 없다는 사실은 숲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수만 가지 놀라운 정보 중 하나다나무타령뿐 아니라 참나무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도 수없는데아예 세상에 없는 나무라니어찌 아니 놀랄까.”

 

무려 20여 종의 나무들이 참나무과이다.

 

너도밤나무밤나무구실잣밤나무

갈참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상수리나무

가시나무개가시나무종가시나무졸가시나무참가시나무붉가시나무

 

나무 이름들을 따라 적어보는 일이 왜 이렇게 좋을까역시 사람이 너무 제 속으로만제 생각에만 파묻혀 있으면 해결되는 것도 없이 힘들기만 하다나 말고 다른 이들다른 생명들을 글이나마 만나는 일은 이렇게 중요하다읽다 보니 숨도 잘 쉬어 진다.

 

분명 이름이 존재하고 그 이름 또한 널리 불리지만 실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듯 한때 내가 꿈꾸던 가족지극히 평범한 가족 또한 다 허상 같다이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생김새가 닮은혹은 닮아가고 싶은 존재와 진심으로 엮인 관계그런 가족을 이루고 싶다.”

 

실존과 허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작가는 이 특별한 나무를 인간관계를 짚어보는 숙고에 담아 이런 멋진 통찰을 남겨 준다단일민족이라거나핏줄혈육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오래 믿어 온 한국사회에서는 이 차분한 문장들도 무척 도전적인 생각이다.

 

허상이라 결함이 너무 많아서 가리고 변명하는 이야기들도 그렇게 많은 것이다거듭해서 신비롭고 아름답게 믿고 믿으라고그 이면의 참혹한 현실이 많고도 많지만 오늘은 그리로는 가지 않겠다.

 

한 겨울에 나무를 봐야 잘 보인다는겨울눈을 보라는 멋진 가이드는 꼭 기억했다 다가올 겨울에 나무들 보러 진짜 숲으로 가고 싶다.

 

나무든 사람이든 오롯이 홀로 사는 존재는 없다알게 모르게 모두 기대어 산다. (...) 서로에게 기댄 줄기(), 한 줄기에서 갈라진 나뭇가지(), 그 모습이 곧 나무고 사람()아니든가.”

 

나무 그늘을 좋아하니어쩌면 사람의 그늘도 조금만 더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누구나 그늘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견딜 수는 있다불행 중 다행으로 그늘은 내력을 키운다끝끝내 그늘을 견디면 마음의 근력이 치밀해져 어지간한 외력에는 휘청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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