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그림 - 화가들의 도시, 파리 미술 산책
제라르 드니조 지음, 김두완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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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Émile Édouard Charles Antoine Zola


빛에 떨리고 부서지는 점묘화 표지, 덕분에 반짝이는 주말 저녁 기분이었다. 프랑스대사관 출판지원작 ‘파리 미술 안내서’를 번역본으로 만나 보는 호사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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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 눈부신 작품으로 에펠탑을 먼저 만난 탓인지, 여러 이유로 여러 번 방문했지만,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던 에펠탑과 관련된 사고 - 에펠탑이 영원히 각인된 사건 - 가 떠올랐다. 




영국 유학 중인 어느 겨울, 파리에서 유학 중인 친척을 만나, 천천히 거리를 산책하다 독일 유학 중인 친구가 부탁한 에펠탑에서 파는 엽서들을 사러 올라갔다. 이미 해가 졌고 야경을 보며 대화에 몰두하다 고요한 분위기에 둘러보니, 직원이 전기를 내리고 퇴근한 후였다. 당연히 엘리베이터 작동도 멈췄다. 남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홀가분한 퇴근이 파리지엥답다고 해야 할까. 프렌치스럽다고 해야 할까. 


너무 당황해서 웃음이 새어나오는 복잡한 기분으로, 전에는 미처 존재를 몰랐던 고불고불 계단을 찾아 빙글빙글 돌며 아래로아래로 내려왔다. 덕분에 주로 센강 주변으로 발자국만 남기며 총총 걸어 다니던 파리에 추억이 생겼다. 큰 일(?)을 겪고 나니, 일상적인 불편이 덜 불편하게 느껴졌다. 불친절함도, 소매치기접근도, 기념품경매도.   


새 책의 인쇄잉크 냄새를 맡으며 한 장씩 넘기며, 내가 본 파리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시공간의 파리들을 만난다. 현실의 추억은 울고 싶도록 그리운 감정을 불쑥 밀어올리고, 문학과 영화와 미술 작품들로 만난 추억은, 상상할 수 있어 더 그리운 감정이 애틋하게 고이게 한다.


“기원전 4세기경엔 갈리아인들, 즉 파리시족이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보를 설치하면서 센강의 윤곽이 뚜렷해졌는데, 이로써 아중에 시테섬이 된 최초의 집성촌 뤼테스가 들어섰다.”


“18-20세기 회화의 세계 수도 파리는 그 자체로 영감의 원천이다.”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은 대개 아픔을 동반하는 영원한 이별의 잔상이지만, 파리라는 시공간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은 투명하기보다는 다채로운 색채로 기억해내는 미화되고 편집된 추억담 같다. 주로 함께 걷기만한 시간들과 정해지지 않은 주제의 오랜 대화들이 인생에서 내가 바란 최고의 풍경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때의 누구도 그런 시간적 사치를 누릴 수 없어서 더 그렇다.


“산책하는 것은 파리답다.” (빅토르 위고)


“결국 센강은 다리를 건너다니며 강변을 정처 없이 떠도는 산책자들에게 한결 같은 길잡이가 된다.”


“프랑스 최초의 철교인 퐁데자르**는 다리이자 공원으로서 산책자들의 마음을 꽃과 소관목으로 사로잡았다.” **예술의 다리 Pont des Arts






그렇기 때문에 파리 미술은 파리의 시대와 문화와 사회를 담지하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소환할 힘을 지닌 채 감상자들을 마주한다. 미술사 같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 같기도 한 모든 작품들을 거듭 펼쳐보니, 영원한 이상향 같은, 모든 계절에 빛나는, 오래된 이 도시가 새롭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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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미샘의 미술 수다
서인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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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를 좋아하지 않고 잘 듣지도 못하지만, 어쩌면 주제에 따라 태도가 내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미술 수다’라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더구나 현직 40년이라니, 미술 작품과 더불어 재밌는 미술사를 풍성하게 들려주실 듯하다.


창작자의 의도와 욕구와 지향이 모두 반영된 것이 작품이니, 당연히 “미술 작품은 작가 내면의 반영”이지만, 또한 그 작가가 속한 시대의 반영이다. 일견 제한과도 같은 그 특수성이 스토리를 부여하여 모든 작품을 고유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AI의 창작물은 문학이건 예술이건 별 관심이 없다.


문자를 주요 수단으로 삼지만, 그림 역시 “역사의 기록”이다. 문화와 사회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읽는다. 그리고 그림을 읽기 위해 공부를 한다. 정답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상의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알리고 싶”어서 학생들에게 그림 속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한다. 이미지는 힘이 세고 기억 효과에도 도움이 된다.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은 남은 기록 - 문자, 문학, 예술 등 - 을 통해서만 시공간을 넘나들며 문명을 배우고 이해한다.


내 파일과 책장에도 여러 용도의 그림 이미지와 사진이 있다. 그중에는 숨쉬기가 어려울 때 보는 그림도 있다. “그림은 치유의 힘이 있다.” 책 속의 관련 사례와 예술가들 이야기를 읽으며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상상은 독자인 나의 기분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생각해보면, 세계 최악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의 중고등학생 수업표보다 못한 삶을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일주일에 한 번도 미술 시간이 없는 나의 일정은. 채색하는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그 집중의 시간이 부럽기도 하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 내용은 빈약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를 자주 만나는 컬렉션이라서 그렇게 느낄 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연결해서 들려주는 방식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짐작한대로 미술 수다는 좋구나.






아픈 ‘사건’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고, 이젠 기념하며 잊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어떤 현실이 현재도 암암리에 진행 중이고, 훨씬 더 나쁘게 퇴행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하는 시절이다. 짐작조차 못한 어떤 사실을 보도를 통해 알게 되면 놀라움에 화보다 당황이 먼저 된다. 





내일이 삼일절이라서, <몽유도원도> 이야기를 의미 깊게 찬찬히 읽고 기록에 남기고 싶다.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회화 작품 (...)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학 박물관의 소유가 된 작품 (...) 1986년 조선 점령의 핵심 장소인 조선총독부 건물에 특별전시를 한 (...) 일본에서 한 달간 빌려 온 (...).”


“부친의 상중이라 집안의 재산을 바로 처분할 수가 없었”던 “우리 문화재의 수호자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알면서 막지 못했다.”


“조선의 위대한 걸작을 누구라도 사서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931년 4월 12일 동아일보에 광고까지 낸다.”


“6.25 때 박물관 학예관 ‘최순우 선생님’은 어느 골동품상으로부터 80만 엔에 <몽유도원도>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문교부 장관 ‘백난중 박사’에게 이 말을 전했으나 전쟁 중이라 그림을 구입하기 힘들다고 했다.”


“여전히 우리의 국보는 일본의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현실에 무거워지는 기분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아름다움 작품 기록을 올리며 위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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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데이 - 어느 여경의 하루
지니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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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송은영, 나는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마흔여섯의 워킹맘 경찰관이다.”


소설 속 화자와 저자가 비슷해서 에세이 읽듯 읽다, 소설이란 기억에 자전소설처럼 읽어본다. 경찰관에 엄마에 작가라니, 어떤 이들은 에너지 레벨이 처음부터 달랐던 듯도 해서 안타까운 중에도 부럽다.


운이 좋아 살면서 112신고 센터에 전화할 일이 없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없는 응대가 좋으면서도, 업무의 긴장감에 숨죽이고 사례 같은 일화를 읽어나간다. 나의 매일의 일상이 타인들의 비일상이 되는 삶이다.


“‘내가 죽은 걸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다고, 내가 여기서 혼자 죽으면 아무도 모를 거 같아서, 그럼 너무 슬플 거 같아서요’라고.”


본래 화가 나면 흥분하는 대신 서늘해지는 성격이지만, 대처가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의 차분한 태도를 다시 배워본다. 그럴 일이 없으면, 적으면 가장 좋을 일이지만, 삶이란 심장이 철렁하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려주는지.


남일 같지 않은, 늘 불안한 상상 속의 일이 발생한다. 평범한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 일정이 있으니 고통이 심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일단 넘겨보지만, 소설이니 이는 분명 전조일 것이다.


사적 관계에서는 조금씩 타협한 자신을 나무라고 자책하게 되고, 공적 사회에서는 자신의 직업이 어떤 처우와 인식을 받는지를 씁쓸하게 자각하며 얼마쯤의 직업명을 흐리는 처지. 이만큼 애쓰며 사는 사람이 받을 대우는 아니다 싶어서 불쑥 화가 나지만, 나도 쉬운 비난에 동조한 적이 있으니, 먼저 뉘우쳐본다. 


누구의 삶이든 꼬이고 맺힌 매듭들이 있고, 그게 상처가 되어 아프고, 잘 해보자 애쓴 일이 엎어지는 일들도 적지 않으니, 좀 더 조심하고 서로 다정하고 위로하고 돕고 사는 일이 한발만 더 앞서가는 태도이기를 수없이 바랐고 오늘도 바랄 뿐이다. 그 방향으로 나도 반걸음만 더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가늠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다 들여다보려 시간과 노력을 쓰는 일도 드문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니, 말꼬투리 잡아 욕하고 미워하고 죽이려드는 유감천만인 시대에, ‘은영’을 한 권 분량의 책으로 만난 시간을 기억해야겠다. 


나와 만난 이들을 조금 더 천천히 오래 살펴봐야지. 서로가 살아가는 일이 고된 몸 속 종양으로 자라지 않도록, 아픈 몸을 구부려 혼자서 울음을 삼켜야 하지 않도록, 마지막 듣는 소리가 구급차의 신호음이 아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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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기술
잭 챌로너 지음, 변정현 옮김 / 초사흘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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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은 감각senses을 이용해 인간이 얻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법칙을 찾고 이론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물론 인간은 자신의 오감을 확장할 도구들을 계속 만들어서 감각 기능을 키웠고 그 결과 원래라면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만났습니다.


원제가 멋집니다. Seeing science 과학의 눈으로 본 세계의 풍경들, 신기하고 새롭고 놀라울 것이 분명하니 책을 펼치는 손끝까지 설렙니다. 과학 사진 전시 도록처럼 작지 않은 판형에 묵직함만큼 가득한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반추해보면 사려 깊지 못한, 무지한 차별주의자 같은 대화였지만, 어릴 적 친구들과 감각 중 무엇이 사라지면 가장 두려운가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공통점 때문이었을까요, 모두 ‘시각 상실’이 가장 싫다고,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종종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 (그리고 나에게) 시각은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인지.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자신이 속한 환경과 상대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능력 중 인간은 시각에 왜 집중하고 의존하는 지를 배우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미지가 그토록 강렬한 이유 중 하나는 이미지에 포함된 정보가 ‘병렬적으로’ 동시에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 이미지에는 (...) 많은 세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우리 뇌는 이 모든 것을 놀랍도록 빠르게 해석한다. (...) 이미지는 매우 효율적이고 강력하며 두뇌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시각을 우세한 감각으로 여긴다.”


인간이 이룩한 것에 비해. 태생적으로 가진 감각 능력은 실은 별로인 인간은 제한적 감각의 세계 속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가시광선’이라 부르는 인간중심주의적인 표현은 세상에 존재하는 빛에너지중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스펙트럼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표현을 바꾸면 인간은 그 범위 밖의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작은 것도 큰 것도 먼 것도 어두운 것도 너무 밝은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신기한 점은 볼 수 없어도, 인간은 상상하고 추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인지 몰라도 상호작용하는 힘이 있다면 그 존재가 거기 있을 거라고 계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행성과 별을 찾아내고 우주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책에 아름답게 담긴 이미지들(그림, 사진, 그래프 등)은 모두 그 기록물들입니다. 오래전 배운 물리학적 의미는 같지만,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답게 구현된 이미지는 새로 만나는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강렬한 감동과 충격을 줍니다. ‘시각화’된 세상의 이미지는 힘이 셉니다.


파리를 무서워하고 모기를 경계하지만, 작은 날벌레들을 죽이지 않으려는 제 태도는 생물학을 전공한 친구가 현미경으로 보여 준 작은 벌레를 ‘목격’한 충격 때문입니다. 맨눈으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모습은, 현미경 렌즈 속에서 어느 신이 공들여 완벽하게 디자인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고, 과학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들은 아는 내용들을 상기하며 재밌게 이미지들을 탐닉할 수 있는 아주 맛있는 초콜릿 같은 책입니다. 또한 과학이 사용하는 수학 언어가 너무 싫어 기피한 분들은 괴로운 시기를 다 잊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느 이미지에 오래 머물러도 좋을 고품질의 대량 정보를 품은 자료들입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솜씨를 부려 차려낸 눈부신 일품요리들의 향연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을 보는 동안의 내 뇌를 MRI 촬영하면 엄청난 도파민이 분비되는 활성화 양상을 보일 듯합니다.









100여개의 보이지 않던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나면, 1000여개의 다른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상상이 여러 갈래의 길을 내어, 인류가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미래를 만들어 나가게 되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함께 연대하여 그런 지향aim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소개글이나 2차로 촬영된 이미지보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시면 좋을 시각화 자료들입니다.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보며, 거듭 배우고 더욱 익숙해지면 좋을 과학 자료들이기도 합니다. 소장을 추천드리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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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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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세세한 표현들이 아쉽고, 일부 달라진 표현들이 궁금해서 반갑게 펼쳐본 리마스터본, 오래 전 처음처럼 호흡이 차분해진다. 무거운 젖은 담요 아래 호흡이 어려운 기분이 들던 영국의 겨울 하늘을 피해, 먼 동유럽의 어느 도시로 무작정 떠나기로 한 전생 같은 순간이 떠오른다. 


내내 비가 오던 회색 풍경은 함박눈이 내리는 도착지의 하얀 설경으로 바뀌었다. 그때 나는 비교적 신분이 안정적이고 확실해서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서유럽의 겨울에는 해가 가도 적응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13년 전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독자로 다시 만난 작품의 문장들에서 인물들의 기분이 때론 시각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따라 망설임 없이 함께 버스에 타고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렇게 몰입이 쉬운 다정한 작품이다. 섬세하고 완벽한 세계의 탄생이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를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는가, 따져보면 몇 개인가의 기록이 남는다. 그 기록이 사라지거나 조작되면 우습게도 존재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진다. 확실하다고 확신한 나에 관한 모든 것들이 그의 이니셜보다 더 강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은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알고 있다는 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는 의미의 문장을 여러 형태로 만난다. 학문만이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오히려 사람이 더 그렇고, 그러니 사람살이가 그렇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일이 그렇다. 단순한 것이라곤 없으니 상대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한다.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가장 아픈 진실은 그 모든 것이 다만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다.”


처음 일독과 달리 이제 이 작품에서 나는 청산하지 못한, 하지 않은 문제들이 만든 굴곡과 흉터를 본다. 청산이란 일회적 성취가 아니라서 거듭해나가며 채워야하는 문제이지만, 감추고 가리고 결국 가해자가 여전히 혹은 더 잘 살게 한 모든 일들은 문제다.


“저항을 학습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그저 익숙하고도 어쩔 수 없는 생의 조건이었을 뿐 (...)”


그런 행위를 일삼은 이들이 지켜내려한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보이지 않게 되고 밀려 나고 떠돌게 된 이들은 누구인지, 천천히 가늠해본다. 불확실이 불안을 불러오는 듯해서, 확신과 정답을 찾은 세월 동안 내가 부정한 내용은 무엇이었을지 재고해본다.


첫 출간된 13년 전보다 지금 나는 더 자주 포기하고 싶다. 작은 깜냥은 더 작아졌고, 체면치레하던 인내심은 더 얕아졌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줄었는지, 견디는 일에 지쳤는지, 자극에 발작 버튼이 눌릴 듯한 아슬아슬한 기분도 더 자주 든다.


정치사회적으로, 기후생태적으로, 개인인 내가 애쓰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매일 든다. 다정한 친구는 아직 내가 성장 중이라는 신호라고 하지만. 


내용을 안다고 생각한 낯설고도 신비로운 이 작품이 진정제처럼 의미 있는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다면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이냐고 조용히 속삭인다.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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