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뉴욕시 최하층민이 거주하는 파이브 포인츠를 배경으로 '토착파'(Natives) 갱단의 알력 싸움, 미국 최하층의 삶, 그리고 암스테르담 발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복수극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는 토착파와 아일랜드 이주민 계열의 '데드래빗'(Dead Rabbits)파의 패권 싸움으로 시작한다.

토착파는 개신교 계열에 (지들도 이주민의 후손이면서) 자신들이 진정한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에 젖어 산다. 아일랜드계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데드래빗파는 이들의 텃세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한다. 서로 잔인하게 죽고 죽이는 가운데 데드래빗파의 수장 프리스트 발론(리암 니슨)은 토착파의 두목 윌리엄 커팅(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죽으면서 전투는 끝난다.

프리스트 발론의 아들인 암스테르담 발론은 도망치고 16년이 지나 성년이 되었다. 다시 파이브 포인츠로 되돌아온 그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커팅의 밑에서 생활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커팅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 발론은 수적으로 더 압도적인 아일랜드계를 규합하여 데드래빗파를 재건하고 토착파에 대항할 방법을 찾는다. 우선은, 자신들을 위한 정치인을 세우겠다는 작전을 짠다. 약간은(?) 지저분한 선거였지만, 선거 결과 과거 프리스트 발론의 동료기도 했던 월터 맥긴을 당선시킨다. 하지만 아일랜드계 후보가 승리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커팅이 대낮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맥긴을 살해한다. "친구들, 이걸 소수표라고 하지"라는 말과 함께.

발론은 맥긴의 장례식에서 커팅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 말은 영화 첫 장면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싸우자는 의미이다. 그 다음날 데드래빗파와 토착파는 16년 전 그때처럼 다시 피터지는 전투를 앞두고 마주서게 된다.

한편, 이 시기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병력 충원을 위해 징병법을 제정하여 징병대상자를 발표했는데,이것이 뉴욕 빈민층, 특히 아일랜드계 빈민층을 자극하였다. 불공평한 징병대상자 선정 때문이었다. 징집을 피하고 싶으면 300달러를 내야했는데, 문제는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300달러는 너무 큰 액수였다는 것이다. 부자들만 따로 병역을 피해갈 여지를 준 이 법에 하층민을 불만이 높았고 이 불만이 터져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경찰 인력만으로는 진압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병력을 출동시켰고, 군대의 압도적 화력 앞에서 폭동은 진압되었다.

그런데 데드래빗파와 토착파의 결투날이 바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한 날과 겹쳤다. 싸움을 앞두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이들 앞에 갑자기 대형 함포가 떨어져 결투 장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전투다운 전투는 시작도 못해본 것이다. 포탄 세례와 흙먼지 속에서 발론은 커팅을 죽이고 승리하지만 이 전투는 이미 미국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아니라 지역 내 갱단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전통적인 방식의 폭력적 수단은 국가의 힘 앞에 가로막히게 된 것이다. 갱단의 폭력적 질서는 국가라는 더 상위의 조직의 폭력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되었다. 통치는 갱이 아니라 국가가 하며, 폭력적 수단도 국가가 독점한다. 이제 아일랜드계, 토착파 할 것 없이 어느 갱 소속이기 이전에 미국의 국민이며, 갱단 보스의 명령과 규율이 아니라 국가의 법과 질서하에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갱단의 질서는 갔고 국가의 질서가 사회 구석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의 강력한 질서 속에서 과거의 역사는 잊혀진다. 결말에서 영화는 커팅과 프리스트 발론의 묘비를 원거리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묘비의 뒤에는 뉴욕시의 전경이 보인다. 시간이 흘러 뉴욕은 번창하여 고층빌딩이 늘어선 지금의 모습이 되었지만, 전통적 미국을 상징하는 발론과 커팅의 묘비는 흔적도 사라진다.

여기까지가 대략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무엇이 있는지보다 무엇이 없는지를 더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토착파 미국인과 아일랜드계 미국인 사이의 갈등을 그리며, 양자는 서로의 이권을 위해서 싸운다. 우습게도 토착파는 지들이 진정한 미국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의 인식 속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아일랜드계도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실상 권리 투쟁의 자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목소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은, 제니 에버딘이 발론에게 샌프란시스코로 도망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커팅에게 발론의 정체가 탄로나자 뉴욕에서 기회의 땅인 샌프란시스코로 가자고 한다. 제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며, 사람들은 강가에서 황금을 건진다고 얘기한다. 당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발 골드 러쉬로 촉발된 서부 개척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이 발견되자 너나 할 것 없이 금을 캐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동했으며, 이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는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서부 개척이니, 기회의 땅이니 하는 것은 미국인의 입장일 뿐 원래 이 지역에서 살던 원주민에게 이들은 자신들의 땅을 멋대로 하페치고 유린하는 침략자에 지나지 않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착취당했고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아났다. 그들에게 서부 개척은 기회가 아니라 재앙 그 자체였다. (이런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은 이들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참조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로 자신과 같이 떠나자는 제니 에버딘의 말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식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그곳이 그저 과거를 잊고 발론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재는 다분히 감독의 의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일부러 대상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대상을 드러낸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이라는 땅의 동쪽 끝에서는 자칭 토착파가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지역질서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진정한 토착 원주민이 이주민 백인 세력들에 의해 삶의 터전을 위협받고 있었다. 토착파를 이끄는 윌리엄 커팅은 열렬한 애국주의자였다. 그는 "진정한 미국인"으로 죽을 수 있음에 안도한다. 하지만 그의 애국과 그의 조국에 토착 원주민은 없었다. 감독은 한쪽만 보여주어 무엇이 없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어 토착파와 데드래빗의 이권쟁투를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감독의 칼끝이 향하는 곳은 현대 미국인이다. 위에서 얘기한 결말 장면에 더해 엔딩 크레딧도 현대인을 간접적으로 지목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동안에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이 걷는 등 일상적인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마치 그때까지 있었던 격동의 사건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일상을 살아간다. 감독은 결말과 엔딩 크레딧을 통해 지적하고 싶었던 것도 현대 미국인이 무엇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였을 것이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어떤 낭만화나 미화도 없이 건조하게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 건조함이 참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디악 (1disc) - 할인행사
데이비드 핀처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1969년 미국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었다.

'조디악'이라는 연쇄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고 붙잡기 위한 경찰과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기가 주된 내용이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끈질김'이다.

우선 영화는 갈피도 안 잡히는 조디악의 정체를 끈질길 정도로 집요하게 알아내려는 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건 담당 형사 데이브 토스키(마크 러팔로우),

신문사 삽화가이지만 누구보다 조디악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

이 둘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이들은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고, 관련 기사나 자료를 끊임없이 되짚어가며 조디악을 추적한다.

무려 20년이 넘도록.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 나온 조디악 피해자가 데이브와 로버트가 특정한 조디악 유력 용의자의 얼굴을 지목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자막으로 후일담이 나오는데, 다소 충격적인(?) 수사 결과와 함께

여전히 조디악 사건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범인의 유죄를 증명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가 개봉된 것이 2007년이니, 조디악 사건이 발생하고 거의 40년이 지난 뒤이다.

범인을 잡기 위한 이들의 끈질긴 노력을 담고 있는 영화에게는 가장 알맞은 결말이다.

2시간 30여분 정도되는 러닝 타임에서 극적인 갈등이나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거의 없다.

흥미로운 플롯이나 구조도 발견하기 어렵다.

감독은 그저 다큐멘터리처럼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만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정말 끈질긴 인물들과 끈질긴 영화이다.

그런 장면이 계속 이어지니 피로감이 쌓이고 지루할 법도 한데,

배우들(마크 러팔로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이크 질렌할)의 열연과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감독의 연출이 이 끈질긴 영화를 계속 보게 한다.

오히려 불필요한 내용들이 거의 없어

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매우 깔끔한 뒷맛을 느낄 수 있다.

미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살인의 추억>과는 또 색다른 느낌의 명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1-09-17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Redman 2021-09-17 21:1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연휴되시길 바랍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개정2판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쓴 최장집의 문제의식은 87년 민주화 이후에 군사 독재가 끝났음에도 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는가이다.

 

최장집은 87년 이후 민주화가 보수적이었다고 규정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수 편향적 대표 체제라는 것이다. 그가 봤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수적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냉전 반공주의이다.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 단계에서부터 좌우갈등을 통해 적대적 이념과 세력을 배제하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냉전적 반공주의는 더욱 심화되었고 사회의 지배 구조와 사고의 틀을 이분법적이고 단순 도식적인 구조로 바꾸고 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담론적 기능을 갖는다.” 이러한 좌우 갈등과 냉전 반공주의의 확립은 한국 사회에 이념적 획일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것은 A 아니면 B. 그 중간이란 없다. 중간 지대에 있었던 조봉암 같은 인물에게는 곧바로 빨갱이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정당과 약한 대표성의 문제이다. 강력한 국가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박정희식 모델이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통치의 정당성이 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정부의 수행 능력과 효율성에서 부족한 정당성을 찾았고, “성장, 효율성, 목표 달성이 그들의 철학이자 가치였다. 고도성장 정책을 국가 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방대한 행정 관료기구의 조직과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기구의 신설은 권위주의적 노선의 정치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또 한편으로, “냉전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틀을 조직하고 그 틀 내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실천과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제약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큰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조건 속에서 한국의 정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둔 대표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냉전적 반공주의가 다른 사상이 끼여들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선거 경쟁에 들어온 그 어떤 정당도 보수적 이념 이외의 것을 대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정당을 통해 표출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1987년 이후 정당이 대중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향리적, 연줄 관계적, 지역 분획적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구와 같은 일반적 형태의 정치 균열로 발전하지 않았다.” 지역주의의 균열이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 편향적이고 지역균열은 사회경제적 내용을 결여한 담론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협애한 대표 체제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기반으로부터 괴리됨으로써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한 국가무력한 정부의 문제이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제를 이해할 방법은 헤게모니, 구체적으로 하나의 정부가 냉전 반공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정권의 핵심적 가치 정향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보수적 기득 이익의 지지를 받는정치적 현실에 있다. 냉전 반공주의를 과도하게 의식하면서 헤게모니를 얻기 위하여 민주화 정부가 스스로 보수적 이념 지향을 흡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야당과 그 후보는 선거 경쟁에서 이념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드러냈고, 그 결과 투표자의 지지와 선출된 자의 책임성 사이의 관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 매우 느슨하고 모호하다.” 이러한 지지자와 선출 권력 사이의 느슨한 책임성의 고리는 집권 정당의 정체성 상실로도 이어졌다. 민주화 정부는 권위주의와 냉전 반공주의의 논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기회에 실패한 것이다. “국가의 운영 원리라는 점에서 민간 정부와 앞선 권위주의 정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최장집의 분석은 집권 정당의 느슨한 책임성과 대표성의 결과이며, 또한 국가는 강력한데 정부는 무력한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기도 한다.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정치 엘리트들은 점차 관료에 의존하게 되고, 곧 관료에 포획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정부의 선출된 정치 엘리트들이 민주국가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가를 공직 배분의 장으로 여길 때, 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본적 과업이 모두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보호된 기술 관료들은 언제나 듣던 성장·효율성·질서·안정이라는 익숙한 소리만을 외치게 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신화는 이렇게 대표와 투표자가 격리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군부의 권위주의 독재하에서는 이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이 이해되어도, 민주화 이후까지도 지속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한국 민주화 이행의 보수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협약에 의한 민주화라는 특징을 가진다. 구체제를 해체한 힘은 운동권에서 나왔지만,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힘은 신민당 같은 야당으로부터 나왔다. , “한국 민주주의의 이행 과정에서는 냉전 보수주의의 정치 엘리트만이 이행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대표되고, 운동의 중심 세력들이 완벽하게 배제되는 급격한 단절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보수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운동권도 그들의 가치와 이상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역시 민주화의 보수적 귀결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호칭은 이름뿐, 시민들의 실생활 문제와 직결된 대안적 정책들을 민주화 정부는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인 듯하다. ‘한국식 민주주의라 하면, 박정희 정권 때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던 왜곡된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우덜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의 일상과 정치 현실에 뿌리박은, 다시 말해 한국의 갈등 상황과 계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여러 대중 조직이 자유로운 선거 경쟁을 통해 대중 권력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한국식 민주주의다. 정치 비관론자나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 현상은 민주주의적 정치, 즉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올해는 19876월 민주화 이후로 34년이 지난 해이다. 한 세대가 지난 셈이다. 이제는 민주화를 이끈 주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민주 주체들의 민주주의 이해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이 만든 87년 체제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좌표를 찍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 이해도 더 깊어지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민주주의 이해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남는 의문:

최장집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는 대중정당을 통해서, 즉 대의제 민주주의를 회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버나드 마넹이 주장하듯이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와 선출 권력은 민주정보다는 귀족정적 요소에 더 친화적이다(<선거는 민주적인가>, 4장 참조). 편파성(공직 진출 가능성의 편파성 및 후보자에 대한 편파적 평가)과 탁월성의 원칙을 큰 특징으로 삼고 있는 선거는 수동적 시민의 문제를 야기한다. 소극적 시민의 양산이 반드시 취약한 대표성 때문만은 아닌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의제하에서 그가 주장하는 대중정당과 정당 민주주의는 얼마만큼 기존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체계도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1-09-02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귀족정이라는 말씀에 한표입니다. ^^

Redman 2021-09-02 15:45   좋아요 1 | URL
마넹의 선거란 민주적인가 안 읽어보셨다면 추천드립니다 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9-02 15:50   좋아요 1 | URL
자와 독서 취향이 좀 비슷하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ㅎㅎ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민주적인가>모두 이미 사 놓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겠습니다. ^^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하고 있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는 문고본 분량에 각각의 주제에 입문서 격 역할을 하는 책들을 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원서는 500권 가까이 나왔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시리즈입니다.

국내에서는 교유서가에서 '첫단추 시리즈'로 이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이 시리즈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 출판된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모아봤습니다.


1)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국내에서도 유명한 시리즈입니다. 저는 대략 이 정도만 구매하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늘 뒤에 더 읽을 거리도 저자들이 추가해두었습니다.

영어권 독자 기준이다보니, 저자가 추천하는 책이 국내에 번역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번역자분들이 국내에 번역본이 있으면 따로 표시합니다.

특히 이재만 씨 같은 번역가분은 저자가 만든 독서 안내 이외에 또 추가로 국내 독자들을 위한 더 읽을 거리도 적어두어 매우 도움이 됩니다.




2) 비아 교양

 성공회 계열 출판사 '비아'에서 <구약> <신약> <예수> <성공회>를 번역했습니다. 


<예수>를 쓴 리처드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학자인데, 몇년전에 이 책을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말고 <성서>는 교유서가에 번역되어 있는데, 역자는 이재만 씨입니다. 








3)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제가 신뢰하는 출판사인 뿌리와이파리의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라는 시리즈로 

<사도 바오로>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를 번역했습니다. 

각 책을 저술한 E.P.샌더스, 핸리 채드윅, 스콧 헨드릭스는 모두 각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세 명 모두 한국에 다른 저작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비싸기도 하고, 아직 제가 사서 읽을 책은 아닌 듯하여 안 샀습니다. 핸리 채드윅의 <초대교회사>나 스콧 헨드릭스 <마르틴 루터>는 소장하고 있는데, 둘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3권 중 2권이 현재 절판됐습니다. <마르틴 루터>만 남았는데, 보아하니 며칠 안 가 이 책도 절판될 것 같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얼른 구매하시길..


 참고로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는

스티븐 하우의 <제국>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절판)

번역자는 강유원, 한동희 씨입니다. 







4) 한겨레지식문고


한겨레지식문고에서 9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없는 한 권은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인데, 이 책은 교유서가에서 원서전면개정판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어 있어 뺏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정치학>도 원서가 제4 개정판까지 나왔습니다.

시리즈 전체가 절판되었지만, 아직은 중고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5) 기타

나머지는 여러 출판사에서 한 두권 정도 출간한 걸 모았습니다


폴 S. 보이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테리 이글턴, <인생의 의미> - 이런 것도 입문서가 있네요


마가렛 월터스, <여성 인권의 역사>


콜린 워드,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




로버트 영,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로저 스크러튼, <아름다움>


미리 루빈, <중세>

에릭 클레인, <성서 고고학> <트로이 전쟁>


버나드 크릭,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


스티브 스미스, <러시아혁명>






시공 로고스 총서도 very short introduction을 번역한 시리즈이기는 한데,

워낙 예전에 나와서 개정판이 나온 원서가 많을 것 같아 여기서는 제외했습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08-29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읽은 교유서가의 인류세가 이 씨리즈 였군요. 글이 굉장히 매끄럽고 잘 읽히던데 역시!
다른 책들도 신뢰가 갑니다!

Redman 2021-08-29 11:46   좋아요 1 | URL
믿고 읽을 수 있는 시리즈죠 ㅎㅎ

얄라알라 2021-08-29 0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유서가 시리즈 달랑 2권 정도 읽었는데 500권의 방대한 군집이라니!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봤던 시리즈도 다시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포스팅^^

Redman 2021-08-29 11:46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면 참 다행입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1-08-2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지식문고는 생소한데, 이렇게 안내해주셔서 보니 표지가 참 좋네요! 다 읽어보고 싶어요
 

1. 들어가며

로마는 하나의 국가명이나 지명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고대 문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문화적 지도력으로 누군가의 말처럼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로마였기에 과거부터 로마의 멸망 원인에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 관심은 한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찬란했던 문명 일반이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된 것이 아니듯이,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서로마제국 멸망에 대한 고고학자 조지프 테인터(Joseph h. Tainter)와 역사학자 피터 히더(Peter John Heather)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의 견해가 로마제국의 멸망을 설명하기에 더 적합한지 비교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먼저 조지프 테인터의 문명의 붕괴(원제: 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 이하 붕괴)을 중심으로 한계수익 체감 감소 이론을 요약한 뒤, 로마 제국 최후의 100(원제: The Fall of Roman Empire, 이하 100)에서의 피터 히더의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2. 로마제국의 붕괴는 사회의 복잡성 때문이다.

조지프 테인터는 문명의 붕괴에서 로마제국을 포함하여 문명의 붕괴 일반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을 수립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가 로마제국의 붕괴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그의 이론적 논의를 우선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붕괴란 무엇인가?’ “붕괴는 기본적으로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다. ‘붕괴한 사회는 일정한 단계 이상으로 확립된 정치사회적 복잡성의 수준을 급격하고 현저하게 상실한 사회이다.’” 그가 정의하는 붕괴의 필요요건은 확립된 수준급격한 속도이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동안 복잡성을 유지하지 못했거나(ex. 카를링거 왕조) 멸망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 경우(ex. 오스만제국)는 붕괴라 할 수 없다.


저자는 에너지사회·정치적 조직이라는 두 요소를 변수로 삼아,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에 입각하여 문명 붕괴의 근본적 원인과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한다.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이란, 생산수단 한 단위를 투입할 때마다 산출할 수 있는 추가 생산량의 증가분(한계생산량)은 점점 상승하다가 어느 순간 하락곡선을 그린다는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다. 한 예를 들자면, 노동자 한 명보다는 두 명이 일할 때 생산량이 더 높지만, 그 수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노동자를 아무리 고용하여도 생산량의 자연적 증가에는 한계가 있고, 심지어는 감소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을 문명의 붕괴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규정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에너지(이는 생산을 의미하겠다)와 이를 관리하는 사회조직과 정치체제가 요구된다. 그런데 에너지의 흐름과 사회정치적 조직은 한 방정식을 구성하는 대립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두 대립항의 균형이 깨질 때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흐름과 사회정치적 조직은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하는데, 문제는 사회와 조직이 복잡해질수록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에 따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투자되는 자원의 양은 늘어나지만, 투자회수율은 지극히 미미하다. 바로 여기에 복잡한 사회의 본질적인 한계가 놓여있다. 한 사회의 출현부터 한계수익의 감소까지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인간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2) 사회정치적 체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유지된다.

(3) 복잡성이 증가하면 단위 비용도 증가한다.

(4) 문제해결을 위한 대응으로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면 한계수익이 감소하는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


 

복잡성의 증가로 인한 한계수익이 감소한 사회를 붕괴로 몰아넣는 일반적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혼란과 압박이다. 이민족의 침입,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이 오면, 한계수익이 감소하여 여분의 생산력마저 고갈된 상황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원과 에너지의 투입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극복이 어려워진다. 또 다른 요소는 한계수익의 감소는 문제해결의 전략으로서 복잡성이 가지는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더 높은 복잡성의 단계로 도약하거나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한계 비용은 또 하나의 대안인 와해에 비하여 비싸게먹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중심 권력과의 연결 고리를 끊고 거기서 이탈하는 것이 복잡한 사회의 일부 구성 집단에게는 매력 있는 선택으로 다가온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가 한계수익의 취약성을 드러냈을 때, 취할 수 있는 해결전략은 우선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토확장, 혹은 기술혁신이나 새로운 자원의 투입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한계생산성을 강제로 증가시켜도 결국에는 그 복잡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한계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에너지의 흐름과 사회조직의 균형 있는 대립항은 깨지고, 여기에 체제 와해의 정치적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을 때, 권력의 진공 상태일 때 복잡한 사회는 붕괴한다.


테인터의 이론적 논의를 여기까지 살펴봤으면, 그가 로마제국, 정확히 말해 서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마는 너무나 비대해졌으나, 그 덩치를 견디지 못해 무너졌다는 것이 그의 주된 논지이다. 테인터는 로마공화정 시기 로마의 지리적 팽창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는 영토 확장을 통해 큰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며, 옥타비아누스의 이집트 정복 때 정복을 통한 한계수익의 증가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이후로 로마제국의 팽창 기조는 중단된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만성적인 재정 부족의 문제를 초래하였다. 정복 과정에서 증대된 영토와 군사비는 로마제국의 한계수익을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서기 235년에서 284년까지 정치적 혼란과 페르시아와 같은 강력한 적국의 공격, 화폐의 평가절하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말미암아 로마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는 정부는 개인들의 이익을 억누르고 국가의 생존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강압적으로 군림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일시적으로 봉합했다. 또한 외부적 위기에 직면하여 군사력을 이전보다 더 증강시켰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두 명의 황제가 다스리도록 했는데, 동시에 관료 조직 역시 같이 비대해졌다. 하지만 군대와 행정조직의 규모는 커졌지만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인구는 피폐해졌다.”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노동력의 감소와 비경작지의 증가를 야기했으나, 서로마제국의 세율은 너무나 높았고 징수 체계 역시 경직되었다. 결국 이로 인한 책임과 피해는 중산층과 농민에게 돌아갔다. 이리하여 빈부에 관계없이 로마인 중에는 야만족이 제국의 과도한 부담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았. , 체제의 와해를 바랬던 것이다. 이처럼 서로마제국의 인적·물적 자원이 위축되었기에 이민족 침입자들은 서로마제국을 간단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겸토한 끝에 테인터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복잡성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 수익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로마제국은 체제의 정당성과 생존 가능성을 동시에 잃어버렸다.”

 

 

3. 로마제국은 이민족 때문에 무너졌다.

피터 히더는 서로마제국의 내적 한계가 멸망의 한 요인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일차적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로마 사회 내적인 데에서 찾는 시도들을 비판한다. 피터 히더는 서기 4세기와 서로마제국이 공식적으로 멸망한 476년까지의 로마·게르만족·훈족의 역사와 사회상을 촘촘히 재구성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 요인이 강력한 만족(蠻族)들의 침입 때문이었음을 논증한다. “서로마제국은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게르만 사회가 로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국의 힘에 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다.” 100은 미주와 색인까지 포함하여 거의 800쪽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이자 피터 히더의 논지는 다음 세 가지 논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4세기 후반, 훈족 세력이 흥기하면서 중동부 유럽 일대의 전략적 격변이 초래되었고, 전략적 균형을 뒤흔든 고트족의 도나우강 침범(376)과 만족의 국경 지역 침입(405~408)도 훈족의 유럽 진출에 따른 파급효과로 이해할 수 있다.

2) 만족의 침략으로 로마는 항구적으로 영토를 상실하거나, 속주들에서 심대한 재정적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로마는 제국군을 유지하고 만족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줄었다.

3) 아틸라 사후 훈족 제국이 소멸하면서 서로마제국의 멸망 과정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훈족 제국의 군사적 지원이 없어지자 서로마는 다른 만족을 영토로 끌어들였으나 더 이상 서로마가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이들은 독립왕국을 수립했다.


 

1로마인에서 피터 히더는 로마 귀족 심마쿠스의 기록을 통해 4세기 로마제국에서 붕괴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고 쓴다. 로마가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로마적 양식과 가치체계를 받아들였다. 4세기 무렵에는 라틴어 문법 교육이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로마화가 이루어지면서 로마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나 한 국가가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명의 단계로 상승했다.


테인터와 피터 히더 모두 인정하듯이, 로마제국의 팽창은 우선적으로 군사력에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거대해진 로마제국은 원거리 통신수단의 부재와 높은 정보 처리 비용이라는 내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이는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테인터가 지적했듯이, 3세기에 사산 왕조 페르시아라는 강한 적국이 나타나면서 로마의 군사적 부담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군사력의 증강으로 인해 늘어난 군비를 감당하기 위해 단행한 개혁(세율 인상, 화폐가치 절하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으며, 50년 동안 20여 명의 황제가 난립했던 군인 황제시대라는 정치적 혼란기를 겪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개조의 효과는 그 즉시 나타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3세기 말에 로마는 전략의 안정화를 어느 정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3세기 로마의 개혁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테인터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제정 후기 로마제국은 5세기 이전까지 결코 내적인 경제위기에 빠져들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활력이 넘쳤다. 다시 말해 아직 로마제국이 붕괴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로마의 기독교화나 로마의 성적 방종 같은 데에서 원인을 찾는 정신주의적 단견에 빠져서는 안 된다. 히더에 따르면, 그 요인은 로마 사회의 내적 한계가 아니라 로마 국경 외부에 있었다. 바로 게르만족과 같은 만족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단순히 강대한 적에 의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현상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로마의 경우, 만족과의 전투는 이전에도 있었고 로마가 패배하기도 했다. 따라서 제정 후기 로마제국이 만족에 의해 무너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4세기 이후 만족이 로마를 위협할 만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과거와 달리 로마가 만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왜 로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의한 위협 때처럼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을까.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로마 중앙정부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만족 병력은 전체 로마제국의 군사적 역량에 미치지 못했으나, 문제는 페르시아라는 강대국 때문에 페르시아 전선에 동로마제국은 자국 병력의 40퍼센트를 페르시아 전선에 묶어둘 수밖에 없어 로마군의 수적 우위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변경주둔군(리미타네이) 중심의 로마군은 본격적인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 기동야전군에서 만족의 병력에서 크게 뒤졌다. 경제적으로 로마제국은 4세기에도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확량을 급격히 늘릴 정도는 아니었으며, 이 때문에 페르시아의 위협 때와는 달리 세금을 올려 개혁과 군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제한받았다. 무엇보다 5세기 들어 만족의 침입에 의해 속주들을 상실하고, 440년대 로마 경제의 중심지였던 북아프리카마저 상실하면서 로마의 경제는 침체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제국의 중앙 정부와 속주 엘리트 사이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다. 속주 지주층의 부는 토지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다른 지배자가 나타나면 자신의 재산을 모두 버리지 않는 한, 이들은 새로운 지배자에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동서 황제권 분할은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러한 한계들은 로마제국이 효과적인 대응을 하는 데 지장을 미쳤고, 로마제국의 멸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피터 히더는 그럼에도 일차적인 원인은 만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테인터와 달리 외부세력의 대규모 군사적 공격이나 속주들의 연쇄적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로마제국이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히더의 견해는, 앞서 언급한 한계들이 로마제국 내적인 한계라기보다는 만족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용할 만하다. 서로마제국의 경제와 재정을 한순간에 파탄에 빠뜨린 위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반달족의 북아프리카 침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따라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고, 다시 첫 번째 질문, 곧 만족은 어떻게 로마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1002만족에서 1~4세기 동안 게르만족이 겪은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르만족은 본래 지리멸렬하게 여러 부족을 나뉘어 사회적 통합도는 무척 낮았고, 서로간의 반목이나 갈등도 잦았다. 하지만 영토가 늘어나고, 동물 분뇨의 비료 사용과 이모작 농법의 개발로 농업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와 정치조직이 더욱 발전되었다. 결론적으로 서기 초 300년 동안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경제발전, 정치 개편으로 4세기의 게르마니아는 1세기의 게르마니아에 비해 로마의 전략적 지배에 잠재적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한층 더 컸던 것이다.” 한편, 게르만족의 사회 통합과 발전에는 로마의 제국주의적 정책도 일익을 담당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국 내 이주민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로마의 외교 정책, 로마 제국의 잔학성을 피하려 한 만족들의 열망, 만족 특정 지도자의 지배력을 높이는 외교술, 게르만족 사회로 유입된 로마제국의 무기 등이 그것이다.


훈족의 등장은 게르만족을 이동시켜 로마의 동요를 촉발시켰고, 그 이후의 시나리오는 앞에서 정리한 히더의 주요 논지들대로이다. 로마제국이 만족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제국의 지배방식에 대한 피지배 민족의 역반응에 무너졌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씨앗은 제국 로마와 제국의 피지배민 게르만족 사회와의 관계 속에 심겨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착된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끝없는 공격성을 지닌 로마 제국주의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보았듯이, 테인터는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을 바탕으로 문명의 형성과 붕괴의 본질을 탐구하였고, 자신의 이론을 통해 로마제국의 붕괴를 설명해내려 하였다. 피터 히더는 고고학적 성과와 방대한 기록 사료를 토대로 외생적 충격의 관점에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분석했다. 반면에 테인터의 논의는 에너지와 사회정치적 조직이라는 사회 내적 변수에서 로마의 붕괴 원인을 모색한 시도이다. 이런 점에서 테인터의 이론도 피터 히더가 비판하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지만 둘 다 음미할 가치가 있는 내용임에는 틀림 없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어디까지나 소개가 목적이므로 양자의 논점을 비교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기약해보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을 읽으며 남는 의문. 한국인인 내가 로마 제국의 멸망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적 흥미 이상의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나는 왜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주목한 것은 로마가 아니라 제국의 멸망인지도 모른다. 김덕수는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지은이의 말에서 제국의 변방인 한국에서 제국의 중심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당위를 제국-변방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제 우리도 제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의 열강이 취하는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본질을 꿰뚫어 볼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제국들과 그 제국들의 틈새에 있는 한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제국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8-2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에 대한 2가지 분석 잘 읽었습니다. 저는 사실 외부요인보다는 로마 내부- 지나치게 커진 제국의 크기와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 부족, 노예제와 전쟁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경제 기반의 문제 등이 가장 우선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피터 히더의 견해 역시ㅜ살펴볼 부분이 많은것같네요. 어쨌든 어느 시대든 어느 지역이든 역사란건 인류 공통의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기때문에 공부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Redman 2021-08-24 19:47   좋아요 0 | URL
서로 대비되는 주장이지만, 둘다 촘촘한 논리와 논거들로 상당히 설득력을 갖추었지요 저도 굳이 따지자면 테인터의 견해에 더 동의하는 바입니다
인류 공통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할 가치가 있다는 말씀도 좋은 말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mini74 2021-09-1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항상 많이 배우고 가는 페이퍼입니다. 축하드려요 *^^*

Redman 2021-09-10 19:09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mini74님!

그레이스 2021-09-10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담에도 페이퍼 기대합니다~!

Redman 2021-09-10 19:0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ㅎㅎ

서니데이 2021-09-10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9-10 19:08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초딩 2021-09-1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우님 이달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9-11 19: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