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개정2판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쓴 최장집의 문제의식은 87년 민주화 이후에 군사 독재가 끝났음에도 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는가이다.

 

최장집은 87년 이후 민주화가 보수적이었다고 규정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수 편향적 대표 체제라는 것이다. 그가 봤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수적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냉전 반공주의이다.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 단계에서부터 좌우갈등을 통해 적대적 이념과 세력을 배제하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냉전적 반공주의는 더욱 심화되었고 사회의 지배 구조와 사고의 틀을 이분법적이고 단순 도식적인 구조로 바꾸고 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담론적 기능을 갖는다.” 이러한 좌우 갈등과 냉전 반공주의의 확립은 한국 사회에 이념적 획일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것은 A 아니면 B. 그 중간이란 없다. 중간 지대에 있었던 조봉암 같은 인물에게는 곧바로 빨갱이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정당과 약한 대표성의 문제이다. 강력한 국가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박정희식 모델이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통치의 정당성이 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정부의 수행 능력과 효율성에서 부족한 정당성을 찾았고, “성장, 효율성, 목표 달성이 그들의 철학이자 가치였다. 고도성장 정책을 국가 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방대한 행정 관료기구의 조직과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기구의 신설은 권위주의적 노선의 정치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또 한편으로, “냉전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틀을 조직하고 그 틀 내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실천과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제약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큰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조건 속에서 한국의 정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둔 대표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냉전적 반공주의가 다른 사상이 끼여들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선거 경쟁에 들어온 그 어떤 정당도 보수적 이념 이외의 것을 대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정당을 통해 표출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1987년 이후 정당이 대중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향리적, 연줄 관계적, 지역 분획적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구와 같은 일반적 형태의 정치 균열로 발전하지 않았다.” 지역주의의 균열이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 편향적이고 지역균열은 사회경제적 내용을 결여한 담론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협애한 대표 체제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기반으로부터 괴리됨으로써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한 국가무력한 정부의 문제이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제를 이해할 방법은 헤게모니, 구체적으로 하나의 정부가 냉전 반공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정권의 핵심적 가치 정향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보수적 기득 이익의 지지를 받는정치적 현실에 있다. 냉전 반공주의를 과도하게 의식하면서 헤게모니를 얻기 위하여 민주화 정부가 스스로 보수적 이념 지향을 흡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야당과 그 후보는 선거 경쟁에서 이념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드러냈고, 그 결과 투표자의 지지와 선출된 자의 책임성 사이의 관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 매우 느슨하고 모호하다.” 이러한 지지자와 선출 권력 사이의 느슨한 책임성의 고리는 집권 정당의 정체성 상실로도 이어졌다. 민주화 정부는 권위주의와 냉전 반공주의의 논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기회에 실패한 것이다. “국가의 운영 원리라는 점에서 민간 정부와 앞선 권위주의 정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최장집의 분석은 집권 정당의 느슨한 책임성과 대표성의 결과이며, 또한 국가는 강력한데 정부는 무력한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기도 한다.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정치 엘리트들은 점차 관료에 의존하게 되고, 곧 관료에 포획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정부의 선출된 정치 엘리트들이 민주국가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가를 공직 배분의 장으로 여길 때, 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본적 과업이 모두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보호된 기술 관료들은 언제나 듣던 성장·효율성·질서·안정이라는 익숙한 소리만을 외치게 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신화는 이렇게 대표와 투표자가 격리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군부의 권위주의 독재하에서는 이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이 이해되어도, 민주화 이후까지도 지속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한국 민주화 이행의 보수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협약에 의한 민주화라는 특징을 가진다. 구체제를 해체한 힘은 운동권에서 나왔지만,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힘은 신민당 같은 야당으로부터 나왔다. , “한국 민주주의의 이행 과정에서는 냉전 보수주의의 정치 엘리트만이 이행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대표되고, 운동의 중심 세력들이 완벽하게 배제되는 급격한 단절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보수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운동권도 그들의 가치와 이상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역시 민주화의 보수적 귀결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호칭은 이름뿐, 시민들의 실생활 문제와 직결된 대안적 정책들을 민주화 정부는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인 듯하다. ‘한국식 민주주의라 하면, 박정희 정권 때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던 왜곡된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우덜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의 일상과 정치 현실에 뿌리박은, 다시 말해 한국의 갈등 상황과 계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여러 대중 조직이 자유로운 선거 경쟁을 통해 대중 권력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한국식 민주주의다. 정치 비관론자나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 현상은 민주주의적 정치, 즉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올해는 19876월 민주화 이후로 34년이 지난 해이다. 한 세대가 지난 셈이다. 이제는 민주화를 이끈 주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민주 주체들의 민주주의 이해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이 만든 87년 체제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좌표를 찍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 이해도 더 깊어지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민주주의 이해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남는 의문:

최장집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는 대중정당을 통해서, 즉 대의제 민주주의를 회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버나드 마넹이 주장하듯이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와 선출 권력은 민주정보다는 귀족정적 요소에 더 친화적이다(<선거는 민주적인가>, 4장 참조). 편파성(공직 진출 가능성의 편파성 및 후보자에 대한 편파적 평가)과 탁월성의 원칙을 큰 특징으로 삼고 있는 선거는 수동적 시민의 문제를 야기한다. 소극적 시민의 양산이 반드시 취약한 대표성 때문만은 아닌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의제하에서 그가 주장하는 대중정당과 정당 민주주의는 얼마만큼 기존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체계도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1-09-02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귀족정이라는 말씀에 한표입니다. ^^

김민우 2021-09-02 15:45   좋아요 1 | URL
마넹의 선거란 민주적인가 안 읽어보셨다면 추천드립니다 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9-02 15:50   좋아요 1 | URL
자와 독서 취향이 좀 비슷하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ㅎㅎ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민주적인가>모두 이미 사 놓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