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딥하고 이토록 슬프고 이토록 어둡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동화가 또 있을까.


영화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시민군과 파시스트정권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임신한 어머니와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산간으로 이동 중이다. 비달 대위는 파시스트 정권에 충성하는 인물로, 강박 관념이 지나쳐 주변 인물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도 냉혹하게 대하는 냉혈한적인 인물이다. 오필리아의 친부는 봉제공이었으나 작중 시점에는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안 나오지만, 아마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오필리아가 처한 상황은 참담 그 자체이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요정과 판이라는 기이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판은 자신을 그녀의 시종이라고 소개하며, 오필리아가 사실 지하 왕국의 공주 '모안나'의 환생이라고 한다. 판은 보름달이 뜰 때까지 세 개의 임무를 완수하면, 고통과 슬픔이 없는 지하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오필리아는 갑자기 일어난 동화 같은 일에 당혹스러우면서도 들뜬다. 그녀는 판의 조언에 따라 차례차례 임무를 완수해 간다. 때로는 이 때문에 진흙탕을 굴러 어머니한테 혼나기도 하지만, 지하왕국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너무도 차갑고 버겁기만 하다. 엄마는 임신 중에 무리하게 장거리를 이동하여 비달이 있는 곳으로 와서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아버지란 인간은 사랑 따위 없고 곧 태어날 아기에게만 관심을 가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던 인물인 메르세데스와 야반도주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비달에게 들켜 독방에 홀로 갇히고 만다. 현실은 차갑고 동화 같은 건 없다.


작중 가장 큰 대립선은 오필리아 vs. 비달 대위이다. 비달의 잔혹함과 오필리아의 순수함은 시종일관 대비된다. 비달 대위는 전쟁을 형상화한 듯한 인물이다. 작중 주치의를 통해 그에게 내려진 규정은 '아무 의문 없이 복종만을 위한 복종'을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상당히 정확하다. 비달 대위는 군대식 상명하복, 권위주의, 가문과 아들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만 움직인다. 전쟁, 군대, 계급, 가문과 같은 요소들이 그를 규정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따뜻한 심성을 지닌 오필리아는 이런 비달에 대한 안티테제적 캐릭터이다. 비달이 냉혹한 권위주의자라면, 오필리아는 늘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다. 비달이 그저 권위에만 순종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어떤 행위도 개의치 않는다면, 그녀는 권위 있는 인물의 명령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아무리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타인에게 해가 된다면 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안다. 마지막 세 번째 임무를 수행하면서 판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비달과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오필리아는 비달 대위로 상징되는 전쟁 또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버린 모든 이들에 대한 안티테제이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조를 통해서, 영화는 시종일관 오필리아처럼 동화를 좋아할 뿐인 순수한 어린아이의 삶까지 망가트리는 전쟁의 잔혹함과 무가치함을 비판한다. '지하 왕국'이라는 거짓도 고통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존재는 1944년의 스페인뿐만 아니라 현재의 세상을 거울처럼 비추어 돌아보게 한다.


오필리아의 체험은 실재였을까? 즉, 현실에서 동화는 있었을까? 영화의 내용과 결말은 이 부분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오필리아가 겪은 동화 같은 환상적인 체험들은 그 자체로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팠던 한 소녀의 절박한 절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지하왕국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행복할 길을 찾을 수 없던 그녀의 삶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비단 전쟁이 아니더라도 혹독한 현실과 폭력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오필리아'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현실은 지하왕국이 되어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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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1 2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좋아해요. 괴물도 역대급으로 무서웠던 거 같아요. 암울했던 역사와 오필리아의 희생 등 넘 좋았어요. 글 넘 잘 써주셔서 맞아맞아 하면서 읽었어요 *^^*

김민우 2021-10-11 23:19   좋아요 2 | URL
오 미니님도 좋아하시는 영화군요!! 저도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넷플에 있네요. 바로 검색했어요. 민우님 미니님 진짜 좋아 누르셨으니 믿고 보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여름방학 숙제로 <아홉살 인생> 독후감을 써오게 했다. 소설의 내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책의 마지막 문장은 또렷이 기억난다.


"10살이 되었다."


싱거운 문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운이 강한 마무리였다. 주인공은 9살로 지내는 그 1년동안 여러 경험을 겪는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기대감, 우정, 사랑, 이별의 아픔, 슬픔 등등..그런 일을 모두 겪은 9살 소년은 10살이 되었다. 그 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홉살짜리 아이에게도 어른처럼 삶의 희노애락이 있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도 <아홉살 인생>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는 오다기리 조,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등 유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라 기적을 찾으려는 아이들의 모험과 인생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오사코 코이치.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하여 코이치는 어머니 오사코 노조미와 외조부모님 가정과 함께 살고 있다. 남동생인 키나미 류노스케는 아버지 키나미 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코이치의 소원은 언젠가 부모님이 재결합하여 다시 4명이서 같이 사는 것. 하지만 이는 요원하기만 한 꿈이다.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해서 가족이 모두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이사가면 다시 같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화산이 폭발하기만을 바란다. 그러다 같은 반 친구인 후쿠모토 유와 오타 신이 나누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바로 새로 개통되는 신칸센이 마주치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코이치는 그곳으로 가서 화산폭발 소원을 빌겠다고 생각한다. 코이치는 류노스케에게도 이 사실을 전해 같이 모이기로 한다. 류노스케는 자신의 친구들도 데려간다. 이들이 펼치는 작은 모험담의 시작이다.


코이치를 비롯하여 이 신칸센 모험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소원이 있다.

학교 사서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이소베 렌토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하는 하야미 칸나

죽은 반려견 마블이 다시 살아나길 원하는 오타 신

여배우가 되고 싶지만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리요시 메구미


저마다 자기만의 고민이 있고, 애환을 느낀다. 메구미는 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미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같은 반 친구를 보며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고 있고, 배우가 되고 싶지만 집안 사정과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 렌토는 사서 선생님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 짝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소원을 빌어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늘 순수하고 걱정이나 고민 따위 없을 것만 같은 아이들의 세계에도 그림자는 진다. 그들의 세계에도 진지한 고민과 애환은 존재한다. 다만 표현이나 해결방식이 아이'적'으로 보일 뿐.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신칸센이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이 작은 여행은 사실 그들 나름대로 삶의 고민을 돌파하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여러 사람과 만나고 많은 것을 겪게 되고,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해서 여러 장애물을 넘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도 받았지만, 대개 자신들의 힘으로 성공시켰다. 아이들의 겪음은 그들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결말에 이르면 코이치와 메구미에게서 여행 전과 달라진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화산 폭발 소원은 아이여서 귀여운 거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소원이다. 자기의 가족만 생각하고 타인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코이치가 여행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신칸센이 지나는 순간에 자신의 소원을 빌지 않는다. 빌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역에서 동생에게 사과하며 그 이유를 말하는데, 자기는 "세계"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라는 말에는, 자신의 가족만 있던 코이치의 세계에 '다른 사람들'과 '그동안 몰랐던 소중한 작은 일상'들이 들어왔음을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같다. (영화 첫장면과 마지막에 언급되는 '화산재'도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코이치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이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기적을 찾는 여행이었지만, 세계가 확장되고 일상을 깨닫게 되는 여정이기도 했다. 그런 내면의 변화가 코이치에게 일어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적이란, 기적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일상으로 서서히 스미는 것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코이치 할아버지의 떡이다. 떡집을 운영하는 코이치의 할아버지는 새로운 떡을 만들어서 코이치에게 시식해보게 했다. 코이치는 그 떡을 먹고 맛이 밍밍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다 여행 중에 동생에게도 그 떡을 주었는데, 그때는 처음엔 밍밍했지만 먹다 보면 은은한 달콤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어떤 자극적인 요소도 없지만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할아버지의 떡, 꼭 그처럼 이 영화도 극적 갈등은 없음에도 진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이 영화를 보고 읽고 싶어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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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0-12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저 영화랑 어린이라는 세계랑 찰떡궁합이에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참 좋아요. 저는 잘생긴 오다기리 조는, 어떻게 입고 나와도 잘생겼구나 하며 침 흘렸어요^^;;;

mini74 2021-10-12 08:33   좋아요 1 | URL
저도 히로카즈 정말 정말 좋아해요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에이브러험 링컨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한데, <데어 윌 비 블러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링컨 역할로 출현했다고 하여 바로 보기로 결정했다.


한국인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을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는다면, 미국에서는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리고 에이브러험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다. 특히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제13조 통과의 주역이었으며, 남북으로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여 미연방,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링컨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신화화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링컨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면서도 링컨에게 드리운 신화의 구름을 걷어내어 역사 속 인물이자 현실적 정치인 링컨을 묘사해낸다.


영화는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라는 링컨의 정치행적과 생애를 다룬 대중역사서를 영화로 제작하였다. 스필버그는 링컨 전생애를 다루는 대신, 1865년 1월부터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기까지 수정헌법 13조가 하원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복합적인 국면과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링컨이 바라는 대로 노예제 폐지 조항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하원의원 재적의 3분의 2를 확보해야 한다. 즉, 링컨이 속한 공화당표를 제외하고 민주당에서 20표를 더 얻어야 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 정국이 링컨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다.


링컨을 고민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남북전쟁이었다. 1865년 들어,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북부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북전쟁의 종결와 노예제 폐지는 동시에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전쟁이 끝나 남부 대표와 평화협상이 진행된다면, 의회에서는 남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예제 폐지를 기각해야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질 것이다. 전쟁의 빠른 종결은 애초에 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었던 흑인 노예 해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링컨은 다소 현실적인 접근을, 아니 어떻게 보면 상당히 마키아벨리즘적인 면모까지 보인다. 링컨은 매관매직을 하여 민주당 의원들을 포섭하는 한편, 공화당 내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화당 급진파(흑인 노예 해방은 물론 흑인 투표권까지 주장)의 주장을 온건화하여 수정 헌법 13조의 목표를 '법적 평등'으로 조정하였다. 더 놀라운 행동은 평화협상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더 질질 끌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링컨의 정치적 행보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라는 이미지와 모순된다. 우리가 알던 링컨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스필버그가 보여주는 링컨은, 자신의 고결한 도덕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비도덕적 행위까지도 서슴치 않던 현실 정치인이다.


정의로운 이념과 목적(노예제 해방)을 위해 온갖 부정의한 수단(매직, 전쟁)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질문이다. 초월적 이념과 정의 따위는 버리고 통치의 수단만 신경쓰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적 정치이다. 동양에서는 한비자, 상앙 등 법가가 비슷한 스탠스에 있다. 그 반대로 정의와 이념에 봉사하는 것을 정치의 제일 목표로 간주하는 이들이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공맹 등이다. 나는 정치 규범에 있어서 목표를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정당화된다는 마키아벨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줄리어스 씨저>의 브루터스처럼 이상주의자나 급진적 운동가/혁명가들도 믿지 않는다. 정치란 마키아벨과 브루터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을 막스 베버식으로 이해한다면,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버는 행위결과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이 궁극적으로 올바르다고 추구하는바를 실천하는 신념윤리에 지나치게 경도된 정치를 경계한다. 베버의 말처럼 정치는 고상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더럽다. 정치인은 모든 폭력성에 내재된 악마적 힘들과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운동가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어쩌면 정의를 위한 부정의한 수단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어쩔 수 없는 본질일 수도 있다.


스필버그의 링컨은 정치의 악마적 힘들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링컨은 도덕적 이상과 현실적 타협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당대의 어느 정치인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링컨에게 있어서 최선은 민주당도 자신의 신념을 인정하여 하원의회에서 손쉽게 통과되고 그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줄이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니, 그는 차선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링컨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도덕적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베버는 악마적 행위로서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고 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신념윤리를 배제하지 않는다. 이념과 대의에만 경도된 것을 비판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베버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것에 적합한 수단을 고려하는 책임 윤리 못지않게 신념윤리 또한 정치인의 소명(beruf, 직업이라는 뜻도 있음)임을 강조한다.


베버의 정치 윤리론을 보면, 링컨은 악마적 힘과 계약을 맺은 정치가의 행위의 결과와 정의로움과 순수함에 대한 굳은 신념을 균형있게 고려하고 적절히 조화한 인물이었다. 수정헌법 13조 통과 투표에 대해 '부패로 통과되고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 추진한 19세기 가장 위대한 입법'이라고 한 새디어스 스티븐스(토미 리 존스)의 평가는, '정치와 윤리'라는 주제의 중요한 물음들을 함축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치에서 비열하고 부도덕한 행위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도덕적 열망과 악마적 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취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베버가 말한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링컨에게서 그런 정치인의 이상을 보게 된다.


영화와 같이 보면 좋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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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작 과정이 기가 막힌다. 무려 120명이 넘는 화가들이 10년 동안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직접 유화로 그려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빛을 발한 영화인 것이다. 이들의 장인정신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 영화는 모든 컷이 고흐의 화풍으로 제작되어 보는 이의 즐거움을 자아낸다.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최상의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고흐의 명작들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내가 아는 그림이 나올 때마다 '오! 저거다!'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도 고흐의 그림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서 이 애니메이션은 마치 고흐의 모든 작품을 하나로 연결해서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준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고흐의 그림이 살아있다 같은 느낌.


영화의 내용은 고흐의 전기는 아니고 아르망 룰랭이 고흐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추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 아르망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살던 곳으로 온다. 그는 그곳에서 고흐의 주변인물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단순히 이상한 예술가인줄만 알았던 고흐의 다른 면모를 알아가게 되는 한편, 고흐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고 그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실 고흐는 일반적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매독으로 인한 병사 또는 타살까지 논란이 조금 있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동네 청소년이 쏜 총에 맞은 고흐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처럼 위장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흐 타살론의 근거는 총상의 각도가 자기에게 총을 쏜 사람에게서는 불가능한 각도라는 것. 영화도 타살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아르망도 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타살에 확신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동네 청년 르네가 범인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고흐의 죽음의 정확한 진상에 대해서는 영화는 침묵한다. 이것이 추리극으로서의 성격을 다소 흐지부지하게 만든다. 좀 김 새는 느낌. 그리고 아르망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도 별다른 긴장감이 없어 지루했다. 아무래도 인물들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다보니 추리극으로서의 흥미진진함은 덜한 편이다.


영화 후반부에 아르망은 가셰 박사의 딸 마르게리트와 대화를 나눈다. 흥분하며 고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아르망에게 그녀는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고흐가 이미 죽은 이상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이제 와서 더는 의미가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무덤에 꽃을 바치는 것뿐이라고 마르게리트는 말한다. 마르게리트의 대사는 마치 감독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유명인의 죽음은, 그것이 고흐처럼 비극적이었다면 더더욱, 슬픔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가십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만약 고흐가 '천재였으나 자살로 생을 마친 비운의 화가'로만 기억된다면, 우리는 마르게리트의 말처럼 그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그의 삶과 예술에는 무지하여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박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르게리트처럼 그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의 삶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정작 영화가 고흐의 말년 행적에만 집중한 것은 흠이다)


마르게리트와의 대화 이후, 영화는 우리가 고흐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가셰박사와 만나고 아르망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만나다. 아르망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흐의 편지 한 구절을 읊고, 화면은 밤하늘을 비추며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고흐의 모습이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이런 구절이 나온다.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I want them to say: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 빈센트 반 고흐.


외로운 삶을 살았으나,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고, 예술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내용이나 형식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그런 그에게 헌정하는 작품으로서 훌륭한 영화이다.



*예전에 구매하려다 말았던 빈센트 서간집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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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0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본다본다하는게 자꾸 미루게되는데 김민우님의 후기도 보았으니 이번 연휴에는 꼭 봐야할 듯 하네요!ㅎ 즐건 하루되십시요!

김민우 2021-10-08 13:28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좋은 감상 되셨으면 좋겠네요 ㅎㅎ
 

고대 새계에서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헬리어나 라틴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언어로도 ‘죽음 이후의 삶‘을 의미하는 단어로 쓴 적이 없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건 간에 그것이 있고 난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삶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 P82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궁극적인 부활을 믿었다. 즉 사람이 죽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돌보시다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이 세상 전체를 심판하시고 재창조하실 때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몸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 P85

종말론은 대부분의 1세기 유대인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강력하게 믿었던 내용, 즉 하나님의 인도 하에 이 역사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가는 방향은 정의, 치유 그리고 희망이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라는 믿음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이동은 현재 시공간의 우주가 파괴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앞의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 특히 바울은 그때를 기대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그 첫 열매로 보았다. - P202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육체성이 폐지된다는 것이 아니다. 혈과 육은 부패하는 것, 변화무쌍한 것,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일컫는 전문적인 용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대조가 되는 것은 우리가 육체적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육체적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대조가 아니라 부패할 육체성과 부패하지 않을 육체성 사이의 대조다. - P248

폴킹혼은 내가 보기에 호소력있는 현대적 은유를 하나 제시한다....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프트웨어를 다시 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하드웨어를 주실 때까지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하나님의 하드웨어에 다운로드 해놓으실 것이다. - P258

예수님이 하신 일의 요점은, 자신이 장기적으로 미래에 대해 약속하신 것을 현재에 실제로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이 미래에 대해 약속하신 것과 그 당시에 하고 계셨던 일은, 육체 없이 영원히 살라고 영혼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현재 세상의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어 그들이 현재에서부터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인 창조계의 회복을 누리게 하고, 그럼으로써 그들도 이와 같은 더 큰 프로젝트의 동료이자 동역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 P297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계속 주장한 것처럼, 부활의 요점은 죽는다고 해서 현재의 육체적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죽은 육체를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다. 현재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육체를 위해 위대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그림이든 설교든 노래든 바느질이든 기도든 가르치는 일이든 병원을 짓는 일이든 우물을 파는 일이든 정의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일이든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든 현재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미래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 P298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 P305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현 새대 안에서 하나님의 회복된 창조를 나타내는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징표들을 보여주라는 부름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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