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위 정도만 살펴보겠다.

(5월 첫째주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너무 뒤늦게 올린 거라 지금 순위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1~2. 팀 마샬, 지리의 힘 1~2










최근에 팀 마샬의 <지리의 힘 2>가 새롭게 출간되어 저자의 전작도 동시에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했다.

1편은 읽고 있는데, 서문이 책 전체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이 잘 느껴지게 잘 쓰였다. 내용도 좋다.


2편도 읽을 것 같지만, 과연 이게 역사 분야인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요소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팀 마샬의 책은 지리를 가지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긴 하나 그것이 주는 아니고 보다 현재의 지정학적 요소에 더 집중한 책이니 역사보다는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게 더 타당하다.

3.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나는 이 사람 만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알차니 계속 시리즈가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겠지만,

이 책이 학적 결과물로는 보이지 않기에, 나는 읽어볼 생각이 없다.









4.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몇 년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가지 않는 책이다. '이거 읽고 있으면 남들에게 좀 있어 보이는 책'의 한 예? 나도 고3 때 처음 읽고 대학교 수업을 위해서도 2번 읽어봤는데, 읽을수록 그렇게 탁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읽어볼 만은 하지만, 크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것뿐만 아니라 <호모 데우스>도 마찬가지. 이런 빅 히스토리 류의 책을 원한다면, <옥스퍼드 세계사>를 권한다.

더불어 유발 하라리의 다른 책 중에선 <극한의 경험>과 <대담한 작전>을 더 재밌게 읽었다.
















5. 롤랑의 노래

이 책이 완역된

게 참 신기하고 나도 읽고 싶은데, 이 책도 역사 분야인지는 모르겠다.

호메로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을 모티프로 산고 있다 해도 아무도 그 책을 역사라고 하지 않듯이, <롤랑의 노래>를 역사라고 하는 건 좀 뜬금없다.









6. 도미닉 프리스비, 세금의 세계사

안 읽어본 책이라 뭐라 하긴 그렇지만,

이 책도 어떤 학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많이 공부하고, 글도 재밌게 썼을 테고, 나도 이걸 읽으며 여러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테지만, 과연 세금과 역사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당장 책의 논의를 집약하고 자신의 주장을 일괄하는 서문도 없다. 재밌는 사례 모음 이상이 아닐 것 같아 나는 안 읽을 것 같다.








7. 유홍준, 한국미술사 강의 4

아직 안 읽은 책이다. 입문서라고 하니, 일단 담았다가 나중에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지면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책 소개에서도, 이 책은 한국 미술의 역사(histroy)가 아니라 한국미술 이야기(story)라고 하듯이, 이 책을 역사 분야에 집어넣은 것은 실수인 것 같다.








8.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오랫동안 읽히는 역사 교양서이지만,

나는 이 책 안 읽었고, 읽어볼 생각도 없고, 읽어도 본격적인 서평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 전공자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이 책을 쓴 목적 자체도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따로 얘기할 필요 없고, 나는 다른 더 좋은 책이 있으니 안 봐도 그만이다.

이 책 말고 묵직한 읽을거리를 원한다면, 앞서 말한 <옥스퍼드 세계사>나 <케임브리지 콘사이스 세계사>를 추천한다.
















9.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김산해 선생은 수메르 신화를 오래 연구한 학자이고, 나도 그가 번역한 <길가메시 서사시>를 좋게 읽었기에,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았다. 하지만 이 책도 신화 분야이지 역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확실히 역사책이지만 이 책은...글쎄










10. 한영준,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서양 편

지도 퀄리티만 좋다면 한번 구매할 가치는 있을 듯하다.

근데 나는 이미 아틀라스 시리즈가 있기에 딱히 사고 싶지는 않다.







11. 황현필, 이순신의 바다

역사 선생님이고, 유튜브까지 개설해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 쓴 이순신 책이다. 역사 교사들의 책은 늘 인기인 것 같다. 우선 오랜 강사 실력으로 다져진 스토리텔링 능력과 쉬운 글쓰기, 그리고 아주 명쾌하고 속시원한 설명 때문이겠다.

사실 명쾌하다는 것은, 어떤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의와 관점들, 고려사항들을 묵과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선악의 구도를 딱 잘라 나누거나 이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 내용의 책들은 기피하는 것이 좋다.

읽지도 않은 책에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저자 자신의 편향성 문제도 그렇고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임진전쟁으로는 이미 읽어볼 책들은 구비한 상태이고.







12. 벤저민 카터 헷,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법학과 역사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이 쓴 히틀러 집권에 관한 책이다. 나도 정말 관심이 많은 주제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책을 보유 중이지만(기본 서적인 <히틀러국가>,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문화사 서적인 <대중의 국민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담아본다.
















13.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책은 추천하는 책이다. 과학사, 지구사 관련으로 가장 먼저 읽어볼 만한 입문서이면서 재밌고 술술 읽힌다.








14. 노승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한국 신화를 다룬 책인 것 같다. 이쪽에 관심있다면 읽어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5. 무적핑크, 삼국지톡 4

무적핑크 같은 만화가가 삼국지를 다루었으니, 작가 특유의 그림체와 유머로 재밌는 삼국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름 공부도 되겠지만, 이런 책은 역사 공부용보다는 재미용이 더 알맞지 않을까 싶다.








16.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 편

TVN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강의들을 텍스트로 엮은 것이다. 전문가들이 나와 특정 사건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니, 얻어가는 것도 있을 테지만 목차만 봐도 느껴지듯이 체계성은 없을 것 같다.








17. 조선시대사 1

20. 조선시대사 2

이 책이 꽤 생각보다 순위가 높다. 나도 가지고 있기는 한데, 그렇게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1권 첫장의 조선정치사 개괄은 그리 도움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조선시대 국가, 국제정세, 사회, 인간군상에 대해 다양한 주제를 알 수 있으니, 한 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18.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올해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70년이다. 한중일의 관계와 외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접적 기원을 보자면,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각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이 책은 그것의 세계사적 성격과 유래, 영향 등을 다루었다. 이 책은 읽어볼 만할 것 같고, 나도 꼭 구매해서 읽을 것이다. 하타노 스미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와 역사문제>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19. 김수환, 혁명의 넝마주이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통해서 소련의 아방가르드를 재해석한 이 책은 아직 정확히 무슨 책인지 파악이 안 된다. 역사철학도 있는 것 같고, 역사, 철학, 미학, 문예비평이 복합적으로 섞인 책 같다.

나중에 발터 벤야민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때가 있다면, 읽어봐야겠다.









21. 발레리 한센, 1000년

발레리 한센의 책은 <실크로드>를 읽어봤는데, 매우 배우는 게 많았던 교류사 책이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내 관심 저자가 되었는데, 절판된 <열린 제국>도 흥미로워 보이고 <1000년>도 주제도 흥미롭고 주장과 다루는 대상도 흥미롭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22. 처음 읽은 식물의 세계사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은 이 책과 비슷한 주제로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은 과연 어떨까. 읽어보신 분들이 감상평 좀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23. 세키 신코, 지리로 읽는 세계사 지식 55

또 지리 - 세계사 책이다. 몇달 간격으로 같은 주제의 책이 이렇게 쏟아지는 건 뭔가 웃기다.

이 책은 목차만 봐도 딱히 깊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55가지 주제를 택했으나, 그 주제들이 세계사에서 정말 중요한지 의문이 가고 지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될 사건들도 지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24. 곰브리치, 세계사

세계사 공부가 목적이라면, 굳이 이 책은 안 읽어도 된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여전히 추천하는 서양 미술사 책이나, 세계사는 최근에 나온 다른 더 좋은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25.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이 책도 역사는 아니다. 신화, 문학 카테고리에 들어갈 책이지.















25위까지를 봤는데, 이 중에서 역사책이라고 할 만한 건 절반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본격적으로 깊이 있고 학적으로도 볼 만하다고 판단하는 역사책은 다시 절반 정도인 7권(사피엔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조선시대사 1~2, 1000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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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김민우님^^
 
쇠얀 키에르케고어 -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비아 문고 5
매튜 D.커크패트릭 지음, 정진우 옮김 / 비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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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키에르케고어의 모든 저작을 개괄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할 법한 몇 가지 핵심 개념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매튜 D. 커크패트릭은 개인과 윤리의 '토대' '체계' '내용'으로 나누어 쇠얀 키에르케고어의 문제의식, 그 해결, 실천적 의미 등을 개략적이지만 핵심을 위주로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키에르케고어의 물음은 하나로 귀결된다 - "당신은 진정으로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직업, 성격, 국적 등등. 그러나 키에르케고어가 봤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 이름, 자기 앞에 직접 드러난 현재 상태, 관습(이런 것을 포괄하여 "직접성"Immediacy으로 개념화한다) 등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며, 이렇게 외적인 행위나 지위로만 규정된 삶은 자기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며, 개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규정할 때에는 자신이 중시하는 것,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 키에르케고어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토대"이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자기 규정의 토대를 상실했다. 자신을 의미있게 만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토대의 상실의 결과는 불안과 절망이다. 이는 인간의 외적 행위와 내면적 본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생기게 된 특수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배향이라면,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하나님으로의 귀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실재(Reality)"를 확립한다. 여기서 키에르케고어가 기독교의 '우상' 개념을 재해석하여 진술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실재'는 신 없는 세계에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 불안과 절망을 버티기 위한 버팀목으로써 창조한 어떤 규정이다. 그러나 "그 실재는 근본적으로 유한"하며, 그에 따라 "결국 붕괴한다." 신이 될 수 있다는 인간의 신념과 삶의 방식은, "올바른 방향을 지시해줄 어떤 방향등도 존재하지" 않은 "어지러운 자유"에 불과하며, 그 무한한 자유 속에서 인간은 자기 마비에 걸린다. 실재의 귀결은 "실재의 체계화"이다. 자신의 유한함을 버티지 못하는 인간은 유한성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만든 실재로 진리로 삼아 거기에 의존하고, 실재로 세계를 일관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교인은 다를까? 키에르케고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교인이 더 절망적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영원한 진리와 하느님의 은혜를 값싼 은총으로 둔갑시켜 버리며, 고정된 종교 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하나님을 인간적 종교적 실재에 가두고 허위의 심리적 안정만을 구한다. 이 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저속한 물질적 요구를 총족시켜줘야만 하는 민원 창구인으로 전락한다. 이는 최악의 범죄이다. 이렇게 절망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환상적 실재에 매몰된 개인은 "자신을 상실해" 버리고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망각한다."


방향을 잃고 자신을 상실한 상태는 확실히 "곤경"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어의 대답은 간단하다. 너 자신, 즉 개인(단독자)이 되어라". 이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는 '실재'에 기초한 삶을 거부하는 "탈구축(De-Construction)이며, 둘째는 결단을 통한 자아의 창조라는 "재구축(Re-Construction)이다. 실재의 기만성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거부하고 거짓된 토대에 기반한 삶을 거부하는 이 이중의 거부를 통하여, 그리고 "자아와 진실로 마주"함을 통해서, '나'는 진정한 '나'가 된다.


나 자신이 되는 과정은 고독하며 고통스럽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듯한 경험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제게도 저 자신이 확연치 못했습니다(nec mihimet ipsi vel ipse conspicuus, 7.1.2.)" 키에르케고어가 말하는 탈구축과 재구축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즉 나를 낯설게 볼 것을 요구한다. 내 삶은 무엇에 기초하여 움직이고 있으며,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칙들은 무엇인가? 나를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상실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변화는 반드시 나 자신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외피만 바꾼 것에 그친다. 그리고 이것은 단독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고백록> 8권 회심 직전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모든 것에서 벗어나 홀로 되어(essere solo)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으로 나를 재구축할 것인가? 단독자의 삶, 단독자이기를 거부하는 삶,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누구의 도움이나 압력이 개입될 수 없고 개입되어서도 안 되는 단독자의 의지적 선택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나 자신을 바라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키에르케고어를 반쪽만 이해한 꼴이 될 것이다(혹은 아예 이해하지 못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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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주트의 <재평가>로 평가해보는 읽지 않아도 될, 읽지 말아야 할 저자들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현대사 최악의 박해,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청년기에 대해서, 특히 남쪽과 동쪽의 불운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매우 독일적인 편견을 지니기도 했다. 아렌트는 1944년에 쓴 글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망명자들의 신문을 이렇게 경멸했다. <먼 유럽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국경 분쟁을 두고, 이를테면 테셴이 폴란드에 속하는지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빌뉴스가 폴란드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에 속하는지를 두고 머리가 빠지도록 걱정하고 있다.>"


"거드름 피우는 고급 독일적 특성은 아렌트가 미국의 유대인과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설명은 마르크스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거장의 해석에 적합한 텍스트만 고른 다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최고로 난해하고 이기적이며 비역사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나 철학,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주된 죄과는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알튀세르에게는 이 점이 중요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 조직의 당혹스러운 역사를 인정하되 혁명적 전지(全知)라는 그 주장에서 무엇이 남았든 그것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스탈린과 소련의 행보는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없이 그저 스탈린의 실수일 뿐이란 것


"알튀세르는 최근 역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튀세르는 생애의 끝에 가서야 마키아벨리와 여타 서구 철학의 고전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마르크스의 저작도 불충분하게 일부만 알고 있다고 인정한다. 알튀세르는 또한 정치 분석에서는 초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하다. 알튀세르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잊지 못한 것 같다. <부르주아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소련 진영의 반체제 인사들을 경멸하고...<믿지 못할 잔혹한 굴라크 이야기를 퍼뜨렸다>고 멸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범주들을 필사적으로 끄적거리는 중세 시대의 2류 스콜라 철학자를 닮아갔다. 그러나 가장 모호한 신학적 공론이라도 대개 중요한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알튀세르의 몽상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알튀세르의 몽상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난해한 정치적 변증론일 때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당의 공식 논평을 생각하게 하는, 알 듯 모를 듯 무미건조한 언어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프랑수아 퓌레는 언젠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프랑스 공산당을 떠난 것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홉스봄은 남기로 결정했고, 그 선택은 홉스봄의 역사적 직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21세기에 무엇인가 이로운 일을 하려면 우선 20세기에 관해 진실을 말해야 한다. 홉스봄은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으로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과 그가 한 일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홉스봄이 미래 세대에 급진파의 바통을 전달해주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좌파는 오랫동안 자신들 안에 있는 악마 공산주의자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했다."


"에릭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방해 없이 휴식을 취한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잠을 잤다."

->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외면한 채 역사가의 허물만 쓴 방관주의자 홉스봄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가 미국의 시각으로 심히 편향되었다면, 이는 자료의 불균형 탓일 리가 없다. 이 책은 단연 편파적인 시각의 산물로 드러난다. 개디스는 사과할 줄 모르는 승리주의자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쓴 냉전의 역사를 냉전이라는 주제를 흥미롭고도 지속적으로 타당하게 만드는 것의 대부분을 놓치는, 순진하게도 자화자찬하는 설명으로 치부하고픈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실수가 될 것이다. 개디스의 해석은 현대 미국에,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는 물론 자국의 역사와도 이상하게 분리되었으며, <벽난로 옆에서 듣는 해피엔딩의 동화>에 굶주린 걱정 많은 나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냉전의 역사>는 미국에서 역사로서나, 책 표지의 추천 문구에 들어 있는 칭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을 처리할> 방법을 가르치면서 주는 교훈에서나 널리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울적하다."


"개디스의 책이 미국 내에서 냉전의 성격과 냉전이 종결된 방식, 냉전이 미국 안팎에 남긴 끝나지 않은 근심스러운 유산에 관하여 오해와 무지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읽어야 할 저자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앞서 썼던 글들의 요약이고 발전일 뿐만 아니라 카뮈의 관심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현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하지 않은지를 일깨우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그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당대의 프랑스에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도덕적 권위이며, 이는 <최초의 인간>이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책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고 다음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점에서 훌륭하다."


"전자기기 너머의 청중이라는 찬미의 거울 앞에서 멍청하게 멋이나 부리며 자신을 높이는 미디어 지식인의 시대에, 카뮈 특유의 정직함은, 예전에 학교 선생이 말했던 <너의 본능적인 정숙함>은, 거짓 복제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걸작 수제품이라는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지닌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쓴다. 카뮈는 <작품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룬 도덕가들의 긴 계보를 잇는.......현대의 계승자를 대표한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자신을 받아준 나라들에서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룬 3권짜리 훌륭한 저작인 이 책은 1967년에 파리에서 폴란드어로 출간되었고 2년 후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했으며 지금은 여기 미국에서 노턴 출판사가 한 권짜리로 다시 찍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은 현대 인문학의 기념비적 저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코와코프스키가 보기에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투쟁에 관한 명제들 때문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이행의 약속 때문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독특한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실패한 예언자이고 그의 가장 성공적인 제자들은 독재자 집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기획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에 속하는 몇몇 사람에겐 비할 데 없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산당의 통치에 희생된 나라들에서도 당대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마르크스 사상과 그 혁명적 약속의 매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진보주의 정치의 뿌리 깊은 <구조>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는, 아니 마르크스주의 범주들에 기생하는 언어는 사회민주주의부터 과격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온갖 정치적 저항에 형태와 암묵적인 통일성을 부여했다."


"시장의 승리와 국가의 후퇴를 성원하는 자들, 오늘날의 <평평한> 세계에서 경제적 주도권의 무한정 확대를 축하하라는 자들은 지난 시절 이렇게 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잊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가 믿을 만한 안내자라면, 희생양은 아마도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디지털 방식으로 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만들고 공산당의 자증스러운 상처가 없는 마르크스주의 테이프를 재생하고자 꿈꾸는 자들로 말하자면, 결국 모든 것을 망라하는 통치 <체제>로 귀결될 것이 빤한 포괄적인 사상 <체계>란 도대체 무엇인지 빨리 자문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앞서 보았듯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토록 유례없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사실상 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사이드는 일신상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공적 봉사를 수행했다. 사이드의 죽음으로 미국의 공적 생활에는 큰 빈자리가 생겼다. 누구도 사이드를 대신할 수 없다."















아서 케스틀러

"소련의 허상을 깨뜨리는 데에는 그 무엇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낮의 어둠> "이 소설의 한 가지 매력은 공산당의 작동 방식과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포착하고 확인했다는 데에 있다.....이 책은 대중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한 독재정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과 논거, 재판을 조작하는 거짓말이자 사기로 제시했으나, 식별력을 더 갖춘 지식인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기묘하게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제시한다."


"케스틀러가 야경봉보다 변증법을 강조한 것은 공산주의가 그렇게 많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케스틀러가 공산주의의 최악의 모습을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케스틀러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분열과 갈등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이란 바로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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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5-19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논쟁이 많을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책 내용 중 읽지 말아야 할 저자 한나 아랜트는 백퍼 동의합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과 특히 존 루이스 개디스는 잘 수긍 되지 않습니다. 전 존 루이스 캐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안 읽어본 분들께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추천하고 싶습니다. ㅎ
전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읽을 필요 없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여튼 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김민우 2022-05-19 20:4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정말 마구마구 추천하고 다니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단 한 개의 글도 허투루 넘길 게 없습니다. 대가다운 균형잡힌 시각과 체계적 글쓰기가 인상적입니다.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올해 제가 읽은 첵 중에 이 책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김민우 2022-05-22 07:43   좋아요 1 | URL
읽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저자가 한 말은 아니고. 이 책을 읽은 저의 결론입니다 ㅋㅋㅋㅋ 홉스봄의 저작들은 여전히 의미있긴 하지요. 개디스의 냉전사 책은 안 읽더라도 역사의 풍경은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도시락 싸들고 다닐정도로 좋아하시는군요 ㅋㅋ
 
복음서와 만나다 - 예수를 그린 네 편의 초상화 비아 만나다 시리즈
리처드 버릿지 지음, 손승우 옮김 / 비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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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를 이루는 중요한 두 축은 바울 서신과 사복음서이다. 바울의 신학 사상도 구약과 구전으로 초대 교회에서 전승되었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어록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신약>을 처음 읽으려는 이들은 복음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교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그리스도의 사상에 대해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한다. 바울이든, 아우구스티누스이든, 토마스 아퀴나스이든, 마르틴 루터이든 모두 후순위다. 그렇게 복음서를 읽으려고 막상 펼쳐 들어도 이 길지 않은 책들을 읽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약 2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쓰여 시공간,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늘날의 전기와 달리 한 개인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지 않는 복음서의 서술, 신화적 사건들, 서로 상충되는 듯한 이야기들(미묘하게 서로 다른 예수의 말씀과 행적의 순서 등). 이 모든 것은 복음서를 진지하게 읽는 데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복음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법론을 다룬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필요를 채워줄 뿐 아니라 복음서라는 책 자체에 대한 일반적 이해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 신약학계의 논의를 잘 반영하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자이자 학자인 저자의 고유한 견해도 들어가 있어, 이 책은 복음서를 갓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요긴한 입문서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더 깊은 독해로 안내해주기까지 한다. 초심자의 입문, 일반인의 교양, 학인을 위한 교재라는 성취를 모두 이룬 것이다.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지를 논하기 전에 저자는 해서는 안 되는 독법을 지적한다. 그것은 네 개의 복음서를 구별 없이 혼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각각의 책에 대한 이해까지 가로막는다. "별다른 고민 없이 네 개의 초상을 하나로 혼합하려는 시도는 복음서 저자들의 탁월함을 음미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예수를 이상한 눈으로 이해하게 할 뿐이다." 비근한 예로 태종을 다룬 수많은 사극 드라마들을 거론할 수 있다. <육룡이 나르샤>, <태종 이방원>, <정도전> 등은 모두 태종이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 드라마들을 모두 하나로 합치는 것은 각 드라마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예수의 이야기를 썼을 때, 각각이 가진 예수에 대한 입각점이 있을 테고 이를 전기로써 드러내기 위해 세심하게 이야기를 배치하고 단어를 골랐다. 나는 전에 실제로 사복음서의 내용을 통합하여 쓴 예수 전기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책의 시도는 각 복음서가 가진 특징과 유의미한 신학적 논점들을 획일화해버리며, 예수에 대한 이미지들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오류를 피하려면 복음서의 장르와 그 형식들을 이해해야 한다. (모나 후커의 <복음의 시작>은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복음서의 도입부를 분석했다)​



"복음서는 일종의 고대 전기다." 이것을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복음서는 내러티브 양식으로 기록된 그리스도론, 좀 덜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론, 문학적으로 '내러티브'와 '양식'이 이 4개의 초상화를 규정하는 요소가 된다. 이중에서 '양식'이라는 요소에 집중한 것이 양식 비평이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쓸 때, Q라고 불리는 초기 교회에서 전승되었다고 추정되는 예수 어록 모음집과 각자가 독자적으로 가진 전승들을 이용하였다. 이런 자료들을 '비유' '갈등 이야기' ''기적 이야기' 등으로 정리하여 특정 '단화'(pericope, 오려내다라는 뜻을 가짐)들을 보존하고 활용하였다. 양식 비평을 통하여 우리는 각 자료들이 전해지던 초대 교회의 역사적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양식 비평은 개별적 구절에 관심을 두고 정작 이 자료들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배치하고 편집한 저자는 보지 못한다. "양식 비평은 복음서 구절(단화)들에 역점을 둔 나머지 복음서 전체를 큰 그림으로 보지 못했다. 양식 비평은 복음서 저자들을 저자가 아니라 구전 이야기를 받아 적는 서기 정도로 간주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나온 새로운 접근 방식이 편집 비평이다. 편집 비평에서 보는 복음서 저자들은 자각적 의식을 지니고 자신의 관점을 청중에게 알리기 위해 구조를 짜고 내러티브와 단어를 고르는 신학자, 설교자, 작가이다. 반복되는 모티프, 형식 등을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외부적 요소에 의지하지 않고도 각 복음서의 의미와 신학적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작업에는 문학 비평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저자, 독자, 이 둘을 잇는 본문의 삼각관계는 모든 문학의 공통사항이며, 복음서에는 일정한 플롯과 갈등,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수사학 기제와 비유, 반어법, 상징 등 문학적 장치가 동원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사복음서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복음서 독법은 편집 비평과 문학 비평의 방법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2장부터 5장까지의 복음서 해설은 이런 관점에 입각하여 전개된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개략적으로 정리하였으니, 이제는 실제로 읽을 차례다. 저자는 에스겔서 1장 1~10절에 나오는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상징을 네 편의 예수 이야기를 해석하는 틀로 활용한다. 저자는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상징들의 특징과 닮아있다. 목차의 제목에는 그 핵심들이 드러나 있다. "포효하는 사자- 마르코가 그린 예수" "이스라엘의 선생-마태오가 그린 예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이-루가가 그린 예수" "높이 나는 독수리-요한이 그린 예수".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반드시 옆에 성경 본문을 끼고 있어야 한다. 집에 성경이 없다면, HANGL NOCR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 저자의 주해를 주욱 따라가며 본문을 반복해서 읽는다면, 복음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경, 신학서적,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서적, 심지어 종교적 색채가 없는 서양 서적 등 무엇을 읽더라도 기본이 되는 내용이므로 숙지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2장부터 5장을 순서대로 읽어보고, 후에 옮긴이가 말한 대로 수난 기사나 부활 기사 등 관심 있는 주제를 잡아 각 복음서에서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파악하며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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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의 비망록 - 사회주의적 낙관성으로 지켜낸 인간 존엄의 기록 패러독스 9
율리우스 푸치크 지음, 김태경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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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한 인간의 신념과 삶의 방식이 극한까지 시험받는 곳이다. 특히, 감옥처럼 극단적인 공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옥중서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들(본회퍼, 김대중 등)은 부당한 죽음에 처한 인간이 자신이 따른 신념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는 절박함까지 담겨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은 고통스러움과 함께 웅장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과 대비하여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삶을 돌아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와 연결된다.

이 책은 율리우스 푸치크가 수감생활 도중 쓴 잡문들을 죽기 직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푸치크는 20세기 초중반 격동지였던 체코 출신의 공산주의자다.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적 삶의 방식(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탐구 중이지만)을 몸으로 체현한 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통해 그가 가진 삶의 방식들을 볼 수 있고, 나아가서 마르크스적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가겠다.

그는 나치 치하 체코에서 반히틀러, 반나치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수감, 1년 뒤인 1943년 처형되었다. 이 책은 1년 동안의 기억, 감옥 안의 수많은 인간군상에 대한 그의 관찰, 감옥이라는 고립되고 절망적인 장소에서도 놓지 않았단 희망 등을 담았다. 여기에 푸치크의 부인의 서문, 그가 주고받은 서신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역자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류의 수기를 읽을 때면 늘 그렇듯이,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대할 때면 무언가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동지들과의 유대감과 언젠가 다가올 승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러한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는 모습에서 부제로 달린 '사회주의적 낙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애초에 기대하던 이론적 통찰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따르는 공산주의는 무엇을 우선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향을 가지며, 이런 사태에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가 등. 이런 내용은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고, 짧은 단문들을 쓰는 것이 고작인 상황이었으니, 저자에게 깊이 있는 내용을 요구하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그래서 이 짧은 글만 보면, 사회주의적 낙관성이나 기독교적 낙관성이 크게 차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본회퍼 같은 이들의 글에서 본 것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는 것. 공산주의도 결국 하나의 종교적 가치체계라는 것일까?

그리고 이 사람의 활동약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론가가 아니라 투사였다. 그런 투사적 기질이 글에서도 엿보였는데, 이 사람이 처한 극단적 상황이 내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와 달라서 그런지, 혹은 내가 기질적으로 투사적 인물이 아니라 그런지 담백한 감동 이외에는 저자의 낙관 등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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