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절 감독의 대표작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는 유사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아서는 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플래쉬>는 교육방식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고 <라라랜드>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달콤쌉싸름한 사랑 영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화는 다른 위대한 영화들처럼 다방면으로 해석될 수 있고, 교육과 사랑을 핵심으로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해석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주제들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인물의 대사 및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면 두 영화는 사실 똑같은 얘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제란 꿈과 일상세계의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위플래쉬>부터 봐보자. 명문 음악학교에 다니는 네이먼은 고전 재즈 명인을 동경하며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하는 학생이다. 네이먼의 꿈은 일류 드러머가 되는 것이다. 어느날 그는 빌 플레쳐 교수의 눈에 들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빌 플레쳐 밴드는 학교에서 매우 실력 있는 학생들만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네이먼은 자신의 꿈에 한발짝 다가가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들뜬다. 드디어 첫 리허설 날, 여러 기대를 품었던 네이먼의 예상과 달리 그는 플레쳐에게 인격 모독 수준의 비난을 받는다. 플레쳐는 연주에 관한 한 지독한 완벽주의를 품고 있어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실수를 하는 학생에게 폭언과 욕설을 내뱉고 가혹한 폭력도 사용한다. 이 폭력적인 교육방식은 네이먼의 내면을 뒤틀어버린다. 이 왜곡된 내면과 꿈의 결과가 재즈 패스티벌에서의 네이먼이다. 그는 플레쳐의 인정을 받고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다. 어쩌면 그가 원하던 꿈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이렇게 보면 플레쳐의 잘못된 교육이 네이먼을 망쳐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과정은 더욱 복잡하다. 친척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네이먼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미 그에게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는 버드 리치를 예로 들며 젊은 나이에 죽더라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성취를 남기는 것이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다가 모두에게 잊히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가치관이다. 그에게는 꿈이 최우선이며 다른 것은 꿈을 이루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이다. 네이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학생의 실력만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빌 플레쳐를 만나면서 그 야망이 뒤틀린 형태로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대사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나는 위대해지고 싶어. 그런데 그러러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고, 그래서 우리는 사귀면 안 될 것 같아." 이런 말로 그는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꿈을 이루는 데 방해된다면 가차없이 잘라낸다. 네이먼의 세계관에서 꿈과 일상세계는 양립할 수 없다. 하나(꿈)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일상)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는 애인을 버리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아버지도 버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마저 잃었버렸다. 다르게 본다면, 네이먼이 가족, 사랑을 선택했다면 음악의 꿈을 버렸을 수도 있다.

<라라랜드>는 한층 더 풍부한 묘사와 섬세한 연출로 이 주제를 변주한다. 미아는 배우, 세바스찬은 재즈 뮤지션으로, 미아는 배우로서 성공하는 것으로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열어 전통 재즈의 맥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하다. 미아는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특별한 장점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세바스찬은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반대되는 음악을 한다. 그나마 얻은 일자리에서도 사장의 명령을 어겨 바로 해고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만난 둘은 꿈에 대해 얘기하면서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미래가 어찌될지 장담하지 못하지만,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둘은 서로의 꿈을 지탱하고 응원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영화에서 'City of Stars'는 두 번 나오는데, 이때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사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면 둘의 관계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장면에서 세바스찬은 부두를 거닐며 이 노래를 읊조린다. 거기서 느껴지는 정서는 별들이 정말로 자신을 비추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서 별은 꿈을 상징할 것이다. 자신의 꿈이 정말 이루어질지에 대한 회의와 의문에서 첫 번째 노래는 끝난다. 하지만 미아와 듀엣으로 부르는 두 번째 장면에서는 "이 도시가 이렇게 밝게 빛났던 적이 없었지"(You never shined so bright)로 끝이 난다. 둘은 서로를 비추는 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시작된 사랑은 역설적으로 둘의 사랑이 꿈을 이루는 장애물이 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여자는 망설이고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꿈을 포기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반대되는 음악을 한다. 미아는 재즈에 대한 세바스찬의 열정에 이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아와의 사랑을 위해 그는 꿈을 포기하였다. 미아의 역할은 그런 그를 다시 원래의 꿈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세바스찬의 역할 역시 미아가 주저 앉지 않고 배우의 꿈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둘의 사랑의 성격은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그 역할을 다한 순간 사랑 역시 끝이 난다. 미아의 오디션이 끝난 뒤 마지막 대화에서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합격하면 파리에 가서 너의 모든 것을 다하라고 조언하고 자신은 여기에 남아 나의 계획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은 '영원히 너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을 위해 노력하기에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별의 고백이다. '우리'로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서로를 비추는 별은 이제 자신을 비추는 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마지막의 플래쉬백 장면은 가장 달콤하고 로맨틱하지만 더불어 가장 슬픈 장면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상상으로 진행되는 이 플래쉬백은 둘이 영화관 의자에 앉아 스크린에 영사되는 상상을 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즉, 이 상상은 일종의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지 않고 둘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지를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그 영화 속에서 둘은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결혼하며 행복한 삶을 산다. 그 영화 속에서 끝나지 않는 춤을 춘다(둘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에도 춤을 추었음을 상기하자). 또는 영화 속에서만 둘은 춤을 춘다. 둘의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혹은 이 영화의 세계관 자체가 그러하니까. 결국 여기서도 감독은 꿈과 사랑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꿈을 추구하여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것은 포기하게 된다. 아니 포기해야만 한다. 이 결론에서 두 영화는 다르지 않다. <위플래쉬>는 이 결론을 극단적으로 들려주고, <라라랜드>는 달콤하게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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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2-1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보게된 글인데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Redman 2023-02-13 17: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