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개정증보판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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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선 작가는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유쾌하게 글쓰기를 하는 것이 몸에 밴듯하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공부하였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역사책을 주로 읽어온 나로서는 소위 역사학에서 말하는 '정설'이라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있다. 반면 홍대선 작가는 역사학의 '정설'에서 자유롭다. 그렇기에 그의 시선이 새롭다. 

  홍대선 작가의 새로움은 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첫째는 산성에서 우리 한국인의 특질이 만들어 졌다고 본다. 중국보다 앞도적으로 적은 인구수라서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높이의 차이를 이용한 활쏘기로 그들의 수를 적게 만들어야했다. 성이라는 좁은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성안의 공동 운명체로서 서로 배려하고 희생해야했다. 이것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면서도 약한 이웃을 위해서 배려하는 한국인의 특질을 만들었다. 

  수도없이 전쟁사를 가르치고 배웠지만, 산성방어라는 한국 전쟁의 특징이 한국인의 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사고의 확장! 그것은 내가 익숙한 곳에서 사방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번째는 고려 현종 시기에 대한 재해석이다. 우리는 보통 삼국 유민의식을 탈피해서 하나의 고려인이라는 생각을 갖게된 것을 대몽항쟁 시기에서 찾는다. 삼국 유민의식을 탈피하고 단군을 중심으로한 하나의 자손이라는 관념은 이성계가 나라이름을 정할때 조선이라 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홍대선 작가는 고려 현종 시기의 고려-거란 전쟁 시기를 주목한다. 현종은 불륜으로 태어나서 왕으로 즉위하고서도 거란과의 전쟁, 가뭄, 해충의 피해 등으로 고난의 길을 걷는다. 그럼에도 거란에 굴하지 않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다. 현종은 살아 있을때 부터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현종을 한반도 역사를 다시 세운 위인'으로 평가했다. 홍대선 작가의 평가를 받아들인다면, 고려 현종의 평전이 나와도 좋을 듯했다. 

  고려 현종시기 귀주대첩 이후,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바친다. 피터지는 황제국이 되기 보다는 윤택한 제후국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고려 사신은 송나라와 요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갈 때마다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일부러 난동을 피우고 폭행 사건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의 조공품을 무단 갈취하는 등 마피아처럼 행동했다. 두나라가 아무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꼴을 확인하고야 만족하고 돌아왔다."-197쪽


  고려 실리외교의 끝판왕이다.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고려!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갑과 같은 을질을 하는 고려였다. 이것이 진정한 실리외교이다. 고슴도치처럼 타국을 침략하지는 못하지만, 타국이 침략할때는 만만치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강소국의 모습이다. 바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강소국의 진정한 모습이다.

  홍대선 작가는 박식하다. 우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군사전문가 뺨치는 설명과 분석은 감탄을 자아낸다. 유쾌한 그의 글솜씨는 책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홍대선 작가의 '한국인의 탄생'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강소국 대한민국이 만들어야할 위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캐스팅 보트를 쥐며 갑과 같은 을의 모습! 타국을 침략하지는 않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모습을 고려에서 볼 수 있다. 홍대선 작가의 책을 계속 추적하며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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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 - 킴스트래블 국내 여행 산문집
킴스트래블 지음 / 용감한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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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갔다가 어머니를 뵈러 시골길을 주행했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녹음이 나의 가슴속에 밀려왔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예술품과 자연 경관을 마음껏 즐겼던 내가, 조국 산천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했다. 너무도 익숙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알지못했다. 타국의 아름다움을 보고서야 내 땅의 아름다움에 눈을 떳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를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주변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저자는 '물 위를 걷는 아름다운 산책'이라 말했다. 자동차로 가족과 함께 대청호 주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간단히 산책만 했던 곳이었다. 아름다운 사진 속 장면은 너무도 친근한 내 주변이 이토록 아름다운 산책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해주었다. 친근한 아름다움도 내 마음속에 담기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로마에서 돌아오고서야 내 고향 산천을 낯설게 보았다. 그 낯섦이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 다가 올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 킴스트래블의 사진은 대청호 산책길을 낯설게 해주었고, 그 아름다움이 나의 가슴속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비경을 보기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하다. 열정과 시간이 그 비용이다. 노고단, 세량지, 담양 메타세쿼이야, 옥정호 ...... 많은 절경을 보려면 공통적으로 새벽녘에 출발하여 동틀무렵 그곳에 도착해야한다. 안개낀 시기! 아직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지 않은 그 시기에 절대 비경을 볼 수 있다.

  세량지의 아름다운 풍광은 오전 6시에, 노고단의 아름다움은 오전 5시에 찍혔다. 자연은 경이로운 자신의 모습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자연은 '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면 그만한 댓가를 치루라'말한다. 너무도 쉽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 산천은 이를 거부한다. 아름다움을 보려면 너의 열정과 시간을 자연에 바치라한다. 그러기에 우리 산천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겨울에 종종 들렀던 대둔산을 저자는 '호남의 금강에서 만나는 설경의 극치'라고 설명했다. 킴스트래블의 이 설명을 읽자, 대둔산이 다시보였다. 너무도 가까이에 있기에 이정도 아름다움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비단 선지자만이 아니다. 가까이에 있는 산천도 너무 친근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는 너무도 익숙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몰라보았던 나의 눈을 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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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전략은 삼국지에서 탄생했다
임용한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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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제갈공명이 되고 싶었다. 그의 신기에 가까운 전술과 전략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도 많은 책을 읽으면 제갈공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았다. 병법서와 전쟁관련 서적, 역사서를 읽으며 탁월한 리더의 책사로 활약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곤했다. 이러한 나의 추억이 ''세상의 모든 전략은 삼국지에서 탄생했다'라는 책에 손이 가게 했다. 

  임용한 박사의 주옥같은 글들 속에서 나의 가슴을 울린 전략이 있다. 어쪄면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임용한 박사의 조언을 들어보자.

  

  "전술의 첫걸음은 내 안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서 시작한다."(128쪽)


  삼국지를 읽으며 제갈공명, 방통과 같은 책사들에 관심을 갖았다. 탁월한 전술과 전략만 있다면, 수십만 대군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용한 박사는 전술의 첫걸음을 내안의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수십만의 적들과 상대해야하는 전쟁터에서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은 모두 대범하고 항상 선봉에 서서 적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한 장수라할지라도 어찌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 두려움을 극복했기에 대담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승부사의 기질을 가지고 철저한 준비와 계산을 했다면 내 안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담한 용기를 낼 수 있는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 임용한 박사는 우리가 지나치는 그 평범한 진리를 말했다.


  "예측이 틀려서가 아니라, 정확한 선택과 실행을 하지 못해서 패배한다."(90쪽)  


  전쟁계획서와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상대의 공격방향과 전술을 예측하지 못해서 패하기 보다는 정확한 예측을 했으나, 전쟁터에서 정확한 선택과 실행을 하지 못해서 패하는 경우가 많다고한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전격전을 수행한 구데리안이 프랑스군 깊숙이 진격하자, 측면을 공격당하기 쉽다고 판단한 독일 지휘부는 진격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적진 깊숙이 진격하며 적에게 자신의 옆구리를 내어주는 것과 같다. 그 공포를 이겨내고 계획한 바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은 철저한 준비에 있다. 군대에서 자주들었던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말이 헛투루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준비된자만이 승리의 여신과 함께할 수 있다. 이 단순한 진리에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빛의 총량을 늘리려면 그늘을 빛으로 바꿔야한다."(342쪽)


  고유가 새로운 임지에 부임하자, 부정부패한 관리들이 도주하였다. 고유는 그들에게 "그들은 내휘하에서 일한적이 없다. 따라서 내밑에서 부정을 저지른적도없다. 그러니 모두를 복직시켜라."(342쪽)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 시장이었을 때의 일화와 정확히 오버랩된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자신이 부임하기 이전에 공무원들이 저지른 부정에 대해 주목하기 보다는 자신이 부임한 이후에 절대 부정을 저지르지 말도록 했다. 이재명 시장의 전략은 고유의 경우처럼 빛을 발하며 탁월한 행정가의 성과를 냈다. 

 뺄샘의 정치를 하기 보다는 덧샘의 정치를 시작하라는 것이 빛의 총량을 늘리는 전략이다. 몇일전,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당의 리더는 그릇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성안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도록하고 그들을 품어서 우리편으로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너 배고파서 왔지?, 가장 먼저 배신할꺼지? 라고하며 배척해서 되겠어요.'라는 말은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진정한 집권세력의 리더는 어떠해야하는지를, 빛의 총량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이재명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귀순한 사람의 과거 행적을 파묘한다면 우리 빛의 총량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승리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가 이를 증명한다. 


 "야망이 있다면, 관망은 버려라"(252쪽)


  조조보다 10배의 병력을 갖고도 천하패권을 다투는 싸움에 뛰어들지 않은 유표! 조좋와 원소의 양강구도에서 용과 호랑이의 싸뭄에서 모두 지치고 부상당하길 바랬다. 나는 유표의 전략을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다 지치면 힘을 보존하고 있었던 내가 그들을 제압하고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겠다.! 얼마나 훌륭한가? 나의 희생은 적게하면서 적이 약화될때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임용한 박사는 '야망이 있다면, 관망은 벌려라'고 당부한다. 유표의 훌륭한 인적자의 탈 속에는 소심함과 의심이 숨어 있었다. 조조가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자신을 성장시킨 반면, 유표의 소심함은 자신을 단련시킬 기회를 잃게했다. 도전이 없으면 성장도 승리도 없다.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대범하게 전쟁터에 발을 옮기는 용기가 있어야한다. 스스로 무너지기 싫다면 앞으로 나아가며 도전해야한다. 소심한 유표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했다. 실패가 두려워 관망하며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도전하자!  나아가자! 첫발을 옮기자!


  임용한 박사의 글들 중에서 나의 가슴을 울린 문장은 거창한 글귀가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우리가 지나쳤던 진리였다. 초한지, 수호지를 읽으며 현란한 전술과 전략에 주목하면서도 임용한 박사가 들려준 평범한 진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파랑새는 먼곳에 있지않고 우리주변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세상의 모든 전략은 삼국지에서 탄생했다.'를 읽으며 다시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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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민쌤의 챗GPT&AI 수업 실전서 - 오늘 배워서 내일 수업에 바로 쓰는 진짜 쉬운 챗GPT&AI 활용 가이드
원정민 외 지음 / 한빛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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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직사회에도 인공지능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체계적인 사용법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초등쌤들이 만든 책이라서, 초등쌤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으로 보인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나에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름 흥미 있게 본 것이 두 부분있다. 

  첫째, 실생활을 연계한 형성 평가 만들기이다. 평가 문항의 유형을 제시한 다음, '실생활과 연계하여 재미있는 문제를 만들어 주세요.답과 해설은 전체 문제가 끝나고 아래에 따로 제시해주세요.'라는 프롬프트를 넣고, 학습 목표를 제시하면 된다.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둘째는, 지문기반으로 평가 문항 만들기이다. 대상 학생을 제시하고, '평가를할 때 아래 지문을 기반으로 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평가 문항을 만들어주세요. 문항이나 선지에 지문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게 해주세요. 제일 아래에 정답과 해설도 적어주세요.'라는 프로프트를 제시하고, 아래에 성취기준, 평가 요소, 평가 방법, 지문을 제시하면된다. 꽤 유용할 것 같다. 한번 시도해 볼테다.

  급변하는 학교현장 속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잡무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보다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마냥 대단해보인다. 나는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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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ㅣ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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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 말하며 초인이 되라고 강하게 말하는 철학자 니체! 강해보이는 그는 아픈 사람이었다. 젊어서 교수가 되었기에 연금을 받으며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으나, 두통에 시달려야만했고, 매질받는 말을 몸으로 끌어앉으며 쓰러져서는 10년 동안 정신병원에 정신적 사망상태에서 살아야만했다. 그에 대한 애처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니체 읽기의 혁명'이라는 책에 다시 손이간 것도 이때문이다. 니체의 글을 읽으며 아픈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니체의 말은 강하다. 그에 말에는 힘이있고 시대의 금기에 주저하지 않고 맞서는 당참이 있다. 중세를 지배했던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용기가 있다.

 

"그런 신이라면 사라져라! 신이 없는 것이 차리리낫다.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개척할 일이며, 차라리 바보가 되고, 차라리 나 자신의 신이 될 일이다."-97쪽

 

동양의 불교를 창시한 싯다르타는 신이 아니다. 먼저 깨달은 자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라 부르지 않는가! 그런데, 서양의 종교는 유일신을 상정한다. 그는 절대자이다. 그리고 절대 복종을 강요한다. 이러한 신에 대해서 니체는 '그런 신이라면 사라져라! 신이 없는 것이 차라리낫다.'라고 당차게 외친다. 사실 신이라는 존재도 인간의 창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니체는 한다.

 

"인간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허버트 스펜서)

"신이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포이어바흐)

"신이 종교를 내려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종교를 만든 것"(니체)-138쪽

 

인간은 그 누구도 신을 본적이 없다. 보지도 못한 신이라는 존재를 인간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 원초적인 질문 속에서 종교의 등장, 신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다. 허버트 스펜서, 포이어바흐, 니체라는 걸출한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요청된 존재이다. 니체는 이러한 신의 존재를 직시했다. 그리고 신의 노예이기보다는 삶의 주인이고자 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위버맨시(초인, 극복자)가 되라하였다. 니체는 신의 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한 진정한 극복자였다.

19세기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마음속에서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죽은 신을 부여잡고 그 존재에 의탁하며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노예적 사람들은 삶의 허무를 견뎌내지 못하기에 무의미를 없애려고 거짓 의미를 부여한다. 가령 자신이 현실에서 고통당하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 생각한다."-193쪽

 

목사의 아들 니체는 기독교의 원죄론을 실날하게 비판한다. 어디 기독교 뿐이랴! 불교 신도 중에서도 오늘의 고통을 '전생의 업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노예적 생각에 잠겨 있는가! 삶의 허무를 견뎌내지 못하고, 신이라는 존재에 의탁해서 현실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낙타의 삶이다. 자신이 짊어진 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주인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니체는 '노예적 사람'에게 외친다. 극복자(위버맨시, 초인)가 되라고... 종말인(최후의 인간)이 되기보다는 짊어진 짐을 벗어 던지고, 사자가 되고, 아이가 되라고 외친다. 그것이 바로 극복인! 초인이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합리화시키기도하는 인간 말종이나 종말인들은 니체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여야한다.

 

손석춘은 니체에 대한 오해도 풀어주었다. 보통 니체가 젊은 시절 사창가에 갔다가 매독에 걸려 일생을 고통속에서 살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매독균이 뇌에 들어가 천재적인 업적을 이루기도한다. 그리고 매독성 치매로 진행되어 10여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고통속에서 살다 죽어야했다고 말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니체는 뇌종양을 알았다고 한다. 니체에 관한 자료를 더 찾아보았더니, 뇌수막종양가설, 유전성 다발성 뇌경색성 치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매독 환자에게 나타나는 신체적 징후가 니체에게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으며, 매독 발병 후 보통 2~3년 내 사망하지만 니체는 투병기간이 무려 11년이라는 사실이 그 근거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니체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물처럼 다가왔다. 얼마나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을까? 더욱이 자신에 대한 잘못된 사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졌음을 니체가 안다면 저승에서도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 손석춘은 니체를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 책 곳곳에 세심한 배려를 숨겨 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순우리말을 찾아 사용한 것이다. 한예로 밑절미와 같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단어를 사용하였다. '밑절미'라는 단어를 찾아보며 '밑거름'과 비슷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는 우리말을 사용하여 새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손석춘은 니체의 철학용어를 쉬운 말로 적절하게 다시 번역하였다. '최후의 인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니체는 '최후의 인간'을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긍정적 의미의 말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책을 읽을 때 너무도 괴리감이 컸다. 손석춘은 이를 '종말인'으로 번역했다. 이밖에 '초인'을 '극복인'으로 번역하여 니체의 철학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러한 번역어를 접하면서 니체의 철학이 보다 가깝게 나에게 다가왔다.

니체의 사상중에서 '영원회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이다.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이 생각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론적 역사관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순환론적인 '영원회귀'를 주장하는 니체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도에서 '영원회귀'를 말했다는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니체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가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비과학적인 우주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주장을 한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손석춘은 니체 철학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중우주'와 '평행우주'가 니체의 영원회귀와 '친화적 가설'이라 주장한다.

 

"니체 사후 지금까지 발전해온 우주과학으로 모든 것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영원회귀의 철학적 사유는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147쪽

 

우주에 대해서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보다 알지 못하고 있는 지식이 많기에 니체의 '영원회귀'가 과학적으로 입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먼 미래에 과연 니체의 '영원회귀'는 입증될 수 있을까? 아니면 철학적 가설로만 남아 있을까?

 

니체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하며 상승하고자했던 사람이다. 평생을 두통에 시달렸고, 루 살로메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갈구했던 소심하고 약했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빛났다. 당당히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신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초인이 되어야한다며 낙타의 짐을 벗어던지고,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을 누그려뜨려 아기의 부드러움을 가지라 말한다.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니체 읽기의 혁명'을 읽으며 더 깊어졌다. 특히, 기존 번역어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보다 니체의 철학에 알맞은 단어로 대체해준 손석춘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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