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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 변혁의 정치 리더십 연구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지음, 조중빈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라는 제목을 보고 역사를 통해서 탁월한 리더십의 근원을 찾아가는 책으로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페이지에는 여러사람의 추천글이 있었다. 이명박과 정동영이라는 정치인과 총리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낙마했던 문창극의 추천사가 보였다. 추천한 인물들을 보니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이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썼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과연 이책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이며 추천사를 쓴 인물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추천사를 썼을까?
1. 히틀러는 리더인가?
이 책의 도입부에 저자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의 수업시간에 이루어진 토론을 소개한다. '히틀러는 리더인가?'라는 주제에 학생들은 논리적인 답변으로 '그렇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는 단오하게 히틀러는 리더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국민을 지배했을 뿐 이끌지 못했다. 그는 통치자(Ruler)일뿐 지도자(Leader)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통치자는 신민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어서 지도자와 추동자 사이에 힘을 실어주는 필수 불가결한 유대가 없다. 겉으로는 통치자가 강해보이고 절대 무너질 것 처럼 보이지 않는 철옹성으로 보이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진 통치자들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았다. 특히 연산군의 경우 수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왕을 대리해서 일을 보러 가는 내시들에게도 길바닥에 엎드리도록 한 겉모습에서 그의 권력이 탄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궁궐을 지키는 내시들은 수채구멍으로 도망쳤고, 왕옆의 승지들도 왕을 내팽겨치고 도망쳤다. 연산군을 지켜줄 사람은 흥청의 기녀들과 장녹수 뿐이었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통치자가 아니라 팔로우들과 소통하는 지도자들이다. 노무현이 죽고 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음속에 살아있는 대통령으로 여기며 그리워하고 있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리더십은 통치술보다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속에서 진정한 리더는 몇명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두소지인(斗筲之人)을 어떻게 논의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며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별볼일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힌 것도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통치자가 부당한 통치를 하도록 내버려둔 많은 국민들의 뼈아픈 반성이 없이는 역사의 진보는 없다.
2. 나폴레옹은 리더인가 통치자인가?
이 책에는 다양한 리더와 통치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실을 통채로 넘겨받은 나폴레옹 시기의 공립학교의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엄격한 규율을 통해서 길러지는 프랑스의 학생들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되기 위한 사관학교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파시즘적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리더가 아니라 통치자였다. 그의 나폴레옹 법전(Civil Code)을 빼면 그는 철저한 독재자였다. 아니, 나폴레옹 법전에도 여성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어있다. 프랑스혁염의 과감한 진보성을 담기보다는 온건한 내용의 법들이 나폴레옹 법전에 정리되어 있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달콤한 결실만을 얻은 통치자들일 뿐이다.
프랑스대학명의 나라의 국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통치술을 가진 리더를 원한다. 그리서 번즈는 프랑스에서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을 채택하면서 보인 집단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는데, 왜? 프랑스에서는 그러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프랑스 인들은 강한 통치술을 자랑한 나폴레옹과 드골을 그들의 리더로 뽑았다. 흔히 프랑스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통치하기 힘든 국민이라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자, 프랑스대혁명에서 부터 최근의 68혁명까지!! 엄청난 혁명을 프랑스인들은 일으켰다. 프랑스인들은 자율과 자유를 원했고, 이러한 국민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제4공화국을 비롯한 많은 지배자들은 혼란만을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강한 리더십을 통한 안정을 원하게 된다. 이러한 욕망을 이용해서 강한 통치자들이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통치자들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인들에 의해서, 혹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권좌에서 물러난다. 이러한 고리를 제대로 끊지 못한다면, 프랑스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탁월한 리더가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번즈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리더십을 설명하는데 많이 인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보수주의자들은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에서 하위 단계인 생물학적 안전에 주로 주목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상위의 단계인 사랑과 귀속감 자아실현에 주목한다. 이는 우리사회 모습과 일면 닮아있다. 보수당들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안보위기론에 의존하려한다면, 진보주의자는 이를 뛰어넘어 남북한의 사랑과 한민족으로서의 귀속감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인류 평화라는 담론으로 까지 나아간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다. 사회혼란은 '안전'이라는 욕구를 분출시켜 보수파가 주도권을 잡게한다. 그리고 통치자가 권력을 잡는다. 그 안전이라는 욕구가 충족되고 나서는 다시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욕구가 분출되어 통치자를 몰아낸다.
3. 동의할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러서인지 우리 교과서의 표현과 다른 용어를 써가며 번역한듯한 구절들이 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라는 용어이다. 흔히 미국 독립혁명 이후에, 연방주의와 분권주의자가 대립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공화주의자'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혼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해주어야 이해가 빠를 텐데 이러한 설명이 전혀없다. 번역자가 이를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번역자는 충실히 번역만을 했을뿐, 독자를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논문집을 모아놓은 듯한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위한 친절한 안내를 포기한 듯 보였다.
번즈는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집단적인 조합체이다. 라고 규정하고하버드대학교를 개혁한 레십스 엘리엇의 사례를 든다. 그러나 레셉스가 어떻게 집단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것도 이 책의 저자에게 느끼는 불친절함 중에 하나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공포정치로 치닫게된 원인을 번즈는 왕의 국외 탈출시도 실패에서 찾는다. 그는 박애주의가 실해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포정치는 프랑스 내부에서 기인하것 처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왕에 대한 실망감이 공포정치의 출현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스모킹건이 되지는 않는다. 공포정치가 출현한 스모킹건은 바론 반혁명세력의 침략에 있다. 외부의 침략은 내부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광풍을 몰아치게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적군파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다. 산속에 들어간 극단적 공산주의자들은 산밖에 있는 그들의 '적'에게 공포감을 얻었다. 그것은 내부의 결속을 위해서 반역할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철저하게 살해하는 광폭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1만 5천리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에 안착한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그들을 둘러싼 장개석 군대의 공포속에서 정풍운동을 했고, 수많은 동지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1930년대 만주에서 불어닥친 민생단 사건의 비극은 외부의 공포가 내부에 얼마나 무서운 극단주의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번즈는 천재들이 결손가정 혹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읽은 교육학책의 내용과 상이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발달한 뇌과학에 따른면 뇌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껴야한다. 행복한 가정이 아이들의 뇌발달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천재들이 개인적 약점과 가정의 결손 혹은 불행이 있었다면, 이것은 그들의 열등감을 탁월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예술작품을 낳기 위해서 우리자녀를 불행에 빠드려야할까? 아니다. 헤르만 해세는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며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하여 고아원에 보내지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고통은 '수레바퀴밑에서'라는 작품을 낳았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고통은 해세를 성년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나의 자녀가 탁월한 예술작품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불행한 삶에 빠지도록 모험에 나설것인가? 아니다. 아이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 인격체가 스스로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이책에서는 공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한다는 뉘앙스의 글도 있다. 발명왕 에디슨은 공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창의성을 발휘하는 위대한 발명가가 되지 않았는가? 이밖에도 기존교육에서 벗어난 수많은 창의적 리더들이 많다. 그럼 공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하는 존재인가? 규율을 강조하는 지금의 학교문화는 바뀌어야한다. 그리고 창의성을 길러내는 교육이 이뤄져야한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길이 될 수는 없다. 초기 과학적 축적이 적을 때는 공교육을 통하지 않고 창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과학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육을 통하지 않고 고도의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아인슈타인이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에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단편적 과학사에 대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공부를 잘했으며,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갑자기 전학을 하면서 벌어진 일들을 공부를 못한 아인슈타인이 탁월한 천재과학자가 되었다는 신화를 만드는데 이용했을 뿐이다. 하루아침에 로마제국이 완성되지 않는다는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번즈는 법제도를 통해 투쟁을 억제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반드시 맞는 말을 아니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는 안정된 제도에서 왕이 된자가 현명치 못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왕이 연산군이다 그는 적장자로서 세자교육도 제대로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 최대의 폭군이되었다. 수많은 신하를 죽였으며, 갖가지 음행을 일삼았다. 그런데, 변칙으로 왕이 되었음에도 최대의 성군이 되경우도 있다. 바로 세종이다. 적장자 계승이라는 원칙을 벗어던지고 왕의 세번째 아들 충령이 왕이되었다. 그가 조선의 명군이되었다. 변칙이 정법을 때로는 뛰어넘기도 한다.
4. 변혁적 리더십!!
이 책에서는 변혁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수에즈 운하로 성공한 레셉스는 파나마 운하에 도전한다. 과거의 성공에 취한 레셉스는 수에즈 운하의 경험을 그대로 파나마 운하에 적용한 것이다. 지형이 전혀다른 두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에 취해서 자신의 앞날을 파멸에 몰아넣은 것이다. 수에즈 운하로 인해서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 레셉스는 교만에 마져 파멸하고 말았다. 레셉스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제 상황만 보지 않고 심층적, 근본적 요구에 반응하여 해결책을 추구해야만 했다. 변화를 추구해야만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나 변화를 싫어하는 자들이 많은가? 변화하는 수업환경 속에서 앞으로는 학생중심의 수업을 해야한다는 전달연수를 교육청에서 진행한 적이있다. 그런데, 나이든 어느 역사교사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해서 뭐하겠어! 젊은 사람들이 해얗지. 나 같은 사람은 몇년있다가 명퇴해야지'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교사에게 '그럼 빨리 명퇴하시죠. 지금 당장'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변화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되풀이하려고만하는 퇴물들과 같이 일을 해야만하는 자는 무척 고통스럽다.
변혁적 리더십은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 움직인다. 즉 준거의 틀이 그들의 욕구에 부합될 때만 변화는 가능한 것이다. 번즈는 리더십은 혼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학교에서는 리더십만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도자보다 수많은 팔로우 즉, 추종자가 있다.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팔로우들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팔로우들을 리더는 각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며, 팔로우가 때로는 리더가 되거나 리더에게 영감을 주어야한다. 그 대표적 예가, 촛불혁명일 것이다. 처음에는 탄핵에 주저하던 국회의원들이 촛불의 힘을 깨닫고 나서는 탄핵에 동조했다. 이것이 촛불혁명의 서막이었다. 리더없는 시위가 사회를 변혁하고, 국회위원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했다. 리더십의 역설일 것이다.
5. 진정한 가치 무엇인가?
'신의 의지'를 믿으며 통치술을 발휘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펠리페 2세이다. 그는 과학적 사고보다는 신의 의지를 믿었다. 그리고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에게 그의 무적함대는 괴멸되고 만다. 맹복적인 믿음은 시야를 좁힌다. 이렇게 시야를 좁히는 경우는 503도 만찬가지 일 것이다.
그럼 어떠한 믿음, 혹은 가치가 참다운 리더십발휘에 도움이 될까? 번즈는 '힘을 실어주는 가치'를 제시한다. 즉, 가치가 강할수록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힘이 실린다는 말이다.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공통의 이야기는 사피엔스를 강하게 만든다. 네안데르탈인보다 강할 것이 없는 사피엔스가 그들을 박멸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은 공통의 이야기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이용해서 대중을 조직화할 수 있었다.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혁명은 번번히 납치당한다. 강한 가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중을 하나로 뭉치게한다.
이러한 가치나 사상은 행복을 생산해낼 수 있을 때만 무기로서 효과를 지닐 수 있다. 번즈는 최고의 가치를 '행복'에 두고 있다. 책의 곳곳에 자신의 아이들 키우면서 터득했던 지혜를 리더십에 적용해서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교조화된 사상이 아니라면, 행복을 생산하는 가치라면 그 가치는 충분히 무기로서 효과를 지닐 것이다.
6. 대중과 리더와의 관계는?
번즈는 힘은 그 힘에 지배 받는 사람들이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강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물리적 힘보다 강한 것은 사람들의 동기라는 지적이다. 한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욕을 퍼부었지만, 부처님은 주인의 음식을 손님이 거절하면 그 음식은 주인의 것이라는 예화를 들려주며 자신은 그욕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지배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강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약자의 굴욕 때문이다. 이점을 우리가 명심한다면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탁월한 리더는 팔로우들이 따라오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이책에서 많이 예로든는 루즈벨트는 협력자로 민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과 서로 힘을 실어주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503이 방향 없는 선구자가 되려했다면 mon은 협력자가 되려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어느 리더십이 우리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번즈는 변혁적 리더십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회를 확대해야한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절대빈곤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할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더십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책의 서문을 열었던 번즈! 그는 진정한 리더십이 해결해야할 과제를 인류복지 증진(행복)이라고 절규하고 있다. 지구상의 많은 인류가 빈곤에 시달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글에서 대학자 다운 풍모가 풍겨나온다.
다시 추천글로 가자! 그럼 추천글을 쓴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리더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이 추천글에는 존재하는가?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지구의 시민들을 구원할 자가 과연 그들중에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