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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 -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평점 :
'여자전'이라는 책을 역사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읽지 않았다. 읽어야할 좋은 책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여자전'은 독서 목록에서 뒤로 밀려나 있었다. 작년 가을!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도서를 학교구성원들에게 나눠준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 책들 속에서 '헤로도토스 역사'와 '여자전'이 눈에 띄었다. 두책을 책장에 꽃아 놓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바쁜 일상속에서 여름방학 동안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못했다. 그때, 그동안 책장에 꽃혀 나를 기다리던 두책이 눈에 들어왔다. '헤로도토스 역사'를 읽으며, '여자전'을 읽는 병렬독서를 시작했다. 헤로도토스 역사'는 장기간에 걸쳐 읽어야할 책이었다. 반면 '여자전'은 손에서 떼어 놓기 힘든 책이었다.
'여자전'을 손에서 놓기 힘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책속에 등장하는 7명 여인의 삶이 너무도 가슴저리게 다가왔다. 한명 한명의 삶이 왜 이리도 기구한지...
지리산 빨치산 할머니 고계연부터 반세기 넘게 홀로 가문을 지켜온 종부 김후옹, 일본군'위안부' 김수해 할머니,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문화판의 걸출한 욕쟁이 할머니 박의순, 황진이보다 더 치열했던 춤꾼 이선옥, 한 달의 인연을 영원으로 간직한 최옥분 할머니의 삶이 너무나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이들 한분 한분의 삶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해도 너무도 흥미 진진한 작품이 탄생할 것 같았다.
종부 김후옹과 한 달의 인연을 평생 간직한 최옥분 할머니의 삶은 너무도 지고지순했다. 6.25 전쟁으로 헤어져 남편은 북으로 갔고, 54년만에 금강산에서 남편을 만난 김후옹은 남편도 없이, 아이도 없이 시부모를 평생 모시며 남편없는 종가를 지켰다. 6.25 전쟁으로 피난온 남편을 만났으나, 승려의 길에 방해될까봐 그를 떠났다가 다시 미래를 약속하며 한달동안 동거를 한 최옥분할머니! 그러나 남편 김종후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그녀의 배속에는 남편의 아이가 있었다. 남편과 살았던 1달의 만남을 뒤로하고 남을 생을 남편을 기억하며 딸을 키우며 보냈다.
한 여인은 살아있으나 만날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자녀도 없이 일생을 보냈다. 54년만에 금강산에서 만나고 나서 일본을 거쳐 받은 편지에 가슴 설래하는 모습은 20대 처녀의 순박한 모습이었다. 반면, 한달만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의 혈육을 키우며 일생을 보낸 최옥분은 남편을 가슴속에서 보내지 않았다. 남편의 무덤을 여러차례 이장하며 남편과 함께 했다. 김후옹이 54년만에 남편을 만났으나, 최옥분은 죽은 남편을 가까이 두고 여생을 살았다. 두 여인의 삶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보아야할까? 아니면 집착으로 보아야할까? 두 여인의 삶에 가슴이 져려온다.
빨치산 고계연과 팔로군 출신 윤금선의 삶도 기구하다. 고계연은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곱게 자랐다. 그러나, 6.25전쟁과 이념이 그녀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얼어죽거나 총맞아 죽거나 굶어 죽는 빨치산의 삶을 살았던 고계연은 동상걸린 자신의 발가락을 스스로 분질러 떼어 냈다. 전쟁과 이념이 그녀의 삶을 삼켜버렸다. 반면, 윤금선은 군대가면 늙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기에 팔로군에 지원했다. 고계연이 6.25라는 내전을 겪었다면, 윤금선은 국공내전이라는 중국 내전을 겪었다. 여기에 더해서 그녀는 6.25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나고 두 여성의 집에 살아 남은 남자는 없었다. 남자 없는 가정을 그녀들이 책임졌다. 쓰러진 가정을 끝까지 지킨 것은 여성이었다. 인간사 세옹지마라 했던가! 두여성은 마음좋은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성은 역사의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고통에 맞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강인한 존재였다. 두 여성의 삶에서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민초의 힘을 느꼈다.
이 책에는 두명의 예술인 여성도 등장한다. 걸출한 행위예술로 안기부도 제압한 박의순과 불교를 예술로 승화시킨 선무를 통해서 세계적인 춤꾼이 된 이선옥의 아름다운 삶이 등장한다. 박의순은 박종철 추모제와 9일장 사건으로 유명한 박의순은 남편을 설득해서 자신의 소극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6월 항쟁의 들불이 타오르는 그 시기에 박종철 추모제와 9일장을 해냈다. 보통의 남자도 안기부라하면 벌벌 떨던 그때에 그녀는 안기부요원에게 시원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의 욕설은 폭력과 모욕의 용어가 아니었다. 힘없는 민초들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녀의 욕설에 수많은 사람이 카타르 시스를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이선옥은 6.25 전쟁중에서 탁월한 춤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의 미를 동양의 불교 사상에 접목시켜 선무를 완성했다. 그녀가 세계적인 무용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혼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여인의 남편은 달랐다. 한명은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 한명은 그녀가 걷어차버렸다. 비슷하면서도 전혀다른 두예술가의 발랄한 삶이 아름답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삶을 살다간 여인은 일본군 '위안부' 김수혜 할머니이다. 취직시켜준다는 꾐에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모진 고문을 당해야했던 여인! 일본군에게 자신의 자궁까지 탈취당해야했던 그녀는 다행히, 광복후에 착한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과제가 한여인들의 삶의 무게를 짖누르고 있다는 현실에 갑갑함이 밀려왔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일곱명의 여인들의 삶이 곧 우리 근현대사였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한 여인의 삶이 이렇게 기구할 수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 시대와 사회에 도전하며 살아간 그녀들의 삶이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단순한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역사의 개척자이면서 운명과 맞서 싸운 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