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 전설로 사라진 역사, 그리스-로마 문명의 라이벌
한종수 지음 / 미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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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인은 왕조를 만들었고, 그리스인은 민주주의를 만들었으며, 페니키아인은 상업을 만들었다."(51쪽) 박물지의 저자 플리니우스의 말이다. 지중해 세계의 세 나라의 발자취를 너무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이집트와 그리스에 비해서 페니키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너무도 형편없다. 그 이유는 페니키아가 패배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배했기에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알파벳을 만들고 상업을 만든 페니키아인들의 역사가 애처러워 보였다. 

  페니키아는 제국을 건설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같은 제국의 그늘 아래서 번영했다. 제국 아래에서 번영을 구가하다보니 굳이 제국이 되려하지 않았다.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댓가가 필요하다. 전쟁터에 자국민이 피를 흘려야하고, 자신보다 강한 적들과 처절한 혈투를 벌여야한다. 페니키아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피흘리는 제국보다는 안락한 상업국가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러한 안락함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서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있었던 페니키아 모국이 멸망했다. 그러나,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카르타고는 더욱 번영한다. 모국이 멸망하면서 인재들이 카르타고에 왔다. 지중해의 넓은 바다는 카르타고에게 상업의 번영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번영이 영원할 줄 알았다. 로마와 대결하기 전까지는...

  로마는 페니키아를 포에니라고 부른다.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저력과 한계를 모두 보여주었다. 패장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카르타고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없애버렸다. 인간은 신이 아닌이상 완벽할 수 없다. 수많은 전쟁을 겪고 분석하며 탁월한 장수는 만들어진다. 이를 로마는 잘 알았다. 패장을 처형하기 보다는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어 명예를 회복할 수있도록 했다.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로마군을 강해졌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장수들은 성장할 수 없었다.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카르타고의 한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은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잔혹한 게임이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 부어야한다.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카르타고는 그러하지 못했다. 이익과 손실을 따지는 상업제국 답게 피흘리면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보다는 적당한 타협을 하거나, 돈으로 용병을 고용해서 대신 피흘리도록 했다. 로마보다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가 승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은 그토록 국민 개병제를 원했다. 그러나, 국민개병제가 이뤄진 것은 카르타고가 멸망하기 직전인 3차 포에니 전쟁 때였다. 모든 무기를 로마에 반납한 상태에서 적당한 타협을 하길 바랬던 카르타고는 로마가 원하는 것은 카르타고의 멸망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머리카락으로 쇠뇌줄을 만드는 처절한 저항을 하면서 3년을 버텼다. 너무도 늦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너무도 늦은 깨달음이었다. 늦은 후회는 자비심을 불러오지 못한다. 결국, 카르타고는 함락되고 남성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인생사 흥진비래, 세옹지마라했던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에 변화가 온다. 그 변화는 멸망한 카르타고에서 시작되었다. 카르타고의 마고가 쓴 농업서가 로마에 왔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의 많은 책은 불태웠으나, 마고의 농업서는 온전히 로마에 들여왔다. 농업서는 포도, 올리브 재배, 농장경영 등 로마 농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노예제 대농장인 라티푼디엄의 교과서가 바로 카르타고의 농업서였다. 그리고 라티푼디움은 로마군의 근간인 자영농을 몰락시켰다. 조국을 위해서 로마의 자영농은 군에 입대하여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카르타고 멸망의 댓가는 자영농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세상사 돌고돌아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할 것이라는 진리를 로마의 자영농은 알지 못했다. 

  카르타고를 멸망으로 이끄는데 작은 기여를 한 십자가형이 페니키아에서 유래한 형벌이었다. 바알신을 빋는 페니키아인들의 형벌 도구가 돌고 돌아 로마를 거쳐 그리스교도들의 상징이 되었다.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십자가형은 카르타고가 패장에게 가했던 형벌이었고, 이 어리석은 형벌은 카르타고의 멸망을 앞당겼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로마를 정신적으로 정복하여 세계 종교가 된다.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십자가형을 바라보며 나는 카르타고를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함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를 용서할줄 모르는 사회가 맞이하는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고로 읽혔다. 패자부활전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는 성장할 수 없다. 실리콘의 빅테크들이 어디 성공만했는가? 그들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더욱 현명해지고 있다. 한번 삐끗하면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한국 사회를 보며, 우리는 카르타고의 현대판 십자가형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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