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평점 :
정병준 교수가 현 앨리스를 추적한 계기는 1921년 상하이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사진속에는 우수에찬 현앨리스와 그녀가 연정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박헌영, 그리고 그녀의 동생 현피터가 총 18명의 한국청년들이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한시대를 살아간 그 젊은이들이 비극적 삶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사실, 정창현이 쓴 '인물로 본 북한 현대사'라는 책을 통해서 그녀를 미국의 간첩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박헌영이 미국의 스파이일 수 있다는 주장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되었다. 정병준 교수가 현 앨리스에 대한 책을 썼다고 했을 때에도 현 앨리스가 미국의 간첩이라는 나의 기존 지식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마주해야할 때이다. 그녀를 간첩으로 보았던 죄스러움을 덜기 위해서..., 그래서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의 책장을 펼쳤다.
정병준 교수는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경계인이란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두 세계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녀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대립속에서 공산주의에 친근감을 더 갖았다. 1919년 삼일 운동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1921년 상하이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 맨 앞줄 중앙에 박헌영이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가려했던 그는 미국에 가지 못하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인다. 삼일운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독립운동에 끌어들였다. 그중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 사상을 정신적 뿌리로 삼았다. 민족주의자였던 현순 목사도 공산주의에 깊은 관심을 갖았다. 현 앨리스를 비롯한 현씨 가문의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의 세례를 받는다.
현앨리스는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남성과 결혼했지만, 그는 봉건적 사상을 가진 존재였다. 결국 그는 친일파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현앨리스는 그와 이혼을 선택한다. 첫째 딸은 그에게 남겨 놓고, 태중에 있는 정웰링턴과 함께 하와이로 온다. 미국에서의 삶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고뇌의 시간을 선사한다.
비미청문회에 나온 젊은이들은 자신이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이유를 미국에서의 흑인 차별 때문이라 말한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은 만국의 노동자는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함몰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에 친근함을 갖았던 현씨 가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패망한 조선인으로서 미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부평초와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사상적 뿌리를 공산주의에 내리게된다.
현앨리스는 미군의 통역관이자 정보원으로 활약한다. 미군정청 통신검열국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녀는 남로당의 박헌영과 접촉한다. 그뿐아니라, 미군 내의 공산주의자와 박헌영이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적극적인 친공산주의 활동이 미군정 방첩부대에 적발되어 미국으로 소환된다. 그녀는 미국에서 '독립'이라는 친공산주의 신문을 발행하며 적극적인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친공산주의 활동이 그녀를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넣는 근거가 될줄은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