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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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계기는 유시민 작가 덕분이다. 유작가는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를 집필하고 나서 각종 언론과 유튜브에 나와서 자신이 과학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에 나와서 유시민은 '과학적으로 삶은 의미 없다.'라고 단언했다.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그도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보았기에 유시민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도 우리의 존재가 아무 의미없다는 말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유시민의 말처럼 이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 숭고하게 여기는 모성애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도 모두가 유전자가 프로그램화한 유전자 운반 기계의 행동일뿐일까? 


1. 생물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다.

  인간을 동물과 다른 별개의 존재로 볼 수 없다. 동물도 인간 처럼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불완전하지만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도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역으로 동물을 통해서 인간을 설명할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소개한 기생 일개미를 보며 인간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생 일개미 중에서 일부(Bothriomyrmex regicidus와 B. decapitans)는 기생 일개미 여왕이 다른 개미종의 집에 침입하여 영왕개미를 죽이고 개미 사회를 장악한다. 그리고 기생 개미 영왕은 자신의 알을 낳고, 노예 개미의 시중을 받으며 서서히 원래의 종을 대체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계도 있다. 

  기생 개미 중에서 Monomorium santschii의 여왕개미는 노예 일개미에게 자기 자신의 여왕 개미를 살해하도록한다. 그리고는 노예 개미의 시중을 받으며 왕국을 빼앗아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다. 정말 충격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소위 축출 이혼이 그러한 사례이다. 범죄 관련 팟캐스트에서 알게된 사연이다. 술집 여자와 하룻밤을 잤고, 그결과 아이를 갖게 되어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부모를 모욕하고 두자녀는 그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린다. 이성을 잃은 남자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줄렀고, 결국 그 남자는 법원에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다. 모든 재산을 그녀에게 빼앗기고 이혼까지 당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자녀를 고아원에 보내고 남자에게는 양육비라는 명목으로 돈까지 계속 뜯어내려한다고한다. Bothriomyrmex regicidus와 B. decapitans는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Monomorium santschii도 존재한다. 일본의 신친일파 육성 프로그램에 따라서 일본 정부나 사사카와 재단의 돈을 받으며 신친일파로 육성되는 사람이 많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권을 잡고 친일적인 정책과 행보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더욱이 좌우의 이념 갈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우파라는 신념(?) 혹은 망상 속에서 친일 정권의 매국행위를 동조하는 이웃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Monomorium santschii는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역시 인형을 직접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113쪽)고 말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프로그램 명령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자기 종의 구성원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친절해라."(182쪽)

  "거주자면 공격하고, 침입자면 물러나라!"(153쪽)


  이주민에게 배타적인 모습을 띄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적어도 리처드 도킨스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는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수,당 전쟁을 끈질기게 수행한 것도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도적으로 불리한 군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국토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도 '거주자면 공격하고, 침입자면 물러나라'라는 명령어 덕분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의 구성원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친절해라'라는 명령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전쟁은 줄어들었으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방인을 만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방인에게 환대를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전자의 프로그램을 인간이라는 생존기계가 거역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거역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희망과 존재 가치가 발견된다. 


2. 이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는 회의주의에 빠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유전자의 조작에 의해서 유전자가 시켜 결혼하고 짝짓기를하며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회의주의에 빠진 사람이 많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과학적으로 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유전자 운반 기계에 불과한 인간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교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을 달이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은 도킨스도 말했듯이 은유적 표현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당신은 노저어오오.'라고 말하는 연인에게 '당신의 마음이 호수라며 왜? 노 저어 갈 수 없지? 호수는 어디있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겠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사람들이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빠져든다. 더 나아가 '인생은 의미 없다.'라고 결론 짓는다. 과학의 한계를 생각하지 못하며, 과학이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밝혀낸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우주에 있는 84.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단지 알고 있는 것은 절반도 안되는 15.5%만을 알면서 우주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더욱이 과학에 문외한이 과학책 몇권을 읽고서는 '과학적으로 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단언한다면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고개를 숙여야한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백사장의 수많은 모래알 중에서 모래 몇알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인정해야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나는 어머니를 하나의 기계로 취급한다."(218쪽)고 말했다. 인간을 "생존기계"로 표현하는 도킨스의 극단적 비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리처드 도킨스를 유전자 결론론자로 이해하는데 일말의 빌미를 도킨스가 제공한셈이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분명히 말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재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335쪽) 또한,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123쪽)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자가 아니다. 유전자는 프로그램화를 시켰을 뿐이다. 유전자가 우리의 뇌를 직접 지배할 수는 없다. 바로 그 틈, 그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창조하고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유전자의 운반체인 인간이 문화와 문명! 혹은 밈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다시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아마존으로 가자. 최재천 교수는 그의 유튜브에서 유시민의 '과학적으로 삶은 의미 없다.'는 표현을 언잖아 했다. 심장의 일부분을 떼어서 모아 놓으면 심장 박동을 만들어 낸다고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페이스메이킹이라한다. 부분은 전체의 합 그 이상이다. 챗GPT가 일정한 용양이상을 학습하고 파라미터의 수를 증대시키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 처럼, 세포와 유전자로 이뤄진 우리의 몸도 그것이 모여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운반 기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운반 기계가 모여 문명을 만든다. 그들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철학이라는 형이상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과학자 최재천 교수는 '철학'에서 과학이 하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칭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자는 과학을 영접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면, 과학을 공부한 석학은 인문학을 통해서 의미를 찾고 창조하려한다. 나는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고 창조하는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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