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 뒤란에서 소설 읽기 1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지음, 이진경 옮김 / 뒤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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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중한 것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많다. 물고기에게 물이 없으면 물고기는 살 수 없고, 우리에게 공기가 없다면 우리는 살 수 없다. 너무도 소중하지만 항시 우리 주위에 있기에 우리는 이를 당연시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존재를 때로는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 소중한 것에는 우리의 특권도 있다. 이책은 특권을 당연시여기며 형성된 사회적 편견에 맞선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흑인 청소년 레이먼드와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밀리 할머니는 루이스라는 청년을 찾고 있었다. 레이먼드는 할머니를 도와주던 루이스라는 청년을 찾아 나선다. 할머니가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친구인 할머니를 돕고 싶어서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이혼 가정에서,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성정체성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밀리 할머니는 인생의 친구이자 선배로서 좋은 조언을 한다.

 

"그들한테 상대의 인종에 따라 다르게 처신하는지 물어봐, 그럼 아니라고 대답해.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은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것은 마치 물고기한테 물에 관해 묻는 것하고 같은 거야".-140

 

힘이 있는 자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가 휘두른 주먹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특히, 물리적 힘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르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친구와 불법 이주자 문제를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대화 도중 그 친구는 "불법 이주민들에게 우리는 기득권이야!"라는 말을 했다. 순간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힘든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들이 무슨 '기득권'을 갖고 있겠는가! 그런데, 불법 이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소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시민권은 대한민국으로 불법 이주를한 자들에게는 커다란 특권이었다. 우리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시민권은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였다. 없으면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불법 입국을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명했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도 우리의 조선인들도 중국으로, 일본으로, 미주로, 러시아로 불법 입국을 했다. 나라없는 설움을 견뎌가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데, 이제 기득권자가 되어 난민에게 많은 거부감을 표명한다. 일말의 연민이나 미안함도 없이....

소설은 갑자기 법정 소설로 옮겨간다. 루이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두고 벌어진 재판이다. 재판이 과정에서 죄없는 루이스를 총으로 쏘아 죽인 부인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부족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부족주의'는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서 묻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단어이다. 같은 백인인 그녀가 라틴계 젊은이를 쏜 것은 실수이며, 라틴계 젊은이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는 편견을 배심원들은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배심원제도가 부족주의에 휩싸인 배심원들에 의해서 왜곡된 판결을 내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O. J. 심슨 사건을 예로 든다. 그는 백인 아내(니콜 심슨)와 아내의 친구(론 골드만)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이 제시한 여러 증거는 그 혐의를 입증해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배심원은 무죄를 결정했다. 12명의 배심원중에서 9명이 흑인이었다. 결국, 당시 언론은 배심원제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심슨은 여론에 의해서 죄인 취급을 당했다.

현실은 소설 처럼 명확하지 않다. 9명의 흑인 배심원들이 부족주의에 빠져 있을 수 있고, 미국의 주류 언론이 부족주의에 빠져 백인 여성을 죽인 흑인 남성을 단죄하지 않았다고 매도했을 수도 있다.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힘든 것은, 우리 현실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자신의 물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물고기의 물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설 속의 밀리 할머니가 레이먼드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도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대서양을 건너온 그녀의 가족은 엘리스 아일랜드에서 이민심사를 받는다. 인간이기 보다는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은 그녀에게 그때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녀는 백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렸지만, 유대인이기에 또 다른 종류의 차별을 격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가 ''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을 볼 수 있을까? 물을 보지 못하는 물고기에게 ''에 대해서 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양서류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물을 볼 수 없다. 양서류가 되어 물을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물을 볼 수 있다. 두세계를 알아야 물 밖과 물 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물 밖을 나온 적이 없는 물고기에게 양서류만이 다가가서 말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물 속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자로 있지만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헤아리려 스스로 낮은 곳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사람! 사회적 약자이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사회의 기득권자가 되지만,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잊지 않는 사람! 그들이 바로 우리사회가 필요로하는 양서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양서류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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