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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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목에 칼을 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9) 조국은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조국이 검찰 개혁을 이루려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 가시밭길에 조국의 가족의 핏자국도 선명히 뿌려졌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병보석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가혹하리만치 여러번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조국은 묵묵히 그 채찍을 견뎌냈다. 소위 강남좌파 조국은 안락한 주류 사회에 일원으로 쾌락을 즐기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에밀'이라는 위대한 교육책을 썼으나 다섯 자녀를 보육원에 보낸 '분열된 영혼' 루소에 자신을 비유한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살아가려했으나 토마토가 되지 못했다며 자신을 책직질한다. 어찌하여 도덕적 잣대는 진보 인사에게 더욱 혹독하단말인가! 가족과 친척이 부동산 투기에 주가조작 등등의 혐의가 있어도 제대로 수사를 받지 않고 권력을 누리는 이들도 있지만, 진보인사는 조그만 잘못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가 가시밭길을 가면서 이 사회의 무엇을 밝히려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어 내려갔다.

 

1. 어떻게 권력을 제지할 것인가?

조국은 15권의 법고전 중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맨 앞장에 배치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로베스피에르와 장들 마라가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루소와 볼테르의 책을 읽은 루이 16세는 '이 두 사람 때문에 내 왕국이 무너졌구나!'라고 한탄했을 정도이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이러한 때에 사용하나보다!

루소의 사상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루소는 인민의 자기계약을 통해서 국가 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자들이 있다."(24)며 어리석은 인간을 꾸짖는다.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은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보인다. 독재에 뿌리가 있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그들에게 개, 돼지 취급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인이라 착각한다. 고집을 신념이라 착각하며 젊은이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들을 어찌하랴!

모든 인간이 현명하지는 않다. 모든 인간이 어리석지는 않듯이 말이다. 그리고 한인간이 항상 어리석지 않듯이, 한인간이 항상 현명하지도 않다. 몽테스키외는 인간의 선함에 의존해서 독재를 막기보다는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해야한다."(75~76)고 주장한다. 아프리카의 여러국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독립 후에 독재자로 군림한 예를 우리는 자주 보았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인간이 권력을 쥐는 순간 독재의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6월 민주항쟁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갖추어졌다. 루소는 "힘이 권리를 만드는게 아니며,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26)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에서는 국정농단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농단에 사법부가 호응하여 일명 '사법농단 의혹 사건'이 벌어져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는 검찰이 새로운 권력 기구로 떠오르고 있다. '법비'들이 기승을 부린다며 한탄하는 사람도 자주본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국정농단을 벌이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구조적으로 농간을 부리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합법적인 권력'에 복종해야할까? 이러한 농간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 몽테스키외가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으나, 우리사회는 권력들끼리 단합하며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2. 악법에 복종해야할까?

조국은 8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서술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독재정권에서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이 만든 악법에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악법에 복종해야할까?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서 백범의 족적은 너무도 크다. 백범을 암살한 인물이 친일파 안두희이다. 역사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처단한 버스기사 박기서씨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씨를 사적처벌을 했다며 비판했다. 친일파가 권력을 쥐고 역사를 굴절시킨 것이 우리의 현대사이다. 백범을 암살한 친일파 안두희를 처단할 수 없는 현실에서 희생을 각오하며 정의봉으로 친일파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씨의 행동은 정의로운 것일까?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에게 현명한 조언을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403

 

법의 이념에는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정의가 있다. 정의롭지 않은 법은 법일 수 없다. 루소의 말을 빌어 소로의 말을 다시 표현하자면, '법이 법자체로 정당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오직 정의로운 법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독재자가, 법비들이 악법으로, 그들만의 법논리로 정의로운 사람을 압제한다면,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다."(405) 일제 강점기에도, 독재 정권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은 감옥이 아니었을까? 시대의 모순이 정의로운자를 감옥에 보낸다.

이 책에 한국 검찰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언급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정의로운 조국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줄 그는 알았을까?

정의를 용감하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악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악법은 어겨야 악법이 고쳐진다. 이를 루돌프 폰 예링은 이렇게 표현했다.

 

"현행법이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경우에 새로운 법이 자신의 진입을 강행하기 위하여 치러야 할 투쟁이 존재하는데, 이 투쟁은 종종 몇 세기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투쟁은 이러한 투쟁은 이익들이 기득권의 형태를 취할 때 그 강도가 최고조에 달한다."-314

 

한홍구 교수가 대중강연에서 '악법은 어겨야 바뀐다.'라고 말했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민중을 옥죄는 법의 탈을 쓴 족쇄이다. 악법을 어겼기에 미국은 노예해방을 이룰 수 있었으며, 식민지 조선 민중은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법 위에 정의가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그래야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3. 조국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무엇인가?

조국은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조국의 눈을 거친 법고전들이다. 조국의 프리즘을 거친 고전들에서 조국은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위와 재산은 상당히 평등해야한다. 안그러면 권리와 권위의 평등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루소, 43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헌법과 국가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의 빈민은 행복하고, 그들에게 무지와 불행이 없으며, 감옥에는 죄수가 없고, 거리에는 거지가 없으며, 노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고, 세금이 과중하지 않으며, 우리는 세계의 행복과 친구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세계가 우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렇다."-페인, 225~227

 

루소와 페인의 이 말은 사실 조국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다. 자유와 평등, 지위와 재산의 평등이 있어야 권리와 권위의 평등이 오래지속될 수 있다. 한사회에서 부가 편중되면 그들은 권력도 쥐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빈민이 행복하고 죄수와 거지가 없는 세상, 노인빈곤이 없으며 세금이 과중하지 않은 대동 세상을 조국은 꿈꾸고 있다.

이러한 이상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두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가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관용이 필요하다.

 

"인민의 51퍼센트가 다른 49퍼센트의 권리를 빼앗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는 폭도의 규칙에 불과하다."-토머스 제퍼슨, 242

 

'다수의 전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관용이 필요하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왕정 혹은 1인 독재의 시대에서 다수 독재의 시대로 이행 될뿐, 진정한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소수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그 사회의 진보의 척도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둘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이다. 이것은 권리이자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 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 왜냐하면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법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도덕적 생존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권리 주장이다."-예링, 321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이기적'이라는 인식과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루돌프 폰 예링은 이러한 우리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딸의 학예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외출을 신청하자 교장이 "애 엄마는 뭐하고 자네가가 가나?"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부모로서 자녀의 학예회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한다. 그 변화가 너무도 늦더라도 말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192)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형벌의 잔혹성보다는 일관성을 중요시했다. 지강원이 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이 한국사회의 대다수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법질서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진보에게 들이대는 도덕성의 잣대를 보수세력에게도 똑같이 들이대야할 것이다. 법적 책임을 물을 때도 빈부차이, 권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똑같이 들이대야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진리가 행해지지 않기에 조국은 가시밭길을 걸어야한다.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가시밭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길이 값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국은 대중들에게 '울프피쉬 호리'라는 물고기를 소개한다. 작은 어항에서는 1cm 정도 자라고, 연못에서는 5cm 정도 자란다. 그러나 울프피쉬 호리가 강에서 자라면 15cm까지 자란다. 더 넓은 바다에 나간 울프피쉬 호리는 50~60m까지 자란다. 환경이 울프피쉬 호리의 성장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사람과 어울리고 어떠한 책을 읽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과 외연이 얼마나 성장할지를 결정한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우리의 정신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혼자 읽는다면 너무도 힘든 고전 15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지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싶은자에게 이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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