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열전 1 - 잊힌 사건을 찾아서 독립운동 열전 1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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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운동! 얼마나 가슴 뛰는 주제인가! 그러나, 대중을 위해서 씌여진 독립운동 관련 서적은 많지 않다. 더욱이 믿을 수 있는 학자가 대중을 위해서 재미있게 풀어쓴 독립운동 서적은 더욱 적다. 성균관 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인 임경석 교수는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 검토하여 독립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파헤쳤다. 그 결실이 '독립운동 열전'이다. 딱딱한 논문투의 글이 아니라, 일반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도록 구성에 신경을 썼다. 한장 한장 책을 넘기며 박진감 넘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빨려들어 갔다. 저자는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치우친 나머지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들어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흥미와 역사적 사실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결실을 들여다보자.

 

1. 모스크바 자금의 비밀

레닌이 금화 200만 루블을 우리 독립운동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러한 사실을 1급 정교사 연수 때 처음들었다. 친일 독재 세력은 독립운동연구를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연구는 터부시되었다. 우리 독립운동사 연구의 반쪽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명 모스크바 자금 지원에 대해서 대학에서 배울 수 없었다. 1급 정교사 연수 때 강사는 레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200만 루블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김립이 이를 유용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설명만했다. 그후, '여운영 평전', '백범일지'를 통해서 모스크바 자금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이 자금이 임시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책에는 모스크바 자금에 대해서 충격적인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임경석 교수는 얀손 보고서를 근거로 이 자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급된 것이 아니라,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출석한 한인사회당 대표이자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된 박진순에게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만 루블 중에서 우선 제공된 40만 루블(한화 510억원)은 한인 사회당에 준 것임에도 임시정부 요인은 김립을 자금 횡령혐의로 암살했다.

김립 암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모스크바 자금 200만 루블 중에서 잔여금 140만 루블(한화 2085억원)을 우리 독립운동 세력에게 지원되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북로 군정서 107개를 조직할 돈이 날라간 것이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사이에 불신을 키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날려버린 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소중한 독립운동가 한명을 잃었다. 김립은 '이동휘의 책사'로 알려져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임경석 교수는 이동휘의 책사 김립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했다. 그는 탁월한 정세 판단과 실천력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한 영웅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공산당 내의 젊은이들은 보복을 주장했다. 잘못하면 독립운동을 하기도 전에 일제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순간이다. 다행히도 김철수를 비롯한 당 간부들의 만류로 동족을 죽이는 비극으로 사건이 번지지 않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내분으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친일파들이 이익 앞에서 단결할 때,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노선을 두고 분열했다. 노선투쟁이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비극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았다. 김립 암살사건도 자칫 잘못했으면 임시정부가 스스로 붕괴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노선은 달라도 목표는 '독립'이 아니던가! 불의 앞에서 분열하는 진보진영을 보면서 김립 암살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시간이 지났어도 우리의 어리석음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2. 임경석 교수가 들려준 공산주의자의 독립운동

임경석 교수는 독립운동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의열단에서 1923년에 추진한 제2차 암살 파괴 계획이다. 교과서를 비롯해서 수많은 책에서 의열단이 주도한 의열단의 독립운동이라고 소개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피고인 18인 중에서 황옥을 비롯한 4인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간부이거나 주요 당원이라는 점을 근거로 의열단과 공산당이 공동 주도세력이라고 주장한다. 황옥은 영화 '밀정'의 이정출의 모델이 된 사람이다. 영화와 역사책에는 그를 의열단원으로 그리고 있다. 약산 김원봉이 그를 직접 만나서 독립운동 세력으로 포섭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그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황옥이 공산당에 가입한 증거가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듯하다. 암튼, 임경석 교수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두번째는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려했던 강달영이라는 인물이다. 진주 3.1운동 유공자이자 조선 노동운동의 지도자이면서, 조선공산당 2차 집행부 책임비서였던 강달영은 조직과 동료,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일제가 방심한 틈을 타서 자살을 시도했다. 어떠한 고문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비서부 일기'가 일제에 의해서 해독되자,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한때 독립운동가였다가 친일파가 된 많은 변절자들이 소개되어있다. 그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간 강달영의 모습을 보면서 숙연해진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한 임경석 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가 독립운동사 연구에 바친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오성륜의 의거와 탈출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부분을 읽으며 아쉬운 생각이들었다. 황포탄 의거와 탈출의 드라마틱한 장면은 영화화해도 좋을 장면이다. 그런데, 오성륜이 탈출 이후 공산주의자가 되어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으며, 일제에 포섭되어 동지를 밀고하는 친일파가 되었다는 사실은 서술하고 있지 않았다. 의열단원에서 공산주의자로, 상하이에서 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서 치열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일제에 포섭되어 친일파가 된 그의 삶이 고단해 보였다. 그가, 만주에서 일제의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면 우리는 영웅 한명을 우리 마음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3. 역사의 정의는 있는가!

광복 이후의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의 삶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프다. 조선총독부 폭탄투척과 황포탄 의거의 주인공 김익상의 딸 점석이를 우리는 돌보지 못했다. 김익상은 약산 김원봉에게 "딸을 공부시켜 여성 혁명가가 되도록 교도하기를 부탁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원봉이 광복후에 김익상 의사의 가족을 찾았으나 딸 점석을 찾지 못했다.

광복이 되었으나, 제대로된 독립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조국은 분단되었으며 이승만과 친일파가 권력을 잡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되고 나서 독립운동가들은 숨죽여야 했다. 어느 독립운동가 가족은 성씨마져 바꾸어야했다. 독립운동 세력이 친일파에 의해서 청산당하고 그 가족은 박해를 받아야하는 어쳐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밀정이 된 김성근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어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인명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김성근은 "일제강점기 구국모험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적혀있다. 임경석 교수의 이러한 지적에 인터넷에서 김성근을 검색했다.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이 책을 읽는 지금도 독립운동가로 기록되어있다.

어디 김성근뿐이랴! 대전의 '00 건설'의 경우, 건설사 대표가 자신의 아버지를 3.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로 포장했다. 대전 유림공원에 그의 비석이 세워져 시민단체의 지탄을 받았다.(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 (daum.net)) 심지어, 대가 끊긴 독립운동가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속여서 독립 유공자가 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과연 역사의 정의는 존재가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나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정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울림이 들여왔다. 불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짓밟을 때, 우리가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쓰고 군림하는 세상이 된다.

 

이책 34쪽에는 박헌영, 김단야, 주세죽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있다. 사진을 본 순간, 3인의 러브 스토리가 소개될 것을 내심 기대했다. 사회주의자들의 붉은 연애는 뜨겁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그들의 붉은 연애를 소개하지 않았다. 주세죽은 박헌영과의 사이에서 박비비안나를,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김비탈리를 두었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독립운동 열전' 2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기대해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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