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SAMURAI KODEF 안보총서 35
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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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삼국시대를 살펴보면, 수많은 전쟁이 난무했다. 삼국간의 치열한 전쟁과 국가 내부에서 전개된 귀족들 간의 무력대결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는 문보다는 무가 앞선 사회로 보인다.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수많은 외침에 대항하며 무신들이 성장했고, 1170년 무신정권의 시대가 열린다. 우리 역사에서 무의 위치는 문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고 나서 문중심의 사회가 활짝 열린다. 반면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외부의 침략에 대해서는 비교적 안전했으나, 내부의 권력 투쟁은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치열했다. 다이카 개신을 통해서 천황중심의 지배체제가 성립하였으나, 헤이안 시대의 혼란을 거쳐서 쇼군이 통치하는 막부 시대가 도래한다. 문과 무가 조화를 이룬 사회라기 보다는 무 위주의 사회가 오랫 동안 존속했다. 여기에서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 중심의 사회로 발전한 한국과 무 위주의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차이는 거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너무도 먼 두나라가 되었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사무라이'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사무라이에 대해 서술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스티븐 턴불의 '사무라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1. 비슷한 이웃의 모습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고대에는 중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우리가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해주지 않았던가! 그래서 일본의 모습에서 친근한 우리의 모습을 만나기도한다. 

  사무라이는 권력을 쟁취하려 칼을 휘둘렀지만, 일본 천황을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려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우리에게 단군신화 속의 천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삼종신기가 있다. 일본 천황이 하늘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증표가 바로 삼종신기이다. 우리의 천부인은 신화속에 존재할 뿐, 현재 우리에게 실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반면 일본의 삼종신기는 원본이 있지만 수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복제품이 원본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했다. 삼종시기를 쟁취하기 위해서 일본의 남북조시대에 전투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사무라이에게서 우리와 유사한 모습을 조상 숭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지배층들에게는 조상은 현재의 권력을 갖게해준 은인이자,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족보를 그리도 열심히 편찬하고, 위조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본 사무라이에게도 조상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있게해준 존재이자, 현재 지위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신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다른듯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막부가 개창되면서 본격적인 다른 면모를 보인다. 쌍둥이라도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지 않던가!


2. 사무라이 중심의 군사문화

  문을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붓의 문화가 발달하고, 무의 문화를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번성한다. 일본의 문화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서려있다. 

  스티븐 턴불은 다양한 도판을 곁들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봉의 깃발인 사시모노를 등에 꼽고 붉은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일본 사무라이가 그림 속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다. 일본도로 대표되는 사무라이의 무기는 정교하게 발달되었다. 전쟁이 많다보니 정교한 칼이 만들어졌다. 적에게서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견고하고 방어력이 탁월한 일본식 축성술이 발달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이 설명하는 것 처럼 중국과 조선의 성에 비해서 일본의 성 방어력은 탁월했다. 일본의 축성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만큼 탁월한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신의 부와 권력,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우수한 일본의 성을 바라보며 전쟁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칼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사무라이의 전쟁방식도 화약무기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칼을 잘 쓰는 사무라이라도 총 앞에서는 청명한 가을날의 낙옆에 불과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사무라이의 시기도 사라졌다. 물론, 칼을 사용하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자의 회안 일지도 모른다. 

  사무라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머릿속에 육군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배를 타기도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왜구'가 되어 동아시아의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부녀자를 능욕하고 죄없는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때로는 용병이 되기도했다. 중국과 한국의 해안가만 약탈한줄 알았던 나는 그들이 용병이 되어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바다에 출몰했다는 사실이 꾀나 놀라웠다. 

  그렇게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군사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 무대는 육지에 국한되지 않고 바다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문화는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3. 죽음의 미학

  칼의 문화는 죽음과 대면해야하는 문화이다. 항상 언제라도 죽음을 목도할 수 있는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떨치는 것은 커다란 과제였을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낸 것이 일본의 독특한 죽음의 미학이다. 

  스티븐 턴불의 '사무리이'에는 셋풋쿠라고 불리우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사무라이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한가지를 살펴보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던 날, 승병이 할복을 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베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부하들이 그 칼에 '꼬치가 가지런히 꿴 생선 처럼 일렬로 머리를 포개고' 죽었다. 

  조선시대 매천 황현 선생께서 병합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스스로 자결을 하셨다. 나라에게서 받은 것은 없지만, 나라가 방했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모습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죽음보다 삶이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주군을 위해서 따라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로 미화된다. 이러한 죽음의 미학은 너무도 여린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한다. 

  백호부대를 아는가? 아이즈와카마쓰 지역에 백호부대가 있었다. 아이즈 전쟁시기 16세에서 17세의 소년병들로 구성된 부대가 바로 백호부대이다. 이들은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백호부대원들은 할복을 준비한다. 그들 중에서 11명은 17살이었고, 9명은 16살에 불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이 함락되자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들도 자살을 감행한다. 살복이라는 문화가 여성과 서민들에게 까지 확대된듯하다. 중국의 전족과 일본의 할복문화,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낡은 봉건적 폐습이다. 봉건적 폐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 넣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최고의 파일럿들은 소모품처럼 전쟁에서 사라졌다. 조종사를 길러낼 시간이 부족했던 일제는 단순 조종 교육만 시키고서는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을 자살특공대로 전재터로 보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소개하면서 '사무라이'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소모품처럼 전쟁터에서 소모되기를 강요받은 그들은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했다.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칼을 중심으로한 문화는 아직도 일본사회에 남아 있다. 무사도를 적어 놓은 '하가쿠레'에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할복으로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은 살기 위해서 싸웠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 죽음을 미화시키는 그들의 문화를 그들이 벗어던지지 않는다면 군국주의의 망령은 언제나도 되살아날 것이다. 일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칼을 던지고 붓을 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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