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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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벙커1'을 통해서 강신주를 처음 만났다. 그가하는 상담을 들으며 강신주라는 철학자의 내공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생을 많아 살아본 할아버지도 아닌데, 상담 심리학을 정공한 사람도 아닌데, 일개 철학자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꿰둟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그후, 강신주의 동영상 강의와 서적들을 살펴보며 그가 말하는 논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긍금했다. 지난번 강신주의 정신적 아버지 김수영을 위해서 쓴,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에 이어서 '철학 삶을 만나다.'를 펼쳐들었다. 강신주식 철학의 비밀을 이 책을 통해서 파헤치고 싶다. 


1. 강신주식 철학적 사고의 매력

  강신주가 쓴 철학책들은 쉽다. 대학에서 '철학 개론'을 들으며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지도 않는데 시험을 보기 위해서 철학 용어와 철학자들이 한 말들을 무조건 암기했던 기억이 남는다. 대학에서 배운 철학은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무조건 암기하는 탁월한 암기과목이었다. 이에 반해서 강신주가 말하는 철학은 우리 삶을 철학하게한다. 철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특히,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서는 일상적인 우리 삶에서 어떻게 철학적 사유가 일어나는가를 풍부한 사례와 친절한 설명으로 풀어낸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왜? 이러한 철학 수업을 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만 쏟아냈는가?, 교수가 학생과 대화하기는 커녕, 교수 혼자 독백을 했가? 라는 질문이 연속으로 쏟아졌다. 

  강신주가 소개한 철학적 사유의 비밀들은 철학적 사유가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낯설게 볼 때 철학적 사유는 시작된다. 3단 논법대로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3단 논법의 역순으로 우리의 사유는 일어난다. 어찌보면 평범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의 사유에 강신주는 도끼를 휘두른다. "당연하다."라는 생각의 위험성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이 당연하기에 우리는 부모에게도, 아내에게도, 우리 딸들에게도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나의 몸과 마음에게도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존재가 내 옆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존재가 아플때에야 비로소 그들을 낯설게 보면서 소중함을 안다. 강신주가 다상담에서 "'내옆의 아내와 언제던지 헤어질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아내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던 이유를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3단 논법대로 사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3단 논법의 역순으로 사유한다. 나의 행동과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3단 논법을 끌어들여합리화한다. 강신주의 날카로운 지적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인간은 3단 논법으로 사유한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뇌 과학적으로 살펴보아도,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역사적 사례를 소환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들을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았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철학적 사유의 위대함은 '우연성의 철학'과 '필연성의 철학'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의 모든 일들이 유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유와 신과같은 존재의 계획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유의 대립이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역사를 발전론적으로 보고, 역사의 필연성을 밝혀내는 것을 역사학에서는 무척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논문들을 우수한 논문으로 대우한다. 반면 우연에의해서 발생한 사건들의 나열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역사적 사유를 하지 않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역사는 과거 사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라고 교육받았던 나로서는 세상은 필연적이기 보다는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주장이 낯설기는하다. 

  강신주가 소개한 철학적 사유의 비밀들은 단순히 철학이라는 학문의 고담준론에 갖힌 사유가 아니었다. 우리 삶을 철학하게하는 소중한 지혜였다. 


2. 강신주의 철학을 넘어서.

  강신주는 '사랑과 가족', '국가' 그리고 '자본주의'를 낯설게 만든다. 강신주의 철학적 사유는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며 철학적 사유를 유발시킨다. 

  우리의 사랑은 남녀가 사랑한다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완성된다는 헤겔식 철학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반면, 강신주는 바디우의 철학을 끌어들여 '둘'의 사랑을 '둘'로 정의 내린다. 둘이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인 '눈부처'를 보면서 서로를 독립된 개체로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 우리는 '둘이 하나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신화에 갖혀 우리를 옥죄고 있었다. 

  이러한 강신주의 철학적 사유에 항상 맞짱구만 칠수는 없다. 나의 전공이 역사이다보니, 강신주가 근거로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강신주는 '국가'도 낯설게 본다. 인디언 사회를 문명화된 사회로 묘사하며 국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디언 들에게 서구 문명의 총아인 '총'을 주었다면 그들은 그러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을까? 재레드 다이야몬든 교수가 말했듯이, 태평양의 부족들에게 총기를 주자 그들은 잔인한 정복전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대표적인 왕국이 하와이 왕국이다. 물질적 토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의 모습을 문명화로보는 것도 문제이지 않을까? 그들의 물적 토대가 강력한 집권자가 나오기에는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원시공산사회가 유지되었던 것은 아닐까?

  강신주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국가에 확장시켜 인질=국민, 국가=인질범이라는 도식으로 국가를 낯설게 본다. 강신주식 사고가 무척 신선해보인다. 그러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서 개인의 생존은 위태롭다. 시리아 내전을 본다면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곳의 주민들은 생존 자체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 목숨을 걸고 시리아를 탈출해서 유럽으로 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독재자가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도, 생명을 위협받는 무질서보다는 안정된 독재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한발자국 더 나아가 국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국가는 수탈과 자본에 따른 역동적 교환관계로 유지되는 기구"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민낯을 보여준다. 강신주의 글이 이해가 가면서도 불현듯 반론을 제기해본다. 국가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국가는 개인을 일방적으로 수탈하기 위해서 복지를 제공할까?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보라! 국가라는 시스템이 있기에 개인은 무정부상태에서 벗어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않는가? 강신주의 지적대로 국가가 개인을 수탈하기 위해서 복지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역으로 그러한 국가의 속성을 개인이 이용해서 복지의 혜택을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있지 않은가! 공기의 매서운 저항을 이용해서 우리가 행글라이드를 보다 재미있게 탈 수 있듯이, 국가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국가를 이용해서 우리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특정 지배층이 국가를 이끌어가던 시대라면 강신주의 주장은 정확히 들어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이 권력을 감시하며 국가를 제대로 움직인다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은 시민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대학에서 철학과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느 철학자가 '철학과가 없어지는 것은 괜찮지만, 철학적 사유가 없어지는 것은 걱정이 됩니다.'라는 대답이 기억난다. 그때는 '철학적 사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철학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철학자들의 말들을 외우는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철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난다.'라는 책을 읽으며 '철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철학이 우리 삶과 전혀 관계 없는 학문이기 보다는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소중한 학문임을 강신주의 책 '철학 삶을 만난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철학을 공부하려고 생각하는 학생과 일반인들이 입문서로 읽는다면 삶이 풍성해지리라는 믿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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