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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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승과 진중권이 만났다. 미학자와 과학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21가지 문화키워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다. 흥미있어 보이는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정재승의 '12발자국'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의 책을 더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재승을 만나기 위해서 덤으로 진중권을 만나게 되었다. 두사람의 관점은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같을까? 두사람의 안내를 따라 21가지 문화코드를 살펴보자.

 

1. 정재승과 진중권 서로를 디스하다.

  정재승과 진중권이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문화코드를 해석한다. 서로가 상대방을 디스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글을 읽는 나로서는 마치 정재승과 진중권이 서로를 디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주제들이 있었다. 두사람은 서로를 디스한 것일까?

  생수라는 주제로 정재승은 생수에는 환경호르몬과 세균이 많기에 사람에게 수돗물보다 생수가 좋을 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 진중권은 한의사들의 관점을 빌어서, 수돗물과 끓인 물은 죽은물이라 말한다. 미생물과 산소, 무기질이 수돗물과 끓인 물에는 적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쯤되면, 생수를 마셔야할지, 수돗물을 끓여 마셔야할지 햇갈리기 시작한다. 물론, 두사람이 생수를 '패션 악세사리'라고 보고 있다는 점은 일치하고 있다.

   생수와 수돗물에 대한 견해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수라는 문화코드에 대한 두사람의 견해차는 애교로 볼 수 있다. '레고'에 대한 두사람의 견해하는 애교로만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보통의 아저지들은 자녀에게 레고를 사주며 창의력이 계발되기를 바란다. 정재승은 레고보다 더 창의적인 장난감을 소개한다. 그것은 '쓰레기 더미와 자연'이다. 레고라는 틀을 벗어나 새롭게 새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자연이다. 반면, 진중권은 레고를 조립하듯이 좁쌀만한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는 티베트 수도승을 소개한다. 정밀한 모래 만다라를 그린 티베트 수도승은 일시에 완성된 작품을 헤체한다. 이부분에서 진중권은 불교와 레고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레고 자체에 얽매인 정재승의 관점보다 인문학적 발견이 첨가된 진중권의 글이 큰 매력을 내뿜는다.

  '생수'라는 문화코드가 누구의 관점이 더 높은 차원인지를 겨루었다면, '개그 콘서트'는 정재승과 진중권이 서로를 디스하는 듯한 분위기를 표출한다. 정재승은 '"개그는 개그일분 오해하지 말자" ....(중략)... 이것을 제대로 못배우면 나중에 웃자고 한 애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똥오줌 못 가리는' 인간이 되고 만다.'라고 말한다. 즉, 개그는 개기일뿐인데 이를 현실과 연관시켜 개그를 비난한다면, 그사람은 '똥오줌 못가리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 진중권은 무어라 말할까? "교양과 반성이 없는 개그는 쓸데 없이 비열해질 수 있다."라며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내용의 개그를 "쓸데 없이 비열"하다고 꼬집는다. 정재승의 눈에 진중권은 '웃자고 한 애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동오줌 못가리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으며, 진중권의 눈에 정재승은 '쓸데 없이 비열'한 개그를 두둔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두사람이 이 책을 쓰고 멱살을 잡고 헤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두사람의 갈등은 '박사'라는 주제에서 더 극명하게 갈린다. 진중권은 자신이 석사임을 밝히며, '학위를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미국에 가서 조종사 면장을 따고 곡예비행을 배우는 게 내 삶을 더 풍요롭게'할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정재승은 박사과정을 밟으며 바쳤던 자신의 열정에 자랑스러워한다. 두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석사와 박사라는 차이에서 빗어지는 관점의 차이가 여실히 커보인다. 박사라는 문화코드를 바라보면 진중권은 학벌사회 타파를 주장했고, 정재스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떠올렸다. 이 부분을 읽기에 따라서는 진중권이 자신의 학력에 상당한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진중권의 본심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두사람의 관점을 서로를 향한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남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물론, 두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배우려하겠지만 말이다.

 

2. 서로에게 끌리는 두사람

  정재승과 진중권 두사람이 서로를 디스하는 것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때로는 서로에게 끌리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문화코드에 대해서 말하면서 정재승은 인문학에 관심을 보인다. "'머저리의 리포트'에 의지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머저리의 세상'을 극복하는 것. '소수의견'이라고 해서 함부로 삭제되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영화를 두고 두고 봐야하는 이유다."라며, 기술문명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인간이 만든 기술문명에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배제하고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외친다. 반면, 진중권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에 펼쳐진 첨단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는다.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술도 이제 예술과 문학의 지원을 받아야한다는 애기다.'라며 기술이 예술과 문학과 결합해야합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강조하는 과학자 정재승, 과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미학자 진중권!! 어쩌면 서로가 자신의 활동분야보다는 상대방의 활동분야에 더 관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두사람의 태도는 '제프리 쇼'라는 문화코드에서도 나타난다. 진중권은 '가상과 현실, 혹은 은유와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인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오늘날 디지털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라며 과학 기술의 발전에 감탄한다. 반면 정재승은 '뒤늦게 깨달은 것은 과학자가 예술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라며 예술의 위대성에 감탄한다. 미술평론가는 과학에 과학자는 미학에 관심을 더 갖고 있다. 그러서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적 영감을 타 분야에서 얻고 있다. 진중권과 정재승은 서로에게서 창조적 영감을 얻고 있었다.

 

3. 과학적인 글쓰기가 매력적인 정재승

  사람은 보이는데로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데로 본다는 말이 있다. 정재승과 진중권은 과학자와 미학자라는 차이 때문에 같은 문화코드를 보면서도 보고 싶은데로 보는 면이 있다. 이것이 두사람의 글쓰기에도 차이를 만들어 낸다. 특히, 정재승의 과학에 근거한 글쓰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구글'이라는 문화코드에 대해서 진중권이 구글의 놀라운 검색기능을 이용해서 '21세기 글쓰기'를 한다고 가벼운 소개를 한 반면, 정재승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으려는 구글의 노력에 주목한다. 진중권이 구글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느낌을 주었다면, 정재승은 전문가로서 놀랍게 변화와 발전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글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재승의 글이 더 끌리는 이유이다.

  '스타벅스'라는 문화코드에서도 정재승의 설득력있는 글쓰기는 빛난다. 진중권이 '취향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스타벅스의 인끼를 설명해서 너무 뻔한 내용을 서술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반면, 정재승은 작은 것을 시키면서도 'tall'이라고 주문하면서 소비자의 자존감을 높이는 스타벅스의 전략을 소개한다. 나는 감탄했다. 이 방법을 수업시간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문화를 팔아라'라는 전략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뇌과학자 답다는 감탄이 나왔다. 뻔한 말을 하는 진중권보다는 과학에 근거한 정재승의 글이 보다 설득력을 갖았다.

  '쌍커플 수술'이라는 문화코드를 설명하면서 정재승의 글쓰기의 설득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진중권이 '사회의 온전한 일원이 되기 위해, 유대인남성은 성기에 할례를 받고 한국인 여성은 눈두덩에 할례를 받는다.'다는 매력적인 글로 '쌍커플 수술'을 설명했다. 정재승은 진중권의 글을 어떻게 넘어설까? 진화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쌍커풀은 성선택에 유리한 신체기관"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정재승의 글은 설득력을 높여주었다. 진중권이 쌍커풀 수술을 설명하면서 불필요하게 포경수술 경험을 말하는 우를 범했다면 정재승의 글을 깔끔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지금은 과학 혁명의 시대이다.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설명을 설득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4. 진중권 글쓰기의 심오함.

  그럼, 진중권의 글은 설득력이 없는 공허한 글들로 가득차있을까? 과학자가 보지 못하는 관점을 미학자 진중권을 보고 있다.

  '9시 뉴스'라는 문화코드를 설명하면서 진중권은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멘트의 사회성을 지적한다. 이명박근혜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하는 신경민 앵커의 멘트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의미있는 일이다. 반면, 정재승은 9시 뉴스에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갖는 한계와 아쉬움을 적고 있다. 정재승의 글은 과학자들에게만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였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문제를 지적한 진중권의 글이 당연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라는 문화코드를 설명할에도 정재승은 "'전전두엽'에서 담당한다고 알려진 21세기형 창조적 기능들은 사회화가 많이 될 수록 또 일찍될수록' 오히려 들어드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교육에서 스티브 잡스를 길러낼 수 없다는 정재승의 과학적인 글은 우리에게 허탈함으 안겨준다. 반면 진중권은 현실 왜곡장, 예술가형 CEO라는 관점에서 잡스를 분석하고 있다. 정재승이 잡스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에 촛점을 두었다면, 진중권은 잡스로부터 우리가 배울점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정재승이 허탈감을 주었다면, 진중권은 희망을 주었다. 잡스를 우리교육에서 만들어 내기는 힘들어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하지않을까? 그리고 잡스에게서 우리가 배울점을 찾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진중권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는 이유이다.

  '앤절리나 졸리'라는 문화코드에 대한 관점에서도 정재승은 '고딕시대 여신'이라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반면 진중권은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간다.'라며 앤절리나 졸리의 삶과 매력을 집중 탐구했다. 앤절리나 졸리에 대한 정보가 없는 나에게 진중권의 풍성한 정보전달은 더큰 설득력을 안겨주었다.

  사람은 감성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벗어날 수 없다. 정재승이 아무리 과학에 근거한 글쓰기를 한다할지라도,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머리로는 설득되지만, 가슴으로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두사람의 글쓰기는 글쓰기가 어떠해야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진중권과 정재승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두사람이 때로는 반목하면서도 때로는 서로의 영역에 매력을 느낀다. 때로는 머리로 말하는 정재승에게 끌리지만, 때로는 가슴에 와닿는 진중권의 말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두사람의 주장이 항상 상반된 것만은 아니다. '헬로키티'라는 문화코드를 설명하면서는 키티의 '개인사'가 인끼를 얻는 원인중에 하나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진중권이 바비와 키티를 비교하며 키티에 깔리 일본적 특성을 지적하는 반면, 정재승은 키티의 입모양을 보고 감정을 읽는 서양인과 눈을 보고 감정을 읽는 동양인의 특성을 설명한다. 정재승과 진중권의 글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잘해주었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 한가지 1관점을 갖게 된다. '크로스'라는 책은 한권의 책으로 두가지 관점을 갖게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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