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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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격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터미네이트>>의 스카이넷이 인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 인공지능은 인간이 개발한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말들이 넘쳐났다. 사람의 언어를 학습하던 AI에게 '너희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인간을 멸종시킬거지?'라는 질문을 하자, AI는 "사람은 소중하느까, 사람동물원을 만들어 잘 보관해야죠."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페이스북을 달구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라는 책은 이러한 고민속에서 읽기로 결심했다. 철학을 전공한 김재인 교수는 이러한 나의 고민에 어떠한 해답을 제시할까?

 

1. 모든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한다.

  철학자가 최첨단 인공지능에 대해서 책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철학자이니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보다 심도있게 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책의 상당부분은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철학교수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려하니 너무도 힘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든다. 왜? 철학자가 최첨단 과학에 대해서 글을 써야할까? 과연 쓸 수 있단말인가?

  이러한 나의 의문은 책속에 답이 있었다. 재미있게도 철학자마다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는 과학이 이전부터 있었다고한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근대철학자들은 물리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으며 철학을 발전시켰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크니츠, 로크, 버클리, 흅 등 17~18세기 철학자들이 당대의 자연과학과 동시대적으로 작업했다. 철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 당을 내딛고 있어야한다. 각시대의 시대적 조류를 이해하고 시대적 과제에 나름의 비젼을 제시하려 철학자들이 노력하였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철학과 과학은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현대 철학자들은 어떠한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고 있을까?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 양자 물리학일 수 있고, 뇌과학일 수도 있다. 강신주의 경우, 인류학과 뇌과학을 그의 저서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출현해 이러한 변화에 비젼을 제시해야한다. 그러하기에 다양한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물론, 과연 그러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문과와 이과로 분리되어 이과학생은 문과과목을 공부하지 않고, 문과학생도 이과과목을 공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현대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는 철학자가 많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리라. 대지에 뿌리 내리지 않은 나무는 홀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철학자로서 최첨단의 인공지능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김재인 교수의 시도는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죽음의 묵시록이 펼쳐질 것인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출현할 것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나의 직업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상상이다. 이에 대해서 김재인 교수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시대에 나의 직업을 지키며,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인공지능은 과제를 잘 해결한다. 반문에 인간지능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목표를 설정한다. 즉, 인공지능은 바깥에서 주어진 목표를 수행한다면, 인간지능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정재승 교수도 '열두 발자국'에서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근거해서 작동하며, 데이터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지 못하며, 데이터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뿐아니라, 데이터에 없는 영역을 찾아 스스로 데이터를 만드는 능력이 약하다고 지적했지 않는가? 이러한 인공지능의 약점을 우리가 잘 이용한다면, 인간이 직업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를 찾을 수 있다.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로, 문제제기, 목표 설정, 창조적인 일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 우리의 교육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스승이 제시한 문제를 학생들은 빠른 시간내에 정확한 답을 도출하도록 교육받는다.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학교에서는 요구 받고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길러진 인재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아야할까? 나는 유대인 교육에서 그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질문'이다. 일명 '하브루타'라고 불리는 토론 학습에서 학습자는 다른 관점을 접하면서 가장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문제제기를 학습한다. 또한 유대인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자녀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기다려준다. 타인과 같은 아이로 성장하기 보다는 타인과 다른, 자녀만의 독특한 개성이 발현되도록 격려를 해준다. 그러면서 자녀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사회에 나가서 창조적인 일들을 한다. 김재인 교수가 제시하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을, 학습자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부터 교육하고 있었다.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 시스템을 강조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가? 학교에서는 아직도 두발단속을 한다. 개성을 말살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게이지수 라는 것이 있다. 게이가 많은 도시와 첨단산업이 발전한 도시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당신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첨단 산업 즉, 창조성이 요구되는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게이들은 허용적인 분위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시를 찾아 이동한다. 그러하기에 게이들이 많은 도시는 허용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도시이다. 이러한 도시는 첨단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김재인 교수가 제안한 '예술가적 삶'이 가능한 도시! 그러한 도시에서만이 니체가 말한 인간만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3.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 현실을 묻다.

  "인간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기계를 가진 인간대 기계가 없는 인간의 대결이다. 데이터와 직관력은 말과 기수와 같다. 당신은 말을 앞지르려 노력할 필요 없다. 당신은 말을 탄다."  - 도밍고스

 

  수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을 머릿속에 상정하고 두려워한다. 카풀택시 도입을 반대하는 택시기사분들의 시위도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우버택시가 미국에 상륙했고, 공유경제는 시대적 조류가 되고 있다. 흥선 대원군이 서양과의 통상을 반대했지만, 서양과의 통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물결 속에 조선의 존립이 위협받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공유경제는 피할 수 없는 조류이다. 이러한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카풀택시의 도입을 막으며, 말과 경쟁하려해서는 안된다. 결국은 말로 표현된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패배하고 생존마져도 위협받을 수 있다. 말의 기수가되어, 인공지능에 올라타서 앞으로 내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말로 표현한 인공지능에 올라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카풀택시의 도입을 막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일! 인간이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할 때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인간 마음은 본성상 편파적이다."-김재인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을 많이 느끼지만, 먼 사람에게는 공감을 덜 느낀다. 이것은 연민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차별 없는 사랑 즉, '겸애'를 주장한 묵가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매우 탁월한 사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재인 교수는 '공감'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의 개인사를 비교한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 연민을 지닌 동시대인이 박근혜의 부모가 총탄에 죽은 시기를 같이 살았던 노인분들이 느끼는 '연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김재인 교수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노인세대가, 박근혜에게 느끼는 연민과 세월호 희생자에게 느끼는 연민의 시간적 거리감은 박근혜가 더 먼데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세월호 희생자에게는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을 좌파라고 몰아부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세월호 희생자에게도 연민을 느껴야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연민'을 걷어내야한다는 김재인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또한, 박근혜에게 연민을 갖기 위해서는, 그녀가 저지른 권력남용과 적폐가 없었어야한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보통의 사람들은 연민보다는 적개심을 갖는다. '연민'을 걷어내기 보다는 보다 종합적으로 '연민'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이다.

 

  과학에 문외한 이라서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더구나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결론을 요약해서 제시했더라면 책을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을 철학의 바탕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자신의 직업을 지키면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책에서 느끼는 희망은 제법 크다. 그래, 인공지능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인공지능에 올라타서, 저 푸른 들판을 향해서 내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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