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반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에는 삼국지를 읽고, 30대에는 정관정요를 읽어라.'라는 일본의 어느 정치가의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삼국지는 사내아이라면 몇번이고 읽는 책이지만, 정관정요는 읽었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한 정관정요에 대한 강의를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찾아보았지만, 관련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정관정요'를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별칭 외에도, 고려 광종이 옆에 두고 읽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호족들을 제거하고 고려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광종! 그가 그토록 애독했던 '정관정요'에는 어떠한 내용이 적혀있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무서운 사람 당태종!!

  정관정요가 잘 읽히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쳐들어왔다는 사실도 한가지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원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정관의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룬 존경받는 황제이다. 전쟁광으로 여겨질만한 그가 어떻게 중국인들에게 그토록 존경을 받을까? 정관정요를 읽으며, 그 비밀을 몇가지 알아냈다.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자신의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가 자신이 능력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정관정요의 행간에 당태종의 자제력과 인내력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낀 것은 자신이 죽인 형의 신하를 자신의 신하로 품어 앉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신하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자신에게 간언을 하도록 했다. 그가 죽자 당태종은 몹시도 슬퍼했다. 그 신하의 이름은 '위징'이다. 위징은 태자에게 태종을 죽여 우환을 없애자고 건의를 하기까지 했다. 그런 위징을 당태종은 죽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가 반역을 꾀한다는 고변이 들어오자, 오히려 고발한 자를 서둘러 참수했다. 적의 신하!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적의 신하!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고발을 받은 자! 그를 끌어 안았다. 그러했기에 당태종은 '정관의 치'를 이룰 수 있었다.

  제 40편 신종편은 위징의 장문의 상소문으로 채워져 있다. 날카롭게 당태종을 비판하는 그 상소문을 당태종은 쾌히 받아들이고, 위징에게 황금 10근과 궁궐 구유의 명마 2필을 하사했다. 당태종의 이러한 모습은 당태종을 더욱 두렵게 느껴지게 한다. '정관정요' 곳곳에 자신에게 간언을 한 신하들에게 비단을 비롯한 명주를 20필~40필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재정이 튼실한 중국이기에 황제가 신하에게 막대한 하사품을 내릴 수 있다. 그 재정의 튼실함을 간언을 쾌히 받아들임으로서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이룬 재정을 신하들에게 쾌히 상으로 내렸다.

  여기서 잠깐, 위징과 고려의 서필은 왕이 내린 상을 받는 태도가 다르다. 당태종은 잘못된 정책을 반대한 위징에게 금항아리, 왕규에게는 명주 50필을 하사했다. 그런데 비슷한 사례가 고려 광종에게도 있다. 서희의 아버지 서필에게 금그릇을 하사했더니, 서필은 신하가 금그릇을 사용하면 왕은 무엇을 사용하릿까? 라며 거절했다. 반면에 위징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한편으로는 위징보다 고려의 서필이 더 충직한 신하라는 느낌이 든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태자 승건이 간언을 하는 장현소를 말채찍으로 때리고 그가 칟던 북을 찢어버렸다. 그래도 간을 하자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결국 태자는 폐위된다. 자질이 없는 태자를 폐위시킨 것은 당 태종의 탁월함이다. 주어진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는 사람은 단죄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혈육이기에 단죄하지 못하고 제위를 넘겨주었다가 나라가 망하거나 신하에 의해서 폐위되는 경우를 우리는 성종과 연산군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신은 부모의 피골음을 입으로 빨아낼 수 있는가? 당태종은 황제의 신분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백암성 전투에서 화살을 맞은 이사마의 상처를 입으로 빨았다. 이를 보고 장졸들이 감격해서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전쟁터에 나간 자신의 아들의 피골음을 '오기'라는 장군이 친히 입으로 빨았다는 소식을 듣자, 그 아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것이라 한탄했다고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남성들의 감성을 이용해서 당 태종은 그들이 당 태종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숨을 버릴 수 있도록 했다. 고구려 정벌을 위해서라면 부하들의 피골음도 빨 정도로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당태종의 무서움을  느낀 마직막 사례는, 화난척하여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라는 상소문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일이다. 당태종은 큰 신의를 행하려는 것이지 속임수로 세속 사람을 가르치려는 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님을 강조하며 그 상소문을 물리친다. '한비자'에는 간사한 신하를 알아내기 위해서 거짓으로 신하를 속여서 신하의 본심을 알아보라는 글이 있다. 자신의 손톱을 숨기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손톱을 찾도록하면, 한신하가 손톱을 찾았다고 손톱을 들고 온다. 그러면 그 신하는 간신으로 판명나는 것이다. 제왕학의 교본인 '한비자'와는 상반된 당태종의 사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덕치가 법치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당태종의 통치 철학 때문으로 해석해야할까? 아니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자시의 아킬레스건을 숨기기 위한 술책으로 보아야할까? 나의 생각으로는 신하를 속이라는 신하의 건의를 대놓고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득이나 쿠데타로 황위에 오른 자신이 신하들을 속이며 제위를 지키려한다면 그는 신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처지가된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다. 그리고 덕치를 표방하며 신하들의 마음을 얻는 용인술의 달이이 되어갔다.

  정관정요를 읽는 내내, 고구려를 쳐들어온 당태종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지를 뼈속 깊이 느꼈다. 수많은 적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 당태종은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자신의 적까지 품어 자신의 충직한 신하로 만드는 무서운 통치자였다.

 

2. 고구려에 대한 당태종의 집착

  정관정요 제 35편 '정벌'편은 당태종에게 고구려 정벌을 하지 말라는 간언으로 채워져 있다. 정관정요의 곳곳에 고구려 정벌의 위험성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 위징은 위나라 이극의 말을 인용하여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멸망한다.'라고 간언했다. 그런데 당태종은 위징의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태종은 너무도 전쟁을 좋아했으며, 북방민족을 정벌하여 '천가한'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또한 고구려 정벌에 과도할 정도로 몰두했다.

  그렇다고 그가  백성의 생활을 돌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당태종은 '밥을 아느냐? 농사 짓기가 힘들다. 농사 짓는 때를 빼앗지 않아야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다.', '너는 배를 아느냐? 배를 임금에 비유하고 물을 백성에 비유할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워 줄 수 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모든 일은 근본에 힘써야하고, 나라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사람은 의식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렇게 당태종은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생업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그 스스로 말하고 있다. 더욱이 궁중이 습하니 높은 누각을 지어 거주하라는 공경대부의 말을 '많은 경비를 쓰는 것은 부모된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절한 것이 당태종이다. 그런데 당태종은 고구려원정에 집착한다. 신하들이 고구려를 정벌해서는 안된다는 간언을 올려도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관정요'에도 나와 있듯이, 야광주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사람의 목숨이다. 재물을 사랑한다하여 재물보다 더 귀한 목숨을 잃는다면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당 태종은 당나라 백성의 목숨보다도, 고구려 땅을 더 얻고 싶어했다. 그는 고구려 원정에 당의 백성과 말을 동원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당의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전쟁의 아비규환에서 목숨을 잃도록 했다.

  그의 모순된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고구려원정에 집착하지 말았어야했다. 당나라는 충분히 넓다. 그럼에도 그는 고구려 원정에 집착했다. 그가 고구려 원정에 집착한 것과 백성을 사랑한 것, 어느 것이 그의 본심일까? 당태종은 정쟁을 하기 위해서 백성을 사랑했다. 백성이 잘살아야 그들에게 군량미를 착취하고, 그들을 병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50대 분들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체력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다.

 

3. 위징을 평가하다.

  당태종 제일의 책사는 단연 '위징'이다. 어떤이는 '방현령'을 당 태종 제일의 책사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현령은 당태종이 화를 내며 꾸짓으면 바로 잘못했다고 꼬리를 내린다. 반면에 위징은 당 태종이 꾸짖어도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서 당 태종을 설득시킨다. 방현령에게는 없는 당당함과 탄탄한 논리력이 위징에게는 있다. 이것이 바로 충신의 조건이다. 

  위징은 '충언도 의견을 잘 절충해서 조용하고 은근하게 풍자해야한다.'라고 말한다. '한비자' 세난편이나 '카네기 인간 관계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올바른 말이라도 함부로 말했다가는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이 진정으로 흥미있어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를 설득해야 설득이 가능하다. 이 어려운 일을 위징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나의 거울을 잃었다.'라고 통곡했다. 당태종이 고구려원정에 실패하자, 위징이 살았다면 말렸을 것이다.라며 한탄한 사실을 보더라도 위징의 충언과 당태종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각도에 척출사를 파견하려할 때, 신하들은 '위징'을 추천했다. 당태종은 자신을 바로 잡는 사람은 위징이라며 그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위징 대신 이정을 척출사로 파견한다. 만약 그가 오래 살았다면,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국사는 변했을까? 

  그럼, 위징은 어떠한 신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가 올린 상소문을 근거로 그를 평가해보자. 위징은 '설원'을 근거로 신하를 육정과 육사로 나눈다. 바른 신하 여섯과 사악한 신하 여섯! 위징은 육정중에서 어떠한 신하일까? 공문을 준수하고 법령을 받들어 관리를 임명하고 업무를 맡길 때 뇌물을 받지 않고 녹봉은 사양하고 포상은 양보하면서 음식가지 절약하는 신하를 정신이라한다. 신하가 녹봉도 사양한다면 그 신하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신하이다. 아니면, 대기업 회장 처럼 돈이 차고 넘쳐서 녹봉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면 가능한 신하가 정신이다. 위징은 녹봉을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당태종이 내린 백금과 비단을 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정신'은 아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않고 감히 임금의 존안을 범하면서 면전에서 임금의 과실을 말하는 신하를 '직신'이라한다. 위징은 '정신'이 아니라, '직신'이다. 직신은 왕의 미움을 받아 죽을 수 있음에도, 그는 죽지 않고 당 태종의 '거울'이 되어 당태종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다.

 

4.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다.

  00000의 갑질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뒤덮고 있다. 그들의 동영상과 녹취파일을 읽다보면, 과연 그들의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는 집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관정요'에는 소위 제벌 2세에게 귀감이 되는 격언들이 있다. 당태종은 민가에서 자라 나라를 창업한 왕은 민생의 진위를 알고 패방하지 않지만, 보위를 이은 왕은 태어나면서  부귀를 누리고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해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말한다.  이는 창업주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구었기에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고난을 극복하여 기업이 잘 경영되지만, 재벌 2세, 3세는 주어진 부귀에 취하여 갑질을 하고 회사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는 현실과 너무도 유사하다.

   비단 황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공신에게도 그들의 자녀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요순에게도 불초자식이 있다.' 즉, 소위 공신을 사랑하는 행동이 바로 그들의 자녀를 해치는 원인이된다. 공신자손에게 봉읍을 하사할 때도 그들의 재능과 행적을 보고 주어야한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분에 넘치는 봉읍을 준다면, 후손은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는 멸문지화를 겪게 된다. 그래서 여러 제후국의 군주로 그들을 대를 이어 책봉한다면 그들은 선조가 이룩한 고난을 망각하고 저절로 고귀함을 얻어 이를 가볍게 취급하여 대대손손 교만함과 사치함을 자행할 것이라 경계해야함을 강조한다. 자수성가한 창업주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녀에게 세습하면서 벌어지는 폐단을 '정관정요'는 1000년 전에 예견하고 있었다.

  정관정요에는 '존엄한 신분을 굽히고 아랫사람과 교유하는 대의를 밝'힐 것을 강조한다. '깊은 궁궐에서 태어난 여인의 손에서 자란다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학 또 풍아를 깨치지도 못할것'이라고 경계의 말을 한다. 재벌이 자신의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굴수 있는 황무지를 물려주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지탄을 받지 않았을 것다. 거져 주어진 옥토는 그들에게는 더이상 옥토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일 뿐이며, 자신이 고용한 사원은 자신의 노예로 여겨질 뿐이다. 정관정요는 1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금수저, 00항공사의 재벌2세, 3세들에게 경종의 말을 하고 있다. '봉작을 세습케하지 않으면 현인을 등용하는 길이 넓어질 것이다.'라는 정관정요의 말은 오늘날 재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부의 되물림을 없애라! 정관정요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재벌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5. '정관정요'가 던져 주는 교훈

  예절은 엄격해야할까? 간소화해야할까? 당 태종은 제왕이라도 살아서는 피휘하지 않도록 했다.과거시험을 볼 때도, 문서를 작성할 때도 역대 황제의 이름을 알아서 그 글자를 피해서 문서를 작성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은 자시의 이름 '세'와 '민' 두 글자가 연이어 나오지 않으면 피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해줄 수 있는 것이 예절이다. 그 예절이 사람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면 그 예절은 간소화되고 생략해야한다. 이세민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당신은 맹목적 사랑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은가? 당 태종이 위 의공이 북방 이 민족에게 죽어 간밖에 남지 않자, 신하 홍연이 자신의 간을 꺼낸 뒤에 의홍의 간을 자기 배속에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자, 위징은 예양이 지백을 위해서 조양자를 칼로 찔러 죽이려한 고사를 예로 들어, '임금이 사람을 예로 대우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어찌 사람이 없다하십니까?'라며 당태종에게 일침을 가한다. 여자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위해서 미모를 가꾸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 사실 부모 자식간에도 일방적인 사랑은 없다. 자녀가 재롱을 부리리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려 노력하기에 자녀가 더욱 예뻐보이기 시작하여 사랑을 주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정신병이다. 일방적인 충성을 신하에게 요구하는 당태종에게, 위징은 그러한 일방적 사랑은 없다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지를 생각하게하는 일화이다. 

  '정관정요'하면 가장 유명한 구절이 '창업과 수성 중에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는 당 태종의 질문에 위징이 창업은 때를 만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수성은 천하를 얻은 뒤로 본래의 뜻이 교만해져서 백성은 피로해지고 나라는 쇠퇴하기에 수성이 어렵다고 대답한 고사이다. 위징의 지적은 참으로 탁월한 지적이다. 고려가 동북 9성을 개척하고도 쉽게 포기한점이나, 공민왕 시기 이성계가 요동성을 점령하고도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창업'보다 '수성'이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스승의 날을 당신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존치 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승의 날 의미가 잊혀져가는 요즘, 당 태종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 태종은 황태자에게 조칙을 내려 스승을 이끌어 궁전 위로 모시게하고 직접 배례를 올리며 존중의 마음을 크게 보이라했다. 스승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있어야 참다운교육이 가능하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이 늘어나는 요즘! 스승의 날을 교사가 더 부담스러워하는 현실! 속에서 당 태종의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적폐교사는 마땅히 속아내야 한다. 그들까지 옹호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이름없는 참교사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여섯가지 사악한 신하, 즉 '육사' 중에서 구신은 농봉만 탐하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부침하며 눈치를 보는 신하들이다.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변화를 싫어한다. 이들보다 더 나쁜 신하들이 '적신'과 '망국지신'이다. 파당을 짓고 현명한 사람을 모함하고 임금의 악행이 나라안에 두루 알려지게하고 사방의 이웃나라까지 그 소문이 들리게하는 자들이다. 나라를 좀먹고 급기야는 망하게하는 신하들! 요즘도 많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의 정치인인지, 일본의 자민당 2중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자들이 '적신'이요, '망국지신'이다. 

  


  제왕학의 교과서를 말하라면, 단연 '한비자'와 '정관정요'를 꼽을 수 있다. 두 책 모두 제왕이 읽어야할 필독서이지만, 성격을 상당히 다르다. 한비자가 제왕의 관점에서 신하를 부리는 방법을 서술했다면, 정관정요는 신하의 관점에서 정치의 요체를 논한다. 신하의 말을 잘 들었던 당 태종처럼 제왕이 어진 신하의 말을 잘들어 '정관의 치세'를 다시 만들자는 관점에서 씌여진 책이 '정관정요'이다. 상당히 직설적이라서 후대의 황제들이 '정관정요'를 싫어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법! 제왕이라면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관정요'를 읽어야한다. 

  물론, 한국의 독자는 중국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한다. 가령, 당 태종이 '고구려를 격파'했다고 표현한 부분은 지나친 자국중심 주의의 극치이다.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쫒기듯이 도망쳐야했으며, 황제가 친히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말채직으로 갈대를 묶는 일을 도와야했다. 음란한 음악을 경계하라는 지적도, 생산력이 낮은 전통시대의 '농본주이ㅡ'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 지적으로 자본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러한 점을 유의해서 읽는다면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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