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연휴에 시어른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나셨다. (흐흐흐흐흐~~~)  덕분에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동네 시장 떡집에서 송편을 맞추어 담고 과일 한 박스와 친정 부모님 티셔츠를 포장해서 들고는 추석 하루 전 날 친정에 갔다.  정말정말정말 아주아주아주 오랜만에 친정오빠네 가족들과 여유롭게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여유'였다.  성장한 조카들(여대생 조카가 두 명)의 성숙해진 외모와  오빠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할 수 있었던 여유, 그게 억울한 감정으로 이어질 줄이야..

나에겐 오빠가 둘 있다.  둘 다 미대를 나왔고 (큰오빠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작은오빠는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오빠들은 나름 고상하고 품위있는 미적 감각을 가졌다고 자부하며 산다. 

나도 늦둥이 엄마지만, 나 자신도 늦둥이어서 큰오빠와는 11살, 작은오빠와는 9살 차이가 난다.  오빠들이 보자면 난 새카맣게 어린 막내 여동생이라 내가 첫 아이 지니를 낳았을 적에는 오빠 둘이 병실에 찾아와서 애가 애를 낳았다며 신기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에도 어릴 적부터 오빠들의 귀여움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한데, 그 애정의 표현이 다소 짖궂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프릴이나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으면 오빠들은
"야, 너는 무슨 그런 옷을 입었냐?  미친년 속치마 뜯어서 옷 해 입었냐?"며 놀렸다.
커서 립글로스라도 바르면
"너는 튀김 먹고 입도 안 닦았냐?  입술에 번들번들하게 기름 묻었다."며 놀렸다.

그런 오빠들의 영향으로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청바지에 티셔츠(그것도 당시엔 박스티가 대세였다), 운동화와 배낭(BACK PACK)이 호들갑스럽지 않은 은은하고 소박함의 가치를 가진 최고의 미덕인 줄 알고 다녔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민주화 항쟁이 뜨겁던 80년대가 아니었던가.  하루가 멀다하고 최루탄이 날아다니는데 뾰족구두에 치마를 나풀대며 다니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80년대가 까마득하게 지나가고 민주화 항쟁의 뜨거운 함성이 끝난지가 언젠데 나는 아직도 그 시절 그 패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청바지에 후드티 입고 시댁에 다녀왔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좀 우아하고 여성스런 옷을 입어볼까 하다가도 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공연히 나 혼자 쑥스러워서 못 입는다.  지금까지 운동화나 랜드로바류의 신발에 익숙해진 내 발은 앞부리가 날씬하고 굽이 높은 구두를 거부한다.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다양한 스타일을 나에게 적용해 볼 기회를 가졌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짙다.  이제 와서 스타일을 바꾸자니 민망하고 쑥스럽다.  게다가 몸매까지 망가져서 더 자신이 없다.  옷을 고르는 쇼핑에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더 억울한 건 나를 그렇게 놀려대던 오빠들이 지금 자기 자식들에겐 레이스에 프릴 달린 옷은 물론이고, 공주풍 구두에 깜찍한 핸드백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다.  딸들을 예쁘장하게 꾸며 놓고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오빠들이 어쩐지 더욱 얄미운 추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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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0-0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리고보니까, 내가 치마입으면 그렇게 놀려대던 오빠들이 자기 딸래미와 조카들에겐 아낌없이 분홍폭탄을 발사하고 있군요. 동병상련입니다.

섬사이 2007-10-08 02:25   좋아요 0 | URL
FTA반대조선인님, 님에게도 그런 쓰라린 과거가 있으시군요.
분홍이라.. 예전에 우리 오라버니들은 말씀하셨죠.
유치찬란이라고. 끙~~-_-;;

하늘바람 2007-10-0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지금이라도 레이스와 프릴을 착요애 보셔요. 저는 놀려대는 오빠가 없었는데도 왜 못그랬는지 요즘들어 레이스와 프릴이 당깁니다

섬사이 2007-10-08 02:27   좋아요 0 | URL
이젠 레이스와 프릴이 저를 거부하는 것 같다니까요.
어쩌다 옷사러 가서 혹시나 하고 입어보면 레이스와 프릴이 저를 못견디고 아우성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결국 소박하고 평범한 옷을 사갖고 나오게 된답니다.
제 딸들이 엄마의 한을 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꺼이꺼이~~ㅠ.ㅠ

무스탕 2007-10-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빠와 11살 차이가 나는데 생각해 보니 울 오빠도 어린 시절의 무스탕을 귀여워 해줬던것 같네요.
울 오빠는 아들만 둘을 둬서 핑크 공격을 못하고 있으니 억울하겠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상황이지만요... --;;

섬사이 2007-10-08 02:31   좋아요 0 | URL
아들이 많은 집안이네요. 제가 아들만 많은 집안에 홍일점 딸이었거든요. 친가쪽으로도 외가쪽으로도 딸이 귀했죠. 그래서인지 외숙모나 이모, 작은 엄마들까지도 제 옷을 사다주시곤 하셨는데... 어느 순간 모두 저를 포기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 니트 옷을 입은 남자들이 멋져 보이던데, 지성이와 정성이에겐 니트 공격을 해보심이 어떠실런지.. (니트 입은 지성이와 정성이를 보고 싶나이다.^^)

프레이야 2007-10-0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정말 그런 기분 들 때 있어요. 지금 이 나이에 따라하진 못하겠고
예전에는 그럴 엄두를 못 냈던 패션들과 여러가지 생활양식들.. ㅎㅎ
님, 태그땜에 저 쓰러집니다~

섬사이 2007-10-08 02:38   좋아요 0 | URL
어머낫~! 혜경님, 무슨 그런 말씀을..
혜경님의 모습은 저의 이상으로 삼고 싶은 모습인데요.
늘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님이 부러운 걸요.
혜경님이 쓰러지시면 누구라도 안고 달릴테니, 맘놓고 쓰러지셔도 됩니다.^^
저도 혜경님 안고 달릴 자신 있어요. ㅎㅎㅎ
 

가장 고역스러웠던 건 매년 9월이면 심해지는 비염이었다.  늦둥이 막내 비니를 얻으며 함께 얻은 비염이다.  임신했던 해 8월에 갑자기 재채기가 터지면서 (말 그대로 쉴새 없이 터졌다) 코가 미쳤는데 (정말 미친 것처럼 기능을 상실했다.  콧물나고 코막히고..) , 그 이후로 늘 8월이면 코가 미치기 시작하고 9월이면 도저히 참아주지 못할 지경이 되어 이비인후과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8월 한 달을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으며 버티다가 9월에 이르러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차트를 보며 하는 말이, 매년 9월이 되면 오셨네요, 한다.  밤 중에 자다가 못견디고 일어나 코가 다 헐도록 풀어대며 지새운 밤들의 고통을 어찌 다 풀어놓으랴.  그저 잠도 못 자고 힘드네요, 한 마디 했더니 그 의사 '그렇겠네요, 너무 심해졌어요.' 한다..  나도 미련이지.. 뭐하러 한 달이 넘도록 잠도 못자면서 병원 가기를 망설였는지.. 내년부터는 꼭 8월에 병원을 찾자고 다짐했다. 

아직도 비염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잠 자기는 훨씬 편해졌다. 덕분에 낮에 생기를 찾았다.  병든 닭처럼 비몽사몽 풀어진 눈빛으로 소파에 게슴츠레하게 앉아 있는 일도 많이 줄었다. 처음 병원 치료를 받고 와서 약을 먹고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숨쉬기가 얼마나 편하던지, 자면서도 '그래, 잠은 이렇게 자는 거야.  코로 숨을 쉬니까 잠이 이렇게 달콤해지는구나.'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제 10월이다.  비염이 좀 물러나 주려나 기대하고 있다.  숨은 코로 쉬고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10월의 공기는 코로 마시고, 코로 다시 뱉어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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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10-0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는 괜찮으세요? 저나 울 지성이는 봄.가을로 괴롭답니다 ㅜ.ㅜ
아주 못살겠는 정도는 아니고 조금 심하게 괴로운 정도에요. 간지럽고 재채기에 콧물에..
우리 쾌청한 코를 위해 노력해요..

섬사이 2007-10-08 02:40   좋아요 0 | URL
예, 봄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무스탕님이랑 지성이도 비염이 있는 거에요? 부디 심해지지 않기를.. 찬 음식을 먹지 않으면 훨씬 나아진다고도 하더라구요. 그래요, 쾌청한 코를 위해 노력해봐요. 으쌰쌰!!!

kimji 2007-10-0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아주 죽겠습니다, 비염-_-;; 찬 음식을 먹지 않으면 훨씬 나아진다니, 오늘부터 물도 데워서 먹어야겠어요;; 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문, 서랍 열때마다, 아주 죽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코를 뽑아 다른 코와 교체하고 싶은;; 윽, 엽기;; ^^
 
선덕여왕
정진영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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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먼저 탐독한 후 현대 사가들이 그 시대에 대해 쓴 여러 책들을 참고로 읽었다.’(p.331)는 작가는 이 책에서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대부터 시작해서 진덕여왕, 태종무열왕을 거쳐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선덕여왕을 향한 이야기의 초점이 자꾸 흐려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러 역사적 자료에 적당히 살을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한 부분들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진평왕 47년 11월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호소했다.  고구려가 신라에서 당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또 자주 신라에 침입한다고 하였다.
백제 역시 사신을 당에 보내 명광개를 전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당에 내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당 태종은 산기시랑 주자사를 시켜 조서를 가지고 고구려에 가서 서로 화해하도록 달랬다.  고구려 영류왕이 사과하는 글월을 보내며 두 나라와 화평하기를 청하였다.
진평왕 48년 8월,
백제가 주재성을 치니, 성주 동소가 거전하다가 죽었다.
진평왕 49년 7월,
백제 장군 사걸이 서변의 두 성을 빼앗고 남녀 300여 명을 사로잡아갔다.  무왕은 이 전에 신라가 빼앗은 토지를 회복하려고 군사를 크게 일으켜 웅진에 주둔하였다.  진평왕이 이를 듣고 사신을 당에 보내 위급을 고하자 무왕이 듣고 그만 두었다.‘(p.181) 와 같은 ○○왕 ○년 식의 서술이 종종 보이는데 이야기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서술 방식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소설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적 상상력 속에서 농익어 피어나는 것이 역사소설의 묘미라고 볼 때, 작가적 상상력에서 탄생했을 선덕여왕과 비형의 사랑 이야기와 그 배경에 깔리는 역사적 사실과 시대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지 못한 것 같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선덕여왕의 말에서 자주 보이는 ‘~하오’체와 ‘~다’체의 혼용이다. 
“그러지. 앞으로 전쟁은 군신에게 맡겨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전장에서 직접 그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한번 지켜볼 생각이오.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도성을 잘 지키시오.”(p.213)라거나 “잘잘못을 따지며 서로 흠집 낼 때가 아니오.  모두들 정신 차리시오.  우리가 놓여 있는 긴급한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분열을 일으키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열하면 파멸밖에 초래하는 것이 없소.”(p.267)와 같은 부분이 자주 눈에 걸린다. 

그리고 선덕여왕이 죽어가는 장면이 두 번 되풀이 되는데, 이야기의 도입 장면이 곧 이야기의 결말 장면과 겹쳐지는 것은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선덕여왕과 승만의 대화와 김유신과 비담의 내전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선덕여왕이야기에서 그 동생 선화공주와 무왕 서동의 이야기로 빠지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백제와의 아막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귀산과 추항의 이야기를 위해서 갑자기 “귀산의 아버지가 무은인데~”(p.62)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김유신을 등장시키면서 ‘김유신은 경주 사람인데~’(p.182)하며 그 12대조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였다는 사실에서부터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한 이야기, 김유신의 조부 무력이 백제 성왕을 죽인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 서현의 벼슬에서부터 신라왕족의 딸 만명을 만나 혼인하는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과 같은 서술방법은 그야말로 옛 사료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 책의 장점은 정말 많은 인물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진평왕에서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수와 당 간의 여러 전투를 비롯해서 여러 화랑과 장수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올 법한 전설들(선덕여왕이 사랑한 비형랑의 탄생과 귀신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삼국유사 제 1권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책이다.  여러 역사적 자료들을 아우른 작가의 노고를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역사소설이 역사가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무르익어 소설로 열매 맺는 것이라면 소설로서의 『선덕여왕』은 설익은 과일처럼 신 맛이 난다.

그리고 “역사가 시대를 부르듯 난세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제 2의 선덕여왕의 출현은 필연적이다.”라는 속 보이는 홍보문구 좀 치워 주었으면 한다면 내 욕심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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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별 두개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

섬사이 2007-09-28 09:37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심했나요? ^^;;
 

읽다가 배꼽 빠지는줄 알았던 글
" 고가의 책을 구입한 아내를 둔 남편이..딸에게"

 

어느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ㅋ

 
사랑하는 가빈이에게.

엄마, 아빠는 가빈이를 사랑한단다.

사실은 아빠가 엄마보다 많이 사랑한단다.

굳이 수량으로 표현을 하자면, 열 배정도 더 많이 사랑한단다.

엄마의 사랑은 아빠의 사랑에 비교하면 아주 형편이 없는 수준이란다.

그러니 엄마의 가식적인 사랑에 속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는

현명한 가빈이가 되었으면 한다.

 

책은 마음에 양식이라는 말이 있단다.

이건 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책을 이용해서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뜻 일 게다.

 

예를 들자면, 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있다.

그런데 그 아이스크림은 항상 너에 손이 닿을 수 없는 차디찬 냉동실

맨 꼭대기 위에 놓여져 있더구나.

아빠는 항상 그 상황이 가슴이 무척 아프단다.

하지만 가빈아 그 상황에서 좌절을 하면 안 된단다.

책을 이용하거라!

이번에도 니 엄마가 230만원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으로 뻘짓을 했더구나.

처음엔 출판사를 통째로 샀다는 이야기 인 줄 알았단다.

23만원이라고 말 하는 줄 알고, 놀랬는데.

230만원이라고 말하더구나.

아빠는 순간 기절 하는 줄 알았단다.

도대체! 책값이 230만원이라니.

아마도 책을 사면 디지털 TV를 사은품으로 주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엄마가 제 정신으로 돌아와 반품할 수 있도록 기도해 보자.

 

어쨌건.

그걸 사람이 읽으라고 사줬겠니!

그 책을 차곡차곡 쌓거라, 그리고 그걸 딛고 올라서면 어렵지 않게 꺼내

먹을 수 있을 거다. 책을 이용하면 사람이 많은 지식과 풍족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먹을 땐 항상 작은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먹어라.

엄마한테 걸리면 짤 없단다.

대신 문을 열고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려무나.

 

그리고 주말이면 니 엄마가 항상 수락산에 끌고 갈려고 하더구나.

억지로 엄마에게 끌려가는 너에 모습이 애처롭기 까지 하더구나.

아빠는 막아보려고 해도 힘이 없단다.

마치 5천의 군사로 5만의 신라군과 맞서 싸우는 계백장군과 같은 기분이 든단다.

계백장군이 누구인지 굳이 알 건 없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억지로 배우게 되니깐, 그때 배우면 된단다.

하여간, 아빠도 요즘 숨어서 힘을 키우고 있으니 조금만 참거라!

도대체가 지도 힘들어 하는 등산을 연약한 너에게 아무런 죄의식없이

강요를 하다니 분명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 수만 있다면, 아빠가 수락산을 없애버리고 싶다.

 

가빈아!

이럴 때는 엄살이라는 것을 피우는 거란다.

사실 엄살이 아니라 삶의 지혜란다.

발목이 아프다고 드러누워라!

좌삼삼 우삼삼 구르거라!

너네 엄마도 제정신이라면 그런 널 끌고 가겠니?

 

그리고 저번에 니가 노래를 불러 주었잖냐?

“아빠! 힘내세요 가빈이 가 있잖아요”

이 노래 제목이 ‘아빠 힘내세요’라고 하더라.

근데 가빈아 아빠가 진짜 힘든 게 뭔지 아니?

진짜로 힘든 건 바로 ‘너’ 때문이다.

우선 한 달 놀이방비가 25만원이라고 하더라.

이게 말이 되니, 6개월로 계산 해보자.

순순히 놀이방 비만 해도 150만원이더구나.

거기다 간식비, 견학비, 책값……

니가 대학생이니…….

아빠는 요즘 미치지 않을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러니 가빈아! 앞으론 아빠 앞에선 그런 노래 하지마라.

니가 노래 부르면 무슨 돈 벌어오라는 ‘주술소리’로 들린단다.

 

할 얘기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할 란다.

사랑하는 가빈아! 아빠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단다.

소주 한 박스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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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에 비하면 저의 책 욕심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요새는 제 책 맘대로 사기도 망설여지는지라 230만! 어치 책 사신분이 부럽네요. 수빈이 아빠는 책값에 놀이방비의 압박을 유머로 이겨내는 걸 보니 이상적인 남편이시구만요.

섬사이 2007-09-26 23:00   좋아요 0 | URL
230만원어치 책을 사본 적이 없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모하다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다른 카페에서 이 글을 읽고는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는게 뭔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글을 쓴 남자분, 유머러스하고 센스있죠? ^^ 추석은 잘 보내셨어요?

로쟈 2007-09-2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한데 저는 남편 편을 들어야할지 아내 편을 들어야할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섬사이 2007-09-26 23:0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제 서재에서 로쟈님을 뵙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반갑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며 판단이 서질 않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책값이 정말 너무 비싸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넉넉하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셨지요? ^^

하이드 2007-09-2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옆지기분도 섬사이님만큼 예쁘고, 위트넘치는 글을 쓰시는군요. 저도 배꼽 빠지는 줄 알았어요. 그 출판사에 자리 나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크크크

섬사이 2007-09-26 23:04   좋아요 0 | URL
하하하 하이드님, 저희 집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다른 카페에서 읽고는 재미있어서 퍼온 거예요. 웃기면서도 뮌가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것 같아서요. 아이들 책이 230만원이라니, 도대체 어떤 책일까 궁금해요.^^

조선인 2007-09-2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웃기긴 한데, 아, 놀이방 대목에선 정말 가슴이 탁 막힙니다. 대학교 등록금이 비싸다고 욕해댔는데, 사실 마로에게 한달 들어가는 비용이 53만원이니까 300만원대 인문계 등록금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꺼이꺼이.

섬사이 2007-09-26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막내 유빈이가 걱정이예요. 셋째라 어린이집 교육비가 무료인줄 알았더니, 그것도 만 3세까지만 무료라네요. 여섯살, 일곱살 그렇게 두 해만 어린이집에 보낼까 생각 중이예요. 아, 마로에게 한 달 들어가는 비용이 53만원이라니, 정말 출혈이 심하네요. ㅠ.ㅠ 남의 얘기 같지 않아요. 마로랑 추석은 즐겁게 잘 보내셨지요? ^^

마노아 2007-09-2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너무 웃겨요. 가빈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들립니다. 실제로도 아이들 교육비가 정말 엄청나죠. 그나저나 230만원 어치의 책이란 어떤 책일까요. 궁금하군요^^

섬사이 2007-09-26 23: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230만원짜리 아이 책이란 게 도대체 어떤 걸까, 궁금해지더라구요. 저는 그냥 열심히 공공도서관을 이용해야겠다고 더욱 굳게 결심했어요.^^ 추석 연휴 잘 보내셨어요?

라로 2007-09-21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긴 하지만 한편으로 가슴에 와닿아요!!!!
참,,,,,내

섬사이 2007-09-26 23:13   좋아요 0 | URL
웃기면서도 마냥 즐겁게 웃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지요? 저녁에 옆지기 모습을 새삼 안쓰럽게 바라보았답니다. ^^ 더구나 저는 전업주부라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별로 도움을 못 주고 있거든요. 송편 많이 드셨어요? 어제 한가위 보름달이 파르스름한 빛을 뿜으며 맑게 떠있는 걸 보니 저절로 제마음도 조금은 말끔해지는 것 같았어요.^^

비로그인 2007-09-2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조오타 ^^

섬사이 2007-09-26 23:13   좋아요 0 | URL
^^ 마음에 드셨어요?

책향기 2007-09-2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네요^^

섬사이 2007-09-26 23:15   좋아요 0 | URL
네, 제 가슴에도 콕콕 와 닿더라구요.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이제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겠지요?

비로그인 2007-09-2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섬사이 2007-09-26 23:15   좋아요 0 | URL
^^

순오기 2007-09-2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아를 둔 엄마들이 책 서너질 사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도 책값으로 돈을 쓰는 엄마는 더 낫지 않을까요~
게다가 애가 두셋이면 본전 너끈히 뺍니다~~~유경험자!

섬사이 2007-09-26 23:1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추석 잘 보내셨어요?
요즘 애들 책값이 무척 비싼가봐요. 얼마전에 마음에 드는 전집류 책이 있어서 중고를 알아봤는데 중고가격도 40만원이 넘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했지요...ㅠ.ㅠ 그냥 공공도서관을 우리집 서재 삼아서 열심히 들락거리자고 결심했답니다. ^^;;
 
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방학이면 작은 아버지 댁에 놀러가서 사촌 형제들과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놀던 기억이 났다.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어른들께 몇 차례 꾸중을 듣고 나면 마지막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는 서로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숨을 죽이며 소곤거리곤 했었다.  머리털이 쭈뼛 일어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지지만 눈동자는 반짝였고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  그러다 하나, 둘 잠이 들기 시작하면 혼자 남아 맨 나중에 잠드는 사람이 될까봐 가슴 조이던 기억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이 어릴 적 사촌 집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야기, 읽으면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하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여름철 밤에 캄캄한 방에서 작은 전등 하나만 켜 놓고 이불 속에서 읽으면 딱 좋을 이야기다.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굳이 어떤 의미를 캐내려 하는 게 현명할까?  ‘냉혹한 간병인’에서 사라져가는 효의식과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문제를 떠올려야 할까?  ‘어머니와 러시안 스프’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어머니의 눈물겨운 모성을 들먹여야 할까?  ‘살인레시피’에서 현대의 가정 붕괴와 이혼률 증가를 논해야 할까?  그건 ‘개그콘서트’를 ‘100분 토론’처럼 보는 것과 똑같은 우스꽝스러운 짓이 될 것이다. 

책이 주는 오락적 쾌감을 느껴보는 것도 오래간만인 것 같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가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가볍게 기분전환을 하고난 기분이랄까?  그동안 내가 너무 무겁게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체중을 문제 삼지 말기를.....) 이런 것 저런 것 복잡한 문제들 다 한 쪽으로 치워놓고 가볍게 읽을 것을 찾는 분들에게 좋을 책이다.  단, 무섭고 괴기스러운 내용에 지나치게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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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9-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 보고 프네요. 요즘 왜 저런 풍의 표지에 끌리는지

섬사이 2007-09-21 20:03   좋아요 0 | URL
표지는 정말 예뻐요. 볼수록 맘에 들더라구요. 표지만 봐가지고는 무척 따스하고 정겨운 동화같은 이야기라도 펼쳐질 것 같지요? ^^

라로 2007-09-2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피해야 겠네요,,,,제가 워낙 민감해서리...ㅎㅎ

섬사이 2007-09-26 23:2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무서운 영화나 책은 잘 안보는 편이예요. 이 책 읽고서는 가끔 이 책의 장면이 상상되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