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연휴에 시어른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나셨다. (흐흐흐흐흐~~~) 덕분에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동네 시장 떡집에서 송편을 맞추어 담고 과일 한 박스와 친정 부모님 티셔츠를 포장해서 들고는 추석 하루 전 날 친정에 갔다. 정말정말정말 아주아주아주 오랜만에 친정오빠네 가족들과 여유롭게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여유'였다. 성장한 조카들(여대생 조카가 두 명)의 성숙해진 외모와 오빠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할 수 있었던 여유, 그게 억울한 감정으로 이어질 줄이야..
나에겐 오빠가 둘 있다. 둘 다 미대를 나왔고 (큰오빠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작은오빠는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오빠들은 나름 고상하고 품위있는 미적 감각을 가졌다고 자부하며 산다.
나도 늦둥이 엄마지만, 나 자신도 늦둥이어서 큰오빠와는 11살, 작은오빠와는 9살 차이가 난다. 오빠들이 보자면 난 새카맣게 어린 막내 여동생이라 내가 첫 아이 지니를 낳았을 적에는 오빠 둘이 병실에 찾아와서 애가 애를 낳았다며 신기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에도 어릴 적부터 오빠들의 귀여움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한데, 그 애정의 표현이 다소 짖궂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프릴이나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으면 오빠들은
"야, 너는 무슨 그런 옷을 입었냐? 미친년 속치마 뜯어서 옷 해 입었냐?"며 놀렸다.
커서 립글로스라도 바르면
"너는 튀김 먹고 입도 안 닦았냐? 입술에 번들번들하게 기름 묻었다."며 놀렸다.
그런 오빠들의 영향으로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청바지에 티셔츠(그것도 당시엔 박스티가 대세였다), 운동화와 배낭(BACK PACK)이 호들갑스럽지 않은 은은하고 소박함의 가치를 가진 최고의 미덕인 줄 알고 다녔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민주화 항쟁이 뜨겁던 80년대가 아니었던가. 하루가 멀다하고 최루탄이 날아다니는데 뾰족구두에 치마를 나풀대며 다니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80년대가 까마득하게 지나가고 민주화 항쟁의 뜨거운 함성이 끝난지가 언젠데 나는 아직도 그 시절 그 패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청바지에 후드티 입고 시댁에 다녀왔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좀 우아하고 여성스런 옷을 입어볼까 하다가도 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공연히 나 혼자 쑥스러워서 못 입는다. 지금까지 운동화나 랜드로바류의 신발에 익숙해진 내 발은 앞부리가 날씬하고 굽이 높은 구두를 거부한다.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다양한 스타일을 나에게 적용해 볼 기회를 가졌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짙다. 이제 와서 스타일을 바꾸자니 민망하고 쑥스럽다. 게다가 몸매까지 망가져서 더 자신이 없다. 옷을 고르는 쇼핑에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더 억울한 건 나를 그렇게 놀려대던 오빠들이 지금 자기 자식들에겐 레이스에 프릴 달린 옷은 물론이고, 공주풍 구두에 깜찍한 핸드백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다. 딸들을 예쁘장하게 꾸며 놓고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오빠들이 어쩐지 더욱 얄미운 추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