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방학이면 작은 아버지 댁에 놀러가서 사촌 형제들과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놀던 기억이 났다.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어른들께 몇 차례 꾸중을 듣고 나면 마지막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는 서로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숨을 죽이며 소곤거리곤 했었다.  머리털이 쭈뼛 일어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지지만 눈동자는 반짝였고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  그러다 하나, 둘 잠이 들기 시작하면 혼자 남아 맨 나중에 잠드는 사람이 될까봐 가슴 조이던 기억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이 어릴 적 사촌 집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야기, 읽으면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하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여름철 밤에 캄캄한 방에서 작은 전등 하나만 켜 놓고 이불 속에서 읽으면 딱 좋을 이야기다.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굳이 어떤 의미를 캐내려 하는 게 현명할까?  ‘냉혹한 간병인’에서 사라져가는 효의식과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문제를 떠올려야 할까?  ‘어머니와 러시안 스프’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어머니의 눈물겨운 모성을 들먹여야 할까?  ‘살인레시피’에서 현대의 가정 붕괴와 이혼률 증가를 논해야 할까?  그건 ‘개그콘서트’를 ‘100분 토론’처럼 보는 것과 똑같은 우스꽝스러운 짓이 될 것이다. 

책이 주는 오락적 쾌감을 느껴보는 것도 오래간만인 것 같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가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가볍게 기분전환을 하고난 기분이랄까?  그동안 내가 너무 무겁게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체중을 문제 삼지 말기를.....) 이런 것 저런 것 복잡한 문제들 다 한 쪽으로 치워놓고 가볍게 읽을 것을 찾는 분들에게 좋을 책이다.  단, 무섭고 괴기스러운 내용에 지나치게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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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9-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 보고 프네요. 요즘 왜 저런 풍의 표지에 끌리는지

섬사이 2007-09-21 20:03   좋아요 0 | URL
표지는 정말 예뻐요. 볼수록 맘에 들더라구요. 표지만 봐가지고는 무척 따스하고 정겨운 동화같은 이야기라도 펼쳐질 것 같지요? ^^

라로 2007-09-2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피해야 겠네요,,,,제가 워낙 민감해서리...ㅎㅎ

섬사이 2007-09-26 23:2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무서운 영화나 책은 잘 안보는 편이예요. 이 책 읽고서는 가끔 이 책의 장면이 상상되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