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정진영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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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먼저 탐독한 후 현대 사가들이 그 시대에 대해 쓴 여러 책들을 참고로 읽었다.’(p.331)는 작가는 이 책에서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대부터 시작해서 진덕여왕, 태종무열왕을 거쳐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선덕여왕을 향한 이야기의 초점이 자꾸 흐려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러 역사적 자료에 적당히 살을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한 부분들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진평왕 47년 11월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호소했다.  고구려가 신라에서 당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또 자주 신라에 침입한다고 하였다.
백제 역시 사신을 당에 보내 명광개를 전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당에 내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당 태종은 산기시랑 주자사를 시켜 조서를 가지고 고구려에 가서 서로 화해하도록 달랬다.  고구려 영류왕이 사과하는 글월을 보내며 두 나라와 화평하기를 청하였다.
진평왕 48년 8월,
백제가 주재성을 치니, 성주 동소가 거전하다가 죽었다.
진평왕 49년 7월,
백제 장군 사걸이 서변의 두 성을 빼앗고 남녀 300여 명을 사로잡아갔다.  무왕은 이 전에 신라가 빼앗은 토지를 회복하려고 군사를 크게 일으켜 웅진에 주둔하였다.  진평왕이 이를 듣고 사신을 당에 보내 위급을 고하자 무왕이 듣고 그만 두었다.‘(p.181) 와 같은 ○○왕 ○년 식의 서술이 종종 보이는데 이야기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서술 방식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소설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적 상상력 속에서 농익어 피어나는 것이 역사소설의 묘미라고 볼 때, 작가적 상상력에서 탄생했을 선덕여왕과 비형의 사랑 이야기와 그 배경에 깔리는 역사적 사실과 시대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지 못한 것 같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선덕여왕의 말에서 자주 보이는 ‘~하오’체와 ‘~다’체의 혼용이다. 
“그러지. 앞으로 전쟁은 군신에게 맡겨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전장에서 직접 그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한번 지켜볼 생각이오.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도성을 잘 지키시오.”(p.213)라거나 “잘잘못을 따지며 서로 흠집 낼 때가 아니오.  모두들 정신 차리시오.  우리가 놓여 있는 긴급한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분열을 일으키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열하면 파멸밖에 초래하는 것이 없소.”(p.267)와 같은 부분이 자주 눈에 걸린다. 

그리고 선덕여왕이 죽어가는 장면이 두 번 되풀이 되는데, 이야기의 도입 장면이 곧 이야기의 결말 장면과 겹쳐지는 것은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선덕여왕과 승만의 대화와 김유신과 비담의 내전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선덕여왕이야기에서 그 동생 선화공주와 무왕 서동의 이야기로 빠지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백제와의 아막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귀산과 추항의 이야기를 위해서 갑자기 “귀산의 아버지가 무은인데~”(p.62)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김유신을 등장시키면서 ‘김유신은 경주 사람인데~’(p.182)하며 그 12대조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였다는 사실에서부터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한 이야기, 김유신의 조부 무력이 백제 성왕을 죽인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 서현의 벼슬에서부터 신라왕족의 딸 만명을 만나 혼인하는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과 같은 서술방법은 그야말로 옛 사료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 책의 장점은 정말 많은 인물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진평왕에서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수와 당 간의 여러 전투를 비롯해서 여러 화랑과 장수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올 법한 전설들(선덕여왕이 사랑한 비형랑의 탄생과 귀신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삼국유사 제 1권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책이다.  여러 역사적 자료들을 아우른 작가의 노고를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역사소설이 역사가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무르익어 소설로 열매 맺는 것이라면 소설로서의 『선덕여왕』은 설익은 과일처럼 신 맛이 난다.

그리고 “역사가 시대를 부르듯 난세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제 2의 선덕여왕의 출현은 필연적이다.”라는 속 보이는 홍보문구 좀 치워 주었으면 한다면 내 욕심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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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별 두개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

섬사이 2007-09-28 09:37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심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