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짚문화 우리 문화 그림책 13
백남원 글.그림 / 사계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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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늙고 투박한 농부의 손이 보인다.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손등, 거칠고 굵은 손마디와 노동에 단련된 뭉툭한 손끝 때문에 가만히 쓰다듬으면 어쩐지 애잔함에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손이다. 그 손이 짚을 엮어 새끼를 꼬고 있다.

이 책은 작지만 다부진 몸매를 가진 듯한 나이 지긋한 농부가 낫으로 벼를 베는 그림이 그려진 속표지와 첫 장의 지푸라기 그림,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있는 검버섯 자국이 짙은 주름진 얼굴의 할아버지와 짚신, 그 짚신을 신어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소녀의 세 컷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두 짚을 꼬아 짚신을 만드는 과정의 그림이다.  본문에 있는 17장의 그림 중에 15장의 그림이 짚 그림이거나 짚신을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 손 그림이니 아이들 눈으로 보기엔 좀 심심하다 싶을 정도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궁금했다.  요즘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칠해지고 다이나믹한 동선이 살아있는 그림, 사실화보다는 대상을 과장하고 단순화한 그림, 밝고 경쾌하고 어딘가 웃긴 구석이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그림 작가가 더 잘 알 텐데 말이다.

그런데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그림만 보면서 페이지를 넘기다가 아하, 하고 감탄했다.  이 책은 아이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구나, 하고.  그러자 책의 글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도시에 사는 손녀는 할아버지 댁에 놀러왔을 것이다.  가을걷이 시기인 것 같으니까 아마 추석 때쯤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사랑스런 손녀를 데리고 논으로 간다.  그리곤 귀한 손녀에게 혹시 더러운 논물이라도 튈까봐 논 옆길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하고는 당신 혼자 논에 들어가 낫으로 써억써억 벼를 베었을 것이다.  논에서 혼자 벼를 베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속표지의 그림이다.  아이가 조금 심심하고 따분해하며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명절이라고 먼 도시에서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를 찾아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위해 짚신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단순한 짚신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세대만이 알고 있는 삶의 비법이고, 이제는 다음 세대로 건너 이어지지 않을 할아버지의 향수이자 추억이며, 우리가 잊어선 안 될 할아버지 세대에서 멈춰버린 우리 전통의 자연관과 가치관이 아닐까. 

도시생활에만 익숙한 손녀의 눈에 할아버지가 지푸라기로 부리는 마술과 같은 일이 마냥 신기했을 것이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그림책 속의 그림이 오직 할아버지의 손과 짚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할아버지는 짚신을 만들며 손녀에게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그게 바로 이 책의 글 부분이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할아버지의 손놀림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놓인 까마득한 세대차이의 벽을 짚 하나로 훌쩍 뛰어넘는, 건너지 못할 세대간에 따스한 정이 오고가는 강이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짚>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인 ‘짚’에 대한 정보그림책 쯤으로 여겼던 나에겐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할아버지는 손녀 앞에 완성된 짚신을 놓아주고는 짚을 엮느라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신다.  등줄기가 뻐근하고 눈이 침침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허리를 펴고 손녀가 자신이 만들어준 짚신을 환하게 웃으며 신어보는 모습에 뻐근한 허리도, 침침한 눈도 다 낫지 않으셨을까.  이 책의 맨 마지막 장, 손녀가 짚신을 신으며 웃고 있는 그림은 이 책에 담긴 유일한 할아버지의 시선이다. 

이 책을 읽고 엄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시골도 아니고 대도시 중심가에 있었는데도 가끔 엄마는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짚 무더기를 들고 오셔서는 바구니를 엮어서 고양이 집으로 쓰곤 했다. 그 때 엄마가 지푸라기 몇 가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쓰윽 비비면 마술처럼 단단하게 꼬인 끈이 되곤 했다.  일명 새끼 꼬기를 하신 건데, 하도 신기해서 나도 지푸라기 몇 가닥 쥐고서 엄마 흉내를 내보면 엄마 것처럼 야무지게 꼬이질 않고 허술하고 어설펐다.  그래도 앉아서 새끼를 꼬아보겠다고 끙끙대는 나를 보며 웃으시곤 하셨던 기억이 밀려왔다.  

네 살 배기 막내가 좀 더 크면 아이 손잡고 둘이서 짚풀 생활사 박물관에 가봐야겠다고 계획했었다.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 것 같아서 아이랑 같이 하면 참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그리고 이 책 때문에 떠오른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해서  계획을 좀 수정했다.  짚풀 생활사 박물관에 가되, 아이랑 나랑 단 둘이 가지 않고 우리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가는 것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앉아서 아이가 체험프로그램을 해본다면 더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막내 아이에게 읽어주기엔 좀 수준이 높은 것 같아서 아직 읽어주진 못했다.  하지만 좀 더 크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읽어주고 싶다.  “할아버지가 지푸라기 꼬아서 짚신을 만드는 게 너무 신기해서 이 아이는 할아버지 손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나 보다..”하면서.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보다 쉽게 낡기는 했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어.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쓰고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난 뒤엔, 또다시 자연이 준 것으로 새로 만들면 되었으니까.” 라는 글은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과 함께 편리와 효율의 잣대가 최선은 아니라는, 소박하고 단순한 자연의 순환과 연대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  아이는 그것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  뒷표지의 그림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보면 볼수록 맛이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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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 저승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2
김미혜 글, 최미란 그림 / 사계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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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탕에 저승사자와 호랑이의 그림이 그려진 깔끔한 표지를 넘기면, 곧바로 표지 뒷장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캄캄한 밤 창호 문살 너머로 아이와 할머니의 그림자가 비치네요.  “할머니, 할머니, 옛날 얘기 하나 해줘.” 손자가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며 조릅니다.  어릴 적 ‘옛날이야기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며 저의 투정을 무마해보려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더군요. 저도 그 때는 옛날이야기를 조르던 작은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버린 걸까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잠시 그림 속 아이와 할머니의 그림자를 쓰다듬었다지요. 아무튼 이 그림책의 지옥에 간 호랑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곧바로.

그런데 이 그림책의 본격적인 도입부도 무척 흥미로웠어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에 나오는 그 못된 호랑이가 수수밭에 떨어져 죽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앞부분에 썩은 동아줄을 손에 쥔 채 죽은 호랑이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고 사람들이 몰려와 죽은 호랑이를 구경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익살스럽고 재미있네요. 죽은 호랑이를 앞쪽에 커다랗게 과장된 원근법으로 그려놓은 덕에 저도 이 쪽에 서서 구경꾼의 한 패가 되어 죽은 호랑이며 구경꾼들을 둘러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참 절묘하게 배치한 짜임새 있는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페이지 오른쪽 위로 저승사자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게 보입니다.  옷자락을 휘날리며 황금색 구름 위로 말을 타고 달리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시커먼 도포에 창백한 낯빛을 하고 갓을 쓴 저승사자와는 차원이 다르게 아주 멋집니다.  저 저승사자에게 곧 호랑이가 잡혀가겠군요.  저승사자와 호랑이를 따라서 저승구경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저승에 대한 이야기를 이만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이 들려주는 저승이야기는 밝고 경쾌하고 재미있고 익살스럽고 해학이 넘칩니다. 

 

 저승에 끌려온 호랑이는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춰준다는 업경과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 업칭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자기 죄에 대해 변명 한 마디 못하고 가마솥 지옥과 얼음지옥, 발설지옥, 칼산지옥, 독사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참 끔찍하고 잔인한 모습의 지옥인데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킬킬 웃게 됩니다.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 오게 된 지옥 체험 첫 번째 장소 가마솥 지옥, 그 그림 속에는 ‘차카게 살자, 걸리면 백 원에 한대’라는 문신을 새긴 조폭이 눈물과 땀을 흘리며 벌벌 떠는 모습도 있고, 후크선장일 것 같은 해적의 갈고리 손도 보입니다.  그 뿐인가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죗값으로 가게 된 얼음지옥에서는 백설 공주의 못된 계모왕비와 요술거울도 보이네요. 놀부와 놀부 마누라도 끌려오고 있군요. 거짓말한 죄로 가게 된 발설지옥에서는 자기 코를 톱으로 자르고 있는 피노키오가 압권입니다.  약한 사람을 괴롭힌 죄로 간 칼산지옥에는 드라큘라 백작과 빨간 모자 이야기의 늑대가 보이네요.  저 쪽에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도 있구요. 남의 것을 빼앗은 죄로 온 독사지옥에는 일본 제국주의 복장을 차려입고 얌체 같은 콧수염을 기른 일본인이 보여요.  저절로 이토 히로부미 등이 연상되면서 민족적 카타르시스까지 경험하게 되네요.  전통적인 느낌을 잘 살리면서 익살과 해학을 담아낸 작가의 그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자, 이렇게 지옥 곳곳의 체험을 끝낸 호랑이에게 저승의 열명의 왕(시왕)이 윤회를 허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냐구요?  아, 천만에요.  여러 해가 흐른 뒤 우리는 이 그림책 속에서 또 다른 호랑이의 죽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 저승사자가 내려오고 숨진 호랑이에게 묻죠. ‘나무꾼한테 형님 소리 들은 호랑이가 맞으렷다?“ 하구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의 못된 호랑이가 <효성 깊은 호랑이> 속 착한 호랑이로 윤회의 삶을 살다가 다시 죽게 된 거랍니다.  정말 작가의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됩니다.  착한 호랑이는 저승에서 업경과 업칭의 절차를 받고는 사람의 아기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으로 손주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지옥이야기는 끝이 난 것 같은데 그림책의 뒷표지 안쪽에는 이 책 맨처음에서 보았던 창호문살 속 아이와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고, 이런 글이 써있습니다.

“할머니, 그 호랑이가 진짜 삶이 되었어?”
“그럼. 저승 대왕이 말했잖아.  사람으로 다시 살라고.”
“할머니, 그 호랑이는 엄마 말도 잘 듣고 할머니 볼에 뽀뽀도 하고, 착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우리 강아지가 그걸 어떻게 아누?”
“그걸 왜 몰라.  저승사자에게 두 번이나 잡혀간 호랑이가 바로 난데. 어흥!”
거의 식스센스 수준의 반전이 아닌가요?  아이의 장난스런 말 한 마디가 그림책을 읽는 독자에겐 섬뜩한 반전으로 다가옵니다.

글도 그림도 그리고 편집까지 참 잘 계산되고, 참 잘 짜여지고, 참 잘 만들어진 좋은 그림책인 것 같아 읽고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다시 표지를 살펴보니 ‘우리 문화 그림책 12’라고 윗부분에 조그맣게 적혀있네요.  찾아보니 ‘우리 문화 그림책’시리즈로 사물놀이며, 우리 고유의 건축예술인 단청, 전통 상례와 설빔 등등에 대한 책이 더 있더군요.  도서관에 가서 아이의 그림책을 빌릴 때면 일본작가의 그림책이나 서양의 그림책에 비해 우리 작가의 그림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나마 아이의 눈길을 확 사로잡을만한 양질의 그림책을 추려내자면 그 수는 더 적어지겠지요.  게다가 요즘은 영어그림책까지 합세해서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고르다가 한숨이 새어나올 때도 종종 있었거든요.  그러니 이 그림책을 만나고 제 마음이 벅찼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마음 속에 관심 그림책 시리즈로 콕 박아두었습니다.  제 욕심같아선 다른 분들 마음 속에다가도 콕콕 박아드리고 싶습니다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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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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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꺼내 들고는 헉, 하고 숨이 막혔다.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를 했지만 실제로 손에 쥐고 보니 이 책이 가진 기(氣)가 만만치 않게 강한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낡은 장정의 분위기를 살린 짙은 갈색 톤의 표지와 누렇게 바랜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의 그림이, 도대체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주자들의 삶을 어떻게 담아냈다는 건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표지를 넘기면 다양한 인종과 나이의 초상들이 마치 증명사진처럼 빼곡히 그려있다. 삶의 질곡과 고단함, 경계의 눈빛이 담겨 있는 얼굴들. 그 얼굴 뒤로 우리네 할머니들이 말하던 ‘소설로 쓰면 열권을 써도 모자랄’ 사연들이 흐르고 있을 것만 같다. 벌써부터 이 그림책의 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그림들은 1892년부터 1954년까지 운용된 미국 이주자들의 입국 수속 시설인 뉴욕이 엘리스 아일랜드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기초했다고 한다.  이 사진들은 현재 엘리스 아일랜드 이주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 빼곡한 얼굴들에서 느낀 기운은 아마도 아직도 이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이주자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실존 인물들의 기운인 모양이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치 오래되고 낡은 필름이 영사기의 빛을 통과하면서 스크린 위에 이야기를 그려놓는 듯한 느낌이다.  종이를 접어 만든 새, 시계, 중절모,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금이 간 주전자, 이가 빠진 낡은 찻잔, 여행가방, 그리고 가족사진이 정성이 가득 담긴 연필소묘 그림으로 펼쳐진다.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는 이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떠나는 날 아침인 것 같다.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셋뿐인 가족이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표정과 시선이 살아 있는 그림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 가족이 살아가는 삭막한 도시 전체에 검은 용의 꼬리가 곳곳에서 꿈틀대고 있다. 아마도 그 용의 이름은 가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버지와의 헤어짐을 코앞에 둔 아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런 아이에게 아버지는 중절모 속에 숨긴 종이새를 보여주며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시키고, 울먹이는 아내를 안아주고 위로한다. 그림만 보고 있는데도 헤어지는 슬픔이 가슴 속까지 밀고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와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이, 그 위로 떠다니는 저 망할 용의 꼬리가 걱정스럽다.

작가의 그림은 그렇게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과 눈빛을 정성스럽게 잡아내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상징적인 묘사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배를 타고 아득하게 먼 거리를 떠나 낯선 땅에 이주한 아버지는 어떤 난관을 만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아버지는 그 낯선 땅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림책을 보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게 조여 온다.

아버지가 도착한 나라는 아마도 이주민의 정착을 적극 장려하는 그런 나라인 모양이다.  커다란 두 석상이 악수하며 서 있는데 한 석상은 여행가방을 옆에 두고 있고 또 다른 석상은 주전자와 커다란 냄비를 옆에 두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주민과의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인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러나 그래도 이주민은 이주민이다. 말도 문화도 다른 이 곳에서 아버지는 증명서 하나를 자켓 안주머니에 접어 넣으며 근심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떠나온 고향과는 다르게 무척 번성하고 풍요롭고 문명화된 이 낯선 땅에서 아버지는 헤매고 다니지만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주저앉아 사전인 듯한  책만 들춰보고 있다. 그 때 옷도 피부색도 다른 남자의 도움으로 겨우 잠 잘 곳을 찾는다. 그 곳에서 아버지는 이상하게 생긴 생물체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사람들 주변엔 늘 희한하게 생긴 동물이 있다.  아마 이주민들의 외로움과 절망을 함께 견뎌줄 희망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내가 감동하는 이유는 물론 작가의 정성과 혼이 가득 담긴 듯한 이 아름다운 그림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주민의 고통과 어려움, 쓸쓸함과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정, 위로, 친절과 상냥함 등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 외에도 이 책에는 아버지에게 도움과 친절을 베푸는 또 다른 이주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소녀시절 가혹한 노동착취로부터 도망 나온 여자와 사람들을 청소하듯 기계로 빨아들이는 거대한 사람들로부터 탈출한 가족(아마 독재 권력자의 폭력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인종청소’라는 낱말이 떠오르기도 하는 장면이다.), 무자비하고 참혹한 전쟁으로부터 떠나온 할아버지 등등. 그런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친절을 베풀고 따뜻한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버지는 멀리 떠나온 낯선 땅에서 그렇게 희망을 발견하고 적응하며, 일을 하고 가족에게 편지와 돈을 부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를 읽는 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의 도착. 오랜 이별 끝에 찾아온 재회.  가슴이 뭉클해지고 콧등이 시큰거린다.  이 책의 제목이 '이주'나 '떠남'이 아니라 '도착'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가족이 모여 있는 식탁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아버지가 주는 돈을 받아들고 집을 나선 아이. 새로 이주해 온 듯한 여자 하나가 길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두리번 거리고 있다.  아이가 다가가 길을 가르쳐 준다.  따뜻한 친절은 희망에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책을 몇 번이나 펼쳐 읽는 동안, 우리나라에 시집온 베트남 여자 하나가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가 죽음으로써 내려놓고자 했던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무엇이 그녀를 희망으로 이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이주민의 삶에 국한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전쟁과 가난을 겪는 사람이 없는 세상, 그래서 ‘이주민’이라는 분류개념의 용어가 필요치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어른이 보아도 모자람이 없는, 아니 어른도 꼭 봐야할 최고의 그림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별 다섯개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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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공주백과사전> 서평단 알림
잊혀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공주백과사전
필립 르쉐르메이에르 지음, 김희정 옮김, 레베카 도트르메르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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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에 도착한 책을 택배 포장 봉투에서 꺼낼 때 큰딸과 나는 동시에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판형인데다가 신비로운 빨간색 바탕의 표지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보다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딸이 먼저 잡고 읽었다.  워낙 예쁜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딸이라서 서평단에 당첨되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했었고, 내내 책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딸아이는 글보다는 그림에 빠져 “엄마, 엄마!! 이 그림 좀 봐!”하며 연신 나를 불러댔다.

정말 그림만으로도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한 책이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집에는 미술을 공부하는 오빠들 덕택에 미술관련 외국 원서들과 도감류들의 책들이 많았다.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책들 속의 그림들을 보며 상상의 세계 속으로 얼마나 자주 빠져들곤 했었는지..  어느 나라 책이었는지는 몰라도 유럽 쪽 국가에서 출판된 가구와 인테리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그 예쁜 공간 안에 사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또 내가 그런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고, 그러다가 왜 우리나라는 가구 하나도 이렇게 만들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분해서 울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인테리어가 훌륭한 공간을 보면 그 때 그 책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멋진 그림의 책을 만나고 보니 이 책 속의 그림 하나하나를 구석구석 뜯어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이들은 나같은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이 책의 그림을 통해 보고 만나고 느끼며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큰딸에게서 책을 넘겨받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읽었다.  그림보다는 글의 힘이 많이 약한 느낌이다.  반짝이는 재치와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발상이 돋보였지만 환상적인 분위기의 일러스트가 없었다면 이 책의 매력은 싹 빠져버리고 마른 나뭇잎을 씹는 것처럼 푸석푸석하지 않았을까. 

소개되는 공주들은 성품이나 개성, 모습들이 어찌나 다양하고 유머러스한지 우리가 갖고 있던 정형화된 공주의 틀을 박살낸다. 우리 큰딸이 어렸을 때, 내게 한창 공주님을 그려달라며 졸라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공주그리기가 너무나 귀찮아진 나는 보자기 같은 천으로 몸을 두르고, 펑퍼짐한 코에 두터운 입술,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에는 나뭇잎 왕관을 쓴 검은 피부의 공주를 그려준 적이 있었다.  “에이~~ 이게 무슨 공주야~~”하며 투정을 부리는 딸에게 “이건 아프리카 우탕카 부족의 왕인 우가우가 추장의 딸, 와탕코 공주야.”라고 설명했더니 딸이 긴가민가하며 더 이상 떼쓰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따지고 보면 나나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엔 디즈니 풍의 외모를 가진 동화 속 공주들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디즈니 풍의 공주님들을 몰아내고 공주에 대한 사고의 경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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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 모두가 친구 7
코키루니카 글.그림, 김은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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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검정 펜으로 그려진 그림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남자 아이는 티 하나 없이 맑고 즐거울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짜증나는 표정이다.  벌써 인생의 고달픔을, 그 부조리함을 이미 다 알아버려서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 귀찮게 구는 동생, 자기만 야단치는 엄마, 자기만 벌 받는 학교, 거기다 길에선 개에게 물리기까지 하니 내가 생각해도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인생이 짜증나고 갑갑하긴 하겠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에서 주운 작은 마법 상자, 싫어하는 건 뭐든 다 삼켜버리는 상자란다.  아이는 먹기 싫은 생선,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 귀찮은 동생, 엄마, 선생님, 친구들을, 심술궂고 복수심에 불타는 듯한 표정으로 모두 마법 상자가 꿀꺽 삼켜버리게 만든다. 짜증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제거해 버렸으니, 이제 아이는 신나고 행복할까?

당연하게도 아이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짜증보다는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였을까?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라고, 서로 부딪치고 오해하고 아옹다옹하면서 정을 쌓고 사는 거라고 다정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만 같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게 삶의 한 과정이라고. 그럴수록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야 한다고.  그러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다.

아이가 마법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과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우는 모습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는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무엇을 느낄까?  책의 맨 뒷장에서 아이와 엄마, 선생님, 친구들, 동생이 환한 얼굴로 줄지어 가볍게 걸어가는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화해’하는 낱말이 떠오른다.  남자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스스로를 반성하며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마법 상자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와 선생님도 늘 지치고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그림책은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엄마와 선생님, 친구들에게도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래야 ‘화해’와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걸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안해진다.  나도 아이에게만 반성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매일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난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도 반성할 점이 있다고 하면서도 아이에게 요구했던 만큼의 똑같은 무게의 반성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나도 아무리 내 아이 앞이라 해도 겸손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 얇은 두께지만 인상이 강한 그림책이다.  유아뿐만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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