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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아빠 살림어린이 그림책 20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노경실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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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미국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를 닮은 존의아빠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의 외모를 가진 인물.  '내가 나이보다 좀 젊어보이는 편이구나'하고 그냥 겸손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이 아빠는 동안의 외모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즐기는 인물이다. 젊은 사람들이 입는 옷을 즐겨입고, 머리 모양도 자주 바꾸고,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커다란 방에 자기 장난감을 가득 채워놓을 정도인데다가 더 젊게 보이고 싶어서 자전거 운동을 하고, 거울 앞에서 멋 부려대며 애를 쓴다.  

 

 

 

 

 

 

 

 

 

그 쯤이라면 나름의 개성이라고도 취향이라고도 봐 줄 수 있고, 험한 세상에서 삶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자기 부인에게 "여보, 당신도 조금 더 젊게 꾸며보는 게 어때?"하며 잘난 척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아프면 이불 뒤집어 쓰고 엄살을 떠는 건 심하게 짜증이 날 것도 같다. 젊어보이는 외모를 젊게 유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빠는 어느 날 저녁 '젊음을 돌려드립니다'라고 쓰인 음료수 한 병을 다 마셔버리고는 다음 날 아침 아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젊어지고 싶어 하더니, 진짜로 소원을 이루었네." 존의 엄마는 아기가 된 아빠를 바라보며 쓸쓸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어쩐지 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버버버'거리는 옹알이를 하고 음식을 흘리는 남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바람을 쐬어주는 기분은 어떨까.  이 참에 머리에 알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너무나 젊어지고 싶어하던 아빠가 아주 아기가 되어버려서는 존이 기저귀를 가져다 줘야 하고, 놀아줘야 하는 아빠,  변기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아빠가 존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좀 얄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아빠는 몇 시간 단잠을 자고나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니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하고 머리카락 한 가닥이 하얗게 변한 채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잘 읽으려면 글 뿐 아니라 그림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글의 내용은 아기가 되어버린 철없는 아빠를 존이 바라본 이야기지만 그림은 따로 살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첫 부분 오른 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자신만만 좀 시건방지다 싶은 썩소를 짓고 있는 아빠의 표정은 10대 청소년, 그 중에서도 좀 튀어보이고 싶어 기를 쓰는 아이같은 옷차림이나 유별난 헤어스타일과 연관지어 보지 않아도 좀 비호감인데다가 '어른다움'(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연륜이랄까 후덕함이랄까 하는 것들이 어른다운 거라면) 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존의 아빠 속에 내재된 유아적 성향은 아기로 변하기 전인 아빠를 묘사한 그림 속에서도 암시된다.   

거꾸로 가는 시계, 벽에 걸려 있는 가수의 그림에서 기타의 끝 부분이 젖병꼭지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아빠의 장난감이 진열되어있는 방에서도 암시의 그림은 계속 발견된다. TV 속의 피터 팬, 트로피 속의 젖병, 파이프 담배에 꽂혀있는 젖병꼭지, 당구대 위에 있는 공 중에 하나는 장난감 공인 것 같고, 하다못해 술병입구, 붕어 입, 현관문 손잡이, 침대기둥에서도 졎병꼭지를 찾아볼 수 있다.  아빠가 싸이클을 타고 있는 장면 바닥에는 딸랑이로 보이는 장난감이 놓여있으니 아기가 변해버리기 전부터 아빠는 속으로는 이미 유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기가 된 다음엔 이불 무늬까지 바뀌어버리지만.

아이들에게 아빠가 '다 큰 아기'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요즘은 친구같은 아빠들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아빠는 엄마보다는 어렵고 까다롭고 위압적인 존재일 텐데, 그런 아빠를 아들보다도 철없고 아기 같은 모습으로 그려놓은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눈치챌까? 어른들도 때론 어리광부리고 마음껏 울고 엄살을 떨어도 괜찮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  난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안에 남아있을 유아기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존의 아빠처럼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쩔 수 없는 법.  흰머리는 점점 더 많아지고, 피부는 푸석하고 칙칙해져가고, 갈수록 어른 노릇이 점점 버거워져간다.  존의 아빠도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점점 더 저항하기가 힘겨워질 테니, 어쩐지 하얀 머리카락 한 가닥에 난감해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다시 어른으로 돌아온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액자 속 그림..  아기로 변한 아빠가 하얗게 널부러져 누워있는 여자의 배 위에 올라 앉아 있고, 침대 옆 탁자에는 젖병이 놓여 있다. 뒤의 커튼 사이로 상상의 동물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아기 같은 아빠에게 지쳐버린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 그것도마음이 짠하다. 이 그림책 속에는 액자 속 그림이 여러 개 등장하는데, 무척 궁금증을 자아낸다. 앞에서 말했던 그림 속 록음악 가수는 누구일지, 곳곳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그 출처가 어디일지, 분명 어딘가에서 원작을 찾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즘 이것저것 손댄 일들이 많은 탓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은 간혹 글의 내용보다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꼼꼼히 살피고 읽어야 하는 그림에서 더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  이 책도 그런 즐거움을 안겨 준 책인데,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그림책들과 비교해보면 글쎄 그렇게 잘 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 <동물원>, <헨젤과 그레텔>, <돼지책>, <고릴라> 등에 등장하는 아빠들과 비교해보면 새롭고 참신한 아빠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 같아서(여전히 대책없이 한심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어보이지만 조금 더 발랄하고 가볍다는 점에서) 그 점은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보기엔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모습의 아빠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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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6-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아빠가 좀 오버했네요. 아빠가 애기라니 아 싫다 싫어.... ㅎㅎ
하긴 가끔은 옆지기를 애 하나 더 키운다는 심정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섬사이 2011-06-15 15: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옆지기가 큰아들 같을 때가 종종 자주 왕왕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고집이 센 아들이죠. ^^;;

아영엄마 2011-06-1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리뷰 잘 봤어요. 글을 참 잘 쓰셔서 님 리뷰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네요.
참, 리뷰에 그림 속의 기타리스트를 궁금해 하시길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 중에 "지미 헨드릭스"라는, 젊은 시절에 요절한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있거든요.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검색해 보니 [ Woodstock ]이라는 앨범 제킷 사진의 모습이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공연 때 화려한 의상도 즐겨 입었다고 하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70786

섬사이 2011-06-27 15:3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영엄마님.
지미 헨드릭스라,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예요.
알려주신 주소대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
 
출동 119! 우리가 간다 - 소방관 일과 사람 3
김종민 글.그림 / 사계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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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건물 중에 하나가 아닐까.  강렬한 빨강의 커다란 차들이 번쩍번쩍 빛을 반사하며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 곳은 뭔가 대단한 일이 진행중일 것만 같다.  게다가 TV에 종종 보이는 소방관이나 구급대원들의 모습을 보라.  영화 속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각박하고 경쟁적인 세상에서 영웅다울 뿐아니라 숭고해보이기까지 하니 소방서야말로 마치 비밀에 싸인 신비의 공간 같다. 마치 슈퍼맨이나 베트맨의 비밀기지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소방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결계가 쳐진 장소같다.  

책을 일일이 다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소방관에 대해 이만큼 자세하게 소개한 책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소방서에서 구조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소방서 최고 미남'이라는 김영민 아저씨가 소개하는 소방서 이야기는 일곱 살 딸아이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만큼 참 잘 엮어졌다.  시시콜콜하다고 생각될 만큼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의 모습들(출퇴근, 회의, 상황실의 모습, 휴식시간 등)과 소방차들의 종류, 출동할 때의 모습, 소방도구들과 장비들, 그리고 당연히 소방관들이 하는 일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글의 흐름이 어지럽다거나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   

예를 들어 소방관들의 아침회의 모습을 보면, 24시간씩 교대근무하는 소방관들이 아침에 다함께 모여 회의를 한다.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소방관은 방화복을 입고 참석하고, 퇴근할 소방관들은 활동복 차림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여 있다. 그리고 소방서 내부의 전경이 그려져 있는데 이 때 소방차들의 종류(지휘차, 탱크차, 굴절사다리차, 고가사다리차, 펌프차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고, 소방차들 뒷편에 있는 장비들 (방화복, 수관, 미끄럼봉, 공기호흡기)까지도 챙겨 설명하고 있다. 아이에게 본문의 글을 읽어준 다음 다시 작게 설명된 글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주는데, 그 다음 장에 소방장비를 살피는 장면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식이다.

  

 

앞에서 말했더 것처럼 신비에 싸인 비밀스러운 곳처럼 여겨지는 소방서에서 소방관들이 잠시 휴식하는 시간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소방관들이 슈퍼맨스러운 모습을 벗어버린 인간다운 면모를 발견하고 친근함을 느꼈고, 딸아이도 긴장을 풀고 소리내어 웃어댔다.  소방관들은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도 멀리 갈 수가 없다.  언제 출동하게 될 지 모르니 소방서 내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고, 휴식시간에도 동료들과 운동을 하거나 체력단련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소방관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족구를 하는 모습이다.  그 뒷편 건물 창문을 통해 컴퓨터를 하는 소방관,  헬스를 하는 소방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소방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방관들이 보인다.  물론, 우리 막내를 웃게한 소방관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소방관이다.  '따르르르르릉~~'하고 출동벨이 울리자 족구를 하던 소방관들을 물론이고 모두 서둘러 출동하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소방관도 후다닥 달려나가는 모습이 보였던 것.  없어서는 안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존경스러운 소방관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영웅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들의 자기 일에 충실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나면서도 뭉클한 장면이기도 했다.  영웅이라서 소방관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소방관들도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용감하게 일하고, 안전하게 돌아올게!"라고 주문을 걸듯이 스스로 다짐하는 평범한 일상을 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남자 아이들이라면 소방관들이 쓰는 소방도구와 구조에 쓰이는 도구들에도 큰 관심을 보일 것 같다.  막내는 여자아이인데도 불구하고 각각의 도구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권윤덕 선생님의 <일과 도구>라는 책이 생각났는데 그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도구에 대한 설명이 책 뒷편에 사전적인 설명으로 작게 적혀있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기가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계획과 의도가 서로 다른 책이라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도구에 대한 설명만 보자면 이 책이 훨씬 이해하기 쉽게 친절하게 되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일과 사람'시리즈의 세번째 책인데, 책 사이에 끼어온 이 시리즈에 대한 설명지를 살펴보니 중국집요리사부터 우편집배원, 어부, 채소장수 등 그럴듯하게 폼나는 직업들 보다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될 것 같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마음이 따끈해지는 시리즈인 것 같아서 계속 관심을 두게 될 것 같다.  이런 책들을 아이들이 읽으며 자란다면 묵묵히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크지 않을까.   

막내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 가는 길에 늘 만나던 소방서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이 책으로 많이 해결했다.  다음에 소방서를 지나갈 때면 예전과는 다르게 좀 아는 척을 하지 않을까?  "엄마, 저기 펌프차 있다~~", 뭐 이러면서 말이다.  어쨌든 소방서와 심리적 거리감이 많이 좁혀진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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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6-1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들 어렸을때, 소방서 구경 참 자주 가고 장난감 소방차 참 많이 사줬었는데요.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으면...폼 나는 직업의 기준이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요?

섬사이 2011-06-14 17:5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폼 나는 직업의 기준이 바뀐다면 참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요?

2011-06-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리뷰가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블로그로 데려가려고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섬사이 2011-06-14 17:54   좋아요 0 | URL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떤 블로그로 제 리뷰를 데려가시려는 건지.. ???

꿈꾸는섬 2011-06-1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잘 지내시죠?
덕분에 흙살림 알게 되어 요새 흙살림에서 유기농 농산물 받아서 맛있게 먹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참 유익한 책이겠어요. 정보 고마워요.^^

섬사이 2011-06-14 17:53   좋아요 0 | URL
아하~ 꾸러미 회원이 되셨군요.
전 가지를 잘 안 해먹는데, 저번 주에 가지가 와서 애호박이랑 새송이버섯이랑 같이 볶아서 먹었어요.
꾸러미 덕분에 골고루 반찬을 해먹고 있다고나 할까요. ^^

2011-06-14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6-1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좋아요, 사계절 마인드가 감지되는 시리즈라고 생각하지요.^^
3권은 아직 안 샀어요~~ 소방관은 사내 아이들의 로망!!

섬사이 2011-06-27 15:30   좋아요 0 | URL
사계절 마인드, 확실히 그게 느껴져요.
저는 1, 2권이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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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쿠시 니시카타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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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곱 살 딸의 일기를 공개한다.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딸 아이의 일기를 공개하자니 딸에게 좀 미안하지만 이 책을 아이와 읽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딸아이의 일기에 있으니까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면 딸아이도 이해해주겠지 하는 대책없는 낙관론을 줏대있게 밀고나가기로 했다.

 
2011년 4월 26일 화요일
제목  생활
아침에일어나서세수을하고밥을먹고이을닦고옷을입고머리을빗고가방을매고비옷을입고신발신고버스가서면타고유치원에와서비옷을벗고반에들어와서컵을꺼내고수저을꺼내고계획하고손씻고논다간식먹고책을본다이야기나누기하고점심을먹고논다간다엄마랑같이논다 
 

누가 쓰라고 시키지도 않았건만 선물로 받았을 게 분명한, 디즈니 공주들이 총출동한 요란스런 표지의 그림일기장을 어딘가에서 찾아 꺼내와서는 방바닥에 절하듯 엎드려 연필로 꼭꼭 눌러쓴 일기다. (그런데 '일기'라는 글쓰기 형식은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다 쓰고서는 가져와 나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는데, 깍두기 공책 칸칸마다 나름 정성을 기울여 쓴듯한 글씨들과 또 어쨌든 시키지도 않은 일기를 쓴다고 꽤 긴 글을 쓴 그 노력에 감동했다. 하지만 솔직히 일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용은 물론이고 무참하게 무시당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도 차마 지적질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쓴 글에 지적질하지 않는다'는 첫아이 때부터 지켜온 나름의 신조다. 그냥 "와~~ 우리 딸이 이제 일기도 쓰네~ 이만큼 글씨를 쓰려면 힘들었을 텐데.."라고 한 마디 했을 뿐.  

그러나 며칠 후 소풍을 다녀온 딸아이가 일기를 쓰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이번에는 소풍간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라고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소풍간 날의 일기다.  

2011년 4월 29일 금요일
제목 소풍가는 날 
오늘은초록향기마을가다토끼도보고사슴도보고딸기도따다피아노집도있었다또빈일하우수가더워다 

처음 일기보다 글이 무척 짧아졌고, 나열식 문장은 변함이 없고, '비닐하우스'를 '빈일하우수'라고 쓰는 등 맞춤법과 띄어쓰기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일곱 살 아이가 놀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비는 꼴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미된 도리로써 적어도 일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은 욕구도 무시할 수 없는 터.  그러다가 마침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생쥐 별이와 참새 달이가 또박이 삼촌과 함께 '나들이 일기책'을 만드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연사 박물관에 다녀온 별이와 달이가 박물관 마당에서 주운 나뭇잎, 기념스탬프, 입장권 등을 붙이고 그림을 그려서 나들이 일기를 완성한다. 하지만 '나들이 일기책'을 쓰기 위해 꼭 특별한 장소로의 나들이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도 언급해준다. 바람에 춤추고 있는 빨래, 고양이의 하품, 하늘에 하얀 빗금을 그리며 날아가는 비행기, 떨어진 새의 깃털 하나, 재미있게 생긴 벽.... 이런 사소한 풍경들을 그림으로 담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우리 함께 나들이 일기책을 만들어 보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같은 Tip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나들이 일기책에 쉽게 접근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서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나들이 일기책'을 쓰고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을 발견했고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건 또박이 삼촌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 속에 있다.

또박이 삼촌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준다.  


"잘 만들지 못해도 괜찮아. 나만의 나들이 일기책이니까 마음껏 해보는 거야."

"쓰고 싶을 때 쓰면 돼.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재미있는 거야." 

 
내가 딸아이에게 해줘야 할 말들이 책 안에 모두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맨 마지막 장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나들이 일기책을 펼치면 그 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답니다.'라는 멋진 멘트를 날려주다니. 딸아이의 일기를 보고 지적질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이와 달이가 삼촌에게 한 수 배운 실력을 발휘한 첫 나들이 일기는 우리 딸의 일기만큼이나 미숙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그게 또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지 않을까. 또박이 삼촌이 만든 것처럼 완벽한 예만을 보여준다면 그 앞에서 아이들은 감히 나들이 일기책을 만들어볼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 미숙한 별이와 달이의 나들이 일기책 또한 아이들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자기도 나들이 일기책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다. 욕심에 제대로 나들이를 해서 만들고 싶단다. 얼마 전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해치야 놀자'를 어린이집에서 다녀왔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아빠랑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며 벼르고 있다. 아무튼 우리 딸의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책이자 쓰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준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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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1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기가 마치 이상의 시 같아요. 혹시 넘치는 문학성 때문?

그래도 절대 지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다니 멋진 엄마십니다. 저도 딸래미에게 독후감 쓰기에 관한 책을 쥐어줘야겠어요. ㅎㅎ

섬사이 2011-05-20 09:06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어쨌든 모양은 이상의 시와 비슷한 면도 있네요. ^^
제가 어릴 때에도 독후감 쓰기는 참 어려운 과제였는던 것 같아요.
아이들의 독서감상문들이 엮여서 나온 책이 있었는데,
저는 그 책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 독후감에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되는구나, 하는 예들을 볼 수 있었거든요.

무스탕 2011-05-2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뽀라~~ >_<
일기를 따라 읽다보면 아이가 지나온 하루가 보이네요 ^^

6학년 정성이는 1주일에 한번인가 두번인가 일기를 써요. 그것도 집에서 써 가는게 아니고 학교에서 대충 써서 내더라구요 -_-;;;
담임 선생님께서 제시한 일기 형식이 있는데, 그날의 날씨, 하루중 있었던일 간단간단하게 단어 나열식으로 적고 그 중 한가지를 골라서 거기에 대해 자세하게 적는거에요.
정성이의 지목을 받은것 중엔 동네 길냥이도 있었고 반에서 떠든 아이들도 있었고 어린이날기념 소운동회에서 달리기 꼴찌한것도 있었고.. ㅎㅎㅎ

섬사이 2011-05-20 21:19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하던 초등학생 때는 저도 일기 쓰기가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일기 검사를 하지 않으니까,
그 때부터 더 열심히 일기를 썼던 것 같아요. ^^
운동회에서 달리기 꼴찌한 이야기, 그건 저의 초공감을 이끌어낼 것 같아요.
저도 달리기 무지 못해서 운동회가 너무 싫었거든요.

마녀고양이 2011-05-2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의 일기 굉장히 좋은데요.
자신이 한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또한 명확하게 표현하잖아요. 와....
상황 파악도 확실하게 하고 있고, 저렇다면 상황에 맞게 처신도 잘 하겠는걸요.

요즘 유치원 미술 치료 나가보니, 주제와 항상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있어요.
조금 안타깝더라구요. 이쁘기도 했지만요. ^^

코알라는 2학년부터 일기를 안 보여줘요, 그래서 안 보고 있어요.. 아하하.

섬사이 2011-05-20 21:22   좋아요 0 | URL
'굉장히 좋은' 건가요? ^^
그냥 아이가 '쓴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저도 아이들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면 꾹꾹 참고 안 봤어요.
요즘도 큰딸 다이어리 속이 궁금한데
신경 끄고, 신경 끄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어요. 하하하하

양철나무꾼 2011-05-2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들은 미투에 일기를 쓰더라구요.

저랑 따님이랑 정신 연령이 똑같은가 봐요.
저도 디즈니 공주 수첩에 끄적거리거든요~^^

섬사이 2011-05-28 09:41   좋아요 0 | URL
아.. 미투에 일기를.. 음. 거의 접근불가능이겠네요.
전 그래도 일기장에 손글씨 일기가 가장 좋던데..
보안성에서 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뭐, 디즈니 공주는 장난감, 문구, 의상, 액세서리 등 각종 분야에서
워낙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까요.
저는 가끔 디즈니 공주 볼펜과 연필을 사용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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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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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가득 홍매화가 활짝피었습니다. 활짝 꽃이 핀 매화나무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할아버지와 코를 들이밀고 매화꽃 은은한 향기를 음미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찾아오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그 재주를 전수받고 싶은 심정으로 그림책을 펼쳤습니다.  

깊은 산 속 외딴 집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춥고 긴 겨울을 보내자니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림에서는 백자 화병에 매화가지를 꽂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아 아마도 할머니가 무척 꽃을 좋아하는 분이고, 그래서 더 봄을 기다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문 오른쪽에 걸려 있는 꽃과 나비가 그려진 그림 한 점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두 분의 마음이 느껴지고요.   

'빨리 봄이 와서 환하게 핀 꽃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얘기에 할아버지가 결심을 하고 봄을 찾아오겠다며 길을 나섭니다.  우리 옛그림 중에는 봄을 찾아 나서는 선비를 그린 탐매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신잠, 김명국의 그림이 대표적이지요. 옛그림 탐매도 속에서 봄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은 주로 선비들인데 나귀를 타거나 하인을 데리고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길을 나서는 모습이 그려 있습니다. 혹은 봉오리 맺힌 매화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도 있지요. 그림책 속 할아버지야 선비나 양반의 풍채는 아니지만 꽤 정겹고 다정해서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탐매도라 해도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야기 속 할아버지 입장에서 본다면 본격적인 고생길로 접어든 셈입니다. 할아버지는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울로, 뒷산 언덕을 지나 산봉우리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에게로, 갈대밭 사이 꿩에게로, 꽁꽁 얼어붙은 강 밑에 사는 이무기에게로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봄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진 할아버지 위로 눈꽃이 떨어져 내립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점점 감겨지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가운데 달콤한 꽃향기가 할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렇게 붉은 매화를 머리에 두른 귀여운 아이를 만나게 되지요. 물론 꽃향기는 아이에게서 풍겨나오는 것이었고요.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끌며 앞서 나아갑니다. 아이를 따라간 그 곳에 홍매화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들 마냥 잔설이 남은 나뭇가지를 덮고 한가득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곳은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깊은 산속 외딴 집 마당이었죠.  

그림책의 처음은 추운 겨울이지만 마지막 장은 화사한 봄입니다. 책 앞쪽 속표지와 뒷쪽 속표지를 보면 겨울과 봄 풍경이 대비를 이룹니다. 저도 겨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라 봄을 찾는 이 그림책이 공연히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공연히 앞뒤를 번갈아 펼쳐보며 '역시 봄이 더 좋아'하고 이 봄을 더욱 만족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열그루 매화길에도 홍매화는 아니지만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매화가 피었더랬습니다. 겨울눈이 쌀알만큼 커졌을 때부터 두근거리며 꽃봉오리가 터지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매화가 피고 나면 바람아 불지마라, 비야 살살 내려라 하며 꽃이 후두둑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매화는 벚꽃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도도한 품위가 느껴집니다. 물론 향기도 아주 일품이지요.  우리 옛선비들이 매화를 가까이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책 앞부분에 할머니가 백자화병에 꽂은 매화가지에서도 매화가 꽃핀 걸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제 욕심이겠지만 꽃이 피고 봄볕이 들어 환해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안도 구경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그림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는데, 그렇다면 설중매 설화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지역의 어떤 각편이나 이본을 바탕으로 했는지, 그 출처를 밝혀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의 저자 김환희 씨는 "구전설화, 무속신화, 고전소설에는 수없이 많은 각편과 이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신이 참조한 자료와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이상 다시쓰기나 고쳐쓰기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제 짐작으로는 이 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 설명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자칫 이 책의 내용이 '설중매 설화'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듯한 그림도 참 정감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억배 선생님의 화풍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 안팎의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들과 꿩의 모습들도 정겹기만 합니다.

매화는 짧게 피고 나풀거리며 지고 말았는데 그림책 속 홍매화를 보며 벌써부터 내년 봄에 필 매화를 기다리고 있는 성급한 저를 깨닫고 웃었습니다.  매해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그림책을 찾아 꺼내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재촉한다고 봄이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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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한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구를 위한 한 시간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30
박주연 지음, 조미자 그림 / 한솔수북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원전사고 이후 전기라는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문득문득 일상 속을 파고들곤 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난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 원자력 발전의 어마어마한 힘을 좋다고 넙죽넙죽 잘 받아 쓰고는 이제 와서 원자력발전의 치명적 위험에 겁을 먹고는 덜컥 몸을 사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 어쩌면 원자력 발전소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자괴감까지. 그래서 그나마 요즘은 전등 끄는 일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고, 진공청소기 보다 정전기청소포를 더 자주 꺼내 쓰기도 한다.  지구와 환경에 미안한 나의 작고 소심한 표현이다.  

여기, 지구에 대한 작고 소심한 애정 표현 방법이 하나 더 있다. 2007년 3월 31일 저녁 7시 30분에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 일년에 딱 한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둠 속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아마도 지구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휴식이 될 수 있을 방법이다. 1년 365일은 8,760시간, 그 중에 딱 한 시간이니 생색내기에도 민망할만큼 아주 적은 시간이다.  지구가 44억 6700만 살에 이를 때까지 자연과 인간의 터전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혹사당한 생각을 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쉬는데 지구는 일년에 달랑 한 시간이라니 좀 너무하다.  하지만 작고 소심한 운동이니까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일 게다. 

그 한 시간 동안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에 새들이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더 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빛날 것이고,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둠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맛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둘러 앉은 이 그림책 속 사람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처럼 말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지구촌 불끄기 운동'이 지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은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한 시간>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지구환경의 파괴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지구를 위해 한 시간은 커녕 단 일분도 배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지구촌 불끄기 운동'같은 이벤트(?)가 생기고 이런 그림책이 출간되는 걸 보면, 지구와 인간이 하나라는 인식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곱 살 딸아이는 이 책을 읽어줬더니 우리도 불끄기 운동을 하자고 조른다. 물론, 적극 참여해야지. 그 시간이 주말 저녁이고, TV에서 현빈과 강동원과 조니뎁과 세상의 인기미남들이 몽땅 등장하는 초호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한다고 해도, 좀 심하게 갈등을 겪긴 하겠지만 그래도 참여해야지. 그딴 건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거나 재방송을 봐도 되니까. 이래뵈도 나는 어릴 적 등화관제 훈련에도 참여했던 어른이니까.  

내용도 좋고 펜과 색연필을 사용한 그림도 참 좋다. 글과 그림에서 사람들의 착한 마음들이 스며나온다고나 할까. 조미자 님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의 그림은 참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그림 속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걸 같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아마 우리집 막내도 그런 기분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 따뜻한 그림들을 사진으로 담아서 함께 올리고 싶었는데 디카가 고장이다.  아쉽다.

이 책에 소개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과는 별개로 우리집에서는 우리만의 '불끄기 운동'이 조만간 벌어질 것 같다. '불끄기 운동'에 불붙은 막내의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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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제목인데요 지구를 위한 한시간 음 궁금해요.

섬사이 2011-05-06 07:09   좋아요 0 | URL
제목도 멋지고 내용도 좋아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한 책을 아이들과 자주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