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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 ㅣ 모두가 친구 7
코키루니카 글.그림, 김은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검정 펜으로 그려진 그림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남자 아이는 티 하나 없이 맑고 즐거울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짜증나는 표정이다. 벌써 인생의 고달픔을, 그 부조리함을 이미 다 알아버려서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 귀찮게 구는 동생, 자기만 야단치는 엄마, 자기만 벌 받는 학교, 거기다 길에선 개에게 물리기까지 하니 내가 생각해도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인생이 짜증나고 갑갑하긴 하겠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에서 주운 작은 마법 상자, 싫어하는 건 뭐든 다 삼켜버리는 상자란다. 아이는 먹기 싫은 생선,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 귀찮은 동생, 엄마, 선생님, 친구들을, 심술궂고 복수심에 불타는 듯한 표정으로 모두 마법 상자가 꿀꺽 삼켜버리게 만든다. 짜증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제거해 버렸으니, 이제 아이는 신나고 행복할까?
당연하게도 아이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짜증보다는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였을까?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라고, 서로 부딪치고 오해하고 아옹다옹하면서 정을 쌓고 사는 거라고 다정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만 같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게 삶의 한 과정이라고. 그럴수록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야 한다고. 그러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다.
아이가 마법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과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우는 모습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는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무엇을 느낄까? 책의 맨 뒷장에서 아이와 엄마, 선생님, 친구들, 동생이 환한 얼굴로 줄지어 가볍게 걸어가는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화해’하는 낱말이 떠오른다. 남자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스스로를 반성하며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마법 상자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와 선생님도 늘 지치고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그림책은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엄마와 선생님, 친구들에게도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래야 ‘화해’와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걸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안해진다. 나도 아이에게만 반성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매일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난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도 반성할 점이 있다고 하면서도 아이에게 요구했던 만큼의 똑같은 무게의 반성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나도 아무리 내 아이 앞이라 해도 겸손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 얇은 두께지만 인상이 강한 그림책이다. 유아뿐만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