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정조 이후의 왕들은 하나같이 허수아비였습니다.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들이 어린 왕들을 앉혀놓고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면 그냥 도장이나 찍어주는 존재였어요. 외척 가문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왕권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 명복만큼은 그런 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들의 파워를 키우고, 추락할 대로 추락한 왕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레 개혁의 핵심을 왕권 강화에 둡니다. 그리고 세도정치 아래 문란해질 대로 문란해진 민심을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련의 경제 개혁을 단행하지요.

 

(28-29)

흥선대원군은 끄떡하지 않습니다. 잔뜩 독기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해요.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 뜻이 민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나는 공자의 뜻을 받들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선언입니다. 성리학의 나라에서 공자의 뜻을 받들지 않겠다니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 정도로 흥선대원군은 서원 정리에 엄청난 힘을 쏟습니다. 물론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만동묘도 폐지합니다. 만동묘는 명의 신종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그런데 당시 명은 망하고 없는 나라입니다. 임진왜란 때 명이 조선을 도와준 은혜를 기리기 위해 당시 황제의 제사를 계속해서 지내고 있었던 것이죠. 만동묘는 철저한 사대주의의 상징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기어이 만동묘를 폐지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아직까지는 흥선대원군의 힘이 그 시대의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누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9)

이 얼마나 굴욕적입니까? 명성황후 정권 하나 살리자고 나라의 국격, 나라의 자존심을 완전히 망가뜨리다니요. 외교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우호관계요? 혈맹이요? 그저 웃고 말지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단어들이 얼마나 겉바른 수사(修辭)들인지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외교사를 보세요. 절대 우방도 절대 혈맹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 존재할 뿐입니다. 당시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통해 너무도 많은 것을 잃습니다.

 

(86)

1885년, 조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영국이 점령해버려요. 그런데 조선 정부는 거문도가 영국에서 불법으로 점령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도리어 청에서 연락이 와요.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해봐라”하고요. 조선은 청에 보고서를 올립니다. “그런 일 없는데요?” 또 다시 청이 연락해옵니다. “아냐, 분명 거문도가 점령되어 있을 거야. 가서 잘 알아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거문도에 영국 깃발이 떡하니 꽂혀 있는 거예요. 외세가 자국 땅에 들어와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정부라니요! 이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정권 유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112)

개항 이후 집권세력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정권 유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외세의 힘을 빌립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도시 빈민과 구식 구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SOS, 갑신정변이 벌어지자 급진개화파를 제압하기 위해 청에 SOS,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또 청에 SOS를 보낸 그들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기세가 등등해지자 이번에는 러시아의 품으로 뛰어들어요. 심지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왕이 몸을 피합니다. 정말 일관성 하나는 끝내줍니다. 이렇게 고종 정부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외세는 힘을 빌려줍니다. 하지만 절대 공짜로 도와주지는 않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아관파천의 비용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160)

나는 솔직히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보다는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한국을 돌아본 결과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군은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비인도적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인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심하지도 않았다. 한국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메킨지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중에서

 

(193)

전등은 1887년에 최초로 불을 밝힙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전등불이 맨 처음 밝혀진 곳은 경복궁입니다. 향원정 연못가에서 불을 밝혔는데 불이 확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맨 처음 들어온 전등불은 시원찮았던가 봐요. 동력이 부족해서인지 깜박깜박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등불을 건달불이라 불렀습니다. 한편 이때 전등을 밝히는 동력은 증기기관이었는데요. 증기기관을 식히기 위해 향원정 물을 썼는데, 그 바람에 연못이 뜨거워졌나 봅니다. 그곳에서 놀고 있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거예요. 이걸 본 사람들이 또 난리를 피우죠. “물고기들이 저렇게 죽다니 이게 웬 괴변이냐!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면서요.

 

(274)

의열단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은 김원봉입니다. 항일무쟁투쟁에서는 쓰리 봉, 세 명의 ‘봉’ 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첫 번째 봉이 김원봉, 두 번째 봉은 김두봉, 세 번째 봉은 양세봉입니다.

 

(305-306)

비슷한 이름도 많이 나오고, 중복되는 이름도 곧잘 등장하는 바람에 골치가 아픕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쫓겨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름도 잘 바꾸고 조직 구성도 잘 바꿉니다. 이 시기에 가끔 이청천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가 실은 지청천이에요. 그런데 조직명의 경우는 바꾸는 데 제약이 따릅니다. 쓸 단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앞의 고유명사로는 ‘조선’이나 ‘한국’이나 ‘대한’, 그 뒤에 따라붙는 말로는 ‘혁명’이나 ‘독립’ 같은 단어밖에 쓸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중복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름을 골라 쓰는 데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단어를 쓰는 쪽은 주로 사회주의 쪽이고, 한국과 대한이라는 말은 민족주의나 자본주의 진영에서 많이 썼습니다.

 

(345)

그런데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이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를 보도한 어떤 신문이 헤드라인으로 이런 문장을 뽑았어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이 신문은 임시정부의 수립이 모스크바 3상회의의 첫 번째 내용이었다는 것은 전하지도 않았어요. 이걸 받아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일제 강점기라는 길고 긴 터널을 뚫고 이제 막 광복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다시 외국이 신탁통치를 하겠다니요. 거기에 미국은 신탁통치를 반대했는데 소련이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다니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당연히 소련은 나쁜 놈들이고, 미국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소련은 사회주의니까 그들을 추종하는 좌익 세력도 덩달아 나쁜 놈들이 되는 거고요. 결국 그 신문의 보도 하나 때문에 여론이 확 뒤집혀버립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오보였어요. 대한민국 언론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보였습니다. 이 오보로 인해 우익진영의 반탁반소운동이 거세어져 찬탁 입장을 밝혔다고 오해를 받은 송진우가 암살당하고 다른 인사들 역시 큰 위협을 받습니다.

 

(406-407)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을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만 그치겠습니다.”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학생의 편지입니다. 열다섯 살 소녀가 목숨을 바칠 생각으로 거리에 나가다니, 얼마나 절절한 마음입니까? 소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해요. 경찰이 쏜 총에 가녀린 몸이 풀썩 꺾였지요. 민주주의를 위해 어린 목숨을 버린 겁니다. 그러자 이젠 초등학생들까지 나옵니다. “우리 언니, 우리 오빠, 우리 형들을 잡아가지 마세요!”하고 당당하게 외치면서요.

 

(481-484)

한편 저곡가의 구조는 농촌 사회를 어렵게 만듭니다. 당연히 이촌향도 현상이 나타났지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이 아주 심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 중심입니다. 수출을 하려면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임금이 싸야 해요.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쌀값이 싸야 하고요. 쌀값이 비싸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곡가 정책을 유지한 거예요. 당연히 농촌에서는 농사를 지어봐야 남는 게 없으니 자꾸 도시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시로 사람이 몰리다 보니 인력이 남아도는 겁니다. 임금을 낮춰도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듯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저임금과 저곡가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삶의 질은 아주 열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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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초록빛 공감의 단어
우종영 지음, 조혜란 그림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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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나무의사 우종영 님의 책을 이야기하려고 해. 우종영 님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이 이제는 20년이 되었구나. 그렇다고 많이 읽은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로구나. 아빠가 예전부터 등산을 좋아해서 나무에 대한 책이 눈에 쏙 들어왔던 것 같구나. 그리고 우종영 님의 글들이 너무 좋았어. 나무들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들도 다시 보게 되었어. 산에 가게 되면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들의 모습과 나무들이 주는 기운에 힐링하곤 하는 것 같았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우종영 님의 <나는 나뭇결에서 숨결을 본다>라는 책이란다. 이번 책도 우종영 님의 나무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더구나. 그동안 나무의사를 30년동안 해오시면서 자연으로 받은 삶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책으로 엮으신 것 같구나. 그리고 최근에 급격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급격한 기후변화는 우리뿐만 아니라 나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단다. 그 영향은 물론 안 좋은 영향으로 많은 식물들이 멸종위기를 맞이하고 있단다.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니 그렇다 보니 기후변화에 대한 공격에 도망갈 수도 없으니 큰일이구나. 더 늦기 전에 이에 대해 온세계가 대응책을 찾아야 할 텐데 자본주의의 성장논리가 아직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서 걱정이구나.

 

1.  

이 책은 생, 태, 감, 수, 성이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생태감수성에 관련된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단다. 그런 글들 중에 아빠의 마음을 울린 글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할게.

...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생태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생태감수성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을 가지는 것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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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생태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지구 환경 문제를 거시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연과 자신의 삶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주변의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표현합니다. 이들은 생태계에도 깊이 공감하며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특정 새나 식물의 부재와 같은 현지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환경 윤리를 따르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피하고,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지를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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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일상 생활에서 어떤 날은 흙으로 된 땅을 한번도 밟지 않고 지내는 날도 많단다. 포장된 도로와 인도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땅을 밟지 않고도 생활하게 돼. 그리고 우리는 더욱이 신발을 신고 지내잖니. 지은이는 맨발로 땅을 밝아보라고 하더구나. 생각해보니 아빠도 맨발로 땅을 밟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구나. 바닷가에서 가야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오래 전 일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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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땅과 교감하며 발맘발맘 걷다 보면 생태감수성도 생깁니다. 땅과 접촉하지 않는 사람은 신(God)과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인간은 자연과 멀어졌습니다. 걷기를 통해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이 다른 생명의 아픔처럼 전해오면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생깁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스킨십을 원합니다.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땅을 어루만지면 땅의 기운이 온몸을 정화해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스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혼자서 걸으며 길 위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조그만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무심히 떠가는 구름을 쪼개보거나 이웃 구름과 만나게 해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보기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걷기는 나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일단 걸어보세요. 걷기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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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이나 식물들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는 이름들이 참 많단다. 물론 아빠가 알고 있는 이름들은 몇 개 안되지만 말이야.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이름을 소개해주면서 이름에 ‘개’라는 접두어가 들어간 것은 약간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구나. 개들이 싫어하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어. 그래도 순우리말로 된 이름들이 정겹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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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이름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복이 허리춤에 다는 복주머니처럼 생긴 복주머니꽃은 한때 개불알꽃이라고 불렸습니다. 꽃봉오리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 할미꽃, 제비꽃의 방언인 앉은뱅이꽃, 갈고리 같은 가시의 쓰임새를 상상한 며느리밑씻개, 비하의 의미를 지닌 개똥쑥, 개옻나무, 거지딸기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동물에도 꼽추재주나방, 무당벌레, 벙어리뻐꾸기, 송장벌레, 문둥이박쥐 등 부정적인 이름이 많습니다. 개가 들으면 기절할 이름인 개나리, 개비자, 개여뀌, 개살구처럼 ‘개’가 접두어로 들어가면 부정의 의미를 지녀 어떤 것의 아류쯤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바꿔 생각하면 개들의 사회에서 못된 개를 일컬어 ‘사람 같은 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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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의사답게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어. 우리가 산에 가면 나무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도시에서 느끼는 바람과는 확실히 다르단다. 아빠는 그냥 시원한 바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은이는 나무와 바람의 관계를 좀더 소중한 관계로 비유했는데, 아주 공감이 가면서 아빠에게도 바람과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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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71)

나무에게 바람이란 어렸을 때는 무서운 훈육 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이고, 청년기에는 연인이며, 장년기에는 질서와 규율이고,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기 못하게 하는 추억과 같습니다. 멀리 벋어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나무가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연연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장성하여 숲의 주인이 되어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하는 훈육 주임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훈육 주임이 두 번 등장입니다. 무서운 것도 잠시, 수백 년이 흘러 노목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들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들 사이로 바람도 피해가고 가지들의 울렁거림도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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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더러운가? 사람들은 보통 흙이 묻으면 흙의 종류와 상태를 불문하고 모두 더럽다면서 털어내려고 하는데, 흙의 입장에서 보면 더러운 흙은 따로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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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91)

흙이 더럽다는 인식을 두고는 흙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흙 속에 동물의 똥이나 사체들이 들어 있어 흙을 더럽다고 여기고, 흙의 입장에서는 오염 물질이 유입되거나 못하는 가장 주된 원인은 밟혀서 다져진 땅이 되었을 때입니다. 정상적인 흙은 광물질45퍼센트, 수분25퍼센트, 공기25퍼센트, 유기물5퍼센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수치에서 흙 속의 절반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빈 공간이 줄어들면 물과 공기가 저장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내뿜은 탄산가스마저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식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죽고 썩어들어가면서 에너지를 순환하지 못하고 흙이 ‘더러운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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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속을 비운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욕심이 더 쌓여가 속을 채우려고만 하니, 나무에게 좀더 배워야겠구나. 물론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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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나무는 속을 비웁니다.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룹니다.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입니다. 노자는 마차 바퀴의 중심이 비어 있어서 유용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속을 비워내므로 많은 생명체들이 그 안에 깃들어 삽니다. 아늑하고 따뜻하며 숨기 좋은 그곳은 하룻밤 동물들이 쉬어가고 새들의 집이나 곤충들의 사냥터가 되기도 합니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인 것이지요. 한편 나무가 속을 비운다는 것은 과거를 잊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는 지나간 시간을 잊고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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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준 그들 이외에도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단다. 그래서 너희들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너무나 바빠서 쉽지 않겠지? 그나저나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해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도자들이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전쟁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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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386)

인류는 현재 기후 변화라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풍족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나무처럼 자연의 회복 능력을 믿으며, 서로 협력하면서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큰 희망입니다. 뛰어난 지능을 지난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과학의 시선이 지금 ‘이루어야 할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것’에 머물 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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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신호등이 깜박거립니다.

책의 끝 문장: 과학의 시선이 지금 ‘이루어야 할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것’에 머물 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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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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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유명한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책을 추천받는다는 느낌도 들고,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일단 살펴보게 돼. 그 중에 프랑스 콩쿠르 수상작은 더 눈에 들어온단다. 왜냐하면 그 동안 읽은 프랑스 콩쿠르 수상작들은 문학상 수상작 치고 재미도 함께 보장되었거든.. <오르부아르>, <그녀를 지키다>, <아노말리>, <타니오스의 바위> 등 그 동안 아빠가 읽은 프랑스 콩쿠르 수상작들은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묵직한 주제와 함께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늘 기대가 되었단다. 그래서 몇 달 전 신간 코너에서 본 2024년 콩쿠르 수상작 카멜 다우드의 <후리>라는 작품을 책소개도 자세히 보지 않고 샀단다.

책을 받고 천천히 책소개를 읽어보니 이 책은 실제 있었던 알제리 내전을 배경으로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란다. 알제리 작가로는 처음으로 콩쿠르를 수상한 작가라는구나. 프랑스 콩쿠르는 프랑어로 작품 중에서 선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수상을 하겠구나. 그런데 알제리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아직 프랑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구나.

이 책은 알제리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사전 지식을 조금이나마 습득하고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알아보았단다. 알제리 내전은 엄청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더구나.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약 10년간 일어났대. 1991년 알제리 역사상 처음으로 다당제로 총선을 치렀는데, 당시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던 국민들이 이슬람주의 정당인 이슬람구원전선(FIS)의 손을 들어주었어. 그렇게 되자 정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무효화하고 FIS를 강제 해산시켰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FIS에서도 가만 있지 않고 무장 조직을 구성하였는데 극단적인 무장 이슬람 세력까지 합류하면서 정부군과 이슬람 세력 간의 내전이 벌어진 거야. 내전이 길어지면서 이슬람 반군은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하면서 지지율을 급락하였고, 그로 인해 기존 정부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내전은 끝이 났단다.

이 내전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 권력 구조는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구나. 죄 없는 국민들을 포함하여 수십만 명의 희생자만 있었을 뿐. 그리고 그 아픔을 짊어지고 가야 할 가족들. 알제리에게 이 내전은 치욕의 역사이고 숨기고 싶은 역사일 것 같구나. 아빠가 간략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될 것 같아.

 

1.

소설의 시작은 2018년 6월 16일 오랑이라는 지역의 미라마르라는 지역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26살의 오브라는 여자였어. 오브는 아랍어로 새벽이라는 뜻이고, 프랑스로 새벽을 파즈르라고 부르기 때문에 파즈르라고 부르기도 한대. 오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단다. 1999년 12월 31일 오브가 다섯 살 때 반군에 의한 민간인 대학살이 있었어. 하드 셰칼라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대학살이라서 하드 셰칼라 대학살이라고도 불렀어. 하룻밤에 천 명 가량의 민간인들을 참수시켜 죽인 잔인한 사건이었단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 처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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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87)

1999년 12월 31일 밤, 이슬람 무장 단체의 카티바들은 우릴 처벌하기로 결정했어. ‘낮의 국가’의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그렇게 했지. 한 달 전, 우리 마을의 전기가 끊겼어.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만들고 부품을 용접하는데 쓸 전기를 그들에게 제공했다는 혐의 때문이었어. 우린 어둠과 차가운 태양 사이에 내버려졌어. 한겨울은 고통스러웠고, 우리는 돌처럼 굳어 각자의 침묵 속에 몸을 감싸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자매들, 아버지들, 어머니들, 불빛에 비쳐 붉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 이건 우리에게 겨누어진 무기가 뭐냐에 따라 이쪽저쪽을 오가는 놀이였어. 우린 긴 전쟁의 끝에 도달해 있었고, 나라 안에서는 시간도 감각도 뒤엉켜 널브러져 그들끼리 서로 죽였어. 어떤 이들은 신에, 신의 약속에 절망해서, 또 어떤 이들은 전우에 대한 배신과 의심으로 피폐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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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때 오브의 엄마와 언니가 죽고 말았어. 그런데 학살자가 실수로 오브의 목을 제대로 베지 않아서 오브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목부터 얼굴까지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남았고, 성대를 다쳐서 말을 할 수 없었고, 음식물도 목에 구멍을 내서 관으로 음식을 넣어야 했어. 목숨만 간신히 구했다고 할 수 있겠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작 다섯 살이었는데… 당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던 변호사 하디자가 오브를 알게 되고, 입양해서 보살피고 키웠단다. 하디자는 오브의 목을 고치고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단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사가 있다면 어디든 갔단다. 지금도 벨기에 브뤼셀에 의사를 만나러 갔단다.

…

내전이 끝나고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어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것이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야. 2018년 현재 오브는 임신을 한 상태란다. 어쩌다 임신을 했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엄마 하디자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아마 실수로 임신이 된 것 같구나. 오브는 낙태를 하기 위해 알약 3개를 구해 놓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이름을 ‘후리’라고 했단다. ‘후리’는 이슬람 전통에서 천국에 간 의인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고 믿어지는 ‘아름다운 처녀’나 ‘정화된 아내’를 뜻한다고 하는데, 아기에게 그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가 소설 속에 나왔었다면 아빠가 놓친 것 같구나.

…

어느날 미용실이 강도들에게 도둑 맞는 일이 일어났어. 강조로 위장한 이슬람 세력인 것 같았으나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응했단다. 내전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이슬람 반군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 같았어.

...

벨기에 브뤼셀에 간 하디자는 날마다 오브에게 전화를 했단다. 오브가 말을 하지 못해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안부를 전했어. 브뤼셀에 갔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는구나.

….

앞서 알제리 내전은 알제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숨기고 싶은 역사라고 했잖아. 그래서 알제리에서는 알제리 내전에 대한 연구와 반성을 하지 않고 숨기려고 한다는구나. 알제리 내전보다 훨씬 오래된 1950년대 알제리 독립 전쟁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명확한 사료들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오래 되지 않은 알제리 내전에 대한 자료는 명확하지 않았어. 희생자 수도 여기저기 수치가 다 달랐다고 했어. 자신의 숨기고 싶은 역사일수록 정확히 기록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더욱이 화합의 이유로 2005년에는 전쟁관련자들을 사면을 해주었다고 하는구나. 학살을 주도했던 이들도 산 속에 숨어 지내다가 다 내려올 수 있었어. 아니, 희생자들은 그들을 용서도 하지 않았는데, 국가가 알아서 그들에게 사면을 해주다니 희생자들은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

 

2.

오브는 낙태를 하기로 마음 먹기는 했지만, 그 다짐은 흔들렸단다. 그래서 죽은 언니에게 물어보려고 언니가 묻혀 있는 묘지를 찾아가려고 했단다. 가는 길에 아이사라는 중년의 남자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어. 아이사라는 사람도 내전의 아픔을 갖고 사는 사람인 것 같았어.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내전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했어. 운전하는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하는데, 오브에게 숫자를 이야기하라고 하고 숫자를 이야기하면(오브는 말을 못하지 않나? 필담을 나누었나?) 그 숫자와 연관된 내전의 사건을 이야기했어. 그 사건이 언제 발생했고 그 사건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것을 일의 자리까지 정확히 알고 이야기를 했어. 아이사는 중년의 남자다 보니 내전이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겪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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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2)

1990년의 전쟁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 여기선 나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날짜 하나하나, 이름 하나하나, 나는 떠올려, 아, 전부는 아니지, 수만 명 전부는,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불쌍한 실종자들이 정말 많이 들어 있어. 그게 진짜 이야기야. (그의 목소리가 판결처럼 진중해져.) 20만 명의 사망자가 있는데 그걸 다룬 책도, 영화도 없어. 목격자도 없대. 침묵뿐! 너도 아무 말 안 하는 거냐! 학교에서 내전에 대해 안 가르쳤지? 이걸 보는 사람들한테 넌 뭐라고 말해? (그는 내 튜브를 또 가리킨다.) 나, 그 전쟁이 시작됐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 전쟁은 바트나에 있는 우리 서점에서 시작됐어. 정말이야, 1992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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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도 내전으로 많은 가족들을 잃었고, 아이사도 다리를 다쳐서 평생을 절룩거리며 살아가야 했어. 그에게 내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던 거야. 국가가 그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니 그라도 알리기 위해서 내전 당시 일어났던 만행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 그 또한 2005년에 있었던 사면 조치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단다. 희생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사면이었거든… 국가의 희생자들이 아직도 가슴 찢어지게 살아가는데 용서하라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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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이제 그 ‘화해’랑 사면 투표 이후로, 개들은 대낮에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기도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깔보듯 훑어본다니까. 딸, 그들이 전쟁에서 이긴 거야. 물론 군인들도 이겼어. 오직 죽은 사람들만 진 거야.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은 20만 명만 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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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브는 함라라는 여자도 만났단다. 함라도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더구나. 18살 때 함라는 반군들에 의해 산으로 끌려가 강제로 결혼을 하고 강제로 임신을 했대. 전쟁은 여자들에게 더욱 잔인한 것 같구나. 그렇게 함라는 원치 않은 결혼을 하고, 남편이 테러리스트이다 보니 자신도 테러리스트의 일원이 된 거야. 남편이 내전 중에 죽자, 또 다른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전이 끝난 뒤 함라에게는 여성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고,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3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고 하는구나. 더 웃긴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2005년에 있었던 사면 조치에서 여자들은 배제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함라는 평생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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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내 이름은 함라예요. 가끔은 솔직히 내 이름이 정말 그런가 의심스럽기도 해요. 여러 번의 삶과 죽음을 겪은 사람에게 얼굴 하나는 부족해요. 동생, 내가 바라는 건 이거예요. 우리를 위한 권리를 얻어 주는 거. 폭행당한 여자들, 아버지 없는 아이를 가진 여자들, 고발당한 여자들,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여자들, 납치당한 여자들, 실종된 처녀들의 권리를…… 이제 내게 남은 명예는 단 하나, 바로 내 딸뿐이에요. 난 딸아이가 결혼 준비하는 걸 돕고, 그 아이가 행복하기를, 자식도 많이 낳길 바래요. 그 아이 결혼 결혼식에 참석해 눈물을 쏟지 않고 춤추고 싶어요. 가서 내 이야기를 해요. 올리브 나무에게, 돌에게, 길에게도 물어봐요. 날 와서 다시 찍어 줘요. 내 딸이 결혼할 때까지는 살고 싶어요. 내가 그 애 혼수품을 만들어 온 게 몇 년째예요. 그 아인 긴 핼렬과 수많은 여가수들의 노래 속에서 행복할 거예요. 가끔은 잘생긴 청년들이 우리 창문 밑을 지나가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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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오브, 아이사, 함라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정말 읽는 내내 답답하고 억울하더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광주민주화 운동 등 국가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생각났단다. 더욱이 5월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늦게나마 국가에서 그들의 명예를 되살려주려고 노력을 해주었지만,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니 안타깝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민주주의 시스템을 견고히 해야겠구나. 알제리도 그런 내전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 책은 알제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역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구나. 그 대신 알제리에서는 출판 금지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것을 보면 알제리가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정비하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구나.

아참, 소설의 결말은 오브가 결국은 딸을 낳기로 했단다. 그 딸이 오브에게 미래가 되고 희망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길 바란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이거 보여?

책의 끝 문장: 그때 함께 별을 다시 세어 보자.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난 이렇게 대답했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아마도 역사가 우리에게 주지 않은 천국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굶주린 신에게 먹을 걸 바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 어머니들의 자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식민 통치자들이 떠난 이후 땅과 농장과 살림살이를 나누기 위해서였을까. 이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우리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지 않았어. "이 전쟁은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시험지가 물었어. 십 년, 아니면 거의 그만큼.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불행은 날짜를 지워버리고, 절대로 못 박지 못하게 하지. - P149

사람은 생애 첫날을 기억할까? 그 피를? 그 비명을? 배가 힘을 주고 밀어내는 수축 감각을? 그래, 난 기억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시간까지 기억하는 행운을 가졌지. 그래, 내 얼어붙은 가슴 속에 품은 내 신비로운 비취야. 나는 알라의 두 가지 비밀, 오직 그분만이 답하실 수 있는 두 가지 비밀에 손이 닿는다. 나는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야. 거꾸로 뒤집힌 존재, 신비한 물고기야. 난 2000년 1월 1일, 딱 떨어지는 그날에 태어났어. 그리고 바로 전날인 12월 31일에 죽었다. 딸아, 맹세하건대, 쿠란에 기록된 어떤 예언자도 이렇게 두 날짜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할 순 없을 거다. - P309

네가 굳이 와서 숨 쉬고, 살고, 하루하루 날을 헤아리고 싶어 하는 이 나라에서, 여자는 큰 소리로 기도할 권리조차 없다. 애도하며 흐느끼는 소리도, 발꿈치로 인도 밟는 소리도 들려선 안 된다. 여자는 노래를 하거나 모스크에서 설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소리는, 나의 오래된 달님아, 쾌락의 억눌린 비명과 금세 바로 잊히는 출산의 신음으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우리 안에서, 또 우리 위에서 벌거벗은 그 두 순간, 우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언제나 남자들의 수치심 속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 P461

아무 손도 대지 않은 진실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몸을 던질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이번에는 내 속으로 잠수하듯 뛰어들어, 내 상처를 다시 열고, 꿰맨 자국을 뜯어야 했다. 그리고 내 ‘미소’ 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 네가 내게 목소리를 되돌려줄 거야. 난 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한 권의 책이야, 행복한 결말을, 아니 적어도 진실한 결말을 찾고 있는. 안 그러니? 이번에 나는 천 개의 인격이 되어 내 균열 속으로 뛰어들어, 내 안 깊은 곳으로 내려갈 거야. -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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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오마니……

부르며, 나는 외할머니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오세희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정 어려운 건 또다시 외할머니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 혼자 남은 외할머니의 외로움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내게 그랬듯 딸이 겪을 외로움을 걱정했지만 우리 셋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은 사실 외할머니였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동족 하나 남지 않은 세상에서 밭을 매듯 하늘의 어둠을 깁는, 맹목적으로 날갯짓만 할 뿐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새, 내게 외할머니는 그런 존재에 가까웠다.


(100-101)

자이니치뿐 아니라 일본 기업인이나 예술단체도 잠시 열렸던 북한의 국경은,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된 1980년대 이후부터 다시 극도로 제한되었다. 북한 정부는 심지어 북송 사업에 가족을 보낸 자이니치에게조차 좀처럼 초청장을 발급하지 않았고 입국 신청서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며 남편을 잃은 며느리와 아버지 없이 자란 손주들을 보살피면서 살 수 있으리란 기대로 버텨왔던 외조부모는 절망에 휩싸였다.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던 그해-1996년이었다-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북한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는데, 그건 나라에 빚이 늘고 물자가 부족한 수준이 아니었다. 경제난을 넘어 대기근이 시작된 것이다. 자이니치 공동체에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소와 돼지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 들판에서 서식하는 쥐와 뱀까지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산의 나무들은 그 껍질이 다 벗겨졌고 먹을 만한 풀 역시 자라는 족족 뽑혀 나가는 중이라고도 했다. 어느 병원에서든 항생제 하나 구할 수 없고 학교와 관공서는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으며 평양의 최상급 호텔들도 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소문 역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북한이 대외적인 시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아는 자이니치 공동체는 주로 외국인을 상대하는 평양 시내의 호텔들마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현실은 소문마다 참혹하리란 그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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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집 에디션)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재작년(2024년)과 작년(2025년) 연속 동료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된 작가가 바론 김애란 작가님이란다. 특히 2024년에 선정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작품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선정되고 인터뷰에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책이란다. 그런데 아빠는 김애란 님의 단독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구나. 아빠의 독서록을 검색해보니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작가들이 공동 집필한 <눈먼 자들의 국가>만 읽어보았단다. 동료 소설가들이 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는 이야기는 작가에게는 큰 영광이고, 독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강력한 추천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아빠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2025년 동료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 <안녕이라 그랬어>라는 소설집을 먼저 읽었단다.

이 책은 <안녕이라 그랬어>를 비롯하여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이 책에 실린 김애란 님의 작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재미있게 읽었단다. 왜 많은 사람들이 김애란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김애란 작품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보고 리스트에 하나씩 계속 추가했단다. 그리고 이 책이 읽고 나서 밥 먹으면서 너희들과 엄마한테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도 해주었잖아. 그런데 요즘에는 낮말이든 밤말이든 스마트폰이 듣고 있는 것 같더구나. 김애란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그날 밤 유튜브를 틀었는데 몇 달 전 <손석희의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애란 작가님의 인터뷰가 추천 동영상에 올라와 있더구나. 스마트폰과 AI에 감시 당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난 직후 그 추천동영상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겠더구나. 그리고 김애란 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말씀 하나하나가 공감되면서 위로도 되는 말씀을 조곤조곤 해주셨어. 소설가는 글을 잘 쓰는 것뿐 아니라 말씀들도 다 잘하시는 것 같더구나.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럼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해줄게. 각 작품들에 자본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자세한 작품 분석은 아빠의 몫이 아니니, 오늘도 기억력의 보조 역할을 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해줄게.

 

1.

<홈파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야. 주인공 이이연은 40대 초반 여성으로, 조연급 배우인데, 최근에는 캐스팅이 쉽지 않았어. 그러다가 최근에 괜찮은 연극 캐스팅되어 이것을 바탕으로 다시 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어. 가족 행사까지 빠져가면서 그야말로 올인을 했단다. 그런데 공연 얼마 안 남기고 상대역이 코로나에 확진 되면서 연극 전체가 취소되고 말았어. 그래서 재기의 기회는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단다. 성민은 이이연의 대학 후배로 지금은 배우의 꿈을 접고 이벤트 행사 대표로 일하고 있어. 얼마 전에 MBA과정을 밟았는데 그 때 만난 사람들과 연락을 한다고 했어.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주로 집에서 만남을 갖는데, 그들끼리만 만나기 지루했는지 얼마 전부터 지인 한 명씩 데리고 오기로 했어.

이번 모임이 성민 차례였는데, 성민은 이연에게 부탁을 부탁했단다. 그래서 이연과 성민은 함께 홈파티에 갔단다. 모인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의사, 법조계, 교수 등 나이는 대부분 50대였어. 성민만 젊은 사람이었어. 이연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상황극이라고 생각하고 연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단다. 하지만 점점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어. 공감 가지 않는 이야기들. 아닌 척 하지만 젠체하는 이야기들. 마치 신귀족층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 결국 먼저 자리를 피하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그들은 재미있는 작은 이벤트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우리는 사회는 평등한 사회라고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빈부 차이에 의한 계급 사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구나. 계급 간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고 말이지…

…

<숲 속 작은 집>.

주인공 은주와 지호는 부부 사이란다. 은주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힘들게 은주를 키웠어.  이제는 은주가 엄마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있었어. 그에 반해 지호는 부유한 집 출신으로 부모님 지원으로 카페 운영하고 있었어. 둘 사이에 돈에 대한 개념부터가 달랐어.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만나 결혼한 케이스라고 할까. 그들은 한국에서 비행 시간으로 7시간 가량 되는 산악 관광지에 와서 한 달 살기를 했단다. 그들의 숙소를 매일 청소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은주와 지호와는 또다른 계급을 가진 사람이었어.

어느 날, 쓰레기통 위치가 바뀌어 있고, 수건이 한 장 부족하고, 화장실 용품이 흐트러지는 일이 있었어. 은주와 지호는 왜 그런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다음날 팁을 올려놓았는데 저녁 때 돌아왔을 때 돈은 안 가져가고 청소 상태도 마찬가지로 불량했어. 너무 적은가? 팁인 줄 몰랐나? 다음날 종이에 “thank you”라고 메모까지 했지만 마찬가지였어. 은주와 지호는 이 일이 점점 신경쓰였어. 그래서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을 그 나라 말로 적어보기로 했어. 그렇게 했더니 팁 가져가고 집 상태가 깨끗해졌단다. 그제서야 그들은 마음이 좀 놓였는데, 은주는 그 청소부를 보면서 힘들게 사신 어머니를 떠올렸단다. 그 청소부도 누군가의 가족일 테니 말이야. 그런데 지호는 돈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어. 이 또한 자본주의 계급의 차이인가. 어느 날은 지폐가 없어 동전으로 팁을 놓았는데, 집 상태가 다시 별로였단다. 팁에 따라 청소 상태가 바뀌다 보니 은주와 지호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 그들은 서비스 비용을 포함한 숙소 비용을 지불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마지막날에는 기념품 하나까지 사라졌어. 전날 지폐가 없어서 동전으로 팁을 놓았던 것이 생각났어. 팁이 적다고 물건까지 가지고 갔다고? 속상한데 마지막 말이고 그것으로 주인한테 이야기하기도 뭣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그 일 때문에 기분이 꽤 상했단다.

공항 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의 딸이 와서 종이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단다. 서툰 한국글씨로 기념품을 청소하다가 깨트렸다면서 가장 비슷한 걸로 샀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단다. 그걸 받으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잠깐이나마 그 청소부를 도둑으로 생각했었다는 마음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들 돈돈 하지만 사람들의 본마음은 다 똑 같은 것 같구나.

…

<좋은 이웃>

주인공 부부는 몇 년 전 지금 사는 집에 전세로 이사를 왔단다. 그때 집을 사서 들어올 생각도 고민했으나, 빚까지 내서 집을 사는 것에 부담이 되어 전세로 들어왔는데 최근에 집값이 점점 더 올라서 후회를 하고 있었단다. 앞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없어진 것 같아 마음도 무거웠단다. ‘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학습지 강사도 그만 두고 집에서 하는 독서교실을 열었는데, 하필 그때 코로나가 창궐해서 한 동안 원생이 없어서 고생했단다. 이제 입소문이 나면서 애들이 늘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느날 젊은 신혼부부가 초인종을 눌렀어. 바로 윗층으로 이사를 오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면서 동의서 싸인을 받으려고 온 거야. ‘나’는 집에서 독서교실을 하기 때문에 좀 난감해했어. 그래서 독서교실을 하는 화요일, 목요일 오후에는 소음이 안 나도록 약속을 받고 싸인을 해주었단다. 그러나 그 약속이 무색하게 독서교실을 할 때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어. 그래서 윗층에 올라갔더니 주인은 없고 공사하는 이들만 있었고,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고 했어. 주인에게 연락하니 ‘나’의 부탁을 전달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에도 소음은 그치지 않았어.

그리고 ‘나’의 집주인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집이 팔렸다면서 다음 계약 때는 연장이 어렵고 집을 빼주어야 한다고 했어. 이제야 이 동네에서 독서교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사를 가야 하다니…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더구나. 집을 산 사람들이 집구경을 한다고 찾아왔는데, 자기 또래의 사람이라서 또 한번 놀랐단다. ‘나’와 남편은 열심히 살았다고 살았는데 집을 사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집을 샀다고 하니 놀랜 것이란다. 그들을 보면서 몇 년 전에 이 집을 사지 못한 것에 또 한번 후회가 되었단다.

‘나’는 장애를 가진 시우라는 아이의 과외도 하고 있었어. 시우는 학습지를 할 때부터 가르치던 아이인데 학습지를 그만둘 때 시우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과외를 계속 하고 있었어. 시우의 어머니도 시우의 장애 때문에 일을 계속 하셨어. 그런데 어느날 시우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파트를 분양 받아 이사를 가는데 좀 멀어지지만 계속 과외를 해달라고 부탁했단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랬단다. 시우의 집의 재력이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이사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는 것에 놀랬던 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만 점점 뒤쳐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주인공 ‘나’의 입장이 된다면 정말 답답하고 속상할 것 같구나. 되는 일은 없고, 더욱이 그들에게는 예전에 아이를 잃은 아픔도 있었거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구나. 분명 자본주의 사회는 모순 넘치는 사회인데 바뀌기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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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감>

기태는 은행의 과장으로 돌씽남이란다. 최근 역류성 식도염으로 음식이 자주 목에 걸려서 불편하고 되새김질도 하게 되어 남들이 알아볼까 신경 쓰였어. 회사에서도 자신이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혼하기는 했지만 기태는 여전히 전 아내 희주를 그리워 하는 것 같았어. 희주와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고 희주의 SNS에 자주 접속해서 살펴보았어. SNS를 통해서 희주가 최근 요가강습소를 오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고민하다가 개업축하화환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 없었어. 희주 SNS를 보다가 같이 사진 찍은 사람 중에 차대표라는 사람이 눈에 거슬렸어. 차대표가 희주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 차대표의 SNS에는 희주와 함께 한 사진도 여럿 있었어. 전 아내의 연애에 대해 간섭할 자격도 없지만 신경이 쓰였어. 차대표는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희주는 SNS을 비공개로 바꾸었어. 기태는 자신이 화환을 보내서 그런 것인가 생각했어. SNS을 통해서 희주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게 되어, 기태는 차대표의 식당에서 방문해서 식사하면서 차대표를 살폈어. 자신감 넘치고 건강으로 다져진 몸매의 소유자였어. 식당에서 다른 젊은 여자 손님과 이야기하면서 최근 요가 지겨워졌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 희주와 관계가 소원해졌나, 싶었어. 기태는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었어. 기태만 그렇겠니. 우리도 지난 일을 후회하며 과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어디 한두 개이겠니. 지나간 것은 다 지난 것이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빠도 자꾸 과거에 점령당한단다. 심호흡 한번 하고 현재를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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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케이크>

주인공 기진은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전문 동네책방을 냈단다. 하지만 잘 안됐어. 그냥 동네책방도 잘 되기 쉽지 않은데 여행전문 동네책방은 더 어려울 것 같구나. 기진은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서인주 작가의 지인이 손님으로 와서 연락처를 알게 되고 조심스럽게 북토크를 제안했고 좋다고 답변을 받았어. 이런 작가의 북토크는 동네책방을 알리는데 좋은 방법이었어. 기진은 북토크 예매를 받았고 좌석은 바로 매진되었어. 그 북토크가 오늘 저녁에 진행될 예정이야. 그런데 어제 엄마로 연락이 왔어. 오늘 서울 병원에 검사하러 오는 날이라고 했어. 아버지는 파킨슨 병으로 요양병원에 계셨어. 기진은 나이 드신 엄마가 혼자 서울 병원으로 검사올 때마다 마중을 나갔단다. 그날도 엄마를 마중 나가서 함께 병원에 가고 점심을 함께 먹었어. 그런데 그날은 저녁에 있을 북토크가 신경 쓰였어. 준비할 것도 많았거든.

어쩔 수 없이 다른 때보다 엄마를 서둘러 보내드리고 서점으로 가고 있는데, 서인주 작가로부터 문자가 왔단다. 서인주 작가의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는 문자였어. 어쩔 수 없이 몇 시간을 앞두고 북토크를 취소해야 했어. 기진은 예매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양해를 바라며 취소 소식을 알렸단다.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리냐… 기진은 괜히 엄마를 일찍 내려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늙으신 엄마와 아버지를 생각했어. 이것은 비단 소설 속 기단뿐만 아니라 읽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구나. 이제 혼자서 못하시는 일들이 많으신 부모님들… 기진은 혼자 오늘 북토크에서 먹으려고 준비한 레몬케이크와 샴페인을 보면서 엄마와 아버지가 레몬케이크를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단다. 시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너무 빨리 빼앗아 가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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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표제작인 작품이구나. 주인공 김은미는 에코스라는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회화 공부를 했는데, 로버트라는 60대 캐나다 사람이 선생님과 새로 수업을 받게 되었어. 교재에 맞춰 수업을 했어. 로버트는 어느날 안녕이라는 말을 한글로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서, 7년 전 헤어진 애인 현수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단다. 그것은 왜 소설 제목이 <안녕이라 그랬어>인지 알려주는 일화였어. 아빠도 익히 알고 있는 팝송 중에 <Love hurts>라는 노래가 있단다. 아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어서 너희들도 차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거야. 그 노래는 여러 사람들이 불렀는데, 킴딜과 로버트 폴러드가 함께 부픈 <Love hurts>를 듣다가 가사 중에 “안녕”이라고 정확히 들렸다고 그들은 신기해했단다. 부른 사람 중 한 명이 킴 딜인데, 킴이 혹시 우리 성씨 ‘김’은 아닐까 하는 우스개 이야기를 나눈 것도 기억났어. 그건 “I’m young”이라는 부분인데 실제로 들어보면 ‘안녕’이라고 들린단다. 아빠도 이 소설을 읽고 유튜브로 이 노래를 검색해서 들어보니 확실히 ‘안녕’이라고 들리더구나. 이 노래를 들은 작가 김애란 님은 그것을 소설로 쓰시다니 대단하시구나. 그런데 이 노래의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이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온 한국 사람들의 댓글이더구나. 그 댓글들도 재미있더구나.

다시 소설 이야기를 하면, 은미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 간병을 하는데 그것이 7년이나 이어졌어. 그러면서 남자친구 현수와도 헤어졌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은미는 경력 단절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어. 외국어 공부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화상 영어회화 공부를 했던 거란다. 로버트와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위로를 받기도 했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녕하기도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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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주인공 지수 부부는 빌라 302호에 살고 있는데, 몇 전 년에 전세사기를 당해서 이사도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경매에 참여하게 되었어. 빚까지 내가면서 원래 집값의 두 배를 들여 원치 않던 빌라의 집주인이 되었단다. 자기들의 집이 생겼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어. 지수의 남편 수호는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어. 그러다가 수호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다. 그 이후 지수는 혼자 살았어. 생계는 독서교실에서 하면서 버는 돈이 전부였단다. 이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였어.

지수는 결국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어. 그 전에 집이라도 깨끗이 정리하려고 했어. 오래 전부터 물이 새던 천장도 윗집에 이야기를 해서 수리를 하고 도배도 새로 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도배하러 온 도배사는 이주 여성이었어.. 서툴기는 하지만 한국말은 제법 해서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았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독서교실 수강생의 엄마였더구나. 그 사실을 아는 척하지 않고 그 이주 여성은 도배를 깔끔하게 해주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 도배사와 몇 마디 나눈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상하게도 삶의 의지가 다시 살아남을 느꼈어. 다행히 지수는 다시 희망을 가지면서 소설은 끝을 맺었단다. 

…

독서편지를 짧으면서 필요한 내용만 적으면 좋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글솜씨도 없다 보니 길어지기만 하고 시간만 많이 잡아먹는 것 같구나. 가뜩이나 독서편지도 많이 밀렸고, 책 읽은 시간도 점점 부족해지는데 말이야.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며칠 전 이연은 성민으로부터 ‘다음 주말에 혹 시간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책의 끝 문장: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지수는 ‘죽어도 좋은 칼에 죽고 싶었는데, 것도 환상이고 허영임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권력 투쟁의 장에서 좋은 죽음이 어디 있느냐’며, "그냥 죽음만 있는 거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와인을 들이켰다. - P163

나는 뭐라 더 말을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닌던가.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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