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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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노래가 생각난다. 어려서 가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한 두 소절 흥얼거렸던 것 같은데 이 오래된 노래가 절로 나오는 소설이다. 처음으로 이 노랫말을 끝까지 살펴보았다. 참 좋구나! 그때만 해도 노래가 시였거늘... 
 
나는 외로움
나는 떠도는 구름
나는 끝없는 바다 위를 방황하는 배
 
그댄 그리움
그댄 고독한 등대
그댄 저 높은 밤 하늘에 혼자 떠 있는 별
....... 중략
 
 프랑스 기자 출신 작가가 일본의 신문기사를 보고 떠올린 독특한 상상의 산물이 이리도 쓸쓸하게 한다. 프랑스 느낌과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섞여 일본 소설같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고독을 말해주는 회색빛이 물씬 느껴진다. 상상만 해도 잘못한 일을 들킨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처럼 조심성 없는 사람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있었던 자리는 언제나 티가 나니까. 
 
살며시 개울에 띄운 나뭇잎배가 일으키는 고요한 파문같은 소설. 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가. 외로운 두 영혼의 불편한(?) 만남. 서로를 이해하는, 뭔가 특별한 눈빛을 기대해보기도 하는데 그건 또 사족일테니.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있을 법도 한 일 일지도 모르지. 일본에 가 본 적도 없고 일본을 잘 모르지만 매체를 통해서 본 일본식 집과 그 주변 마을이 그려져 쓸쓸한 느낌을 더한다. 현대사회의 이야기지만 아주 오래된 이야기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 짧은 눈빛으로 서로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사이여도 마음이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자가 몰래 맞았던 따스한 햇살, 언제 사라질 지 모를 그 조마조마한 햇볕이 둘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다. 세상은 그저 웃기는 일로 치부하고 떠들어댔겠지만, 그 둘은 알겠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세상 속 누군가도 느꼈겠지. 너와 나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그래, 내 그 마음 다 안다' 하고서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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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5-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면 먹먹하죠. 묘한 소설이었습니다.
이런 재즈 같은 느낌, 이 저는 묘하게 들었습니다.
이거 이윤기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 잘 만들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5-05-13 17:0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아주 짧은데 긴 호흡이 느껴졌어요. 이윤기 감독 영화는 ˝여자,정혜˝만 봤어요. 그러고 보니 그 영화도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쓸쓸하기 그지없는.
 
스틸 미싱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2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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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장하기 위해 살아있는 것 아닐까?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났다면 마음을 키우기 위해, 더 나아가 이 "마음"이라는 것 자체를 지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 마음이 조금도 자라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내 마음의 키도 잘 자라지 않아 날마다 고뇌하지만 내 가족의 마음이 조금도 자라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느 가정에나 그런 구성원 한 사람쯤 있어서 다들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모두다 성숙한 아.름.다.운. 가족도 있겠지만.

 

그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틀에 박힌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많이 회자되는 만큼 사실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가 단지 응석을 받아주고 예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인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독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이다. 우리집에도 워낙 많은 구성원이 있는 까닭에 미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여태 식구들이 받아주고 참아왔지만 이해하고 봐 줄 가족이 아닌 남들이, 어느 정도까지 참아줄 수 있겠냐고. 요즘엔 어쩌면 우리들이 공범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세상에 나가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도록 그대로 방치한 공범 말이다.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한 채,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냐고 열변을 토해보지만, 그런다고 그 사람이 달라졌겠냐는 말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인지는 알게 되지 않았겠냐고. 행동화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아는 수준은 될 수 있지 않았겠냐고.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사람들의 기대치는 커져 가는데 어린시절 그대로 미성숙을 안은 채 살아가는 그 사람을 차라리 모르는 채 살아가고 싶다. 핏줄이라고 끝까지 함께 안고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가 너무 차가워 그렇다고 떠들든 말든,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길 마음이 당사자에게 있지도 않은 상황에 무얼 어찌 하겠는가 말이다.

 

『영원의 아이 』에 이어 지극히 우울한 이야기이다. 『영원의 아이 』와 달리 문학성은 없고 통속적인 느낌이 강해서 재미는 많지만 깊이는 떨어진다. 속도감은 무척 빠르고 울화가 치미는데 결국은 지긋지긋한 관계의 문제라는 것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목도 어쩌면 이 답답한, 답 없는 관계의 느낌으로 붙인 듯하다. 벗어나기 힘든 가족이라는 굴레굴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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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하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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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버스카글리아,『상처받은 자존심은 더 강해진다』를 참 좋아했었다. 한창 상담자가 되고자 꿈꾸었던 시기이기도 했었고,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아무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여고생이기도 해서 그 책이 위로가 되었다. 베티 아줌마와 닮았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너는 너야. 하고 하찮은(?) 내 존재를 인정해 준 그 글귀가 힘이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 같다.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눌러서 숨이 턱 막혀오니까. 1권이 잘 읽히지 않는 것은 곳곳에 복선이 깔리기는 하지만 확실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답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주요 사건이, 이야기의 절정부분이라서 일찍 드러낼 수도 없음을 알기에 작가 탓을 할 수도 없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 1권을 읽은 후 2권은 그야말로 눈깜짝 할 사이에 읽었다. 답답함과 묵직함이 턱끝까지 올라와 견디기 힘들지만,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아득한 안개 속을 혼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던 때 1년 동안 개인 상담을 받으며 한 인간에게 최초의 환경(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물론 어려운 "가족사"를 극복하고 환경과 관계없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이라는 질긴 고리는 심약한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승환의 "가족"이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나오지 않는가. '가족이어도 할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가족이어도 할 수 없다기 보다는 가족이어서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가족은 그렇게, 하기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숙제같다.

 

 제목이 무척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일본식이라 와닿지 않는다. 영원의 아이라니. 일본식 "노(~의)"가 너무나 거슬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뜻은 알겠으나 여전히, 이렇게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었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식 어법을 쓸 수는 없었나 싶어서.

 

덴도 아라타의 또다른 작품을 책이 아닌 드라마로 먼저 만났다. "가족 사냥".  이 이야기 또한 가족잔혹사? 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 사냥]도 [영원의 아이]도 내 추리는 틀렸지만. 이 책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 가족의 천근만근같은 무게감이 때로 자신을 옥죌 때, 특히나 어린 아이가 느끼는 순진무구한 죄책감을 그리고 있다. 버림받게 될까 두려워 조마조마한 작은 심장이 애처로워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싶다.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 생각이 나서 더 괴롭고 가슴이 아파왔다. 그 아이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토록 허무한 눈빛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나 어린아이에게, 한계치를 넘는 충격적 사건으로 빚어진 상처가 그리 쉽게 극복될 수 있겠냐고.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말처럼, 상처받은 자존심이 더 강해질 수 있는가 의심스럽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죽지 않을 거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늘 우리는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살아가도 되는지. 죽은 자를 뒤로 하고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 늘 묻게 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지독히 무겁다.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론은 버킹검, 늘 딴길로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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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도 아라타`는 항상 묵직하고 먹먹하고...

samadhi(眞我) 2015-04-20 10: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어요.
오호래핸만이에요. 잘 지내나요? 훗.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44   좋아요 0 | URL
저야 항상 늘 언제나 똑같습니다.. ㅎㅎ 잘지내시죠 ?

samadhi(眞我) 2015-04-20 12:05   좋아요 0 | URL
아랫녘으로 내려오니 마음이 편해서 좋긴 한데 바로 살이 붙어서 괴롭네요. 몇 개월 동안 한번도 윗녘으로 안 갔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언제 올라가게 되면 한 번 봅시다. 낯 가리지 마시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2:40   좋아요 0 | URL
네에. 웃 마을 함 오십시오. ㅋㅋㅋ
근데 이 해맑은 아이들은 누구인가요?

samadhi(眞我) 2015-04-20 13:08   좋아요 0 | URL
제 조카들이요. 제가 조카만 11명이라. 그 중에서 제일 이뻐하는 놈이 왼쪽 아래 미간에 빨깐 뿔 생긴 ˝나 개구쟁이예요˝ 하고 쓰여있는 녀석이죠. 그 아이가 벌써 중2병에 걸려서 제 엄마 속을 어지간히 썩이나 봐요. 이 사진 찍은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됐겠네요. 어릴 때 제가 몇 년동안 언니랑 같이 키워서 제 새끼 같아요^^
 
장사의 神 -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 술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가 들려주는 장사에 대한 모든 것! 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 지음, 김문정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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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갑자기 장사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일환으로 읽게 된 책이기도 하고. 며칠 만에 장사해보겠다는 마음을 접은 후에야 주문한 이 책이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장사에 관심없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 꽤 괜찮은, 재미난 내용이다. 사람(소비자) 상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생각한 업종-모든 걸 "니 알아서(셀프)" 하는 가게-이어서 한번도 감히(?) 생각해 보지 않는 장사에 관심이 생겼다. 직장 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많이 벌지는 못해도 사람 상대 하지 않으면서 생계유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갖고 막연히 생각해 본 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한 정보를 캐낼수록 이건, 대기업만 배불리는 일이었다. 서민들 착취하는 프랜차이즈 구조에 나까지 힘을 보태서는 안된다 생각해 미련을 버렸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장사를 만만히 보면 안되겠다. 저자는 즐거움과 상상력을 갖고 장사해야함을 그리고 오갸크상(최근 몇 년 새 생겨난 "고객" 이라는 말이 일본식인 이 말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예쁜 우리말 "손님"을 쓰는 곳을 찾아보기가 드문 삭막한 세상이 한탄스럽다.)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서 다시 오게, 그러니까 내 가게의 단골로 만들 것인가. 에 대해 얘기한다. 음식장사를 하면서 음식의 맛(전문적인 솜씨가 필요한) 보다는 전문성이 없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접객의 중요성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그 귀찮은 것을 강조한다. 조금 어릴 때라면 그런 얘기에 의욕이 솟았겠지만 인간 관계에 지친 지금의 내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속되게 말하자면 저자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노련한 여우 같다. 유머를 갖춘 능청스러운 저자의 여유가 멋지다.

 

내가 생각하는 음식점 개념과 조금 다른데. 맛없는 음식은 안먹는 나라서. 내 식당 선택 기준은 오직 맛이니까. 물론 서비스도 아주 중요하지만, 오늘 갔던 오리집처럼. 그 집은 오리요리가 주메뉴인데 값이 저렴하고 맛있는 김치찌개가 더 잘 팔린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손님이 오든 가든 인사 한 마디를 건네지 않는 거다. 가게에 들어갈 때는 신경을 안썼는데, "잘 먹었습니다." 하고 나오는데도 대답은 커녕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아서 놀라며 오리 안먹고 김치찌개 먹어서 그런거냐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 집은 뭘 먹어도 그렇다고 한다. 어떻게 요따구로 장사를 할까 싶어 우리끼리 주인아저씨가 이 책을 읽어봐야 하는데 어쩌고... 했다. 대단한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 오며가며 인사하는 것 뿐인데도 그 당연한 것을 하지 않는 아저씨의 배짱(?)이 대단한 건지. 죽도록 맛있어서 불친절을 감수하고라도 가고 싶은 만큼은 아니어서 당장은 다시 가게 될 것 같지 않다.

 

저자가 라쿠 코퍼레이션의 사장이라고 한다. 그냥 명칭만 들었을 때는 도대체가 와닿지 않던 낯선 일본말이 책의 마지막 장인 작가 연혁 중간에 "--라쿠야" 괄호 안 '樂' 자를 보고서야 아하! 하고 이해된다. 저자가 내내 강조한 장사의 "즐거움" 을 뜻하는 라쿠(즐거울 락의 일본식 발음)였구나. 뭐든 "재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와 비슷하다. 재미가 없으면 무엇이든 할 마음이 생기질 않으니. 그 재미를 위해 난 그저 생각만 하고 저자는 바로 행동한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누구보다도 뭔가를 파는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저자의 생각이 참으로 옳다. 정성을 기울인 마음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음식점이라기 보다 술집이기에 맛보다는 접객을 우선하는 것 같다. 일본 실정을 반영하여 우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꽤 있지만 술집을 열어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오는 "접객"이지만 술안주 몇 가지를 만들 줄 아는 나도 한번쯤 안주가 맛있는 조그만 술집을 열어 언젠가 장사를 해 볼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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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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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스무 살에 처음 만나(?) 푹 빠진 김산이 떠오른다. 88올림픽 유치를 위해 해금된 도서였을『아리랑』주인공 김산. 김산이 구술하고 님웨일즈가 받아 적은『아리랑』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학생들에겐 필독서였을 것이다. 내 또래 학번들은 김산을 잘 몰랐지만 80년대 후반 학번인 언니가 오래 전 책장에 꽂아둔『아리랑』을 뒤늦게 펼쳐보고 김산을 알게 됐다. 김산이 좋아 학부 졸업논문도 김산을 주제로 썼다. 차마 논문이라 부르기 어려운 조잡한 짜깁기 글이었지만. 이 책은 삶의 터전을 되찾으려 목숨 바쳐 싸우는 팔레스타인 김산이 부르는 아리랑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본 표지사진이 칙칙해 보여 몇 번이나 사기를 주저하다가 도서정가제 시행 며칠 전에야 겨우 샀다. 안 샀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만큼 좋다. 만화를 좋아해 만화방에 가면 안 읽은 만화가 거의 없을 정도인데 이 책은 우리나라나 일본 만화와 작풍이 많이 다르다. 꽤 낯선 그림인데 정이 간다. 구석구석 빼곡하게 표현된 사실묘사가 압권이다. 어쩌면 아랍 사람들 특징을 이렇게도 잘 잡아냈는지 신기하다. 만화로는 나이 든 사람 얼굴 표현이 어려워 어색하기 마련인데 이 만화는 딱 노인처럼 그려냈다. 예쁘고 보기 좋은 보여주기식 그림이 아니고 사실성이 강하게 느껴져 마음에 든다. 어쩌면 학습만화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무거운 주제를 거부감 없이 녹여냈다. 

 

작가가 아랍, 아프리카, 유럽을 둘러싼 지중해 섬 몰타에서 태어났기에 이런 작품을 그리고 쓸 수 있었겠다. 팔레스타인, 내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라 치부해왔다. 어쩌다 듣는 가자지구, PLO, 끝없는 분쟁, 난민...알아야 하지만 복잡하고 골치아프다 여겨 일부러 관심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남 얘기가 아니잖아.

 

가진 자들이 대놓고 드러내는 잔인함은 시대와 민족과 역사를 초월한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종교를 가장한 폭력, 야만스러운 패권 문제이다. 인간 필요에 따라 생겨난 종교 따위(?)가 절대권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억압한다. 20세기에 끝났다고 믿었던 이데올로기, 종교 싸움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어 조상대부터 오래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들을 몰아낸다. 제국주의 땅따먹기식 패권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네들 등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이 부르는 한스러운 아리랑. 삶터 주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주와 객은 언제 제자리를 찾을까. 치떨리는 식민 시기를 거쳐 온 우리역사와 꼭 닮아 분노가 치민다. 제발 이스라엘군을 지원하는 스타벅스 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사람은 다 간다. 내 일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겠지. 지금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피흘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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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5-06-0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나같은 불면증인 사람만 읽는 줄 알았는데...반갑네요.정 이 책 읽으면서 대놓고 야만스런 종교분쟁과 은근히 우리를 돈이라는 신에 중독되게한 근현대사의 전통신앙과 배금사상 전쟁중 뭐가 더 무서운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samadhi(眞我) 2015-06-06 11:04   좋아요 0 | URL
저도 불면증, 수면장애 중증이었어요 지금은 자연치유(?)가 되어버렸지만 가끔씩 불면이 찾아오는 정도구요. 저는 후자가 더 무서워요 인습의 껍데기에 갇힌 전통이 얼마나 큰 해가 될까 싶어요 물론 그게 큰 장벽이 되어 망가진 것들이 많지만 옛날엔 지금처럼 물질만능으로 어린아이까지 병들진 않았으니까요

samadhi(眞我) 2015-06-06 11:08   좋아요 0 | URL
아 종교분쟁이 전자였군요 ㅎㅎ 뭐가 더 잔인한 지 가늠할 수가 없는데요 맹목적인 종교전쟁도 답 안 나오는 일이라서...

보빠 2015-06-0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에서 치니 글이 엉망이네요..쏘리!대화명이 삼매네요 삼매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상태라고 원효는 해석하던데..저도 불면증 오면 제가 모르는 분야 책을 봐요... 모르는 분야 책을 보면 마음이 집중되어 기분이 좋거나 아니면 따분하고 졸려서 잠이 잘오더라구요

samadhi(眞我) 2015-06-06 11:23   좋아요 0 | URL
네. 인도 수행자의 글에 공감하게 되어서 정한 이름이에요. 전부터 ˝삼매˝라는 말을 좋아하기도 했구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전에 책 읽으면 잠 온다는데 저는 오히려 잠이 깨더라구요. 저는 반신욕(게을러서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하지 않지만)이 좋더라구요. 한동안 아로마(허브)에 빠져 있기도 했고. 불면엔 정말 답이 없더라구요. 실체가 있기나 한 건지 모를 마음을 놓아버리는 수밖에.

보빠 2015-06-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잠잘려고 책보는데 재미있어서 계속 잠이 안오면 극강의 수면제 책인 아비달마구사론을 보거나 헤겔의 법철학 봐요 ㅎㅎ
그런데 건강에 좋은 수면법은 자기전에 한시간 산책이더라구요....

samadhi(眞我) 2015-06-06 11:32   좋아요 0 | URL
저도 고런 책을 구비해 두어야겠네요. 맞아요. 이른 아침 햇볕 보며 걷기만 해도 불면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은 없을 것인데, 저는 게을러서 생긴 병이에요. 쓸데없는 것까지 예민하게 고민하고. 생각을 줄이고 말을 줄이는 작업이 제겐 필요합니다.

보빠 2015-06-0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여 타타타를 보면 진아가 생긴다고 하던데...그 진여를 볼려면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느껴보세요..생각은 시뮬라시옹 즉 복제된 이미지 허상에 빠지기 쉬우니.. 걷다모면 온 몸에 전해오는 땅의 감촉이 좋아요..

samadhi(眞我) 2015-06-06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몸으로 하는 것에 많이 약해서. 생각만 저어만큼 가 있죠. 제 움직임이나 표정이 얼마나 어색한가를 보면서 느낍니다. 저도 흙을 밟는 퐁신함이 좋아요. 우리가 사는 거리에서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긴 하지만 콘크리트를 피해서 일부러 흙을 찾아 걷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