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현재, “오타쿠라고 하면 취미(특히 그 중에서도 애니, 만화, 코스프레[costume play])에 몰두하여 일상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것, 혹은 그런 사람을 말하는 속어(俗語)이다.

 

오타쿠”. 한자로 쓰면 御宅즉 말그대로 이다. 원래 용법도 대체로 한국어의 과 비슷했다.

“あなたの御宅はどこですか? = 아나타노 오타쿠와 도코데스카? (당신 댁이 어디세요?)”

또한 이야기하는 상대를 보고 가끔 御宅라고 할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것.

“(모르는 사람한테서 괴상한 전화를 받았을 때) 御宅はどちら樣ですか? = 오타쿠와 도치라사마 데스카? (당신 누구세요?)”. 일본에서, 이야기 하는 상대를 御宅=오타쿠라고 부를 때, 거기에는 가끔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이 단어속에 번져 있다.

 

1988년부터 1989년에 걸쳐 일본 사이타마현과 도쿄에서 4명의 어린 여애가 연속적으로 납치되어 살해된 잔혹하고 충격적이고 또 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모두 4살부터 7살의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이 사건이 일본에서 유명한 連續幼女誘拐殺人事件이다.

범인은 납치한 아이들을 살해한 뿐만아니라, 한 아이의 유골의 일부와 아이의 구두를 부모의 집에 보내는 만행까지 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경찰이 이 유골이 납치된 아이의 유골이라고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발표하자, 신문사와 경찰소에 그 유골은 분명 자기가 납치한 여애의 유골이다라고 犯行성명까지 하였다.

또한 마지막에 납치한 아이의 머리와 손발을 절단하여 동체만을 공원에 버리는, 귀축의 소행까지 저질렀다.

1989 723. 6살의 어린 여애의 옷을 모두 벗겨서 사진을 찍을려고 한 26살의 남자가 현행범 체포되었다. 이름은 宮崎勤(미야자키 쯔토므).

이 놈이야 말로 連續幼女誘拐殺人事件의 범인이었던 것이다.

 

경찰의 철저한 조사가 있은 후의 재판 첫날. 재판관이 人定尋問의 일환의 뜻으로 미야자키에 물었다.

뭔가 말할 말이 있습니까?”

그러자 미야자키 왈.

나의 비디오를 돌려 주세요. 나의 자동차 면허증을 돌려 주세요. 그리고 나의 자동차에 석유를 보충해 놓아 주세요. 석유가 없으면 못타기 때문에

검찰이, 희생된 한 애의 시체에 손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 야생의 개 혹은 너구리가 먹었던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하자, 미야자키, 태연히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손은 내가 먹었다”.

 

재판에 앞서, 경찰이 미야자키의 을 家宅搜査하였다.

(이 미야자키, 부모와 여동생이 사는 안방과 떨어진 방[일본어:はなれ=하나레떨어져 있음]에서 오랫동안 취미의 세계에 매몰하면서 생활하였다)

에 첫발을 내디딘 경사들은 경악하였다고 한다. 미야자키의 방에는 6500개의 비디오가 가득 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부분이 애니, SF(으르트라맨 등), 로리콩(Lolita complex)비디오였다. 그 중의 몇개 비디오안에 납치하여 살해한 아이들의 시체가 녹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미야자키는 일상시 취미에 몰두하여 사회적인 교류방법, 회화의 상식을 몰랐고 그 필요성도 인식 안하고, 사람을 보고 あなた”,”きみ” (양쪽 의 공손한 말)라고 부르지 못하여 おたく 오타쿠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들에 속한다고 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당시 일부 사람들은 오타쿠라고 불렀다.

 

사건 이후 16년이 지나갔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 사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 오타쿠란 꺼림칙한 단어만이 사건의 잔혹함을 잊은 채 우리들의 일상 생활속에 남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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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자판 2005-02-0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그런 오싹한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그저 어떤 분야에서 "매니아" 보다 지식이 더 깊은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자기를 무슨 무슨 오타쿠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소개해서는
안된다고 하던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ChinPei 2005-02-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는 "게임 오타쿠"라든가, "코수프레 오타쿠"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위의 사정 때문에 이 "오타쿠"란 단어가 정말 싫어요. 그리고 이 사건이 발단이란 사실을 알아선지, 잊어선지 TV에서도 당연한 것처럼 "---오타쿠"라고 해요. 참. 일본의 메디어는 절조가 없단말이에요. 피해자의 부모가 이 "오타쿠"란 말을 들을 때 뭣을 느끼시는지 상상도 못하냐? 10년, 15년이 지나면 " 시효 時效 "인가? ...왜치고 싶어진답니다.

chika 2005-02-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이 사건이 오타쿠와 연관된 거라기보다는 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디오를 모두 갖고 있었으며 그의 광팬이었던 것으로 알았어요. 제가 오타쿠라는 말을 들은 건 매니아의 뜻 정도로 狂 - 특히, 애니에 몰두하는 일부를 지칭하는 말뜻으로 알았답니다.
음~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뜻이 바뀐 듯 하네요. 근데 적어도 매니아의 뜻보다는 狂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느낌의 단어라는 건 의미가 통하는 듯 하고요.
잘 알았습니다.

明卵 2005-02-03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오타쿠에 얽힌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군요. 오타쿠라는 말, 다시는 쓰지 않아야 겠습니다.

ChinPei 2005-02-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당시도 "오타쿠族"라고 하면 광신적인(狂信的) 매니아를 두고 말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널리 이 단어가 알려진 사건의 기억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걸 망설이게 하는 겁니다. 현재 저에도 귀여운 딸이 있기 때문에...

가을산 2005-02-0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 가족은 그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그냥 두었나요?

조선인 2005-02-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끔찍한 얘기군요. 앞으로 오타쿠를 자칭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려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엉뚱한 데 눈이 꽂히는데, 으르트라맨, 메디어, 이건 일본식 표기인가 보지요?

숨은아이 2005-02-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선 "울트라맨", "미디어"라고 하지요. ^^ 그리고 "連續幼女誘拐殺人事件(연속유녀유괴사건)"이라. 유괴란 한자를 저렇게 쓰는군요. 몰랐어요. -.- 소름 끼치는 사건이네요.

ChinPei 2005-02-0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도 그 사람의 방이 그럴 줄은 전혀 몰랐다구요. 그 사람, 가족이 자기 방 가까이 가는 걸 싫어 하고 되게 화를 내었다구요.
아, 그리고 이 사건의 몇년후 그 사람 아버지는 자살했답니다. 얼마나 자기의 일생, 아들에 대해서 후회했던지...

ChinPei 2005-02-0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그건 "일본식 영어"라고 할까, "ㄹ"받침이 없고 "E"는 대부분 "에"로 발음하구요. 숨은아이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허허, 저의 페이퍼 속엔 그런 알기 어려운 일본식 외래어의 한글 표기가 많애요. 죄송.

숨은아이 2005-02-0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친페이님, 죄송하게 여기실 일 아니에요. 일본에서 일본어로 말하며 사는데, 일본식으로 적으시는 게 당연하지요. 도리어, 아, 이렇게 다르게 쓰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어 재미있어요.

가을산 2005-02-04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페이님, 전 처음에 신문 기사를 그대로 옮겨오신 줄 알았어요.
그만큼 어려운 문장을 조리있게 잘 써나가셨어요. 참 대단하세요.

ChinPei 2005-02-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가을산님, 정말 금은보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감사해요.
 

중학교. 13. 초등학교에는 없었던 미술부에 꼭 들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입학 며칠 후, 미술부실에 가봤다.

부실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뒤로오오오오 돌앗! 뛰어갓!”

나는 도망쳤다.

미술부에는 여학생밖에 없었다. 그 여성밖에 없는 어마어마한분위기속에 끼어들 용기가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직 순진한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도, 중학교에서는 뭔가 서클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결국 취주악부에 입부하고 말았다.

지옥의 취주악부. 휴일을 모르는 취주악부. “포게악부”.

입학한지 며칠 안되던 나에게는 그 악명높은 취주악부의 현실을 알 수있을 리가 없었다(이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고등학교 3학년에로의 진급을 앞둔 시기.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할 시기였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별로 고민할 것 없었고 학력에도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학부를 선택할 것인가, 이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때도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아직17살에 지나지 안했던 나는 벌써 속물이 되어 말았다.

미술을 배워서 장래 뭘 할건가?”

미술을 배워도 일자리는 없겠지(물론 사실은 많이 있지요. 내가 몰랐던 뿐)”.

돌이켜 보면 그림에 대한 정열의 불이 상당히 약해진, 그런 시기였지요.

결국 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 미술과는 전혀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22살이 되던 해. 공학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나는 공업용전자기구를 설계,제작하는 회사의 직장인이 되었다. 미술과는 전혀 다른 세계.

전자회로도 설계하지만 제작한 전자기구를 제어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 제작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직장에서 컴퓨터를 응시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 그림은 어떻게 되었나?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흐흐흐. 지금도 그리고 있어요.

전자회로 설계, 컴퓨터 프로그램, 이 모든 것의 자료에는 반드시 해설을 위한 그림(즉 도면)이 필요하는 것입니다.

도면을 제작하는 작업, 이건 나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었지요.

나의 인생은 언제나 그림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 행복하다.

 

. ^^//

 

 

후기) 지금도 집에서는 그림을 그립니다. 명섭이, 선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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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5-01-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후회"인지 저도 쓰면서 혼란했어요. 그러나 역시 어린 시기부터의 꿈, 지금도 가끔 되새기는 꿈을 당시의 나의 "속물적인" 오해로 단념했다, 이 좌절감 자체가 "후회"였어요.

숨은아이 2005-01-2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행복하시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학생밖에 없다고 도망치시다니... ^^ "포게악부"란 무슨 뜻인가요?

ChinPei 2005-01-2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게악부"에 관해선 다른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어요. 흐흐흐흥.

세벌식자판 2005-01-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꽃밭을 뒤로 하셨다니~~~ (^0^)
헤헤 말은 이렇게 해도 저 또한 그런 상황이었다면
"뒤로 돌앗!"을 외쳤을 겁니다.

홍일점은 사랑을 받아도 청일점은 사랑 받기가 힘들지요. 헤 헤 헤

ChinPei 2005-01-2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한 아이였으니까. 그 당시는. 지금도 충분히 순진하지만요.
 

後悔先たず. 번역하면 "후회는 미리 서지 않는다". 대체로 맞았을 거다.

뜻은 말 그대로. 후회할 것을 미리 알고 그에 미리 대처할 수있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의 희망, , 야망을 완벽하게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후회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는 못한다.

 

얼마전에 세벌식 자판님이Chin Pei 님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군요라고 댓글에 쓰셨다.

그에 대해서 나는 좀 당황하면서 어린애의 낙서나 마찬가지 수준이에요라고 썼다.

실은 아니다. “, 그래요라고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린애의 낙서라고 썼지만 실은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뿐만아니라 일상시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훨씬 잘 그린다고 혼자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 관해서는 나에 있어서, 그야말로  後悔先たず = 후회는 미리 서지 않는다” , 그 말 그대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정말 좋아했다.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는 것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교 학생였을 때. 8, 9살 정도 때. 자기 어머니한테 부탁을 했다.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는 학교에 가고 싶어”.

어머니 말하긴 그런 학교가 이 동네 어디에 있냐?”

몰라

그런 학교는 없어

 

12살 때. 그림을 가르치는 통신학교를 알게 되었다.

이 때는 어머니에 상담하기 전에 제멋대로 입학원서를 보냈다.

며칠 후에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그렇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한번 해보지”. 허가해주었다.

정말 기뻤다.

그러나 나는 몃달 후엔 벌써 실망하게 되었다. “통신학교라는 형식을 미리 이해하지 안했기 때문이다.

교재는 두툼한 텍스트와 수채화도구.

텍스트에 있는 과제를 집에서 혼자 묵묵히 해 내고 한달에 한번 지정 과제를 통신학교에 제출한다. 며칠 후에 통신학교부터, 제출한 과제에 대한 평가가 보내온다.

A, B+, C- 하면서.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에 여기는 이렇게, 여기는 이렇게라고 어드바이스가 조금.

어린 나는 실망했다. 적어도 한달에 몇번은 통신학교에 직접 스스로 가서 선생님의 지도를 직접 받을 수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어린 나는 선생님의 뛰어난 작품을 보고 선생님의 다정한 지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통신학교란 그런 것이다. 오히려 직접 스스로 학교에 가지 안해도 좋다는 점이 통신학교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그 때 나는 아직 사회를 모르는 어린 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後悔先に立たず(2)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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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1-2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시는 동네 가까운 곳에 미술학원이 없었나 봐요. 다음 이야기도 어서 해주세요. 그리고 "후회는 미리 서지 않는다"란 말을 좀더 우리말답게 다듬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줄을 미리 알지는 못한다" "후회는 나중에야 찾아온다" 정도 되지 않을까요?

ChinPei 2005-01-2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는 나중에야 찾아온다" , 숨은아이님 감사해요. 매우 적절한 번역이에요.

숨은아이 2005-01-2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란 말이 있어요.

ChinPei 2005-01-2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것 맞아요. 혹시 중국에서 흘러 온 속담일까?

세벌식자판 2005-01-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n Pei님 나중에 직접 그리신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세요. ^^;
보고 싶어요~~~

ChinPei 2005-01-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작품"? 으... 부끄럽다...
 

浮世繪(으키요에)는 말그대로 浮世(으키요=고생이 많은 이 세상. 일반 시민의 생활, 인간사회)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풍경화 혹은 전쟁모습(合戰圖)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지만, 많은 작품이 인간의 생활, 문화활동등을 주제로 하였다.

 

주로 江戶시대에 많은 浮世繪師(으키요에시)가 등장하였고 지금도 유명하고 귀중한 浮世繪(으키요에)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江戶시대에 있어서 浮世繪(으키요에)는 결코 고급 繪畵(회화)가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을 版畵(판화)로 만들어 일반시민들에게 복제(Copy란 말이죠)로 수많이 발았다고 한다.

 

유명한 浮世繪師(으키요에시)東洲齋寫樂(토-슈-사이 샤라크)라는 繪師가 있었다. 18세기말경이다. 그는 많은 浮世繪(으키요에)을 그렸다.

그러나 이 사람, 불과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150개의 작품을 제작해 놓고도 이 기간 이후 역사적으로는 사라져 말았다. 사망했던가?

이 東洲齋寫樂(--사이 샤라크)는 작품은 현재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제작활동을 하였으며, 10개월의 제작활동이후 어디에 사라졌던가, 도대체 東洲齋寫樂(--사이 샤라크)란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 여러가지 연구에 의해 이 東洲齋寫樂(--사이 샤라크)에 관해서는 30종류의 가설(假說)이 있지만, 결국 결정적인 설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래는 東洲齋寫樂(--사이 샤라크)의 유명한 작품들.

     

 

그 외 여러 작품들.






浮世繪(으키요에)를 모티프로 한 부채.

 

 

역시 浮世繪(으키요에)를 모티프로 한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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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01-2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 페이님, 저는 浮世繪를 참 좋아합니다. 그림을 좋아한다기보다 목판화를 좋아한답니다. 섬세하게 刻한 기법을 보면서 좋은 재질의 木板을 부러워한적도 있었답니다.
여기 그림 퍼갑니다. 추천합니다.




ChinPei 2005-01-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림은 참 좋아합니다.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이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어릴 적에는 장래 반드시 화가(畵家)로 될 것을 꿈 꾸었어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ㅇ^;
지금도 가끔 집에서 잘 하지도 않는 수채화를 그립니다.

물만두 2005-01-2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키요에가 아니라 으키요에군요...

ChinPei 2005-01-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키요에"라도 문제 없어요. 일본어의 발음은 "우"와 "으"의 구별이 없어요.

짱구아빠 2005-01-2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페이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중에 마우스패드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으키요에"군요..요새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 한자 읽기가 대단히 어렵네요..
한자가 많은 일본어 책을 보면 뜻은 금방 이해가 가지만 소리내어 읽지를 못하고
한자가 적으면 소리내어 읽기는 쉽지만 뜻을 파악하기가 영....
님께서 쓰신 글에서도 일본인들조차 한자 읽기를 어려워한다고 하셔서 조금 위안은 됩니다만 외우지 않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
멋진 그림에 추천 한 방 찍고 갑니다.

숨은아이 2005-01-2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라크가 김홍도와 동일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고 들었어요. 김홍도가 조선에서 잠시 사라진 때랑 샤라크가 활동한 시기가 일치한다나요.

ChinPei 2005-01-2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구아빠님, 일본어 한자의 어려움은 중국어보다 심합니다. 쿵요미가 문제죠. 쿵요미.

ChinPei 2005-01-2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샤라크는 서양사람이다라는 설도 있어요. 샤라크 = Sharlock 라고.

세벌식자판 2005-01-2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Chin Pei 님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군요. 제 동생이 동양화를 전공해서 옆에서 이것 저것 많이 보고 있는데.... 역시 저한테 예술은 많이 어렵더군요. 제 동생은 중국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생이 어떤 작품에 대해 감탄을 할 때, 저는 옆에서 그 작품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군요. 헐... 미술은 어려워요... ^^;

ChinPei 2005-01-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미"라고 말하면 고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어린애의 낙서나 마찬가지 수준이에요.

야간비행 2005-02-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키요에에 대한 책을 요즘에 읽고 있어요,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짬짬이 알려주실 때도 있구요. 색채가 정말 화려한 것 같아요,그리고 너무 이뻐요.ㅎㅎ
 

十二單(-니 히토에)는 일본의 平安(헤이앙)시대(8세기부터 12세기)에 생겨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 시대 宮中(천황의 궁전)에 봉사하는 귀족 여성의 정장(정복)으로서, 더욱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얇은 옷을 몇장 겹쳐서 입었다. 그래서 十二單(-니 히토에 : ”히토에는 많은 것이 겹쳐서 하나를 이른다는 뜻)라고 블리우게 되었다.

많은 경우는 12장만이 아니라 20장인 경우도 있었고 무더운 여름절에는 5, 6장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 일본에서 이 十二單를 볼 기회는 거의 없다. 일부 결혼식에서 十二單를 입는 여성이 있고 특히 천황의 가족, 친족들의 결혼식은 지금도 平安(헤이앙)시대에 극히 가까운 형식이라서 여성은 이 十二單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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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화려한 색상이네요.. 밑에서 세번째 그림 넘 맘에 들어요..^^

ChinPei 2005-01-1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일본 TV에서 이 헤이앙시대에 관한 드라마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쥬-니 히토에도 주목을 끌고 있다고요.

明卵 2005-01-2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저 머리카락의 세세한 부분과, 일자로 잘려진 듯한 모습, 그리고 의상, 하얀 얼굴이 '아, 일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저 옷을 쥬-니 히토에라고 하는군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만두 2005-01-20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양사가 생각나네요^^

stella.K 2005-01-2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뻐요. 요즘 일본이 끌려요. 전엔 별로 였는데...친페이님 때문인가? 이벤트 선물 받고부터...? ㅋㅋ.

숨은아이 2005-01-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니히토에... 우리말로 하면 "12겹옷"이 되겠네요. 작년에 "마쿠라노소시(枕草子)" 한국어판 만드는 일을 했는데, 우리말로 번역한 교수님이 거기 나오는 옷을 "겹옷" "홑옷" 하는 식으로 옮기셨더라구요.

거닐기 2005-01-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왠지 단청이 생각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