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3. 초등학교에는 없었던 미술부에 꼭 들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입학 며칠 후, 미술부실에 가봤다.

부실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뒤로오오오오 돌앗! 뛰어갓!”

나는 도망쳤다.

미술부에는 여학생밖에 없었다. 그 여성밖에 없는 어마어마한분위기속에 끼어들 용기가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직 순진한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도, 중학교에서는 뭔가 서클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결국 취주악부에 입부하고 말았다.

지옥의 취주악부. 휴일을 모르는 취주악부. “포게악부”.

입학한지 며칠 안되던 나에게는 그 악명높은 취주악부의 현실을 알 수있을 리가 없었다(이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고등학교 3학년에로의 진급을 앞둔 시기.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할 시기였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별로 고민할 것 없었고 학력에도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학부를 선택할 것인가, 이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때도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아직17살에 지나지 안했던 나는 벌써 속물이 되어 말았다.

미술을 배워서 장래 뭘 할건가?”

미술을 배워도 일자리는 없겠지(물론 사실은 많이 있지요. 내가 몰랐던 뿐)”.

돌이켜 보면 그림에 대한 정열의 불이 상당히 약해진, 그런 시기였지요.

결국 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 미술과는 전혀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22살이 되던 해. 공학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나는 공업용전자기구를 설계,제작하는 회사의 직장인이 되었다. 미술과는 전혀 다른 세계.

전자회로도 설계하지만 제작한 전자기구를 제어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 제작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직장에서 컴퓨터를 응시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 그림은 어떻게 되었나?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흐흐흐. 지금도 그리고 있어요.

전자회로 설계, 컴퓨터 프로그램, 이 모든 것의 자료에는 반드시 해설을 위한 그림(즉 도면)이 필요하는 것입니다.

도면을 제작하는 작업, 이건 나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었지요.

나의 인생은 언제나 그림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 행복하다.

 

. ^^//

 

 

후기) 지금도 집에서는 그림을 그립니다. 명섭이, 선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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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5-01-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후회"인지 저도 쓰면서 혼란했어요. 그러나 역시 어린 시기부터의 꿈, 지금도 가끔 되새기는 꿈을 당시의 나의 "속물적인" 오해로 단념했다, 이 좌절감 자체가 "후회"였어요.

숨은아이 2005-01-2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행복하시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학생밖에 없다고 도망치시다니... ^^ "포게악부"란 무슨 뜻인가요?

ChinPei 2005-01-2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게악부"에 관해선 다른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어요. 흐흐흐흥.

세벌식자판 2005-01-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꽃밭을 뒤로 하셨다니~~~ (^0^)
헤헤 말은 이렇게 해도 저 또한 그런 상황이었다면
"뒤로 돌앗!"을 외쳤을 겁니다.

홍일점은 사랑을 받아도 청일점은 사랑 받기가 힘들지요. 헤 헤 헤

ChinPei 2005-01-2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한 아이였으니까. 그 당시는. 지금도 충분히 순진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