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권리를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지 않았고, 트랜스젠ㄷ 권리에 대한 옹호도 주로 법률 문서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즈음미 국무부는 트랜스젠더에게 여권을 발급할 때 성별확정수술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를 요청하고 있었고, 마흔일곱 개 주에서는 트랜스젠더에게 출생증명서를 새로 발급할 때 성별확정수술 증명을 요건에 포함했다. 심지어 세 개 주(아이다호, 오하이오, 테네시)에서는 성별확정 근거가 있어도 출생증명서를일절 수정하지 못하게 했다.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에 관한 연구는 풍부했지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이들에 관한 연구는 미흡했다. 실은 아무리 익명을 보장해도아무도 트랜스젠더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연구는 불가능에가까웠다. - P134
W. E. B. 듀보이스 <흑인의 영혼>
모든 이가 존엄과 자존,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원한다. 하지만 듀보이스는 피부색(또는 성적 지향이나 젠더) 때문에 인류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이 가야 할 길이 훨씬 험난하다는 현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소외된 자, 차별받는 자, 사회부적응자들은 가장 정중한 사회 구성원마저 던지는 무언의질문 하나를 감내해야 한다."골칫거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 - P20
켈리가 읽은 바에 따르면, 젠더는 스스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믿음이다. 또 젠더는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젠더를 딱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젠더로 오인받는 게 아니라면 자기 젠더를 타인에게 밝힐 필요도 없다. 켈리는 자신이 어릴 적에 이렇게 자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 P58
켈리도 내심 와이엇의 행동과 감정을 의학적으로 설명할방법이 존재하리라 믿고 있었다. 이 같은 기대는 너무나 뿌리깊고 단단했다. 그래서 켈리는 와이엇이 원하는 장난감을 마음껏 고를 수 있도록 방임함으로써 자신이 올바른 양육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때조차 이런 생각을 서둘러 떨쳐버리려 했다. 와이엇은 정신장애가 있지도, 아프지도, 기이하지도 않았고, 괴물도 아니었다. 와이엇이 남자아이로서 행복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켈리가 할 일은 와이엇이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도움이나 확신, 혹은 그 무엇이라도 선사해주는 것이었다. - P89
각 문학이론의 난해함에 이글턴의 난해함까지 더해져 입문이라기엔 허들이 너무 높다. 과학은 이론을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만큼 문학도 공부하지 않고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관점을 철저히 보여주는 책. 10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지. 내 이해 수준엔 별 셋.
문학‘을 ‘객관적이고‘ 기술적인 범주로 보아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그저 사람들이 문학이라고 부르기로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류의 가치판단들은 개인적 변덕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판단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분명히 흔들리지 않는 더욱 심층적인 신념의 구조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문학은 곤충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존재하는것은 아니라는 사실, 나아가 문학을 구성하는 가치판단들이 역사적으로가변적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또한 이 가치판단 자체도 사회의 이데올로기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판단들은 궁극적으로는 단지 개인적인 취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들이 다른 사회집단들에 대해 힘을 행사하고 또 그 힘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의거하는 전제들을 가리킨다. 만일 이 말이 지나친 주장이요 저자 개인의 편견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영국에서의 ‘영문학(연구)‘의 발흥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것을 검증해볼 수 있을 것이다. - P26
여성해방론과 탈구조주의 사이에는 또다른 관계들이 있다. 탈구조주의가 파괴하려고 애쓴 대립쌍들 중에서 남녀 사이의 위계적인 대립이아마 가장 악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것이 가장 영속적인 것같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좋이 인류의 절반이 결함많은 존재이자 낯선 열등동물로서 내동댕이쳐지고 종속되지 않은 때는 한번도 없었다. 물론 이 어마어마한 사실은 새로운 이론적 테크닉으로 당장 교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이 더없이 현실적인 것이었긴 하지만, 이 남녀적대 이데올로기가 형이상학적 환상을 어떻게 내포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남성에게 주어지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이득에 의해 그 이데올로기가 유지되었다면 또 한편으로그것은 시급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공포. 욕망 • 공격성 • 매저키즘. 불안의 복합구조에 의해서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여성해방론은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쟁점, 여타의 정치적 사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특별한 ‘캠페인‘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의 모든 면을해명하고 탐구하는 차원에 서 있다. 여성운동의 메시지는 국외자들에의해 해석되었듯이 남성과 똑같은 권력과 지위를 여성이 가져야 한다는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런 권력과 지위 전체에 던지는의문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더 많은 여성의 참여로 더 좋아지리라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역사의 ‘여성화‘ 없이는 세계가 살아남을 수없다는 것이다.. - P184
여성해방론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의지하는 프로이트 이론가 중의 하나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끄 라깡(Jacques Lacan)이다. 그것은뫄깡이 여성해방을 앞서 말한 사상가였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운동에 대한 라깡의 태도는 주로 오만하고 경멸적이었다. 그러나 라깡의 작업은 주체라는 문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위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언어 간의 관계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프로이트를 ‘재해석‘ 한 대단히 독창적인 시도이다. 이중주체와 언어의 관계라는 문제는 라깡이 문학이론가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라깡이 자신의 『글』(Ecrits)이라는 책에서 하고자 했던바는 구조주의자와 탈구조주의자의 담론이론이라는 틀로 프로이트사상을 재음미하는 일이었다. 라깡의 시도는 우리를 때때로 당황하게 만들 만큼 불투명하고 수수께끼로 가득찬 체계이지만 탈구조주의와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간략하게나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도이다. -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