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앨리스 자딘 - 가이네시스
세일라 벤하비브 - 자아의 위치 중 7장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질문
앤젤라 카터 - 써커스의 밤

포스트구조주의 보다 더 어렵네. 뭔 소리인지 더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 근대(moderm)시대 이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시기를 정확하게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1750년에서 1950년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근대와는 상당히 다 - P248

른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 차이란 1950년대 이후 특징적인 철학, 이데올로기,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서 일어난 매우 중요한 변화와 관계가 있다. 근대성(modernity)과 포스트근대성(postmodernity)을구분함으로써 이 시대에 일어난 변화들, 즉, 경제와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과 신념(함축적이든, 명시적이든)의 변화를 규명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 P249

그러나 자딘은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공통점이 있는데, 공통점은 둘 다 계몽주의적 사유의 특징인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서사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믿을 만한 신조어 ‘가이네시스‘ㅡ즉, ‘여성‘의 담론을 모더니티의 조건에 내재하는 과정으로서 표현하는 것의 과정"에 매료되어 있다. 즉, "여성적인 것과 여성‘을 새롭고 필수적인 사유, 쓰기, 말하기의 양식에 내재적인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25). - P255

"알레고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설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되어버릴 수가 있다. - P269

자딘의 주장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개념적/이데올로기적 변화가 일어나는 역사적인 시기에 페미니스트 이슈가 일반인 의식의 전면에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카터가 소설 속에서 19세기말 죽어가는 정신을 탐색하면서 반복된다. 19세기말은 "세속적인 시대에 진정한 기적이 세상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이 되어야 하는 시기"(17)다. - P271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논쟁이 제1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주체의 죽음, 역사의 죽음, 형이상학의 죽음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별의미가 없다. - P278

카터의 소설이 신체적 물질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빈번하게 경제적 유물론이 함께 따라 나온다. 이 점은 리찌의 분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찌 왈, 결혼은 "많은 남자 대신에 한 남자에게 행하는 매춘" (21)이라고 정의한다. - P285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과연 나란히 병치될 수 있는 개념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불가피하게 정의를 내리고 범주화하는 근대적 거대 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동참한 셈이다. 이런 근대적 사유가 심각하게 의문시되고 도전받는 포스트근대 세상에서 소설가와 비평가들은 거대 이론의 위험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대신에 흑인, 탈식민주의, 레즈비안, 게이 서사와 같은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서사에 눈을 돌리고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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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20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3장 중인데 지금 이 페이퍼 보니까 6장 읽기가 암담할 것 같네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1-20 09:46   좋아요 0 | URL
5장, 6장 너무 어렵네요 ㅎㅎ

건수하 2023-01-20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하고 계신 햇살과함께님, 저도 곧 따라갈게요!

햇살과함께 2023-01-20 09:49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시간 없어서 오늘까지 달리고 있으나,
눈 감고 달리는 수준입니다;;;;
아 8장 읽기 전에, 사둔 <술라>도 읽어야 할텐데요...
수하님도 화이팅!
 

Ch. 34 Martin Luther’s New Ideas
Martin Luther’s List
Martin Luther made list of ninety-five reasons why indulgences were wrong. in 1517
Henry VIII’s Problem
1 Catherine of Aragon - sent away, daughter Mary
2 Anne Boleyn - beheaded, daughter Elizabeth
3 Jane Seymour - died, son Edward
4 Anne of Cleves - left
5 Catherine Howard - beheaded
6 Catherine Parr - a good nurse, watched over 3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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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엘렌 식수 - 메두사의 웃음
루스 이리가라이 - 우리 두 입술이 함께 말할 때
쥘리아 크리스테바 - 한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버지니아 울프 - 올랜도

프랑스 출신 아닌 ’프렌치 페미니스트‘ 언니들 이름도 어렵고 ‘포스트’도 어렵고 ‘구조주의’도 어렵다..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232p)’는 지금의 나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 237p
올랜도는 읽기 쉽지 않네요. 다락방님 잘못 아님 ㅋㅋㅋ

"프렌치 페미니즘"의 "프랑스성"에 문제가 있다면,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를 페미니스트라고 분류하는 것도 실은 문제가 있다. - P198

세 사람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표현해왔다. 부분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프랑스의 맥락에서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그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페미니스트가 남성적 사유의 부분을 구성한다고 믿기 때문에 별로 유용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99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공유하는 뭔 가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들이 잠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감각이다.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에대한 회의적인 접근은 구조주의와 구분된다. 구조주의는 개념들이기본적으로 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페르디난드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언어, 친족 관계, 정신 심리에 있어서 구조 관계 자체가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뭔가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 P199

그러므로, 구조주의 언어학이 기저에 존재하는 대립쌍을 밝혀냄으로써 언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포스트구조주의는 언어의 최종적 의미는 항상 고정되지 않고 미끌어진다고(elude)고 주장한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 모두 그들의 저서에서 말장난, 인유, 인용, 신조어, 복합어, 시어들을 장치로 사용한다. 그 목적은 단어 혹은 개념이 다른 대립되는 단어나 개념과의 관련 하에서 ‘구성‘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해체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는 끊임없이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절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원적 대립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대립쌍의 위계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예로 되돌아간다면, 여성성은 특정한 종교적 혹은 신비적 담론에서와 같이 언제든지 남성성보다 더욱 우세해질수 있다). 혹은 제 3의 뭔가가 나타나서 대립쌍의 구분을 넘어서면서 불안해질 수 있다. - P201

라캉의 "상징계"란 그가 "아버지의 법"이라고 명명했던 것, 바로 상징적 "팔루스"(phallus)에 의해 지배되는 어른의 세계, 규범적이고 이성적인 가부장적 세계를 의미한다. 상징계는 자아와 타자(특히 엄마)가 분리되고, 언어를 습득하고, 욕망이 만들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상상계는 전외디푸스단계와 동일하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아와 타자와의 구분을 알지 못하고, 언어도 없고, 상실감도 없다. 따라서 욕망도 없다. 정체성의 형성은 언어를 습득하고 상징계로 진입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은 상상계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엄마와 하나였던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이 함께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징계에 진입하더라도 상상계는 쉽게 극복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직선적인 연속의 과정으로 보는 대신, 다른 대립쌍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 P203

데리다와 라캉 모두에게, 여성성은 ‘배제된 것’이고, 동시에 어떤 본질이다. 데리다는 여성성을 언어학적 불고정성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라캉은 여성을 상징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타자(엄마)에 대한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무엇보다 상징계를 창조해낸 그 무엇으로 여긴다. - P204

‘대립’(opposition)과 ‘차이’(difference)를 구분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정신분석학은 여성이 단지 팔루스가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 몸의 진짜 차이들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부장제 기계(patriarchal machinery)의 기능을 방해하고 변화시키려면 바로 긍정적인 차이들이 여성적 글쓰기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된 것처럼 글쓰기로부터 추방당했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한다. 여성에 대해서 써야 하고, 여성을 글쓰기로 도입해야 한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법으로, 똑같은 치명적인 목표를 가지고" (244). 식수는 가부장제가 남성들에게 제공했던 권리와 특혜를 여성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자유주의 혹은 개혁주의 아젠다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수가 여성의 몸과 여성의 글쓰기를 동일선상에서 비유하는 목적은 성별화된 몸의 신체적/물질적 사실이 글이나 문화와 언듯 무관해 보일지라도, - P206

사실은 함축적으로 (여성의 몸의 경우) 문화를 창조하는데 여성들이 배제되는 근간으로 늘 작용하고 있다는 역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 P207

대신에 언어와 사회 모두 서로 상호 침투하는 담론이며, 언어와 사회 모두 텍스트로써 읽고 해석하고 다시 쓰기하는 과정에 열려 있다. 쓰기와 문화가 서로 간섭하게 되면 결국 불가피하게 사회가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둘을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대립이기 때문이다. 전설 속 남자들을 돌로 변하게 만들었던 메두사는 프로이트 같은 남성에게 거세 불안의 메타포였다. 그런 메두사를 다음과 같이 씀으로써 식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메두사를 보려면 그냥 똑바로 보기만 하면 된다. 메두사는 무섭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게 웃고 있다" (255). - P210

식수의 첫 시작을 보자. "나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다.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식수 245). 그런가 하면 이리가라이는 "우리가 함께 똑같은 언어를 계속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역사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 P211

식수와 이리가라이의 주요한 차이는 이리가라이가 레즈비안적 사랑을 환기한다는 점이다. 이리가라이의 에세이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특정되지 않은 "너"에게 말한다. "너"는 화자와 욕망, 쾌락, 감정적 접촉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특정되지는 않지만, 이리가라이는 두 개의 입술이라는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두 개의 입술이란 말 그대로 입술일 뿐만 아니라, 여성 질의 입술을 의미하고, 자신과 다른 여자의 입술을 의미한다. - P212

식수나 이리가라이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테바는 언어에 대한 재현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 혹은 ‘쓰는 주체‘ (writing subject)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이 에세이가 쓰인 197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 이론이었다. 크리스테바의 목적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예상 외로 과거의 언어 이론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테바가 보기엔 그들 사이에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 언어학은 아직도 "단정적인" (thetic) 주체와 언어라는 전통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정적인" 주체와 자아란 자체 안에 들어있는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아다. 즉, "단정적인 주체는 단일성, 정체성,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언어학적으로 말해서 서술할 수 있는 능력(긍정하고, 거부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 의미의 주체와 언어 개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의 그런 측면이 사회적 힘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 P215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처럼 울프는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그러므로 언어는 정치적 무기가 되어 단순히 재현하거나 은유하는 기능 이상을 수행하는 것이다. 올랜도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법이라는 단정적 언어를 통해서 언어학적으로 결국 확인된다. "나의 성은 반박의 여지없이 여성으로 결정되었다"(243). 올랜도가 성을 바꾼 후 곧바로 대명사가 변화하는 것은 "우리는 전통을 위해서 ‘그의’(his)를 위해 ‘그녀의‘(her)로 바꾸고, ‘그‘를 위해서 ‘그녀‘로 바꿔야한다"(133)) 이원론적 젠더 시스템의 만들어내기 위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해 준다. - P232

비슷하게 올랜도』의 위반적인 측면은 오로지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만 보였다. 즉, 아이러니는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 P235

모호하고, 반어적이고, 복잡한 언어가 독자들에게 생산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견해에도 문제가 있다.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이 장에서 논의되는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특히 남성적인 문학적, 철학적, 문화적 유산을 폭넓게 논의할 때엔 특히 난해한 언어를 사용한다. 남성들의 유산에 대해 존경심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아도 원전을 모르는 상태에서 농담을 알아듣기는 힘들다. 정신분석학적 선조들 [프로이트와 라캉]을 다룰 때 특히 그렇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의 어휘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그들이어휘가 얼마나 유희적이고 창의적으로 이전의 교리를 혁신하는지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 P237

이것은 정확하게 『올랜도』에서 동성애에게 할애되는 위치와 닮아있다. 즉 동성애는 양성성이나 여성 해방과 같은 명시적인 서사 아래 감춰져 있을 뿐이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동성애를 모성과 연결시키고, 모성을 강조하는 것은 거세게 비판되어 왔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모성적 몸은 모든 의미화의 감춰진 근간이거나, 모든 문화의 암묵적인 원인도 아니다. 오히려 모성적 몸은, "여성의 몸은 필시 엄마가되어야 한다는 시스템, 모성은 자아의 본질과 욕망의 법이라고 규정하는 섹슈얼리티 시스템이 만들어낸 영향과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버틀러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으로 ‘타자‘로 구성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레즈비안‘이라고 말한다. 레즈비안은 정신/물질, 젠더/섹스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상징 질서에 필수적인 구분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성 동성애는일단 전략적 효과가 목표(몇몇 논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리가라이는 최근이성애적 사랑에 목표를 둔다")에 도움이 되면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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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19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세!! 내 잘못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1-19 17:11   좋아요 0 | URL
올랜도가 잘못 했네요 ㅋㅋㅋ
버지니아 울프 다 읽을 계힉인데, 올랜도는 젤 마지막에 읽는 것으로 ㅋㅋㅋ
 
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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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아직 이 책 이름을 완전하게 외우지 못함;; 자꾸 페미니즘 문학의 어쩌구~ 한다;;) 1장에 나오는 [19호실로]를 읽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도리스 레싱은 15년 전에 <런던 스케치>를 읽었(다고 나의 기록이 말하고), 그 몇 년 후 <다섯째 아이>를 읽고 10년만에 이 책으로 읽게 되었다. <런던 스케치>도 단편집인데, 물론, 당연하게,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는 너무 강렬한 내용이라서, 대략적인 내용이나마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는(그 당시 둘째가 돌이 안된 아기였다), 충격과 공포! <다섯째 아이>의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도리스 레싱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듯하다....


<19호실로 가다이 책도 첫 단편부터 만만치 않다. 첫 두 단편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에 나오는 찌질남들 때문에 짜증으로 시작하게 된다. 지들이 처한 능력적 한계, 환경적 제약 등을, 자기의 작업(?)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에게 이입하고, 여성을 정복하고자 하고, 모욕하고자 하는 찌질남들. 현실에 많을 것 같아 더 우울해진다. 이 짜증 때문에 리뷰도 쓰기 싫다는 (변명이)…


[19호실로]는 겉으로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단란한 중산층 가정주부인 한 여성이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다. 초반에 수전과 매슈가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에서 <다섯째 아이>가 생각났다. 이 단편 <다섯째 아이>의 모티브 인가.


읽으면서 내가 수전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결혼과 출산에 관계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시대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때도 나에게 책이 위로가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자꾸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게 되는 나란 사람은 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자꾸 왜냐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묻게 될 것 같고, 아니 수전의 남편처럼 묻고 싶지 않을지도. 수전, 친구 없어요. 수전, 하고 싶은 일 없어요. 수전, 좋아하는 일 없어요. 수전, 가정부도 있는데 아이들도 컸는데 나가서 재밌게 놀아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면 안되요.


그녀를 파국으로 이르게 한 남편을 원망하게 된다. 왜 그녀가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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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18 1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섯째아이 정말 충격과 공포죠!! 잊기 힘든 작품입니다.
19호실로는 읽으면 정말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요. 친구없어요. 하고 싶은 일 없어요… 하시는 말씀이 맘 아프네요 ㅜㅜ

햇살과함께 2023-01-18 21:19   좋아요 1 | URL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무거웠어요.. 제가 왠만한 책은 다 잊어버리는데 다섯째 아이는 잊혀지지 않네요!

바람돌이 2023-01-18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19호실 읽으려고 책 폈습니다. ㅎㅎ <다섯째 아이> 진짜 강렬하던데 이 단편집의 19호실로도 그런가보네요. 저도 열심히 읽어볼게요. ^^

햇살과함께 2023-01-18 21:20   좋아요 0 | URL
19호실로는 강렬하다기 보다 맘이 무거운.. 첫 두 단편이 강렬하게 빡칩니다!!
 

Ch. 33 Spain, Portugal, and the New World
The Slave Trade - 잔인하고 슬픈 역사
Cortes (Spanish adventurer) and Montezuma (the king of the Azt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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