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유난히 쓸쓸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매우 평온하다.
사랑도 미움도 없고
슬픔도 기쁨도 없으며
색깔도 소리도 없다."

루쉰, 희망 - P3

하은빈

우는 나와 쓰는 나는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후일담이나 실패담이 아닌방식으로, 완결성과 정합성을 갖춘 매끄러운 모양새로세상에 나오는 것을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누군가이런 이야기를 울지도 더듬거리지도 않으면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하지도, 정정도 번복도 하지 않으면서 정연하게 술술 해낸다면 나는 그 사람이 무척이나 걱정스러울 것 같다. 나는 부딪치고 깨지고 조각난 이런 이야기들이 부서지고 깨지고 조각난 모양으로나마 세상에 나와 주고 또 남아 주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를 붙이고 기우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몫으로, 그 이야기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미루어 두고 그렇게 해 주기를바란다. - P30

박성우

어떤 사람은 이런 광경에 정리 좀 하고 살라고 핀잔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깔린 정리 취향을 믿지 않으며 방이 책으로 어지럽다는 것은 오히려이 시대에 드문 종류의 자기 보존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쌓여야 사유가 쌓이고 사유가 쌓여야 고독이 무너지지 않으며 고독이 무너지지 않아야 혼자 사는 삶이 한사람의 존엄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책더미는 읽고 난 뒤의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물성 자체로 살아남기 위한 구조물이고 벽이며 때로는숨 막히는 세계 앞에서 잠시 몸을 기대는 지지대이자 ‘나는 아직 생각하는 사람이고 나는 아직 나 자신과 이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자위할 수 있는 안전한공간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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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Popper's Penguins (Newbery Honor Award Winner) (Paperback)
Richard Atwater & Florence Atwater 글, Robert Lawso / Little, Brown and Company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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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왜이리 올드한가했더니 1938년 작품이구나. 남극에 살고 있는 펭권을 미국에 선물로 보내고 펭귄 공연으로 돈을 벌고(물론 펭귄을 먹이기 위한 거지만) 북극 탐험가들 심심하지 말라고 펭귄을 북극에 데려간다니요. 펭귄에 미친 대책없는 남편 뒤치다꺼리하는 부인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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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5년 겨울호 - 통권 19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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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도 늦지 않게 읽어내었다. 꼭꼭 씹어먹진 못했지만. 지방과 농어촌 문제, 선거와 민주주의, 기후위기 등, 매번 같은 주제이지만 조금씩 다른 관점과 문제와 기대를 말한다. 다음 호에는 다가올 지방선거와 관련된 주제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언급된 기후시집 <여름, 연루>를 찜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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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주의자

권대웅

걷다 보면 답이 온다
생각이 오고 파동이 온다
하늘과 구름과 땅속에서
문장이 온다

발걸음이 땅에 닿을 때마다
몸의 기억과
잠들었던 꿈
공중의 신호등이 켜진다

걷기란 그것들을 끌어당기며 - P136

마음이 바라고
상상하는 곳으로 가는 일

나무는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가며
하늘로 향해 가는 길을 읽는다
그것은 나무가 걸어가는 방식

사람은 앞으로 걸어가면서
내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상처
낙엽 같은 미움들
한 걸음 한 걸음씩 어루만져 주는 일

걸을 때 나는 창조자
자유로운 영혼
심장과 두 발은 나의 육필
몸으로 관통하는 바람과 구름과
길의 문장을 쓴다 - P137

갈등, 반대, 제약 같은 것들을 모조리 제거해야 할 것,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틀렸습니다. 어떤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 장애물이 없으면 성취감도 맛볼 수 없어요. 난관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고통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사람, 의지가 꺾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좋은친구가 되지 못해요.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 삶에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잖아요. 첫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이것이 인간의 행복과 건강에 중요하다는 증거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프랭클 - P162

은 인간이 자연과 어울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이것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중요한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고, 셋째는 고통입니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참된인간이 된다는 거예요. 물론 고통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 없겠죠. 또 너무나 부도덕하고 비참해서 차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고통도있습니다만... - P163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주류 문화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누구든,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생각의 자유와 상상의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 대단히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나 자신의 내면의 변화밖에 없어요.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우리의 정신, 마음, 영혼을 아름답고 창조적이고 신성한 우주를 향해서 활짝 열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어요.
내 책을 읽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그분들이 내 책에서 뭐, 매일 아침 20분간 명상하기 같은 어떤 규칙 - P168

을 배웠기 때문은 아닐 거예요. 명상도 좋겠죠. 하지만 변해야 하는 일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일은 세계를 다르게 보는것입니다. 내가 책을 써서 하려고 하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물론 처음부터 어떤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아요. 논리적이고, 따라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차근차근 독자들을 어떤 장소로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서, 정말 기초적이면서도 극히 중요한 측면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장소로 말입니다. (김정현 녹취, 옮김) - P169

세상은 ‘관계‘에서 시작한다. 물리학에서도 물질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 실체는 보이지 않고 오직 서로 간의 힘의 관계만이 남는다. 생명의 보고인 숲을 연구한 생태학자들도 말한다. "숲은 상보적 관계에서출발한다." 몇년 전 ‘좋은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라는 제목의 TED강연에서 700여 명을 70년 동안 추적한 하버드대학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결론은 단 하나, ‘좋은 관계‘로 요약된다. 좋은 관계가 행복의 전 - P175

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할수록 외로움은 깊어지고, 그 외로움은 분노와 혐오로 증폭된다. 결국 관계가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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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시집 <여름, 연루>

기후외교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기후변화는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초래될 9가지 경계선을 밝혀냈는데, 이미 그중에서 6개가 한계치를 넘어섰다. 기후 이외 - P58

에, 토양 및 담수의 변화, 생물다양성 붕괴, 영양소 순환 사이클의 교란, 과불화화합물(PFAS) · 유전자조작생물(GMO) · 미세플라스틱 등 지구환경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의 확산 등이 그것이다. 해양 산성화도 결정적 변화를 가져올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다. 이것은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된 분명한 위협이지만 국제적으로 적절히 대응이 이뤄지고있는 사안은 단 하나도 없다. - P59

북(北)이 패권을 잃고, 남(南)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다자주의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체제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그것을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세워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되돌아가야할 때도,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대로 "낡은세계는 죽어가고 있고, 새로운 세계는 태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현재는 괴물들의 시대이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안전한 항구에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정현 옮김) - P101

불안과 슬픔의 연대, 연루감
여름이 남긴 것을 돌아본다. 지난여름 평균기온은 25.7℃로 1973년기상관측 이후 역대 1위였던 지난해 여름 기록(25.6℃)을 경신했다. 폭염 일수는 28.1일, 열대야 일수는 15.5일이었다. 온열질환자 숫자는 작년보다 20.4% 증가한 4,460명으로, 2018년 이후 가장 많았다고 한다. 폭염 속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봤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쓰러진 것들이 비단 사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폭염과 폭우 그리고 가뭄 속에서 풀, 벌레, 물고기, 동물들 역시 터전을잃고 멀리 떠내려가거나 말라 죽었다.
여름이 남긴 것들과 지금 살아서 겨울을 맞는 우리는 어떤 관련이 있나. 환경운동연합이 기획하고 권누리, 마윤지, 박은지, 윤은성, 윤지양, 정재율, 한연희, 희음 여덟 명의 시인이 참여해 엮은 시집 《여름, 연루> - P115

는 그 관계에 대해 묻는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의 현장을 찾아 고통을 함께한다. 화성습지, 월성원자력발전소, 가덕도 등이다. 인간에 의해 땅이 파헤쳐지고 물이 오염되는 상황에서도 그곳에 여전히존재하는 생명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연결고리 안에서 연루돼 있음을 확인한다. - P116

소설가 황정은은 올해 문학주간 개막 행사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한 뒤, ‘연루감‘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내가 가해자가 아닌데도 죄책감이생기고 괴로운 느낌. 그는 세계의 폭력과 위기상황에서 연루감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가동하는 에어컨, 에어컨을 돌리기 위해 쉬지 않고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 원전 주위의 사람들 혹은 동식물, 그리고 바다. 모두가 연결돼 있다. 우리는 착취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삶, 다른 생명을 착취한다. 황정은의 말대로 연루감으로부터 안전한곳은 없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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