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시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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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택의 서재라는 고전적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치장을 한 낯선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며 사건이 시작되고, 꼬인 실마리를 풀기 위한 마플 여사의 고민은 깊어지는데... 초기 설정은 고전적, 연극적인데, 등장인물들은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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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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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퀴어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조선시대 아니고 일제강점기이고(하긴 조선시대 퀴어에 대한 기록이 있긴 할까), 내가 아는 그 퀴어가 아니고 정말 Queer, '조선의 엽기'나 '조선의 변태'가 더 어울릴 법한 에로 그로한 이야기가 많다. 서양인과 일본인의 근대적인 사고와 제국주의적 관점을 흡수한 조선인의 미성숙한 시각, 야만적이고, 때로 엽기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을 그 당시 신문 지면을 통해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다. 신문의 자극적인 낚시질은 그때도 성행했다네. 그래도 책 후반에는 퀴어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최초의 단발낭으로 알려진 기생 출신 강향란이라는 멋진 신여성도 알게 되고. 생각해보면, 구시대와 신시대의 교차점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혼돈의 시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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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데, 그건 아직까지도 당시의 내 감정을 정확히 해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똑똑하고 친절하고 흥미로웠으며 또한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우리의 관계를 진정한 우정이라고 말했을 때, 내가 왠지 꺼림칙하고 부담스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에 대한 그의 호감 속에는 무언가 거북한 압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로 지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 P14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P18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요. - P20

그러나 한편 마음속 멀고 깊은 심연 속에서 나는 그 어떤 거북한 느낌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 속에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우정과 마찬가지로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눈물과 맹세를 담고 있는 심각한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심각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눈물도, 맹세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달빛 어린 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밝은 유성처럼 타올랐다가 그대로 팍 꺼져버렸으면.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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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는 구매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을 알선하는 포주가 없으면 성매매는 줄어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에는 성매매 업소에 다니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구매를 하지 않는 남성이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성구매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이제는 내가 경험한 구매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 P333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쉬는 것이 그렇게 눈에 가시였을까? 씁쓸하기만 했다. 부러진 팔찌를 판 돈의 일부를 엄마에게 건네자, 마지못해 받는 척했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옅은 미소가 보였다.
함께 저녁을 먹을 때 엄마는 내가 취직을 했다고 자랑했다. 가족들의 눈이 반짝거리는 듯했다. 잘됐다고 말을 건네는 가족들의 인사가 부담스러웠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는 공장 일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 어떨지 긴장되는데, 가족들은 오로지 내가 벌어올 돈만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P347

버스는 목적지에 가까워져 왔다. 여전히 버스 안에서 여중생들은 재잘거리며 웃는다. 그 모습이 예쁘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빗속의 여중생들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나의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했다. 만일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고 성매매를 하지않았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갔을까? 내 인생에 성매매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내 기억들은 아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아픔이 내게 위로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 P356

탈성매매 이후, 업소를 전전하던 20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못했던 ‘성노동론‘과 마주할 때가 있었다. ‘팔려가는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론에만 매몰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을 소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뿌리 깊고 공고한 구조하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을 성매매 현장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려면,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재유입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 P375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경험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지난날을 재해석하는 일이었다. 그 재해석을 통해 아픔은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용기로 재탄생했다.
경험의 재해석은 계속되고 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아파서 눈물을 흘리겠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다. - P395

탈성매매 이후 쉽지 않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낯선 환경들에 적응하기 어려워 자학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때마다, 다시 업소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회귀 본능이 일었다. 업소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힘들고 좌절할 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다잡는 것은 세월이 이렇게흐른 지금에도 어렵다. 나는 어쩌면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 흔들리면서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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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추리 소설 좋아하세요? 저는 엄청 좋아해요. 추리 소설이라면 전부 읽었고요. 도로시 세이어스, 애거서 크리스티, 딕슨카랑 H. C. 베일리한테 사인도 받았는걸요. 이 살인 사건이 신문에 날까요?"
"신문에 아주 잘 나올 거다." - P98

"물론 그럴 거예요!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는걸요. 소문은 점점 더 퍼지겠죠. 그리고 사람들은 밴트리 부부를 쌀쌀맞게 대하고 피할 거예요. 그러니까 진실이 밝혀져야 해요. 제가 밴트리 부인과 기꺼이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터놓고 비난하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군인들은 그런 문제에 잘 대처하니까요. 그는 화를 내거나 싸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뒤에서 숙덕거리는 건 그를 파멸시키는 일이에요…….. 그 두 사람 모두를 그러니 우리가 진실을 밝혀야 해요."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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