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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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강렬한 표지 그림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거라는 말에 ‘싫다면요?‘ 라고 내뱉는 듯한 저 표정! 이 책이 재미없는 것은 아직 판타지를 사랑할 재능이 없는 나의 부족함인 것으로, 해리포터도 실패했으니(죽기 전에 사랑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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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1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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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라는 클리셰를 생각하며 읽어도 마지막까지 설마?! 하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우리는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마지막 페이지의 “Fact is Simple”이 독자를 바라본다. Fact는 정말 단순한가, Fact는 진실과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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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피아니스트들의 말은 허세도 거짓말도 아니다. 같은 피아노도 실제로 연주하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 다른 소리의 근원은 건반을 누르는 방법에 달려 있다. 때릴수도, 누를 수도, 톡 건드릴 수도 있고, 눌렀다가 곧바로 뗄 수도, 다음 건반과 연결할 수도 있으며, 서서히 뗄 수도, 급하게 뗄 수도 있다. 힘을 얼마나 들이고 어떤 속도와 감각으로 건반을 누르느냐에 따라 소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음으로도 짓누르는 소리, 멀리 보내는 소리, 가다가 뚝 떨어지는 소리, 또랑또랑한 소리, 희미한 소리, 깨지는 소리, 점점 커지는 소리(놀랍게도), 사라지는 소리, 경직된 소리, 속삭이는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는 피아노의 모든 부품이 관여된다. - P10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 있게 된다.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 - P13

우리의 느릿느릿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완전성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 P17

피아노는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가, 느릿느릿 돌아왔다. 피아노를 치기위해 돈을 버는 날들이 있었다. 피아노를 치다가 우는 날들이 있었다. 꼭 피아노여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피아노를 어떤 상실의 상징으로서, 될 수 있었으나 될 수 없었던 것, 고통스럽게 내놓아야 했던 모든 것의 반영으로서 받아들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삶을 돌아보면서 피아노에 부여한 역할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조직한 내 삶의 서사에서 피아노는 빠질 수 없는 주춧돌로 서 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이 그의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면, 나의 정체성의 일부분은 피아노라는 하나의 존재, 그 물건과 물건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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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지금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지배적인 논의방식에서 보는 것처럼 이것을 단순한 외부적 재난이 아니라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본가정 자체의 결함으로 인식하는 데 무능력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근원적인 공포가 사태의 정당한 인식을 가로막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결핍을 느끼면서도 환경재난에. 대한 기술주의적 접근방법만이 활개를 치고, 또 그러한 현실에 대체로묵종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품고 있는 맹목적인 숭배나 신뢰는 과학은 거짓이없고 실패가 없다는 전연 근거 없는 미신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미신이 널리 유포된 데에는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비역사적 사고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의 진리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모색적인 것이었지 결코 항구적인 절대성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하게 과학적인 태도는 그러니까 늘 열려 있는 겸손한 태도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현재 능력이 - P15

나 인식방법으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여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참다운 과학정신과 인연이 먼 태도라 해야 옳다. - P16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관계, 그리고 근대과학의 근본가정에 깔려 있는 폭력성에 대한 뿌리로부터의 철저한 반성 없이, 계속하여 더 많은 과학과 더 정교한 기술만을 구한다면 파멸은 불가피할 것이다. - P16

생산과 소비의 양적 증가는 도리어 인간생활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비극적인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바로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 P17

따지고 보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삶의 우주적 연관이나 자연적 근거를 완전히 망각한 문화라는 것은 거의 낯선 것이었다고 할 수 있고,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산업문화는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생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P18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쇄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 P19

따지고 보면, 현대 기술문명의 기저에는 정복적 인간의 교만심이 완강하게 버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도를 따르는 순리의 생활을 우습게 여기면서,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통제와 조종 속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야만적인 폭력이 끝없이 창궐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연적 환경이든 인문적 환경이든 나날이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생활의 창조적 재조직이 가능하려면, 자기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겸손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 P19

상업주의의 가공할 압력 밑에서, 자본의 지배에 반대하려는 의도로 출발한 문화적 작업들이 흔히 거의 예외없이 자본과 상품논리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 그러나 죄악의 출발은 가난이 아니라 잉여라는 옛사람들의 생각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헌신과 자기희생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문화가 활개를 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 P21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회나 세상이 변해야 할 필요성에 관해 말하고있지만, 그러나 세상이 변하려면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은 자기 자신이 바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정확히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개인적인 노력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문제는 구조적이다ㅡ라고 흔히 지식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호 《녹색평론>의 여러 필자들, 특히 <작은 行星을 위한 食事>의 필자가 분명하게 말하고 있듯이, 구조적 변화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는 것이며, 나 자신이 변화함으로써 벌써 세계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임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이 당면한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위기에 대한 진실로 인간다운 양심적인 응답일지도 모른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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