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피아니스트들의 말은 허세도 거짓말도 아니다. 같은 피아노도 실제로 연주하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 다른 소리의 근원은 건반을 누르는 방법에 달려 있다. 때릴수도, 누를 수도, 톡 건드릴 수도 있고, 눌렀다가 곧바로 뗄 수도, 다음 건반과 연결할 수도 있으며, 서서히 뗄 수도, 급하게 뗄 수도 있다. 힘을 얼마나 들이고 어떤 속도와 감각으로 건반을 누르느냐에 따라 소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음으로도 짓누르는 소리, 멀리 보내는 소리, 가다가 뚝 떨어지는 소리, 또랑또랑한 소리, 희미한 소리, 깨지는 소리, 점점 커지는 소리(놀랍게도), 사라지는 소리, 경직된 소리, 속삭이는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는 피아노의 모든 부품이 관여된다. - P10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 있게 된다.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 - P13

우리의 느릿느릿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완전성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 P17

피아노는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가, 느릿느릿 돌아왔다. 피아노를 치기위해 돈을 버는 날들이 있었다. 피아노를 치다가 우는 날들이 있었다. 꼭 피아노여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피아노를 어떤 상실의 상징으로서, 될 수 있었으나 될 수 없었던 것, 고통스럽게 내놓아야 했던 모든 것의 반영으로서 받아들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삶을 돌아보면서 피아노에 부여한 역할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조직한 내 삶의 서사에서 피아노는 빠질 수 없는 주춧돌로 서 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이 그의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면, 나의 정체성의 일부분은 피아노라는 하나의 존재, 그 물건과 물건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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