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다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서로를 향하지만, 그 비난의 가운데에 전통적인 ‘가족‘을 이루는 중심, 즉 할아버지, 아빠, 삼촌 들은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였다. 서로를 헐뜯고 다투는 여자들 곁에서 바라보기만 하다 한마디 거들 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같은 자식이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돌봄노동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았다. 큰아들이어도, 맞벌이를 하고 있어도, 남자는 예외다. - P105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사라진 나의 이름을 당연하게 여겼던 열일곱의 나와 손주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고쳐 쓰던 내가 다른 것처럼, 또 다른 각성의 언어는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 책을 훗날 읽었을 때, 글에 담긴 내 생각이 얕고 철없어 뒤늦게 부끄러워질까봐 조금은 두렵다. 그러나 내 생각이 세월과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높은 기준을 가질 미래의 나를 기대하며 용기 내어 글을 썼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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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정경대 명예교수인 리처드 세넷은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가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도시"를 만들도록 권하고 있다. - P156

자본의 최대의 적(敵)은 자립한 삶이다. 한 조각의 땅덩이에서 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가족은 아무에게도 ‘수익‘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가족을 쫓아내기만 하면 그 땅은 이익을 내도록 사용될 수 있다. 또 가족 구성원 중에서 성인은 ‘이익이 나도록 고용‘ 될 수 있고, 온 가족이 (광고 따위를 통해서) 소비자로 훈육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 경제의 그 특유의 사악함 속에서, 이렇게 의존적으로 된 사람들의 질병, 우울증, 범죄 및 기타 불만들은 다시 제약·보험·돌봄·보안·제조·오락·감옥 산업들에 거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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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의원’은 ‘누구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기도 한 거라며 자부심 넘쳐 있다가,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청소노동자이거나 간호사이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휠체어를 타고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은 쉽게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훨체어가 들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리적인 장벽 문제가 아니다. - P224

아, 그렇구나. 환자 입장에서도 ‘약이 잘 듣지 않는다‘, ‘선생님이 권해준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얘기는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구나. 이런 얘기를 피하기 위해, 그냥 다니던 병원을 바꿔버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고 용기를 낸 것이었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있는데 굳이 여기에 와서 살림의원과 자신을 맞추어가려고 노력 중이었던 것.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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