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차를 조금 무서워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중교통이 아닌 모든 차에 타는 것을 무서워해요. 택시를 타든, 기족이 모는 차를 타든 항상 긴장한 상태예요. 지금 내 눈앞을지나는 차가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때로는 100킬로미터를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무서워서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운전하는 차가 그런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 무서워서 생각조차 할 수 없고요. - P185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만이 갖는 나룰의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고독함과 짜증, 외로움과 서러움이 잔뜩 뒤섞인, 그 무력한 시간이요. - P196
열기를 지니는 것을 조금 두려워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뜨거운 음식도 잘 못 먹는 저는, 그저 미지근한 상태가 오히려 마음 편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게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성격이 저자신의 대인관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상한 실망감을 느끼는것보다는 차라리 열기를 피하는 편이 저 자신을 지키기에는더 도움이 되는 거죠. - P201
사랑의 전당
김승희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 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포대 속 그런 데에 살아도 사랑한다는 것은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 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
시퍼런 수박을 막 쪼갰을 때 능소화 빛 색채로 흘러넘치는 여름의 내면, 가슴을 활짝 연 여름 수박에서는 절벽의 환상과 시원한 물 냄새가 퍼지고 하얀 서리의 시린 기운과 붉은 낙원의 색채가 열리는게
분명 저 아래 보이는 것은 절벽이다 절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절벽까지 왔다 절벽에 닿았다 - P238
절벽인데 절벽인데도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다
절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 낭떠러지 사랑의 전당 그것은 구도도 아니고 연애도 아니고 사랑은 꼭 그만큼 썩은 고구마, 가슴을 절개한 여름 수박, 그런 으리으리한 사랑의 낭떠러지 전당이면 된다 - P239
사랑에 상처받아본 적 있나요?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있을 순 있어도, 사랑하면서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사랑의 근본적인 속성은 상처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랑이란 스스로를 취약한 상태로 내놓는 일이라고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상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죠. 반대로 말 한마디나 입가에 걸린 작은 웃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것만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얼마나 쉽게 상처받겠어요. 그 작은 웃음 한 조각이 주는 열렬한 환희를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고자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 P240
기분 전환
유병록
어떤 기분은 잘못처럼 여겨지니까
기분 전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까 머리 모양을 바꿔볼까
우리의 기분이란 사소한 이유로도 쉽게 달라지고
어떤 기분은 짐처럼 무거우니까
목욕탕에 갈까 신나는 음악을 들을까 그럼 좀 가벼워질까
어떤 기분은 감옥처럼 느껴지니까
이사를 할까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날까 - P244
기억이란 가벼운 바람에도 흩어지는데
너는 꼭 그 기분 속에서만 나타나고
어떤 기분은 이불처럼 편안하니까
나는 깊이 파묻혀 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 P245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어떤 기분을 유심히 살펴보고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를 읽으면서우리의 기분과 삶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갖기도 하겠지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기분 전환에 시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요.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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